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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대회 "이슬람과 싸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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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ㆍ2009-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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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대회가 "무슬림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이라는 주제로 4월 12일(주일)부터 15일(수)까지 뉴욕중부교회(김재열 목사)에서 열렸다. 이번대회는 시드선교회와 중부교회 해외선교위원회가 공동주관한다.

15일(수) 마지막날 대회는 김덕래 선교사(파키스탄 선교사/무슬림 퍼스팩티브)가 "무슬림 선교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다음은 김덕래 선교사의 기억나는 어록이다.

-무슬림에게 무조건 믿으라 하면 안된다
-기독교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
-이슬람선교를 역사적으로 보자
-기독교인들이 잘못해 무하메드가 이슬람을 만들었다
-이슬람과 싸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것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 기독교인이 바로 서는 것.
-기독교인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고 따르는 사람.
-입으로만 선교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선교는 진리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삶의 싸움이다.
-무슬림이 천국확신이 있다면 알라위에 있다며 신모독죄.
-선교전략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선교를 가장 못하는 교회는 너무 많은 것을 하려는 교회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역할은 따로있다.
-부흥은 선교사보다 하나님의 성령의 운동때문이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를 안하면 선교사를 유기하는 것이다
-선교는 더이상 전선이 없다
-선교지에 오면 마치 사도바울의 피를 이은것 처럼 한다

다음은 강의요약이다.

신학적 어려움

이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것은 첫째 신학적 어려움이다. 무슬림에게 신학적으로 논쟁을 하고 진리를 내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오히려 신학적인 접근은 무슬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영리나 삼위일체가 성경이 아니라 신학적인 해석이므로 무슬림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한분이라는 삼위일체를 말하면 무슬림들은 바보라 대꾸한다.

무슬림에게 무조건 믿으라 하면 안된다. 누가 진리냐는 싸움은 결판이 안난다. 오히려 설명에서 밀린다. 기독교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이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하는 것은 기도해야 할 부분이다.

86년에 파키스탄에 들어갔다. 내가 원해서는 가지는 않았다. 아내는 약혼기간에 파키스탄에 비전이 있었다. 사랑을 따라 들어갔다가 17년간 파키스탄에 있었다. 파키스탄은 남자는 무엇이든지 할수 있고 여자는 하지 못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밖의 일은 다 내가 했지만 집에서 손에 물한방울 안뭍히고 살았다. 미국에 오니 문화가 적응이 안된다.

가장 크게 느낀것은 파키스탄인은 우리와 다른 것이 하나가 있다. 그들의 가난한 모습이 아니라 저들은 내가 가진 예수가 없다는 것이 다가왔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주는 것이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자신이 사랑했던 파키스탄에서 녹내장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

역사적인 어려움

이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것은 둘째 역사적인 어려움때문이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역사적으로 갈등이 많았다. 모르코에 가서 선교지도자를 만나니 이슬람선교를 역사적으로 보자고 말했다. 어떻게 이슬람이 시작되었는가? 역사를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무하메드가 이슬람을 시작한 그땅에 유대인과 기독교의 왕국이 있었다. 만약에 그곳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살면서 영향을 주었더라면 무하메드가 이스람을 만들지 않을수도 있었다. 이슬람 시작된 배경은 기독교인의 무능이다. 이스라엘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이유는 제 역할을 못했을때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이다.

"이슬람 쓰나미가 몰려온다" 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 기독교인이 바로 서야 하는 것이다. 이슬람과 싸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머리에 재를 부리고 베옷을 입고 회개하고 자복하는 기도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이슬람선교의 시작이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누구인가? 기독교인은 우리죄를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고 따르는 사람이다.

'기독교인'이라는 단어는 사도행전에 4번 정도 나온다. 안디옥교회 교인을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한것이 아니라 교회밖에 있는 사람이 안좋은 뉘앙스로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기독교인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고 따르는 사람이다.

물론 믿는 것이 중요하지만 입으로만 믿는다하고 입으로만 선교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교인들이 말로만 하는 기독교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세상사람들이 인정을 안한다.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것이 기독교인이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이 "왜 너희의 삶은 너희가 믿는 예수의 삶과 다르냐"고 묻는 것이 나의 큰 선교도전이었다. 현지인들이 선교사의 복음을 안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말씀이 틀렸기 보다는 선교사의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마음에 안들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사람이 무엇을 믿으라 하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선교는 진리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삶의 싸움이다. 현지인에게 성경을 말해주는 것 보다 예수를 믿는 선교사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파워풀하다. 전도지 보다는 내삶이 복음의 전도지이기를 원한다고 기도해야 한다. 저런 사람이 믿는 것이라면 나도 믿고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수 있어야 한다.

이슬람의 약점들

이슬람의 약점은 알라(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아무도 알라를 본 사람이 없지만 코란에는 하나님 이름이 99가지로 나온다. 하나님은 이름이 없으시다. 무스림은 알라의 명칭이 사실은 백개였으며 하나가 어디인지 감추어져 있는데 그것을 찾으면 천국을 간다고 생각한다.

알라의 이름이 너무 추상적이라 하나님을 이해할수도 알수도 없다. 그래서 위대한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 밖에 정의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알수도 없고 알려고 할수도 없다.

그래서 알라를 믿는 사람에게 가장 큰 약점은 죄에 대해 큰 약점이 있다. 기독교인은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성악설을 믿는다. 무슬림은 태어날때 죄인이 아니라 깨끗하게 태어났다고 믿는다. 살면서 어른들의 사악한 마음과 환경때문에 죄를 짖는다고 본다.

