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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 "한국교회가 본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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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4-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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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의 뉴욕과 뉴저지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아름다운교회 집회에 이어 7월 11일(금)부터 3일간은 뉴욕장로교회(이승한 목사)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12일 토요일 저녁집회에서 홍정길 목사는 고린도전서 11:1을 본문으로 "본으로 내려오는 축복"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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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는 홍정길 목사

설교를 통해 홍정길 목사는 "한국교회는 본을 잃어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목사는 개인적으로 기도의 본, 찬송의 본, 헌금의 본들을 남겨준 부모님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살고 한국인으로서 죽은 서서평(엘리제 쉐핑) 선교사와 기독교 역사상 전례가 없는 사랑과 순종을 보여준 손양원 목사를 길게 소개했다. 그리고 "이런 위대한 신앙의 본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한국교회는 신앙의 본을 잊어버렸다. 손양원 목사를 설교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리고 성프렌시스가 어떻고 미국의 릭워렌이 어떻다고 설교하는데 그들이 무슨 본이 되는가"고 반문했다.

더 나아가 홍정길 목사는 "한국교회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위해 고통받은 손양원 목사를 잊어버리고, '누가 예수잘믿었더니 부자되었더라', '예수잘믿었더니 그 자녀들이 형통해졌다더라'라는 소리로 가득차 버렸다"며 "교인들은 우리의 본을 잊어버린채 헤매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 없다. 본으로 전수되지 않은 우리의 모든 기독교적인 지식은 머리속에만 있지 삶은 아니다"고 말했다.

홍정길 목사는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될 것은 제자훈련이 아니다. 사도 바울도 제자훈련 하다 하다 안되니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들을만큼 들었다. 배울만큼 배웠다. 감동도 많이받았고, 마음속에 여러 기쁨과 감사도 있었다. 그렇지만 삶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씀을 여러분들이 받아야 한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려면 담임목사를 보아라', '그 장로 뒤만 따라가면 주님의 마지막이 보인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이 안보이면 가짜이다. 제자훈련의 가장 무서운 독소는 그 사람은 보이고 그 사람은 큰다. 그런데 그 뒤에 더 크신 주님을 가리면 가짜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야 진짜 전수이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설교 내용이다.

우리 어머니 많은 소유가운데 가장 끝까지 놓치 않고 늘 붙잡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옷본이다. 저희가 9남매인데 지금이야 시장에 가서 옷을 쉽게 사 입을 수 있지만 우리가 자라는 시절에는 장에 가서 광목을 사다가 염색하고 어디서 입을 만한 옷본을 구해서 그것을 그리면, 우리 아버지가 그 옷본따라 짜르시고 어머니가 바느질해서 뒤집으면 내가 입는 옷이었다. 나이드신 분은 무슨 소리인 줄 알 것이다. 이 옷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내 동생이 내 나이가 되면 그 옷본을 사용하고 그 다음 동생이 자라면 사용하고 그러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싫어하는 우리 어머니는 서울에서 좋은 옷본이 왔다고 하면 체면불구하고 그 집에 가서 옷본을 구했다. 그렇게 자란 9남매가 세계 7개 국가에서 산다. 나중에 저번에 소집해서 보니 식구가 54명이다. 옷본 그것만 있으면 문제없이 같은 제품을 만들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옷본이라는 것은 사실은 옷만 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몸속에 이미 부모들의 DNA를 가지고 있다. 자랄수록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는다. 본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이 본은 옷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우리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신앙에도 본이 필요하다. 부모가 살았던 삶의 본을 나도 모르게 배운다.

