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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건전한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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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1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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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저를 포함, 성도라 이름 하는 우리는 모두 어느 위치, 어느 자리에 있든지에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라 고백하면서 지금껏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 사회생활을 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같은 기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도 그 사람의 인격성향, 지식수준의 유무, 환경, 혹은 타고난 성품 등등이 신앙생활에도 작용하는 듯, 정통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분들의 신앙 색깔이 비슷해야 하고 또 비슷할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고 모두 제각각임을 알고 놀라게 된다. 지면 관계로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고 신앙생활 상태를 간단히 두 부류로 분류해보면 1. 건전한 신앙인 2. 불(비)건전한 신앙인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모두 교회에 등록된 교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교파별,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말미암아 각자가 쌓아온 신앙의 색채가 다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편의상, 건전한 신앙인, 불(비)건전한 신앙인이라 나누어 부르도록 하겠는데, 건전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비바람이나 홍수가 내려도 끄떡도 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나가는 굳건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건전하지 못한 신앙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을내기보다는 사람(인기도 높거나 자기 취향에 맞은, 말을 잘하는 목사님이나 교사를 더 따름)의 말에 비중을 더 많이 두거나 혹은 신비적 현상, 나타나는 어떤 기현상, 이적과 기사 같은 것에 마음을 더 빼앗겨 거기에 열심을 내는 성도가 아닐까 성경 말씀에 비추어 유추해 볼 수 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경직되지 마시기를…

이런 것은 초대교회에서도 나타난 현상인데, 건전하고 바른 신앙인의 대표적 인물을 말하라면 당연히 바울 사도를 포함한 사도(가롯 유다 제외)들, 사도들을 통해서 전하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액면 그대로 믿으며 그 말씀에 복종하며 살아간 성도들을 칭하는 것이라면, 불건전한 신앙인의 대표적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가 아니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리고 그 추종세력들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들(우리들)이 건전한 신앙인과 불건전한 신앙인으로 극명하게 갈라지게 되는 명암의 갈림길,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올바른 신앙의 길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내가 건전한 신앙인으로서 성경 말씀이 원하는 대로 바른 생활을 잘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많이 있겠지만, 몇 가지로 간단히 요약하면:

1.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건전한 신앙인이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불(비)건전한 신앙인이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성육신 하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건전한 신앙인, 예수님을 천사장 정도로 믿으면 불(비)건전, 내지 이단자가 된다. 성령 하나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성령님을 온전한 인격을 갖추신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은 건전한 신앙인, 성령을 부리는 영, 혹은 영향력 정도로 규정하는 자(교리)는 불(비)건전한 신앙인(이단)으로 규정한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신앙생활의 잣대(Canon)로 삼는 자가 건전한 신앙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내 신앙생활의 잣대(Canon)로 삼는다는 것을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또 개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생활의 잣대로 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별님의 생뚱맞은 말씀? 하고 속으로 피식 웃으실 분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 자기 신앙상태를 한 번 점검해보시고 내가 과연 성경을 몇 번이나 통독을 하고 설교 말씀을 전하고 있으며 성경을 몇 번이나 읽고 신앙생활을 해 나오고 있는지, 스스로 자가 진단을 해보시기 바란다. 놀랍게도 내 마음과 생각 속에는 여기저기서 얻어들은 말들, 세속적인 표현을 빌리면 "들은풍월"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보다 훨~ 더 많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될 것이다. 아니, 놀라야 정상이다. 

현역 목사님들조차도 (모든 목사님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 이점 오해없으시기를…)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 속에서 그 말씀이 주는 뜻을 강론하며 풀어 가르치기보다는 인터넷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좋은 예화들, 인기 있는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들을 듣고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설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 몇 구절은 성경 말씀을 양념처럼 집어넣고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이 있음을 보고 아연실색 할 것이다.

