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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도 품계(品階)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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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09-01-13

본문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아 2: 10절 말씀).” 아가서는 솔로몬 왕의 사랑노래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영적인 안목으로 보면 이 노래야말로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이 햇살처럼 곱게 퍼지며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영혼의 노래, 아름다운 나도향기를 발하는 샤론의 수선화 같이 고운 사랑, 우리 성도를 향한 예수님의 핏빛 사랑 노래임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성경이 다 그러하듯, 필자는 아가서의 아름다운 노래 속에서 그리스도의 그 절절한 사랑이 가슴을 파고들어 온 밤을 지새우며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다.

모진 겨울은 영원하지 않다.

모진 겨울비가 그치고 언 땅이 풀리며,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다고 하는 것은 물론, 이스라엘의 종교적 암흑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언해 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메시야가 오시면 이 어두운 역사를 끝내고 주님 나라가 도래할 것을 의미한다. 신약시대는 이미 오신 메시야가 구속 주로써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셨다. 그 주님이 이제는 고난의 주가 아니라, 왕 중의 왕으로, 심판 주로 재림하시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봄날같이 우리 앞에 화사하게 펼쳐질 것을 예언해 주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의 삶 또한 같은 이치일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때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고 모질게 추운 겨울 날씨처럼 어렵고 고달픈 때가 있을 수 있다. 예기치 않던 사고를 당해 부모를 잃고 천애 고아가 되는 수 있고, 그런대로 잘 이끌어 가던 사업체가 한 순간의 실수로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도 있다. 건강에 적신호가 올 수 있고 가족간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겨 고통받을 때가 있다.

우리들의 가는 길은 언제나 화창한 봄날만 있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 만큼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어 드릴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주님의 신부, 주님께로 사랑받는 자요, 주님이 어여삐 보시는 성도들에게도 겨울의 혹한 같은 시련과 고통을 만날 수 있지만 그런 때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나에게 닥쳐온 이 모진 겨울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새봄이 오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내면을 갈고 닦고 착실히 준비하는 기간임을 믿으며, 다가올 새봄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힘껏 믿음의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우리 주님이 주시는 격려의 음성이며, 영적 전쟁의 전투장은 그리 녹록지가 않기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소망을 잃지 말고 힘써 싸우라 격려해 주고 계시는 것이다.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라.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 2: 15절 말씀)” 여기에서 포도원을 허는 여우는 과연 누구인가? 영적으로 사단을 의미한다. 이 여우는 옛날 아담과 하와가 행복하게 살던 낙원에 들어가 모든 것을 파괴시켰다. 어떤 여우를 잡아야 하는가?

1. 뒤를 돌아보는 여우를 잡아내어야 한다.

여우의 습성 중 하나가 뒤를 돌아다 본다는 것이다. 여우는 앞으로 잘 가다가도 뒤를 휘딱휘딱 돌아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성도가 장망성인 세상을 한 번 빠져나왔으면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악습, 구습, 더러운 행습, 이런 것들에서 돌이켰으면, 그 죄악에서 완전히 돌이키고 두 번 다시 뒤돌아 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여우가 들어온 것을 속히 잡아내지 않으면 그 여우가 나를 뒤돌아 보게끔 계속 충동질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성지 순례 길에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처, 사람 형상을 한 큰 소금 기둥 한 개가 세월의 풍상에 녹아내려 어슬픈 몰골에 더러운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 쓴 채, 초라한 모습으로 언덕 위에 홀로 서 있는 가련함을 보면서, 세상으로 되돌아 간 수많은 성도들이 떠올라 내 마음이 심히 어두웠던 기억이 있다.

위대한 영도자 모세의 지도하에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약속의 땅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이유를 들어보라. 모든 원망의 말 속에는, 그들이 방금 빠져나왔던 애굽을 뒤돌아보며 그 노예생활을 그리워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그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의 병폐로 떠오르는 것 역시 뒤를 돌아보는 나쁜 습성 때문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로, 한 번 빠져 나온 죄악 세상을 되돌아가고 싶도록 유도하는, 뒤를 돌아보는 여우가 내 마음속에서 자리잡지 못하도록 속히 몰아내야 앞으로 전진이 가능하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눅 9: 62절 말씀)."

2. 유혹이라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한다.

여우의 또 다른 습성은 간사하고 교활한 것이다. 여우가 짐승 중에 가장 교활하고 간사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전설에 의하면 여우는 하룻밤에 열두 번도 더 변한다고 한다. 사단 마귀의 속성이 그렇다. 사단은 변신의 명수다. 사단이 나타날 때, 내가 사단이다 하고 나타나면 누가 넘어지겠는가? 뱀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용으로 변하기도 하고 광명의 천사로, 아름다운 절색 가인으로 가장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사단의 정체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꾀어 한 번 재미를 본 사단은 지금도 영적인 낙원인 하나님의 교회에 들어오고 가정에 들어가서 파괴의 역사를 조장시킨다. 그는 광명한 천사로 변신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 ‘드릴라’로 변신하기도 하고, 거짓 선지자, 거짓 능력자, 거짓 치유사역자로 변신하여 어리석은 자들의 영혼을 사냥질 해 가는 것이다.

삼손에게 나타난 사단은 너무도 사랑스러운 여인 ‘드릴라’였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었으나 이방 여인이요 기생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사람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삼손은 그 유혹의 여우를 잡아내지 못해 일생을 망쳐버린 것이다. 그렇게 건장한 남자가 두 눈을 다 뽑히고 목에 맷돌을 매달고, 두 발은 죄악을 상징하는 쇠사슬에 묶여 버렸다. 이런 슬픈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 일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하려 함이니(고전 10: 5절).” 또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다서 1: 7).”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거울로 삼으라고 경계해 주신다는 것이다.