믿음의 본 - 할머니와 부모님

저희 부모님은 크게 장사를 했다. 5일장이 끝나면 가마니에 담았던 돈을 가족들이 새벽까지 세는 것이 일이었다. 부모님은 그 돈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새 돈은 반드시 빼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주일 십일조 헌금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새 종이 돈이 없으면 그중에서 가장 좋은 돈들을 따로 모았다가 토요일이면 인두를 사용해서 하나씩 폈다. 그렇게 해도 돈의 액수가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들은 정성스럽게 돈을 준비해서 봉투에 잘 넣어서 헌금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내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은행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이화학교에서 10년간 공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처음에는 우리 부모님 처럼 헌금할 새 돈을 준비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역정을 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때문에 그렇다. 하나님 앞에 목을 놓고 울부짖고 기도하는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찬송하는 모습을, 지금은 비록 형제들이 흩어져 살지만 부모들이 하셨던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을 본다. 부모부터 시작한 기도의 본, 찬송의 본, 헌금의 본들을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내 몸에 조용히 젖어든다. 그러면 부모님들은 누구에게 부터 신앙을 받았는가?

외할머니는 손이 부족한 경주 최씨 가문에 아들을 낳기위한 목적으로 시집갔다. 그런데 두번의 유산으로 늘 근심과 염려하고 있을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내게로 오라'는 선교사의 메세지를 듣고 주님께로 나갔다. 그리고 열심히 교회에 나갔다. 두번을 유산하고 예수까지 믿으며 바깥으로 도니 집안에서 쫓겨나갈 위기에 임신을 하고 딸을 낳았다. 산후조리하는데 독립만세 사건이 교회중심으로 시작되니 할머니도 나가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에 붙잡혀갔다. 안그래도 딸을 낳아 미운 여자가 자식을 버리고 밖에서 도니 핏덩이와 함께 쫓겨났다.

그때 외할머니와 핏덩이를 거두어 준 것이 서서평(엘리제 쉐핑) 선교사였다. 서서평 선교사의 공동체 생활속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영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할머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나가기 전도하고 교회가 될만큼 사람이 많아지면 남자 전도사에게 교회넘겨주고 또 교회를 개척하면서 일제시대에 7개 교회를 개척했다. 그러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1937년 대전 감옥에 들어갔다. 너무 고문을 받아서 몸이 견딜수 없을때 할머니를 집에 보내주고 주거제한을 시켰다. 할머니는 집에서 틈만 있으면 기도했다. 첫손자인 제가 좋은 목사되게 해달라고 늘 기도했다.

믿음의 본 - 서서평 선교사

그러면 외할머니의 본은 어디에서 왔는가? 서서평(엘리제 쉐핑) 선교사이다. 1912년 뉴욕에서 한국으로 온 간호사 출신의 독신 선교사이다. 그 분은 한국에 와서 대한간호사협회를 세웠으며, 세브란스 의과대학 간호학과를 세웠다. 그런데 지병을 얻어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자 전라남도 광주로 임지를 바꾸었다. 대개 자녀있는 선교사들은 아이들 교육때문에 수도권 가까이 있지만, 독신 여성 선교사는 가정이 없으니 사람들이 가기도 힘든 어려운 곳에 간다. 아마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유명한 선교사 보다 이름도 빛도 없이 어려운 곳에서 목숨을 걸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독신 선교사들이 많을 것 같다.

서서평 선교사는 독일에서 태어나 그리고 뉴욕으로 와서 간호학교를 마쳤다. 한 복음주의자 목회자에 감화감동을 받고, 그 분이 세운 여자신학교를 졸업했다. 서서평은 독일어에서 영어로 언어를 바꾸면서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을 알았기에 당시 한국에서 가장 한국말을 잘하는 선교사였다고 한다. 서서평 선교사는 광주에서 나환자들을 섬기는 일을 했으며, 1944년에 소천했다. 병명은 극심한 영양결핍이었다. 그분이 돌아가셨을때 미국에서 가지고 간 모포, 돈 2전 그리고 조 7홉이 그분이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서서평 선교사가 죽은 다음, 유품을 정리하는데 써놓은 글이 발견됐다. "성공이 아니라 성김이다." 그 분은 한국땅에 오셔서 고아들을 양육해서 자기 식구로 삼았다. 그리고 집에서 쫓겨난 여자들과 과부들을 불러모아 함께 공동생활을 했다. 2만여명의 선교사가 한국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들중에 나쁜 선교사도 많았을 것이다. 열심히 수고한 선교사도 있고, 한국의 친절한 친구로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다가 돌아가신 분이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서서평은 한국에 와서 한국사람이 되어서, 한국사람로 일하다가, 한국사람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그의 운명했을때 삼남지방에 모든 나환자들이 땅을 치면서 '우리를 두고 어찌 갔는가'라고 통곡했다고 한다. 서서평 선교사의 시신은 없다. 유해는 병원 해부용으로 기증했다. 쉽게 살고싶은데 쉽게 살 수 없는 것은 본이다. 체질적으로 안된다.

