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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3세 김성제 목사 "이삭을 통해 배우는 디아스포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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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4-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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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NCKPC) 제 43회 정기총회 및 전국대회가 6월 24일(화)부터 27일(금)까지 메인주 포트랜드 소재 더블트리 호텔에서 열렸다. 셋째날 아침경건회에서 내빈으로 참가한 김성제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 부총회장)가 창세기 26:15-25을 본문으로 "하나님의 기류민의 길"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재일 3세 목회자로 서툰 한국어로 열정적으로 말씀을 이어나갔다.

아침 경건회가 끝나자 여러 목회자들이 설교에 대한 기사를 기자에게 부탁했다. 총회후에도 그런 연락이 이어졌다. 왜 그런가는 설교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설교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설교중 한편이다. 김 목사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디아스포라의 신학으로 접근했다. 이민 2세인 이삭에 대한 성경 본문말씀에서 우리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받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설교내용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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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26일) 아침 경건회에서 설교하는 김성제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 부총회장).

기류민, 한국어로 하면 거류민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다. 1989년에 미국에 와서 90년부터 96년까지 GTU에서 공부했다. 그때 저는 많은 한국 동포 학생을 만나 친하게 되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3세로서 모르는 한국어가 많다. 학생들이 저에게 무엇을 연구하느냐 물으니, 아브라함을 연구한다고 하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고향을 떠나서 남의 나라에 가서 고생하는 인물들을 연구한다고 설명하니 학생들이 "떠돌이 연구네"라고 응답했다. 당시 '떠돌이'라는 의미를 몰랐지만 그때부터 관심이 생겼다. 떠돌이라는 말이 언제 생긴말인가 관심을 가지고 도서관에서 한국 자료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고려시대에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잔치에서 음악을 해달라고 부탁받으면 장구를 치고 노래부르고 판소리하고 그러는 돌아다니는 사람들, 이른바 유럽의 집시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떠돌이라고 여겨져 있는 문서를 찾아서 한국의 문화의 역사에 대해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구약 성경에 거주하는 타국민, 이방인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게르(ger)'라는 말이 나온다. 역사학적으로 연구해보니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 북쪽 사마리아가 앗시리아 제국의 공격을 받고 망해버리고 많은 사람들 남쪽으로 피난으로 내려왔다. 기원전 8세기의 중반에는 예루살렘의 인구가 8천명 정도였는데, 8세기 말 히스기야 왕과 선지자 이사야 시대에는 2만5천명까지 증가되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북쪽 사마리아가 함락되어져서 많은 피난민들이 내려왔다는 사정을 연구하는 가운데 알게되었다. 그 흔적이 구약의 신명기나 레위기나 출애굽기에 '거류민을 억압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져 있으며,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내 연구였다. 그런 내용을 한인 유학생들에게 하니 "김 목사, 삼팔 따라지 연구하네"라고 했다. 그 말이 무엇인가를 따져보니 한국동란때 38선을 넘어 북쪽에서 피난민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상대하면 자기도 위험하게 하니 상대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 까지 배우게 되었다.