유혹이란 것은 처음에는 모두가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서운 것이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고전 6: 12-20절 참조) 돈의 유혹 역시 마찬가지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 10절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손에 들려져 있지만 여전히 돈을 사랑하다 믿음에서 떠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른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 심하면 목숨까지 끊어 버리는 것이다.

하늘나라에도 품계(品階, rank) 있다.

주께서 우리에게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권고하시는 것은 우리의 삶이 이 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천국 시민이 되는 것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기에 그는 동생에게 장자의 축복권을 빼앗겼다. 모든 것이 거울로 주셨음은 영적인 이스라엘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하늘나라 시민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 의지해서 가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우리의 의나 옳은 행실이 첨가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천국 시민권자들에게도 품계(品階)가 있다는 것이다.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리라하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눅19:16-19절 말씀)."
 
주님은 열 고을 권세 자와 다섯 고을 권세 자를 나누시겠다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열 고을 권세 자와 다섯 고을 권세 자가 같은 품계(rank)라 볼 수 없다.  분명, 주님의 나라에서도 그 종의 충성 여하에 따른 품계가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천사장 미가엘을 선두로 천사들이 각종 임무를 맡아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받들어 섬기듯, 우리 구원받은 백성 또한 품계(品階)가 있다고 성령께서 오늘 아침 분명히 깨닫게 해 주시며 전하라 명하셨다. 부활한 육체도 그 아름다움이 모두 다르다.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 15:41절 말씀).” 성도들이, 심지어는 가장 올바른 자세로 그리스도를 따르며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야 할 목사님들이 한순간에 쓰러지고 넘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속에 파고들어오는 유혹의 여우를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믿음으로 구원 받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 그리고 이땅 위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치유사역 등등…번영신학에 물들어 그쪽 방향으로만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날, 이방인들이 기독교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예수쟁이들이 뻔뻔스럽다고 손가락질 한다. 무엇 때문인가? 오늘 죄짓고 내일 회개하고 다음 날 또 그 죄악을 여전히 짓는 파렴치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일은 또 왜 일어나는가? 구원과 죄와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는 것만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때문이다.

물론, 구원 받는 조건과 행위와 상관관계 있는 것 아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시민권자들에게도 엄연히 따르는 보상도 다르고 품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구원에도 영광스러운 구원이 있고, 불 속에서 끄집어낸 것 같은 부끄러운 구원도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고전 3:13-15절 참조). 이런 사실만 분명히 알면 성도가 죄와 더불어 짝하기보다 죄를 멀리 하고 그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기려 할 것이다.
 
우리는 내 교회에, 내 가정에, 내 마음속에, 가만히 들어와 우리를 유혹하며 우리의 수고를 부끄럽게 만드는 저 여우를 잡아야 한다. 한순간의 유혹이 영원토록 부끄러운 수욕을 당하는 결과를 낳는다.  때가 임박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읽고 바로 가르치는 목회자가 많이 배출되도록 우리 모두 힘을 다해 중보기도 해 주어야 한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치리라(단 12: 3절 말씀)." ,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 13- 15절 말씀)." (마 5:19, 마18:4, 마20:20~28, 마23:11, 눅9:48,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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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gok 
2009-09-27 22:17
 24.2.49.132
 천국의 통치질서는 세상의 정치와 같지 않고  답답해님이
 별똥별님의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긍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글에서 지적하며 표현하시는 것과도 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그것을 설명하고자 눅 22:24-30절
 관련 주석부분을 퍼왔습니다.
 [<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28-29절>
 * 시험( 페이라스모스)이란 '유혹'이라는 단순한 의미보다는
 공생애 기간 동안 격어온 수많은 '위험들' 또는  '고통'과 
 '시련들'(trial)을 뜻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권한과 과업을 넘겨  주기 전에 그
 권한과 과업이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왔음을 밝힌다.
여기서 언급한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이다. '바실레이아'는
 국가의 구성요소인 영토적인 개념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통치적인
 개념 즉 왕권(kingship)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영토적인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통치적인 왕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이 왕권은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온  하늘나라의
 통치권(統治權)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이 왕권을 지상에서 받았으므로 이미  하늘나라는 이 땅에서 예수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왕권을 위임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이 있음을 뜻하며 그 선포  내용에  대한 보증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제 하늘로부터 온 그 권한과 권위가 제자들에게로  옮겨간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도 그렇게 위임한다고
 밝힘으로써 자신의 위임이 하나님의 위임임을 알리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 건설과 하나님 나라 선포 활동이 예수의 수난과 죽음 뒤에도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할 것임을
 암시한다.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0절 >
26-27절에서  섬기는 자의 도리를 말한 반면 본절은 그 역할과 사명
 을 다한 제자들이 받을 하나님 나라의 보상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하는데 종말적 심판의 때에 도래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마 19:28절에서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까지'라고  언급되는 바 이는
 세상이 변혁된 새세계 곧 종말론적(eschatological)으로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것임을 암시한다.
그 날에는 하늘나라에서 예수와 함께하는 천국잔치가 벌어진다.
16절에서 하늘나라에서 유월절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먹지 않겠
 다는 예수의 말을 생각하면 이 잔치는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해방(解放)과  구원의 유월절 축제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열두지파를
 다스린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을 두고 한 말이지만 보편적 의미로
 이해되어야한다.  즉 열 두 지파는 곧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통치 구조의 변혁이다.
25절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에  언급된 바와 같은 통치 구조는 사라지고  26절에서
 언급된 형태의 통치 구조가 실현되어 새로운 세계 곧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 나라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 같은 형태의 통치는 종말의 때에
 완성될 것이지만 지금 여기서  섬기는 통치가 확장되어가고 선포
 되어져야 할 것이라는 점도 암시되고 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신다는 것은  완성의 때에  예수님과 그를
 주로 믿는 제자들 사이에 이루어질 영속적이고도 친밀한 교제와
 연대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물론 이것은 오늘 이 시대,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에게도 적용되고 약속되는 것일 것입니다.
 <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라
(...they will reign for ever and ever)  계 22:5>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의 홀로 주인이심은 당연한 이치이고
 하나님께서 빛처럼 영원한 임재를 통해 그 백성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심은 자명하지만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범죄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다스린 것처럼 천국의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권세를 위임받아) 세세토록 왕노릇하고
 다스릴 것이라고 성경에 나옵니다. 
 