댓글 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나타나는 기적과 이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말씀에 착념하라고 권면이라도 하노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무섭게 되받아침을 보고 씁쓸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었고 말씀을 많이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도 유대교 랍비들은 하루는 24시간 중 밥 먹는 것,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성경을 읽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함을 알 것이다.

성경 말씀을 많이 읽거나, 성경 말씀을 많이 아는 것, 그것이 문제인가? 천만에 말씀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었고 말씀을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읽은 말씀을 마음에 화합시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면 모순인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들은 말씀을 읽고 그 말씀 속에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외형적 신앙생활, 자기 의를 들어내는데만 중점을 두었고 말씀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그 정신은 무시했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3. 죄에 대한 처리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신앙이 건전한가 불건전한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세 번째 방법은 그 사람의 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지난 번 칼럼 글 아래 남긴 한 독자님의 질문, 1.말씀의 잣대(canon)하셨는데 로마서 2장 14,15절에 나오는 양심의 송사와의 관계와 히브리서 13장 18절에 나오는 "우리에게 있는 선한양심"과 연관지어 설명하여 주실수 있는지요?)의 답으로도 가할 듯, 죄에 대한 처리 문제를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그 사람 속의 양심의 소리가 진정한 소리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의 양심은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본래 인간은 선한 양심( good conscience)이 하나님을 찾아가게 되는 것인데, 마음속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파수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다.(창 1: 27절 참조) 이렇게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 없는 특별한 인지(knowledge)능력과 양심(conscience) 이란 것이 있다. 타락하기 전, 인간의 마음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선한 양심( good conscience)을 심어두셨고 그 선한 양심을 따라, 재판석을 차리기도 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할 수 있어, 선(善)과 악(惡)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책망과 질책, 변명 그리고 위로의 음성이 들려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자신을 신원하여 주고 달래어 주며 어루만져 주기도 하는 것이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모두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해야 하나?) 이런 현상을 “서로 송사하며 변명하기도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롬 2: 15절 참조) 문제는 그 양심이 병들고 화인 맞아 더는 그 양심이란 것마저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딤전 4 : 2)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물(말씀)과 피로 거듭난 성도는, 그동안 병들어 제 기능을 상실했던 양심이 먼저 살아나게 된다. 이렇게 선한 양심으로 살아난 성도(벧전 3 : 21절 참조)를 가리켜 거듭난 성도(Born Again Christian)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외형적 성도가 아닌 내면적 참 그리스도인으로 바뀐 상태가 거듭난 성도란 것이다. 죄 문제를 다룰 때, 인간(성도)에게 나타나는 표현(행동)에 주된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인간 속에 있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다시 살아난 양심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말씀), 내적 신앙인격에 관심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의 깨끗함에만 치우치게 되면, 바로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 문제아(兒)로 대두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율법주의자요, 바리새인처럼 외식하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 7) 주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주어진 양심을 부지런히 살피시는 주님께서 실망치 않도록 주께 마음을 내어드리는 자가 성도요, 이런 사람은 비록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잠시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절대로 고의적인 죄나 계속되는 자범죄를 지을 수가 없다. (요한 1서 5: 18절 참조)


4. 성령 충만함을 입고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한다

성령 충만과 성령 소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자. 우리나라 번역문만으로는 해석이 상당히 애매한 부분이 있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만 이해하고 있어도(원어나 영어를 알지 못하여도)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충분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기록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고 구원의 은총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시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구원과는 상관없이 성경 말씀을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려하거나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이라면 자국어로 된 번역문만 보는 것보다는 원어를 배울 수 있다면 이해력을 돕는데 편리하고, 더욱 명쾌한 해석을 답으로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성경 교사님들은 원문을 읽거나 배울 필요까지 없다고 하나 적어도 원문에서 가장 근사치로 번역되었다는 권위 있는 영어 성경에서 그 뜻을 찾아보는 정도라도 자신을 계발시킨다면 주님의 말씀을 억지해석하지 않고 자신에게나 가르침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도저도 할 수 있는 형편이 안되고 성경 공부를 가르치거나 난해한 단어를 좀 더 이해하기원하는 분이라면, 우리나라 정통교단에서 인정하는 신학자들의 저서를 구하여 참조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임을 전제로, 별이가 이곳에 들어오는 다른 분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연구하는 마음을 지녔기에, 모국어 번역문만으로는 애매모호한 단어나 댓글은 영어 성경, 혹은 원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고 하는 것이다.