정말 구약 성경시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그와같은 거류민의 이야기가 있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저는 그때부터 그냥 구약 성경에 있어서 거류민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신약 성경 혹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중요한 부분도 깊이 거류민의 신학과 연결되어져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때부터 특별히 우리 개신교회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믿음의 가르침이 칭의의 믿음이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다 하나님의 인정받게 된다는 우리 신앙에 있어 중요한 칭의의 가르침을 바울 선생이 로마서에서 갈리디아서에서 가르치실때에 인용하는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우거하는 타국인으로서 떠돌이로서 나그네로서 살아가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무조건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근거가 그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이 '아브라함 처럼'이라고 하는 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우거하는 타국인 처럼' 또는 '나그네 처럼' 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 하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원래 유크라테스 강가의 출신인데 뭔가 사정이 있어서 고향땅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실향민이 되었다. 그때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 북쪽 가나안 땅에서 떠돌이가 되고 나그네가 되고 우거하는 타국인이 되었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순종하고 믿고 가르치시는대로 가게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그리고 성서의 믿음은 다른 종교와 전혀 다른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택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보잘것 없는, 택하심을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자격이 없는 자가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만 택하심을 받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택함을 받을 이유가 없는 자를 택하셨다. 그것을 믿는 것이 성경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거하는 타국인의 경험을 가진 자로 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제는 우르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현재 살고 있는 하란 땅에서도 늘 보잘것 없고 떠돌이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사라와의 사이에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으로서는 장래성도 없었다. 바꾸어 말하면 과거도 길이 막히고, 현재도 길이 막히고, 장래에서도 길이 막힌 신세가 된 그런 인생을 하나님이 위해서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시작으로 만드셨다. 그것에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정말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칭의의 가르침까지 나오게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당연히 미국과 유럽의 신학을 통해서 많이 배워왔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우리가 나그네의 문제, 우거하는 타국인, 거류민의 현실을 깊이 연구하면서 다시 한 번 성경말씀에 깊이 담겨져 있는 뜻을 재발견하는 현장에 두어져 있는 것이 이민교회가 아닌가 한다. 이민교회도 성경말씀이 은혜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민교회야 말로 가장 성경말씀 진리의 핵심에 더욱 가까운 위치에 두어진 교회이다. 그렇게 목사로서 재일동포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목회하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이야기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이삭의 시대가 왔다. 어느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일어났다. 아브라함은 기근이 일어나면 이집트에 가서 음식을 구했다. 이삭이 그런 아버지의 본을 받고 이집트에 가려고 하니 하나님이 막으셨다. 지금있는 가나안 땅 특히 남서쪽에 있는 블레셋 땅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다. 이삭은 하나님을 순종하고 블레셋 땅에 머물게 되었다. 그곳에서 사업을 했더니 성공적으로 물질을 얻게 되었다. 맨처음 나그네에 대해 현지인들이 친절하게 대하지만, 그러나 성공하니 시기심이 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오히려 성공한 자리에서 떠날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된 것을 성경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정말 이민사회가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어려울 때는 친절한 대우를 받을수가 있지만, 성공하면 오히려 질투를 사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이삭은 블레셋 땅을 떠나 이집트로 갈까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블레셋 땅에 있었다.

이삭이 어디를 갈까 하다가 생각난 곳이 아버지가 옛날 블레셋 땅에서 우물을 파신 곳이다. 그곳에 가보니 그 땅의 원주민들이 돌을 던져 메워버렸다. 그래서 이삭이 한 일이 복구작업이었다. 드디어 복구해서 물이나왔지만 현지인들이 이삭의 종들과 싸워 분쟁이 일어나서 다시 떠날수 밖에 없었다. 에섹-싯나-르호봇으로 이삭은 계속 이동하면서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복구했지만 그때마다 현지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그가 판 우물들을 묻어버렸다. 그래도 이삭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아버지가 옛날에 팠던 우물을 복구하고 드디어 '르호봇'이라는 이름을 붙일수 있었다. '르호봇'은 히브리어로는 풀린다는 뜻이다. 그런 이름을 붙일수 있도록 이제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고 화목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블레셋에서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내려 주셨다. 그리고 성경에는 그 땅의 왕인 아비멜렉이 부하를 데리고 사과하러 오고 드디어 화해의 잔치를 함께 나누게 됐다는 이야기가 이어져간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3가지 중요한 것을 배우고자 한다.

1. 이삭은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서 따라서 블레셋 땅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왜 그런가. 인간적으로는 이유를 헤아릴 수 없어도 이삭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땅을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것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내가 지금 그 뜻을 헤아릴수 없어도 그곳에 하나님의 계획이 계실 것임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고국을 떠나서 멀리 타향땅에와서 맡겨진 이 우거하는 타향땅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선교의 자리를 귀히 여기고 지금 어려워서 '왜 이런일을 여기서 당해야 하는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라고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하나님이 맡겨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는 땅으로서 이 선교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나가라는 이민교회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말 저도 충격이었다. 미국장로교가 결정한 것에 대해 여러분들이 얼마나 충격을 당하고 당황했을까. 그러나 그래도 떠나지 말라. 지금 헤아릴 수 없어도 계속 인내하고 남아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이유가 계시리라는 것을 믿고 계시는 분들이 지금 여기에 모여있다. 저는 여러분의 눈물겨운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게 느꼈다.