성경에 그렇게 나오니 거기까지만 가고 그렇게 성경에 있는대로
 말하고 가르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세상정치와
 연관시켜 부정할 필요도 없고 자의적으로 더 깊게 들어가 어렵게
 또는 더 모호하게  해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천국의 통치질서는 세상적인 통치질서처럼 위에 있는 권세자가
 아래 있는 자들위에 군림하며 압제 ,통제하는 질서가 아니라
 서로 겸손과 섬김과 봉사를 근간으로 하는 질서임을 배우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이 풍성이 무엇인지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기를 간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경건의 모양의 아니라 능력을 갖추어야 함을,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성화의 삶을 살도록 권고하는 면에서는
 별똥별님이나 답답해님이나 같은 입장에 있는데 상급과 관련된
 천국에 대한 성경지식 천국관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비유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기타 성경말씀에 대한 이해와 관점이
 다르다보니 서로 견해 차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왕이나 왕국이라는 용어를 천국과 관련하여 쓴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적인 왕국의  개념이나 신분적 계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이
 품계라는 말도 상급에 따른 계급적 신분이라는 관점에서 높고 비천하고
 부리고 부림받고 하는 식으로 이해하기 보다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통치질서
 안에서 직분과 사역을 맡기시는 것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텐데... 
 
agok 
2009-09-27 19:22
 24.2.49.132
 1. [ 분명히 성경에는 “상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님께서
 말씀하시는 “품계”하고는 전혀 연관된 단어가 아닐 뿐만 아니라.. ]
상급에 대해서는 성경적이라 인정하시는데 품계는 성경적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상급과 품계의 무관성을 주장하시는군요.
무한적 존재요 자존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구속사를
 계시하기 해서 유한적 존재의 수준에 맞추어 신인동형적 방법으로도
 성경이 기록되어졌으며 원죄나 삼위일체라는 단어처럼 성경에 나오지
 않았어도 신학적으로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용어가 신학적으로
 취해졌는데 상급과 그에 관련된 비유들을 쉽게 이해시키고 신자들에
 대한 상급심판과 그에 따른 천국에서의 통치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품계라는 단어를 신학적으로 취하는 것이 불가하다 하는지요.
더 마땅한 용어로 대체되기 전에는 품계라는 용어도 적절하다 싶은데..
천국에 품계라는 용어가 적용되어질 수 없는 곳이라 생각이 든다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구절이나 어떤 연결을 통한 이해가 있을테니
 답답해 님의 그런 관점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성경구절 ,성경 논리로
 설명해 주시길 부탁드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결국 답답해 님의 견해는 답답해님의  자의적인
 성경이해에서 비롯된 견해라고 치부될 수 밖에 없습니다.
2. [성경의 상급”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물리적인 상급이 아니며,
  위계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등급도 아닙니다]
여기서 상급을  금메달, 동메달 또는 황금 백냥,보석으로 지어진 집
 같은 물질적인 상급이라고 주장한 사람 없고 만군의 주요, 왕의 왕되신
 영원한 통지자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통치질서를 위해 품계의
 형식으로 상급을 주시는  것이라는 관점을 예수님의 비유와 제자들에게
 직접하신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다니엘 12:3절처럼 영생을 얻는 자들가운에서도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주어지고 별똥별님 언급대로 별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밝기등급이 아니며 거룩한 하나님의 명을 받드는 거룩한 하늘의
 천군천사가 다 같은 직급이 아닌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자녀들만은 다르다는 것인지요.
은혜를 입고 부르심을 받아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으로 난 자녀,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을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차별없이
 사랑안에서 공평하지만 (포도원 품꾼 비유: 약속한 한 데나리온
(구원,영생)은 차별없이 적용되나 나중된 자로서 먼저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는 원리는 적용됨)
므나비유나 달란트 비유처럼 일을 한대로 보상해 주신다는 약속에는
 차별적 공의가 적용될 것이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데 천국에서 그런
 원리가 적용된다고  해서 갑자기 신령한 것이 세상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불경건하게 바뀌어져 버리는 것처럼 생각되어야 하는 것는지,.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깨끗하다 하셔도 본인 생각에 부정하다
 싶어서 그 관점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거부하는 식 아닐런지...
황제나 왕의 아들은 태생적으로  다 군의 신분이지만 그 공에
 따라서 군의 신분일지라도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자녀들에게
 기업을 물려줄때도 자녀라는 신분때문에 기업은 물려 받게 되지만
 부모가 그 공의로운 뜻에 따라서 기업을 더 줄 수도 있고 덜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을 예수님께서 성경에 비유들로 잘 설명해 주셨는데
 왜 자꾸만 세상적인 것이라며 거부하시는지 ... 하나님께서
 성경에 천국에도 그런 원리가 적용된다 하면 세상적이고 정치적이다
 여기지 마시고 그리 적용되는 것으로 순전하게 믿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마땅하며 자신이 생각하고 그려보는 천국의 틀에
 맞추어지지 않는다고 그릇된 해석이라고 하는 그릇됨으로 치우치면
 아니될 것입니다.
답답해님이 생각하시고 계시는 천국관이  성경에 묘사되고
 설명되는 천국관과 일치하는지 어쩐지 분명치가 않으니
 답답해님의 천국관에 대해서 이 후 댓글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토론 쟁점과 관련된 부분만이라도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3. [심지어 확대되어 댓글을 다신  가운데는 천국에서 생명나무를
  비유하시면서 천국에서 먹고 마시는 부분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 이러한 부분을 특히 우려하였는데....., 이렇게 해석하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됩니다]
천국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있다고 하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되고
 천국에서는 먹고 마시는 것이 없다라고 하면 대단히 안전한 발상이
 되는 것인지...
답답해 님은 달란트나 므나 비유에서처럼 하나님의 계시된 명료한 뜻보다
 자신의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막연하게 그 단어만 잃지 않으려고 묻어두고
 천국이 어떤한 곳인지를 주의 말씀을 통해 더 알아가고 배워가고 전파해가는
 것을 위험하게 여기는 종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유나 상징은 그것을 유기적으로 풀어서 이해하고 설명해야겠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은 때로 문자 그대로 받고 아멘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이상하게 틀어보고 축소하거나 확대하는 관점보다
 더 안전하고 신앙적인 관점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다스리게 하노라  눅 22:28-30>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6:29>
제가 이 두 구절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천국에 생명나무가 흐르는 생명수 강 좌우에 있어 실과를 맺는다는
 것이 나오는데(계 22:2)...여기에서의  포도주가 실제 천국에
 포도나무에서 나온 것이든 비유 또는 상징이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음식을 드신 기록도 있으니  천국에서 신령한 육체를 가진 자들이
 먹고 마시는 것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가능다고 봅니다.
마 26장 29절의 말씀을 설령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비유 또는
 상징이라보고 풀어야 한다 할지라도 여러 구절에 의해서 또 성경논리에
 의해서 천국에서 신령한 몸을 가진 자들이 입을 열어 찬송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입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린 것을 두고
 위험한 확대해석이라고 하는  견해,  좀 어이없지 않은지요.
일부 겸양스러운 자세로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직접적으로 할 말 다하며 때로  오만과 무례한 자세를 드러내 보이니
 제가 그러한 부분을 보이더라도 너무 속좁게 생각하시지는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답답해님께서 상징적으로 보고 풀어야 할 해석은 문자그대로 적용하여
 해석하고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풀어도 되는 것은 비유 또는 상징이라
 여겨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하여 풀어놓는자들의 특징을
 취하지는 않기를 바라며..... 
   
