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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 한진관 목사, 은퇴 및 원로목사 추대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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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05-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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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관 목사의 은퇴 및 원로목사 추대 예배가 1월 23일(주일) 오후 5시 퀸즈한인교회에서 있었다. 이날 행사는 1부 장로 장립예배와 2부 원로목사 추대예배로 진행되었다. 1부 장로장립예배에서 한진관 목사는 이준호 장로와 이철선 장로를 그의 재직 마지막 장로로 세웠다. 한진관 목사외 김요한 목사, 박재영 목사, 박희소 목사, 장영춘 목사, 정영규 목사, 방지각 목사, 안창의 목사, 손영구 목사, 김종일 목사, 이희선 목사 등이 장로들의 안수기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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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원로목사 추대예배에서는 김요한 목사(세계 아가페 선교교회)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박재영 원로목사(뉴저지 제일한인교회) 기도, 안창의 목사(퀸즈중앙교회) 성경봉독, 장영춘 목사(퀸즈장로교회) 말씀, 이희선 목사(새언약교회) 약력소개, 박희소 목사(뉴욕동부교회) 축사, 이병홍 목사(새가나안교회) 감사패 증정, 방지각 목사(축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장영춘 목사는 "나의 달려간 길을 마치고"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하여 목회 그것도 이민목회의 35년 6개월은 참 긴 세월 이었다며 "곰과 목사" 의 예화를 들며 이민목회의 어려움을 잘 마무리한 한진관 목사를 축하했으며, 육이오때 축농증 수술차 만난 군인 한진관 대위와의 인연을 회고했다.

송석황 장로는 "35년간 쉬지 않고 전심으로 노력한 한진관 목사가 이제 연로하여 시무를 사면하게 되었으므로 교우일동은 과거의 공을 인정하야 원로목사로 추대한다"라며 한진관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했다.

원로목사 선포후 한진관 목사와 함께 단상에 오른 김태열 사모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할렐루야를 외치며 노래와 춤을 추었다.

박희소 목사는 축사를 통하여 지난 목회생활은 우여곡절이 많았겠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라며 "사람은 황혼이 아름다워야 한다. 붉고 깨끗하게 자리를 비우는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욕교협은 은퇴하는 한진관 목사에게 부회장 이병홍목사를 통하여 뉴욕교협에 대한 협조에 감사하며 감사패를 수여했다.

한진관 목사는 답사를 통하여 “35년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신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잘 지켜주신 하나님과 성도님에게 모든 은혜와 감사를 돌린다”며 간단히 소감을 밝혔다. 소감을 마치자 참여한 사람들은 길게 박수로 그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방지각 목사는 축도를 통하여 퀸즈한인교회는 새로운 목사님과 함께 제 2의 부흥을 맞이하라고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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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관 목사 약력

1930년 함경남도 혜산진 출생
1950년 육군대위제대
1956년 한국신학교 졸업
1956년 도미
1966년 김태열 사모와 결혼
1968년 유니온 신학교 졸업
1969년 퀸즈한인교회 개척
1969년 목사안수
1972년 뉴욕한인봉사센터 설립
1977년 성령세례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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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열 사모의 간증
(빛과 사랑에서)

남편과 나는 열심히 일했으나 만족은 없었다. 오히려 얼굴을 찡그리며 집에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았다. “여보, 우리가 목회하지 않는다고 밥 굶겠어요? 차라리 직장을 가져요.” 견디다 못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내 직장의 봉급은 남편의 사례금 보다 많았고 의료해택은 완벽했다. 더욱이 남편의 사례금은 거의 헌금으로 드려졌기 때문에 가계는 내 수입으로 꾸려나갔다, 따라서 나는 교만이 팽배해 있었다. 교회가 편안치 못하니 가정도 편안치 못했다. 직장생활도 짜증스러웠고 모든 것이 실망 투성이었다.