저 홍정길은 외할머니의 본, 서서평 선교사의 본을 받았는데 여러분은 어떤가. 아무 본도 받지않고 교회에서 설교만 들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엄청나게 이미 주셨다. 세계 역사상에 없는 귀한 참으로 귀한것을 주셨다. 깡패였던 최흥종이 서서평 선교사가 나환자를 섬기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고 예수믿고 평양신학교 들어가 목사가 되기도 했다. 서서평 선교사는 생일이 몇달빠른 최흥종 목사를 늘 오빠라고 불렀다. 최흥종 목사는 자기의 재산을 내놓아서 애양원을 세웠다. 처음에는 애양원이 광주에 있었다가 정부의 시책에 따라서 여수로 옮겨졌다.

믿음의 본 - 손양원 목사

여수 애양원에서 손양원이라는 세상의 어떤 본으로 흉내낼 수 없는 분을 우리에게 주셨다. 손양원 목사는 약관의 30대 나이에 신사참배 반대로 1년 6개월 언도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감옥에서 고문도 당하고 여러 수모를 당했다. 형을 마친후에도 신사참배를 계속 반대하자 재판도 없이 1년 6개월을 더 살았다. 다시 형기를 마치자 이번에는 손양원 목사에게 안묻고 간수에게 물으니 감옥에서 신실하고 귀한 본을 보였으며 나가면 황국시민으로 좋은 본을 보일것이라고 말해 석방명령이 떨어졌지만, 손양원 목사는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믿는 자로서 이웃국가인 일본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강요해서 망하는데 어떻게 내가 나갈수 있겠는가 라고 하고 다시 감옥으로 들어갔다가 1945년 해방된 이틀날 감옥에서 나왔다. 손양원 목사가 출옥하자 서울과 부산의 여러 교회에서 청빙하려고 했으며, 김구 선생은 고등학교를 세워 교장으로 초청했으나 손양원 목사는 모두 거절하고 사랑하는 식구들이 살고있는 애양원으로 갔다.

손양원 목사에 대한 너무 전설같은 이야기가 많다. 나병환자가 아파하는 다리를 짤라내어도 밤에 환각때문에 짤린 다리를 가렵다고 긁어 달라면 손양원 목사는 없는 다리를 밤새 긁어 준다. 손양원 목사는 나환자를 대할때 한번도 장갑이나 장화, 그리고 마스크 없이 대했다. 그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안수했다. 손양원 목사가 가난한 사람과 살았기에 카톨릭의 성프렌시스와 비교가 될까, 또한 나환자와 살았기에 카톨릭에서 존경하는 세바스찬이라는 순교자와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손양원 목사는 가난한 사람들과 나환자들을 섬긴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여순반란 사건이 일어났다. 손양원 목사는 외부에서 말씀을 증거하러 나갔을때 여순반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으로 손양원 목사의 사랑하는 아들 2명이 죽었다. 그때 순양원 목사는 그 유명한 '감사의 기도'를 했다. 성프렌시스의 '평화의 기도'와는 상대가 안된다. 손양원 목사의 감사기도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세월호 고통속에서도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을 찬미하고 감사한다. 신앙인은 감사라는 마지막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들을 죽인 그 친구가 사형의 위기에 빠지자, 외부 집회를 하느라 직접 가지는 못하고 친구 목사와 딸을 보내 구한다. 집회가 끝나고 돌아와서 가족들과 함께 회의를 한다. 아무래도 양자로 삼아야 겠다는 것. 손양원 목사가 그 이야기를 하자 딸 손동희는 "해도 너무한다. 원수를 오빠라고 못부른다"고 울면서 말했다. 손양원 목사가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말씀을 순종해서 일제의 감옥을 견뎌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살릴 방법이 없으니 용서해야 한다고 했다. 손동희 권사와 여동생은 충격을 받았다. 그때의 상처때문에 손양원 목사의 막내 딸은 5년전부터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손동희 권사도 교회나온지 15년 밖에 안됐다.