답답해 
2009-09-27 11:49
 112.144.169.57
 《Re》별똥별 님 ,
선교사님 이셨군요. 선교사님들의 노고와 고통을 잘 압니다.
선교사님의 사역에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돌보심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선교사님의 마지막글은 저의 오해를 상당부분 제거해 주셨습니다. 주님앞에 부름을 받은 자들은 다들 신비한 부분에 익숙하지요. 그렇지 않다면 아마 목회를 못 할지도 모르겠습니다.(여러가지 핍박에) 그러나 목회자는 나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선교사님 제 글 오해하시지 마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하나일진데 선교사님의 가르침과 저의 것이 달라서는 않되겠지요. 늦은 나이의 목사가 지나가는 길에 글을 읽어보고 우려의 댓글을 남겼을 뿐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말씀앞에 정교해 져야 할 것입니다. 합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라는 말씀처럼 선교사님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별똥별 
2009-09-27 11:23
 66.8.225.18
 목사님,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신 곳이 한국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이곳은 오늘이 주일입니다. 시간관계상 길게는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만, 목사님께서 정통교회 목사님이시라니까 더없이 안심이 되고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말씀과 여러 가지 조언들 감사합니다. ^^
목사님께서 잘 아시는 대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어 선정은 그 목적을 보다 잘 나타내어 주기 위한 수단입니다. 품계는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아니라 글을 뒷밭침해 주는 '수단'일 뿐입니다. 본 글을 기록해야할 수밖에 없었고 기록된 목적은 목사님께서 너무도 잘 이해를 하고 계신 것 같아서 감사하고 다행스런 일입니다.
다만, 아래 말씀하신 이 부분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천국을 통치 하십니다. 위임이나 다른 대리 통치자를 내세워 통치하시거나  할 정도로 그 분의 주권이 부족하거나 나약한 것이 아니며, 구원 받은 백성들의 상급으로 품계를 등급별로 나주어 천국을 통치는 곳이 아닙니다. )저 역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아직도 제가 올린 글을 이해하시지 못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누차 말씀을 드리지만, 목사님, 저 역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 땅 위에서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고 믿는 사람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에 통치권을 어찌 감히 인간이 나누려고 생각을 할 수 있겠는지요...그런 것 역시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세상적인 품계로 생각하기에 오히려 이해가 더딘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의 나라에 상급도 인간이 상상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불가하듯, 하나님나라의 품계 또한 그분의 주권하에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의 일도 다 알지 못하겠거던 어찌 하늘나라의 일을 다 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지요....
천사들과 천사장 미가엘이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만, 천사장이라고하여 그가 모든 천사들 위에 군림한다는 개념이야말로 세상적 개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개념은 '루시퍼'에게나 적용가능한 개념이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천사도 천사장도 모두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는 품계이듯, 이 땅 위에서 작은 자가 천국에서는 크다...모두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사입니다. 수없이 많이 죽을고비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레마"로 구원을 받고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깨달음을 주신 것은 일점 일획도 떨어지지 않음을 저는 믿었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갈림 길에서는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보다는 성령님의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좌우를 분간해 따라 갔을 때 구출함을 받는 체험을 해 나왔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실전에서 목숨을 걸고 배운 사람입니다. 목사님께서 이해가 되지 않으심이 제게는 오히려 더 답답합니다. 그럼에도 그것까지라도 목사님께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친히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이 만고불변의 진리인 구원론이 다르지 않으면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목사님께서도 인정하시는 대로,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은 우리들의 보혜사이신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말씀을 읽을 때 들려주신 성령 하나님의 음성이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답답해 목사님께도 들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릴 수 밖에는 없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 모두 승리하기를 소원합니다. ^^* 
 