1) 성령 충만함의 의미란 무엇인가?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테일러의 헬라어 사전을 인용하면서“ 무엇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 충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기운으로 살라고 말하는 것으로 성령에 의해서 지.정.의. 전인격이 성령의 힘에 의해서 조종을 받고 있는 것으로 말한다.

성령의 충만함에 관하여 충만한이란 ‘가득차다’. 혹은‘성령으로 흠뻑 젖은 것’, 단순히 그들 속에 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넘쳐흐르는 성령으로 충만된, ’성령으로 흠뻑 젖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성령의 충만을 두 가지로 구분을 한다. 특별한 경우에 주어지는 충만으로 어떤 특수하고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 그 예로 브사렐과 오홀리압 엘리사벳의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생활상에 주어지는 성령의 충만이다. 엡5장 18절의 말씀을 관련하여서는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여기서 성령 충만을 지시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것은 어떤 한 상태나 조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계속적인 현재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전자의 임무수행을 위한 충만과 구별을 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그는 롬5장2절의 말씀에 관련한 존 오웬의 ‘성령과의 교제’를 진술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소망가운데 기뻐하는 것 ... 그것은 어떠한 고난이나 영광을 통해서 영혼을 인도하며, 성령께서 우리 마음가운데에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부어주심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 성령은 모든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하게 하시면서 즐거움과 희열 그리고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심령의 환희로 우리 영혼에 충만케 채워주기도 하신다" .”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 중에서,

뿐만 아니라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죄에 대하여 애통하게 하시며 의로 교육하시고 선한길 의의길로 인도하시기를 그 나라에 가기까지 하신다. 성령님께서는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나를 버리고 멀리 달아나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항상 함께 계시면서 내가 죄 앞에 무릎을 꿇고 쓰러질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한없는 사랑으로 탄식하시며 간구 해 주고 계신 것이다. (롬8: 26-27절 참조) 이것을 신학상 용어로 "견인(堅忍(perseverance))"이라고 한다.
 
2) “성령을 소멸치 말며(to; pneu'ma mh; sbevnnute)”(살전 5: 19) 여기에서 “소멸”이란 단어는 원어가 주고자 하는 뜻이 우리나라 번역문만으로는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 “소멸하다”의 헬라어 원어는 “스벤누테( sbevnnute)”, 번역하면, “태우다.” “불사르다” “ 등불을 끄다.(put out, quench)”그런 뜻이 포함되었다. 그러니까, 한자어 번역문 “태워서 없어지다, 사라지다”의 뜻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를 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원어에 가장 가깝게 번역되었다는 영어만 보더라도 (KJV) “Quench not the Spirit” (살전 5: 19)이다. Quench의 사전적 의미는 “소멸시키다” 이 한 가지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을 끄다. 가열된 것을 물로 식히다.) 그런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그러니까, 적용하자면, “성령 충만을 불같은 성령, 불의 혀” 이런 강렬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성령의 활동하심을 제지하거나 거역(불순종)하게 되면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이 잠잠히, 탄식하시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서는 성령의 불같이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이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다. “순우리말로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로 번역을 해야 정확하다는 것이다 . 성령 소멸'은 내주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을 떠나버리신다라고 하는 뜻보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성령의 불을 끈다. " 혹은 "성령의 역사를 억누르게 된다."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고 본다.
성령님에 대한 인격적인 의미로 소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인류에게 있어 불은 매우 소중히 다루어야 했기에 그만큼 관리 보호가 필요 했을것이라고 보며, 불(능력을 의미)이 꺼지지 않도록 늘 보살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재론하자면, 성령의 소멸이라고 하여서, 한자어가 주는 개념의 완전히 떠나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불같은 성령의 능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하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더욱 정확히 이해가 된 것이다. 만약, “소멸”이란 한자의 뜻대로라면, 성경 전체의 맥락이 이해되지 않고 거기서 멈추어야 하고 끊겨져 버리는 것이다. 성령은 한번 십자가의 은혜에 근거하여 임하시면 영원히 떠나지 않으신다. 그래서 성령으로 인친다 라고 하는 것이다.(엡 1: 13- 14 ) 한 독자님이 제기하신 "성령 소멸"이란 어떤 것인가에 관한 지난 칼럼의 댓글에 관한 답변,