이런 위대한 신앙의 본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신앙의 본을 잊어버렸다. 손양원 목사를 설교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리고 성프렌시스가 어떻고 미국의 릭워렌이 어떻다고 설교하는데 그들이 무슨 본이 되는가.

손양원 목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육이오때 여수에 인민군이 왔다. 여순반란 사건후 민심이 흉흉하고 경찰 가족들을 다 죽였다. 결사대를 조직하여 손 목사를 구하려고 했다. 손양원 목사는 감사하지만 자신은 떠날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구출하라고 했다. 내가 그래도 목자인데 어떻게 목자가 양들을 버리고 떠날수 있겠는가 하며 떠나지 않았다. 결국 손양원 목사는 붙잡혔다. 인민군들이 도망가면서 악질분자들을 죽여야 한다며 손양원 목사등 백여명을 과수원에 데려가서 총살시켰다. 그들 가운데 한사람이 살았다. 그분이 나중에 미국 산호세에 이민와서 살았다. 아들 최 장로에게 그때 이야기를 들으니 총소리 나자 최 장로의 아버지는 그냥 쓰러졌다. 얼마있다가 그위에 총을 맞은 사람이 쓰러지자 정신을 차렸다. 쓰러진 사람이 바로 손양원 목사였다. 그때 손양원 목사는 "주님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저렇게 합니다. 저들이 불쌍합니다. 저들을 구원해주세요"라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갈보리 언덕 십자가위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손양원 목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을 위해 기도했다.

다시 살아난 본 - 손양원 목사

순양원 목사를 세계 역사상 어떤 성자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교회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위해 고통받은 손양원 목사를 잊어버리고, '누가 예수잘믿었더니 부자되었더라', '예수잘믿었더니 그 자녀들이 형통해졌다더라'라는 소리로 가득차 버렸다. 본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본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손양원 목사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여수 엑스포때 여수에서 세계를 향해서 자랑할것이 무엇인가를 여수시민이 투표했는데 1위가 손양원 목사였다. 예수안믿는 사람들이 투표한 결과이다. 그래서 국고를 지원해서 여수에 온 사람들은 손양원 목사를 만나고 돌아가게 했다.

그것에 앞서서 8년전에 토론토에서 살던 박재훈 목사 여수 애양원에 들렀다가 손양원 목사의 충격적인 스토리를 듣고 이렇게 아름다운 생애가 잊혀셔는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오페라 손양원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여만에 작곡을 마쳤다. 박 목사는 한양대 음악대 작곡가 교수로 해방후 '송이송이 눈꽃송이', '펑펑 눈이옵니다' 등 50개의 동요를 지었다. 암으로 투병한 90세 노인이 작곡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박 목사는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이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줄 모르고 살았다. 내 몸에 있는 암 세포 하나하나가 음표가 되어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오페라 손양원은 3년전 예술의 전당에서 4회 공연하여 한국 오페라 사상 처음으로 완판했다. 지난해 12월 24일에는 공영방송인 KBS에서 손양원 목사의 다큐가 방송됐다. 12월 24일은 가장 대표적인 오락 프로그램들이 쏫아내는 날이다. 그런데 무슨 유명한 연속극 외에 시청율이 2위였다.