 agok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는 말씀을 받고서 "먹으면"에
대해서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을 가감하여 확대해석해 보고 "정녕 죽으리라" 에
대해서도 더 깊은 뜻이 있겠지 설마 그런식이겠어 하며
가감하여 해석하는 하와와 뱀의 관점이 천국의 품계와
상급에 대한 답답해 목사님의 관점에서 보이네요.
더 성경을 깊게 묵상하심이 어떨지요. 답답해 님이 어느
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을 전공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천국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몸이 없는 영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고 천국잔치라는게 뇌의 이상속의 잔치가
아니라 실제로 신령한 몸을 입은 자들의 실제 잔치입니다.
 9/27 17:03
 24.2.49.132
 
 agok 
영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듯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으로 제자들과 음식을 드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자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39>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듯
천국, 하나님의 왕국인 새 하늘과 새땅에서도 신령한
몸을 입은 성도도 먹고 마실 수 있음을 성경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있는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확대해석이고 님처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바른 해석인지요.
 9/27 17:13
 24.2.49.132
 
 agok 
솔직히 말하면 저는 답답해님의 글 전개방식이나
논조에서 자유게시판 사님에게서 받은 느낌을 받았기에
자신의 관점이나 성경해석만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만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성경구절로 그것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이시라는 것입니다. 님은 기존의 목사님들이
잘 못 가르쳐서 이렇게 되었다고 안타까워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님이 기존의 신학에서 벗어난 신학을 배워서 그런
관점을 가지고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권면을 하시지만 마시고 님의 권면을 한번 자신에게
적용시켜 과연 나는 바르게 배웠고 바르게 성경을
이해했나 예수님의 비유를 바르게 해석하고 천국에
대한 이해도 바른가 자문해 보시기를.... 9/27 17:21
 24.2.49.132
    agok 
2009-09-26 22:05
 24.2.49.132
 ㅎㅎ 롱기누스님^^  계급이 ~가 되는 것은 결과론적 관점이고
 그 과정을 보면  그 계급을 하사하신 이에게 그 계급을(녹명)받아
 그리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상급이라는 말과 품계라는 말을 꼭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지요.
계급이라 하니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런식으로 이해하고자
 하기에  이런 식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마 25:14-30) 나 므나 비유(눅19:12-27)는
 바울이 언급한 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사도의 권(리)을 다 쓰지 않고 절제하며 더 수고하며
 열심히 달려간  이유는  바울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해를 받은 것(행 9:16)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각자 부르심을 받은 대로 충성을 다 하는 자에게 일한대로의 상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비록 불가운데에서의
 구원처럼 믿음으로 받게 된 선물인 구원은 잃지 않겠으나 해를
 받는다고 나오니 은혜 가운데 선물로 받은 구원에 대해서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되 저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인내하며 성령안에서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달란트 비유 :  전지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그 부르신 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은사(직분적,능력적)를 그 뜻에 따라 나누어 주셨으니 성도들은
 그 비유의 종들처럼  받은 달란트를 자본금 삼아 장사를 하여 이윤을
 남길 의무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거부해서도 안되고
 영적긴장속에 부여받은 재능을 성실히 활용하고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복음전도)를 위해 일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제가 참고한 주석이 너무 길어서 내용을 정리하여 적어보면
< 오랜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 25:19 : 종말적 심판을 상업적 용어로 표현한 것이고(Deissmann)  종의 지상에서의 사역을
 장사로 비유하여 이해하게 하였다. 예수님 재림후 심판하실때에는
 지상에 거하는 모든 종들의 사역결과를 놓고  회계(會計)하실 것입니다.
 (고후 5:10 ; 계 20:11-15). 
다섯 달란트 받아 이윤을 남긴 종과 두달란트 받아 이윤을 남긴 종 모두
 주인에게 <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 마 25:21,23>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의 관심,즉 회계(會計)의 내용이 투자에 대한 이윤이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 오히려 작은 일에도 성실하게 충성하는 자세임을
 알 수 있고  많은 것으로 맡긴다는 그 보상은 주인의 회계 이후에 주어질
 것이라는 점과 그 보상이 어떠할지는 구체적으로 단정하여 알 수는 없으나
 그것이 주인과 종과의 더 깊은 신뢰관계위에서 그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이라고 (눅 므나비유를 통해)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이러한 동일 내용의 칭찬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심판주의 회계 기준은
 은사와 능력의 크기에 있지 않고  그  맡은 바에 대한 성실성과 충성도에
 있다는 점이고  한편 주인은 두 종에게 모두 '많은  것'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두 종이 똑같은 양의 '많은 것'을 맡게 되지는 않을 것임은 실로
 천국은 획일적인 평등주의(equalitarian)의 실현장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수고와 충성이 모두 인정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한 달란트 받았던 종에게 있던 그 한달란트는
 다섯달란트를 남겨 열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지지요
 므나비유:  므나는 달란트의 1/60 에 해당되는 적은 액수이니 이것은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에 대한 테스트를 더 효과적으로 강조하는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눅 19:13>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눅 19:15>
여기서 말하는 '장사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장사한 내용 전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비유에 담긴 종말론적 의미는, 마지막 심판 날에 모든
 사람들이  일평생  행한 바 선악간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 날에는 은밀히 지은 모든  죄악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며
(전 12:14), 반면 오른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베푼 자비로운 행위들이
 크게 보상받게 될 것이다(마 6:3,4). 특히 받은 바 은사를 잘 활용하여 맡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 자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수여될  것이다 (약 1:12).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 여기서 우선 주목할 것은 '주의 한  므나' 라는 점이다. 즉 주인이 떠날 때 주었던 그 돈은 자기의 돈이  아니라
 주인의 돈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점이다. 이와 같은 고백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응당 취해야 할 자세를 함축한 '청지기'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경제적 도구들은 물론이고 주어진 시간과 재능, 건강 그리고 심지어는  생명마저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남겼다'는 말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최대의 노력으로 창조적이며 생산적으로 살아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윤을 남긴 양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장사 내용,  즉  삶의 과정(過程)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눅 19:17>
 [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 달란트 비유에서는 더 많은 것을 맡긴다고만
 했기 때문에 무엇을 많이 맡기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누가는 구체적으로
 밝힌다. 본절에  내포된 교훈은 다음 두 가지이다. (1)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축복은 성도들이 기울인 모든 노력을 합한 것보다 월등하게 많다.
열 므나와 열 고을을 비교해보면 이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또한 이 종이 한 일은 주인의 지시를 받은 한 '종'으로서 '장사'를  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충성에 따른 축복은 열 고을을 '다스리는' 당당한 '권세가'의  신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온갖 수고와 충성을 다한 성도는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하는 위대한 권세를 소유케 될
 것이다(계 22:5).
 (2)심은대로 거둔다는 법칙이다(고후 9:6). 열 므나 남긴 자에게는 아홉
 고을이나 열한  고을도 아닌 꼭 열 고을이 주어진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없는 큰 축복임에 분명하지만, 천국 잔치에  참석하게 되는 사람 중에는 본문의 종처럼 칭찬과 상급을 받는 영예로운 자가 있는가 하면  불가운데서 구원받는 것처럼 부끄러운 처지의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고전 3:15).
 