그리고 또 다른 독자님과 지난 칼럼 글 아래 댓글로 남기신 질문을, 칼럼 글로 다루겠다는 약속을 드렸기에, 오늘은 그 두 분의 질문을 근거로 생각해본 내용이긴 하나,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정리해본 것이다. 짧은 지면에 원하시는 만큼의 만족한 답변이 소개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기도하면서 성경에 근거하여 최선의 답변을 드리려고 노력한 것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이 정성 하나만으로 은혜점수를 후하게 주셨으면 좋겠다.^^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마음에 조명하여 주셔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주님의 은혜가 아침햇살처럼 우리 심령에 두루 비치시기를 기도해 본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 26-2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 20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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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니 
2013-08-26 10:04
 115.xxx.16
 안녕하세요. 별사모님^^
정신없이 여름방학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과목들로 새 학기를 준비하려고 보니 머리가 좀 복잡하여 잠깐 들렀는데 딱 맞춰 들어온 것 같아요.^^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저는 이 말씀이 믿어지는데요. 아직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기에는 수련(?)이 부족하여 주변에서 조금마한 것부터 하고 있어요.
항상 별사모님의 글을 통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감사해요.^^ 

초생달 
2013-08-23 20:56
 121.xxx.242
 참으로 깊고도 높으신 오늘 별똥별님의 말씀을
 몇번을 되풀이 읽어나가 면서
 예수그리스도님을 중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믿고 성령을 헛되게 저버리지말며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참 성도가되기를 마음을다해
 기도드리겠습니다.그리고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주고
 너무 훌륭하신 이 말씀이기에 추천 도 아낌없이 주저하지않는
 초생달 입니다.

진리탐구 

2013-08-22 00:22
 64.xxx.149
 《Re》 도봉옥 님 ,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별똥별님을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이토록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물체도 아니고 영향력도 아니고 인간인 우리가 조금 잘못을 저지르면 "죽어없어지는 "그런 비인격체가  아닙니다. 원어를 얼마나 아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소멸(죽어없어지는 ) 뜻으로 그곳에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원어의 뜻을 가장 가깝게 번역한 번역본이 KJV이라고 알고 있고 그곳에서 "QUENCH"라 번역하였으면 그것이 더 맞습니다. 소멸이라고 번역한 한자어에서 다시 번역된 한글을 가지고 이렇게 우기면 되겠습니까?

 (한자어 성경에서는 소멸(消滅)거질 "소" 멸망할 "멸" 논쟁할 의도는 없습니다)-도봉옥, 잘못 번역된 것 맞습니다. (성령 소멸'은 내주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을 떠나버리신다라고 하는 뜻보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성령의 불을 끈다. " 혹은 "성령의 역사를 억누르게 된다."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고 본다.) 별똥별님의 말씀이 정확히 해석된 것입니다.


