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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겨울밤' - 여호와는 나의 목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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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1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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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3),
시베리아의 겨울밤(중국 조선족)

우리가 탄 육중한 기차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낡고 웅장한 플랫폼을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곧이어 눈으로 하얗게 덮인 러시아의 넓은 들판이 오후 햇살을 받아 은빛 물결처럼 반짝거리며 끝도 없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무도 집도 모두 하얗습니다.

옛날 후고구려를 세운 대조영이 이끄던 기마병들의 환호소리, 일제시대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흩어진 독립투사들의 본거지, 그들의 활동 무대가 바로 저기 보이는 저 넓은 들판이었을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쁘리모스키 클라이'라고도 하고 '해삼도'라고도 불리우는 곳입니다.

멍하니 정신을 놓고 앉아서 차창밖을 내다 보며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우리가 우수리스크 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겨울 해는 서산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북쪽 하늘의 해는 유난히도 짧은 듯, 방금 해가 서산에 기울어 음산한 회색빛 건물들이 을씨년스럽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폴싹 잠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선교 본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함께 기차를 타고와서 이곳 러시안 교회까지 안내해준 그 친절한 여인을 태운 차도 벌써 저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성경공부반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벌써 네댓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삐걱거리는 교회당 문을 열고 들어가 보지만, 내가 예상했던 대로 우리와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던 중국조선족 보따리 장사꾼들은 시간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는 우리를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모두 숙소로 돌아 가버린 듯 캄캄한 교회당 안은 텅 빈 채 썰렁한 냉기만 가득했습니다.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은 중국조선족 보따리 장사꾼들입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온갖 잡동사니를 이고 지고 가까운 국경, 지금 막 무너져 내린 사회주의를 벗어던지고 새롭게 등장하는 민주주의에로 발돋움하는 과도기 중, 허술해진 국경 수비대의 눈을 피해 떼를 지어 몰래 국경을 드나들기를 서생원이 쌀가마 속을 들락거리 듯 들락거렸습니다. 때로는 국경 수비대에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우수리스크는 우리나라 중소도시 규모의 작은 도시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 들어 살 만한 집도 없습니다.

마땅한 셋집을 구하지 못한 그들은 창고를 개조하여 칸막이를 치고 남녀가 함께 여럿이 혼숙을 하며 살다가 러시안 마피아단에 의해서 돈도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기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한없이 모여듭니다. 낮에는 마른 땅바닥에 거적때기를 깔아 놓고 그 위에 중국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쭉 진열해 놓고 팔다가 밤이면 합숙소에 들어가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먹고 자고 그렇게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다행한 것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뿌리 내리며 살고 있는 '고려인'들에 비해, 중국 조선족들은 비록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액센트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편입니다. 그들의 눈에 미국에서 선교사로 나왔다는 우리들이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지 우리가 전해 주는 성경책도 넙죽넙죽 잘 받고, 또 주일 오후 세 시경에 예배드리며 가르치는 성경공부반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주의 사랑으로 교제하고 또 전해주는 복음의 메세지를 놓칠새라 눈을 반짝거리며 아주 흥미있게 잘 받아 드렸습니다.

그들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다른 장사꾼들보다 적어도 한 두 시간 더 일찍 장사를 접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열심들을 내며 모이는 숫자가 점점 늘어가는 것이 너무나 사랑스럽기는 저 역시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무런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이 실망할 것이고, 먼저 믿는 자로서의 우리가 신의를 저버리면 그들이 우리를 통해서 배울 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먼저 믿는 우리를 바라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번 약속한 것은 지켜 낸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게 남편의 지론입니다. 옳은 말이이지요. 하지만, 그 신의란 것도 목숨이 붙어있고서야 있는 것이지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걸기까지 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모두 휴대전화가 있으니 전화 한 통이면 끝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20여년 전, 처음 구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 새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 그때 당시만 하여도  그곳 사람들은 그 누구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우리는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일것 뿐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운전사 '싸샤'(선교 본부에서 보디가드 겸 운전사로 채용허락 하여준 러시안) 아저씨도 없는데 그것도 다 늦은 오후 시간대 기차를 타고서라도 꼭 내려가 보아야만 하겠다고 고집하던 남편, 그런 대책없는 남편 때문에 가족들은 언제나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남편이 많이 야속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와서 원망해 보아야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생각에 입을 꼭 다물고 말았습니다.

다음에 계속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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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호텔업
2016-07-17 17:55
 66.xxx.162
 중국 조선족 선교의 애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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