 agok 
성도는 무익한 종이 마땅히 할 일을 하였다는 겸손한
자세를 취할 것이고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보상(상급)은 그 일한대로 주어지니 종들에게는 은혜
(구원,영생의 복)위에 은혜가 되는 것이고 이 상급이나
품계에 대한 이해는 예수님의 달란트, 므나 비유의
교훈과 비유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직접하신 누가복음
22:28-30절 말씀 그리고 바울의 상 관련 구절이나
고전 3:14-15절을 함께 연결하여 묵상하면 도움이
될 것이고 상은 은혜가운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차별없이 받게 된 선물인 구원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9/26 22:18
 24.2.49.132
 
 agok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하였고(롬 10:17)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술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며(롬 10:10)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였으니 (롬 4:6) 구원<->믿음으로 말미암은
선물,복음의 은혜 / 상급<->(칭)의인의 일한 삯,은혜위에
은혜/하나님의 은사<->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
/죄의 삯<->사망,율법의 저주 /형벌<->죄인의 악행에
대한 보응 .. 바울이 고전에서 말한 상은 믿음에서
난 의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게 되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 5:11-12 절에 나오는 천국에서
받을 상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을 뜻합니다 9/26 23:23
 24.2.49.132
 
 아침이슬 
2009-09-26 16:10
 70.195.50.154
 할레루야!!!
속이 다~~~~ 시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담대한 용사가 되어 주심에...
아곡님! .. 정말 감사합니다!
 
  agok 
한 것도 없이 과한 격려와 감사의 말을 들으니
멋적어서 말할 바를 모르겠네요.
아침이슬님이 별똥별님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몸이 불편한 가운데에서 수고하시는 별똥별님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두분에게 주님의 평강이 있기를~ 9/26 23:42
 24.2.49.132
 
    agok 
2009-09-25 22:44
 24.2.49.132
 어느새  토론이 신학적으로  심화됨과 동시에 현학적 변론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별똥별님이나 답답해님이나
 서로가 바른 성경지식을 말하고 가르치고자 입을 열게 되었으나
 관점의 차이로 인해서인지  성경구절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시네요. 
답답해님께서 성경해석을 전공하신 목사님이라고 하시니 이 기회에
 기왕이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하겠습니다.
 