재일조선기독교회도 그렇다. 1908년부터 식민지 통치되기 2년전에 선교활동이 시작됐다. 1920년대에 조선장로교와 조선감리교가 우리나라에서 토지를 잃어버리고 실향민이 되어 일본에 건너온 동포들에게 따로 전도활동을 무질서하게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온지 50년 희년이 되는 1934년에 재일조선기독교회를 설립하고, 목사를 스스로 안수할 수 있는 그런 교단으로 탄생했다. 안타깝게도 점점 일본이 전쟁에 빠지게 되고, 일본국내에 있는 민족단체를 핍박하고 억압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본은 국가주의의 파시즘의 시대에 들어가서 드디어 천왕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일본국민의 의례가 됐다. 예배당안에도 천왕을 참배하는 신사가 생겼다. 그런 상황에서 재일조선기독교회가 일본 기독교안에 강제적으로 흡수되는 어려움을 당했으며, 그 후로 많은 목사들이 잡히고 고문당하고 어려움을 당해서 지상에서 재일조선기독교회가 한 번 없어졌다.

그러나 1945년에 8월에 광복을 맞이하여, 식민지 통치의 희생자로 있었던 210만 재일동포가 대부분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5십수만 동포가 당장 못돌아가고 조금있다 돌아 가겠다고 하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완전히 못돌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놀랍게도 일본기독교단에 완전히 흡수되어져서 지상에서 없어진 재일조선기독교회가 1945년 12월에 탈퇴선언을 발표하고, 재일조선기독교회를 속히 재건한다는 결정을 했다. 광복후 선배들이 이렇게 힘든 일본땅에 사는 것을 그만두고 우리나라로 돌아가자며 모두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갔다면 오늘날의 재일대한기독교회는 없었을 것이다. 이른바 그 순간에 블레셋 땅에 머물러 있으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왔다.

처음에는 재일 한인 교역자나 신도들이 생각한 것은 인간적인 판단이었다. 조국에 돌아갈 기회를 놓치고 일본에 남게 된 우리를 위해 한국어로 설교듣고 예배드릴수 있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이유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보다 더 큰 계획이 있으셨다. 먼저 나중에 성장하게 되는 2-3-4세를 위한 것이다. 한인 후세들이 일본땅에 살고있어도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에 따라서 복음을 믿고,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어버리지 않고 정체성으로 가지고 살아가도록 복음으로 교육하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주님이 선택해주셨다. 또 1980년대 부터 새롭게 한국에서 결혼 취직 사업으로 일본으로 건너오시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 당시 재일동포 선배들이 몰랐다. 주님이 미리 아시고 준비해 주셨다. 그리고 1990년대 부터 북한의 조선기독교도연맹 그리고 한국의 교단의 대표자들을 서울도 평양도 판문점도 아닌 일본에 모시고 모임을 감당해 왔다. 재일대한기독교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그런뜻으로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이유를 헤아릴 수 없어도 블레셋 땅에 머물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우리는 나그네의 교회, 이민교회로서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우물을 복구했다는 것을 주목하라.