죄를 해결하는 한가지 방법은 죄로 인한 댓가를 치루면 된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의 간섭이 필요없다. 무슬림은 죄를 '실수'라고 한다. 나는 착한데 악한 사람이 많아서 힘들다고 이야기 할수도 있다. 그래서 무슬림은 죄의 해결을 위해 구속자가 필요없다. 그러니 예수님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슬림의 천국은 죄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알라가 허락해야 갈수 있다. 그래서 좁은 길을 이야기 한다. 오른쪽 천사가 잘한것 기록하고 왼쪽 천사가 나쁜일을 기록하여 심판대 앞에 서서 저울에 달아 좋은 일이 많으면 천국이 간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소망일 뿐이다. 결정적 하나님이 결정하면 지옥을 갈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잘하는 무슬림이라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 오히려 확신이 있다면 알라위에 있다며 신모독죄라고 한다.

무슬림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무슬림에게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하는 방법을 선교사에게 배웠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제사지내러 올라간다. 하지만 무슬림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고 한다. 무슬림은 이스마엘 대신 숫양을 바쳤다고 믿는다. 그래서 무슬림에게 이사건을 이야기 하고 "당신을 위해 숫양처럼 누군가 생명을 대신하는 것이 있으면 좋지 않느냐. 성경은 어린양이 예수라고 합니다"라고 설명하면 무슬림의 마음을 움직인다.

무리를 보고 전파하는 자가 되라

마태 9장에는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보시니"라는 귀절이 나온다. 예수님은 목자없는 양같은 무리을 보셨다. 하나님은 주인없는 양같은 무리를 보고 마음이 뛰신다. 그것을 들을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마음속에 있을때 우리도 사역에 동참할수 있다. 목적없이 방황하는 그무리들, 그러나 추수할 사람이 없는 무리를 보며 하나님은 민망히 여기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무슬림을 향한 마음은 가슴이 찢어지는 민망한 하나님의 열정이다.

로마서 10장에는 "전파하는 자가"라는 귀절이 나온다. 두 성경구절을 모아 놓으면 하나님이 무리를 보았는데 목자없이 방황하는 양떼같은 무리가 있는데도 전파하는 자가 없는 무리이다. 그것을 예수님은 민망히 여기고 계시다. 그것이 교회, 저와 여러분의 가장 큰 마음이 되기를 원한다. 선교전략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눈에 목자없는 무리가 보여야 한다.

집중을 가져야 한다. 선교를 가장 못하는 교회는 너무 많은 것을 하려는 교회이다. 집중하라. 목자없는 무리들에게 집중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실줄 믿는다.

하나님과 우리의 역할은 따로있다. 나의 역할은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할은 순종하고 가는자에게 끝나는 날까지 같이 있으시고 성령의 권능을 주샤서 일하게 하신다. 두파트가 잘 만나야 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파트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집중하고 더보내고 기도하라

이슬람 선교 가장 큰 2개 전략은 목자없는 양같은 무리를 보는 것과 그무리에게 사람을 보내는 것이다.

전세계 1만6천 종족이 있다. 그중 3,277개가 무슬림 종족이다. 그중 10만명이 넘는 종족이 775개이며 그중 644개 종족이 미전도종족이다. 미전도종족중 397개 종족은 개척이 되고 있지만 244개 종족은 아직도 한사람도 관심을 가지지 못한 종족이다. 예수님의 무리를 보는 마음으로 244개 종족이 눈에 들어오기를 바란다.

이슬람 선교의 현실을 파악해야 한다. 35만 미전도종족에 선교사가 파송되어 지하교회의 성도는 100명이고 매년 13%가 성장한다고 하면 몇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미전도종족으로 남는다. 적어도 25% 성장을 해야 미전도종족에서 벗어날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선교단체 교회 선교사가 힘을 합해도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것을 위한 전략은 집중하여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

이슬람 선교전략은 집중하는 것과 많은 선교사 파송이 있다. 또 회개의 기도운동이 필요하다. 왜나하면 북아프리카 지역에 큰 교회부흥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알제리는 7백명의 신자가 있었는데 7년후 12만명이 되었다. 부흥은 선교사가 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운동때문이다. 환상을 보고 무슬림들이 교회로 나오고 있다.

파송하는 선교사도 중요하지만 성령의 역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를 안하면 선교사를 유기하는 것이다. 보내는 선교사와 선교할 민족을 위해 하나님의 민망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때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셔서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는 역사가 일어날것이다.

선교는 더이상 전선이 없다

선교는 더이상 전선이 없다. 왜나하면 미국에도 6백만명의 무슬림 신자가 있다. 이들을위해 무엇을 할것인가? 주위의 이슬람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라.

파키스탄에 온 단기선교팀 대학생들은 뜨거웠다. 기도를 시키니 선교하러 왔는데 기도만 시킨다고 항의했다. 그젊은이들의 뜨거운 마음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같은 대학에 파키스탄 사람이 있는가"하고 물었다. "있다"고 하자 다시 "그러면 그들을 전도해 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없다"고 대답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샌다. 왜 주변의 선교대상자는 관심을 안두고 선교지에 오면 마치 사도바울의 피를 이은것 처럼 그러는가?

선교는 나가서 하는것이 아니라 앉아 있는 이자리에서 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무슬림에게도 같은 심정이 있기를 바란다. 선교가 어떻다고 불평하지 말고 지금 시작하기를 바란다.

ⓒ 2009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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