1.  답답해님은 별똥별님의 "하늘나라에도 품계가 있다" 는 단언이
 성경적인 명제인지 비성경적인 명제인지 구체적인 견해를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비성경적이라면 어째서 그런지 해석 전문가답게 성경구절을 충분히
 인용하시면서 관련 구절들을 해석해 주시되 가능하면 축자영감설
 안에서 자의적인 해석을 떠나 유기적이고 보편적이고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성경해석과 논리에 근거한  주석들을 참조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만약  답답해님이 별똥별님에게 반론을 제기한 이유가
"하늘나라에는 품계가 없다" "상급심판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품계와 믿는 자들에게 상급심판이
 있음을 인정하나 그것을  해석, 인용,적용 ,설명하는 방식에서
 별똥별님과 입장이 다르기에 그것을 지적하고자 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  질문을 던진 제게 질문으로 대답할 수도 있기에  간략하게
 제 견해를 말하겠습니다.
심판이란 말은 원어로 "크리시스"인데 이는 "분리"라는 뜻으로
 심판주관자가 심판받는 자를 선악간에 심사하여 옳은 자와 그른 자로
 그들의 잘하고 잘 못한 것을 구체적으로 판단 판결하는 것을 말하겠지요
 저는 최후심판(백보좌 심판)에는 형벌심판, 상급심판이 있다고 보고
 천국에도 품계가 있음을 성경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차적으로 양과 염소/곡식과 가라지/알곡과 쭉정이/로 분별 분리되는
 비유처럼(마 25:31-46/마 13:24-30/마 3:1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성에
 거하게 될 자들과 성 밖에 있을 자들이 분리되고(계22:14-15)
영생을 상속받은 복 있는 자들, 성안에 거하게 될 자들에게는 일한대로
 상이 주어질 것이고(계 22:12) 성 밖에 거하게 될 자들에게는 형벌(영벌)이
 주어질 것입니다.(마 25:41,46)
상(마 6:1-4/눅 6:35/마 10:41/막 9:41/마 5:12)과 벌에 대한 등급이
 구체적으로 어떠할지는  비유나 구절(고전 3:14-15/ 눅 12:47-48) 에서
 추측해 볼 수는 있겠으나 믿음의 분수를 지키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죄심판을 면제받게 되는 구원(요 3:18-19)과
 일한대로의 상급심판(고후 5:10)까지만 들어가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구요.
더 구체적인 것은 온전한 것이 오고 각 인이  심판대 앞에 서보고
 천국에 가보면 알게 될 테니까요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고전 9:18>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4> 
 *  품계 (관등) [品階] 관리의 직위를 나눈 등급.관계(官階)·위계(位階).
  [명사]<역사> 여러 벼슬자리에 대하여 매기던 등급.
 
품계 1. grade 2. rank 3. degree of official rank
유물론 :정신적인 것(영혼·정신·마음·사고·의식 등)보다는 물질적인 것(자연, 물질, 신체, 물질적 활동, 존재 등)이 근원적이며 제1차적이라고 하는
 철학적 입장 또는 그러한 사상적 경향....
 [唯物論] [명사]<철학>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고,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을 입고 천국에 산다고 해서 그것을 유물사관과
 연관시킬 수 없는 것처럼  천국에 속한 신령한 품계와 상급이 있음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유물사관과 관련지을 수 있는지요. 영적인 이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주셨듯 그 비유를  풀어 영적인
 이치를 정리해 놓은 별똥별님의 신학적 견해에 저는 방법론에서 설명의
 차이는 좀 느낄지 몰라도  성경을 짚은 맥이나 보는 관점이 같기에
 동의합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오직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여 두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명하시고 복을 주셨는데 이제 천국은 풍성한
 기업을 물려받을 생육하고 번성한 하나님의 백성들(자녀들)로
 충만하니 더 이상 생육과 번성할 필요가 없기에 예수님을 신랑으로
 하는 혼인잔치후에는 더 이상 시집가고 장가갈 필요가 없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6:29>
천국에 생명나무가 흐르는 생명수 강 좌우에 있어 실과를 맺는다는
 것이 나오는데(계 22:2)...여기에서의  포도주가 실제 천국에
 포도나무에서 나온 것인든 비유 또는 상징이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음식을 드신 기록도 있으니  천국에서 신령한 육체를 가진 자들이
 먹고 마시는 것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가능다고 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다스리게 하노라  눅 22:28-30>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계 21:14>
 <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 20:23>
 <또 보좌에 둘러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앞에 던지면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4,10,11)
그 장로들이 누군지 열두제자들이 열두지파를 어떻게 다스리는
 것인지 예수님의 좌우에 누가 앉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천국에 품계가 있다는 것은 이런 구절들로 알수 있지 않은지요
 문자 그대로 해석하든 영해를 하든 실질적인 권력적 계급이든
 명예적 계급이든 구원은 일한 것 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가운데
 선물로 받아도(롬 4:5,6/ 엡 2:8) 구원받은 자들이 받을 상급이나 품계는
 일한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정하신대로 주어진다는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과연 몇몇 사람의 자의적인 해석인지 그 반대의 견해가
 자의적인 해석인지???
 
 별똥별 
2009-09-25 13:20
 66.8.225.18
 댓글도 초과용량은 허용되지 않아 한 개 더 답니다, 양해 바랍니다. ^^
하늘나라에서의 가장 큰 상급은 우리 믿는 자들은 천사보다 더 높은 자리, 하나님의 아들 딸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의 자리,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천사보다 더 높은 품계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1: 14절)"
섬기는 자가 있고, 섬김을 받는 자가 있다....이것 역시 품계가 아닌가요? 
 