1961년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온 나, 전공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가 모교에서 교수를 하리라고 다짐했는데 갑자기 목사 아내가 되어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종일 발이 부르트도록 일을 하건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피곤과 짜증, 갈등과 원망뿐이었다. 하루하루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깊은 좌절에 빠지곤 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결코 좌절과 낙망 속에 있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드디어 크고 부드러운 손을 나와 우리 가정에 내밀어 주셨다. 목회에 기쁨을 얻지 못하고 좌절에 빠져 있는 동안 뉴욕 여러 곳에 교회가 많이 생겨났다.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은혜있는 교회를 찾는다고 했다. 무엇이 은혜있는 교회란 말인가. 나로선 이해가 잘 가지 않았고 성도들도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고민스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왜 주님의 교회가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하지 않고 냉랭하여 성도간에 교제가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를 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직장과 가정, 교회 어느 하나도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해 하루하루가 지겨웠다. 나중에는 세상과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은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이웃교회 부흥회에 다녀오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 “신앙에 대해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하겠소. 이번 부흥회가 참 좋은 것 같으니 당신도 한번 가 보구려.” 그동안 자유주의 신학에 길들여져 부흥회란 말조차 못하게 했던 남편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미국에 온 이래 부흥회엔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고 내 마음도 무엇인가에 갈급해 있던 터라 다음날 저녁부터 집회에 참석했다.

진리의 생수에 목말라 있던 내 영혼은 첫날부터 주님의 강한 섭리로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회개의 눈물을 쏟아내던 나는 비로소 ‘예수님께서 죄인인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확신이 용솟음쳤다. 그동안 설교를 통해 수백번 이상 들어오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갑자기 내 영혼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잘 믿어지지 않던 하나님의 존재가 거울을 보듯 실체로 다가왔다.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직장도 나가지 않고 부흥목사님의 다음 집회장소까지 좇아 가 3일 동안 참석했다. 이때 비로소 은혜의 의미와 성령 충만의 뜻을 깨달았다.
“여보, 우리가 왜 진작 이런 체험을 하지 못했는지 안타깝구려. 이젠 새로운 마음으로 목회를 합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남편 역시 나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게 아름답고 좋아 보일 수 없었다, 모든 일이 기쁨이요, 찬송할 것뿐이었다. 부흥회를 통해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의 삶은 놀랍게 변해갔다.

먼저 성경을 읽고 싶은 소망이 생겨났다. 8년 동안 한번도 들쳐보지 않았던 성경책을 창세기부터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103). 또 전에는 교회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던 장로님 집사님들이 그렇게 밉더니 이젠 오히려 감사하고 내가 먼저 악수를 청할 정도가 되었다. 또 기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님과 막혔던 장막이 찢겨 나가는 순간부터 기도의 교제가 시작된 것이다.

가치관도 변화되었다. 예전에는 부잣집의 좋은 가구와 그릇들이 그렇게 부럽더니 이젠 그런 것들이 부질없어 보이고 자족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만 생겼다.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리기 시작했고, 음악도 명곡들 보다 찬송이 더 좋았다. 성령을 통한 영적 변화는 나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꾸어 놓았다. 영의 눈을 뜨게 되니 성경 전체가 ‘성령’으로 감동된 진리의 말씀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자 꿈과 소망이 샘물처럼 솟아나외다.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이 찬송이 입에서 언제나 흘러 나왔다, 지금까지 세상일에 연연했던 삶을 청산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겠다는 분명한 신앙고백이었다.

그러나 갈등이 있었다. 그것은 직장을 포기할 것인가, 하나님의 일에 전념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다니던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뉴욕시의 공무원은 15년의 임기를 채우면 연금이 나오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 나는 14년 6개월을 다녔기 때문에 6개월만 더 있으면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 ‘두 명의 나’가 싸우고 있었다.

“김태열, 그 직장이 어떻게 해서 얻은 것이냐, 미국유학을 위해 10년을 준비하며 공부했고 유학 중에도 얼마나 피눈물 나는 고생을 했느냐, 너의 사회사업과 학위는 충분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곳의 수입으로 가계를 꾸려 왔는데 그만두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능력과 공의의 하나님이 우리의 앞길을 예비해 주시고 더 크게 복내려 주실 것이다. 인간의 생각을 버리고 담대한 신앙으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자.” 과감히 직장을 포기했다. 결국 신앙이 승리를 한 것이다. 믿음은 결단을 필요로 하며 옥합을 깨뜨리는 헌신이 있을 때 더욱 성장한다는 것은 참된 진리였다.

‘세상’을 포기하고 나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믿음도 굳세졌다. 본격적으로 영혼구원사업에 나섰다. 돌보지 못했던 성도들을 심방하며 기도해주는 일을 계속했다. 이것은 어떤 일보다 보람되고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 새벽기도에 나가기 위해 아침 5시에 일어나며 밤11시 경에나 들어왔다. 예전보다 더 늦게 들어왔지만 원망과 불평이 없어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니 자녀들을 돌볼 시간의 여유도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늘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셨다.

ⓒ 2005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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