교인들은 우리의 본을 잊어버린채 헤매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 없다. 본으로 전수되지 않은 우리의 모든 기독교적인 지식은 머리속에만 있지 삶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너희들을 섬기는 자로 왔다고 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우리중에 누가 더 큰가를 놓고 다투었다. 그렇게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니 예수님이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세숫대야를 놓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리고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본이 되고 있는가?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말씀대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린도전서 11:1)"라고 했다. 사실 저는 무서워서 이 설교 본문을 목회하는 동안 한번도 못했다. 내가 내 실체를 알고 내 처지를 알기에 이 말씀을 못했다. 손양원 목사의 오페라를 준비하기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이 못된 놈아, 말로만 교인들을 섬겼지 삶으로는 그렇지 않지 않은가. 너의 삶은 못그러면서 어떻게 교인들에게 바로 서라고 하는가"라고 호통하는 주의 음성앞에 섰다. 실수로 넘어져도 그래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도 보이고, 절망하는 모습속에서 함께하시는 주님때문에 소망의 길로 가는 것도 본을 보여야 한다.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될 것은 제자훈련이 아니다. 사도 바울도 제자훈련 하다 하다 안되니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들을만큼 들었다. 배울만큼 배웠다. 감동도 많이받았고, 마음속에 여러 기쁨과 감사도 있었다. 그렇지만 삶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이대로 보낼것인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씀을 여러분들이 받아야 한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려면 담임목사를 보아라', '그 장로 뒤만 따라가면 주님의 마지막이 보인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이 안보이면 가짜이다. 제자훈련의 가장 무서운 독소는 그 사람은 보이고 그 사람은 큰다. 그런데 그 뒤에 더 크신 주님을 가리면 가짜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야 진짜 전수이다.

그 전수는 어디서 부터 시작하는가. 성경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식교육에 실패했다. 모세의 자식들은 망했다. 여호수아 자식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자식들 심지어 다윗의 자식도 그랬다. 왜 이들은 실패했을까. 그런데 성공한 사람이 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은 이삭의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왜 성경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실패했을까. 간단하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식을 구체적으로 만나 함께 살수있는 삶의 구체적인 접촉면적이 없었다. 그러나 족장들은 같이 들에 나가 같이 일하고 같이 자고 같이 삶을 했다. 삶의 본이 전수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다.

한국의 유명한 목사중에 자녀들에게 신앙전수가 안된 목사가 많다. 전수할 수 있는 공백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분이 가르치지만 자식들이 산으로 많이 간다. 저도 그것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15년동안 하루로 안빼놓고 한 기도가 있다. "하나님 아버지, 제게 이 축복을 주시옵소서. 이것만 주시면 어떤것도 더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축복만 주시면 아무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다행히 자녀들이 돌아왔다. 이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싶다. 유대민족이 세계 각곳에 흩어져도 신앙전수가 되는 것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전수하는 전수때문에 엄마의 가르침때문에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오고있다.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는 이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우리가 잊어버릴때 하나님은 암으로 병든 박재훈 목사를 사용하셔서 손양원 목사를 살리시고, 우리가 잊버버렸던 손양원 목사를 KBS 공영방송이 살려냈다. 양국주라는 친구가 서서평 선교사를 만난다음 3년동안 기록을 쫓아서 심지어 서서평 선교사가 태어난 독일까지 갔다. 지난 주일에는 서서평 선교사 어머니 무덤에 갔다. 우리는 잃어버린 서서평 선교사에 대해 양국주가 이런글을 썼다.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그 글은 "이 한국교회 바보들아, 한국교회 목사 바보들아, 한국교회 장로 바보들아,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이것이 주님 가신 길이야. 맨꼭대기에 주님이 계셔. 손양원 목사님이 되게 한 예수 그리스도이시란 말이야"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제 바닥까지 떨어진 한국교회이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기위해 더 멋진 세미나가 아니라, 더 멋진 부흥회가 아니라 정말로 그리스도의 본들을 우리가 잡고 살아야 한다.

여러분,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자 된 것 처럼 나를 본받으라는 말을 하기 시작해야 하고,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처럼 너희들도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수 있어야 한다. 이 유산을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뉴욕의 교회를 살리고 미국교회를 살리고 한국교회를 실릴줄 믿는다. 여러분들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모습을 누릴줄 믿는다. 이 은혜가 이 교회위해 함께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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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참빛교회 안태호 목사를 위한 동료 목회자와 성도들의 기도가 이어져 200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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