별똥별 
2009-09-25 11:54
 66.8.225.18
 귀한 걸음을 남겨주신 답답해님, 반갑습니다. ^^*
님의 말씀을 전적으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에 동감을 합니다.
그럼에도, 다음 말씀,
 (성경을 유물사관적으로 해석하시는 우를 범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별동별님 천국을 유물론적 세계관으로 해석하시는 것은 성경을 성경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제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제가 드린 말씀 어느 부분이 유물사관적 해석인지요? 제가 이해력이 딸리는 편이라 이해되지 못한 수도 있으니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좋겠습니까?
 (그러한 의미에서 성경을 해석할때 소위 "영적해석"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커다란 실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 이 부분도 상당히 난해합니다.^^
그렇다면, 답답해님께서는 무엇인지요? 성경에 영적 해석은 없고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지요? 이 부분도 제게 설명을 다시 좀 부탁드려 봅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해석과 문자적인 해석이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로 끝이 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 3:6-7절 말씀)." 그리고 같은 장 29절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물리적으로는 분명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면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읽을 때, 영해가 필요함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대목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영적으로 이스라엘이라 받아드리고 그런 맥락으로 본 글도 이해하시면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영적인 이스라엘인 우리에게도 그 말씀이 그대로 적용 된다고 저는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님께서는, 성경에 영적 해석이 불가하면, 님은 자신이 물리적인 이스라엘 자손이라 주장하고 계시는지요, 아님 진짜 이스라엘 분이십니까, 그것도 아니면 그리스도의 말씀를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이십니까?
 (공교회의 고백과 함께 정통과 전통속에서 이어져온 해석의 방법론을 통해 성경해석을 일관되게 하여야 합니다. 나의 자의에 의해, 나의 느낌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의 선배들이 고백되어온 방법에 의해 해석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방법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전통적, 역사적 고백에 의한 해석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몇 몇 사람의 경험이 성경 해석의 Tool이 될 수 없으며, 몇 몇 사람의 감성이 성경 해석의 Tool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전적 아멘으로 동의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사족을 붙여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기록한 그 시기의 저자 입장에서만 해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입니다!
 (별동별님 (건방지게도-죄송합니다)성경을 다시금 한번 정독을 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건방지다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정독하라고 피차 권면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
 ( 천국은 먹지도 않고, 혼인도 없는 곳입니다. 우리의 육신도 변화되어 지금의 모습이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의 세계가 아닌 것입니다. 비 물질의 세계에 다시금 품계의 문제가 개입하는 것은 유물적개념을 다시 비물질 세계에 접목하여 천국의 개념을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천국에서  상급을 받지요. 그러나 그 상급이 물질 혹은 신분상승, 명예획득 과 같이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할 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천국은 다시 "변증적 유물사관"에 의해 계속적 투쟁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위 말씀도 상당부분, 그러니까, 성경말씀을 인용하신 부분은 동의합니다만....님의 주견이 섞인 부분은 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님께서는 성경을 일부분 삭제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이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리라.(계 22: 12절)" 여기에서 분명, 내가 속히 오리니...곧 주님께서 재림하신 후, 그러니까 하늘나라의 상급을 지칭합니다. 님께서는 이 말씀은 삭제시키시는 것입니까? 이 부분도 제게 설명을 해 주십시오. 이 말씀은 영해도 아닙니다. 문자적으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요, 하늘나라의 품계나 하늘나라의 상급은 그 단어 자체가 "형이상학"이란 것을 모르시는지요? 이 땅 위의 상급과 품계와 동의어로 해석하시는 답답해님의 주견이 바로 "형이하학적"이란 것 정도는 이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는 처음부터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품계는 군림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거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한 해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거의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고 하여도 무관할 정도입니다. 자의적 해석이라니요?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리라하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눅19:16-19절 말씀)."
주님은 열 고을 권세 자와 다섯 고을 권세 자를 나누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열 고을 권세 자와 다섯 고을 권세 자가 같은 품계(rank)라 볼 수 없습니다.  분명, 주님의 나라에서도 그 종의 충성 여하에 따른 품계가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열 고을 권세자와 다섯 고을 권세자로 나누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제가 성경에 없는 말씀을 끌어온 것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로 이해될 만큼 안에서 말하는 것이지요. 그 진정한 형태는 주님 나라에 가서야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해석을 하려고 하지 마시고 말씀 속에서 성령이 조명하시는 대로 깨닫게 되시기를 바라며, 답답해님의 답답한 마음에 주의 도우심으로 시원~~한 생수가 터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빌3: 14절 말씀)" 성령님의 조명하에 고백되어진 초대 교회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저의 질문: 성경 말씀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부분적으로 삭제시키고 믿어야 하는지요? 아니면, 계22장 12절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부정하시는지요?
좋은 토론을 할 수 있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위의 제 질문은 꼭 좀 답변을 부탁드려봅니다. 감사해요. ^^* 
     
 
 
 
    돌탕
2009-09-25 00:45
 76.255.198.182
 저는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온 상급 얘기 즉 교회에 돈 많이 내고 시키는대로 하고 오직 집 교회 일만 하고 특히 교회 일에 죽도록 충성하면 나중에 다이아몬드 보석 정금으로 지은 집에서 산다...행위록에 기록되어 크나큰 상급이 있다 높은 벼슬자리 보장이다 이 무신 천국에도 높 낮이가 있어서 세상과 별 다름없이 그런식으로 짜여져 있다 말이 천국이지 세상과 다름이 없고 누군 떵떵거리고 살고 누군 쥐죽은듯이 찍소리도 못하고 눌려살고 그런다는식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굴 홀려서 협박해서 공갈쳐서 아님 당근 채찍을 번갈아 가면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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