우물을 복구했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우물에 갔더니 이미 돌을 던져 메워져 있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아브라함이 나그네로서 블레셋 땅에 와서 생활할때 이미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물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 시대로 부터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가. 물대접을 못받아서 아버지가 스스로 블레셋 땅에 우물을 만들어야 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 우물이 돌을 던져서 메워져있었다는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멸시했다는 것이다. 만약 창세기 26장에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복구했다는 이야기가 없었다면 어떻게 아브라함이 이 땅에서 우물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창세기 12장부터 25장까지 아브라함이 블레셋에 와서 우물을 많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다. 아들 이삭이 복구했음으로 아브라함이 이전에 이곳에 와서 우물을 만들었구나 하는 기억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이민 1세와 2세의 이야기로 생각해 보자. 저같이 이렇게 서툰 한국어로 말씀을 드리는 자는 2-3세이다. 지금 일본땅에서 열심히 아버지 아브라함의 우물을 복구 작업하는 자가 저이다. 민족차별때문에 한국교회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 감추고 오히려 일본교회에 나가는 것이 낫다고 하는 사람이 일본에 얼마나 많은지. 그래도 끝까지 재일대한기독교회라는 간판을 세워놓고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1세가 많은 눈물과 피를 흘려서 한번 사라졌다가 다시 일어나게 되는 이 교회를 어떻게 우리가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런 뜻으로서 3세되는 제가 복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은 바로 아브라함 시대이다. 지금 눈물겹게 우물을 파는 선교활동하는 것을 언젠가는 2-3세가 복구활동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을 믿고 이제 저는 현재 단계로서는 정말 어려움이 많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듯한 우거하는 타국인같아도 끝까지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시는 땅에 머물며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한인들을 곧 반드시 후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 역사의 발걸음을 복구활동할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둘째 의미는 이삭이 복구활동했던 우물은 이른바 샬롬의 우물이었다. 첫번째와 두번째도 실패했으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에 복구한 것이 르호봇의 우물이었다. 더 이상 지역사람 원주민과 다투지 않고 과묵하게 새로운 문화를 나눌수 있는 르호봇의 우물에 이르기까지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다는 것이다. 샬롬의 의미 하나는 안녕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복지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 교회만 챙기며 내형화되어가는 교회가 아니라, 정말 우리 교회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워진 땅에서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도 그 지역사회에서 우물의 물을 서로 나눌수 있는 복지의 사업까지 감당하며,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정말 다문화 다민족이 공생하는 사회의 모범으로 한인교회가 복지사업까지 감당하고 있구나 그렇게 인정받는 샬롬의 우물을 파는 그런 사명을 1-3세들이 계속 감당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이와같이 힘든 블레셋 땅에서 계속있고 이와같이 땀을 흘리고 진흙으로 더러워져도 복구 활동을 계속하는 이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천막 예배이다.

인내심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는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배울 수 있다. 그것은 힘든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에 그야말로 하나님이 그 천막 예배를 축복하여 주셨다. 약속의 말씀을 신선하게 듣는 그런 예배를 늘 제단을 쌓고 예배드리는 일을 열심히 감당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민생활도 계속 인내하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천막예배라고 볼 수 있다. 그 재일동포 교회 천막에서 듣게되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의 음성을 우리가 따로 지켜 나가는 것 보다 천막을 펼쳐서 서로 교류하며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이 땅에서 우물을 파는 선교사업을 감당하는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온세계에 흩어져있는 한인교회가 교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자칫하면 거류민, 떠돌이의 입장은 보잘 것 없고 좋은 조건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 조건에 있는 나그네를 택하셨다. 왜 그런가. 인간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좋지못한 조건이 되는 나그네의 신세가 하나님의 계획가운데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선교를 이루기위하여 유리한 조건으로 쓰임을 받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은 미국생활가운데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일본도 심각한 문제가 많다. 그러나 그런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주어져있는 불의한 조건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때는 글로벌하게 우리가 글로벌 네트워크의 장막을 펼칠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과 미국 등, 어떤 땅에 흩어져 있어도 앞으로 담대히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만나고 교제하고 그리고 젊은 세대들을 서로 교류하도록 했으면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는 정체성 혼란을 있었지만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고생하는 동포 디아스포라 교회를 만남으로 눈이 깨어져 다시한번 사명감을 가지고 돌아오게되는 후세들을 꿈꾸며, 앞으로 좋은 교류 글로벌 천막을 펼치는 재일대한기독교회와 한인교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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