성령은 한 번 약속하신 대로 성도의 마음에 영원토록 내주(거주)하시기에 성령님을 모신 성도를 하나님의 성전(고전 3: 16-17)이라고 부릅니다. 알미니안 주의가 이단으로 정죄된 그 주장을 계속하길 원하십니까? 죄를 지으면 떠났다가 회개하면 성도의 마음에 다시 들어오고 그렇게 한다면 님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몇 번이나 떠났다가 몇 번이나 다시 돌아오셨다고 생각합니까? 이단에 빠져서 오랫동안 계실 때 그때 성령님은 님의 마음속에서 떠나셨습니까? 소멸하여 없어지는 영이 성령님이라면 님께서는 지금까지 오시는 동안 님의 마음속에서 성령님이 몇 번이나 소멸되셨다가 몇 번이나 다시 살아나셨습니까?

성경은 회개하는 것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계셨기에 잘못된 길이란 것을 깨닫도록 도우셨고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오늘이 있게 이끌어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만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듣기에 거북합니다.

그 말은 제가 너무 과한 것 같아서 삭제습니다. 상처가 되었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서로 잘하자고 하는 토론이고 좋은 글 아래서 너무 나가는 것은 모양새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빌1:6).
요한복음 10:27-30에서 예수님은, 신자가 결코 잃어버림을 당치 않는다는 하나의 최강의 확언을 주신다.
첫째로, 그가 자기 양들 곧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둘째로, 예수님은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셋째로, 예수님은 예외로 인정치 않는 진술을 하셨으니 곧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영원한 보증이 되신 성령하나님을 근심케 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행할 최선입니다.
 
 짐보 
오랜 만 입니다.
역시 고수십니다.
많이 배웁니다.
 
잠긴동산 
2013-08-21 23:29
 67.xxx.142
 칼럼을 재차 읽어 내려가며 별이 사모님의 변함없으신 영혼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앞섭니다. 어쩌면 귀찮고 흘려 버릴 수도 있을 질문들을 칼럼으로 답하며 모두를 품는 넉넉함이 성령님의 마음이 아니일까 생각해 봅니다. !^^

첫 성령충만한 상태를 갓 결혼한 신랑신부의 첫날 밤과 같다 이해 합니다. 성령세례 입니다.
다음 날 둘째 날에도 부부의 관계는 여전히 첫날밤과 동일하게 황홀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성령세례라 부르지 않습니다. 성령충만 입니다

 성령충만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적으로 이해하기전에 감성으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임재하시며 나의 지.정.의.를 온전히 장악하심이 성령충만한 상태 입니다.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지시하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순복하여 따르는 자가 성령충만한 성도 입니다.

잠긴동산이 아무리 숫자놀이를 좋아한다 해도 “가슴” “감성” “임재” “지, 정, 의,” 와는 수량이나 분량이라는 단어가 조화를 이루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봉욱 님!의 성령의소멸 설 주장은 한번 받은 구원도, 빼앗길 수있다는 알미니안주의 구원론에서의 히6:4-6 말씀을 인용 입니다. 히6장1-6절의 말씀은 예지예정론을 논할 때 인용되어야 할 말씀이 아니인지요. 엉뚱하게도 수량이나 분량으로 나타내는 들락날락 한다는 도봉욱님의 성령론 주장에 예지예정론의 말씀이 뒤섞임으로 인하여, 답변에 충실하고자 올려진 이번 칼럼이라도 각자 다른 난상토론만 벌이다 아무 소득도 없이 끝이 나겠소이다
 도봉욱 님! 저도 알미니안주의자 입니다. 님의 주장을 잘 알겠으니, 성령론이나 구원론 어느쪽이든 한가지를 선택하여 재론하여 보심이 어떠하신지요? 모든 분야에 도통하려 하지 마시구요 가능하시면 성령론의 기본부터 보여 주시기요!^^

진리탐구 님!^^ 반갑습니다!^^
1. 구약에서의 주의 신(성령),
2. 성부/성자님의 영이신 성령님,
3. 신약시대, 약 2,000 여 년전(사도행전의 오순절 다락방)에 이 땅 위에, 강림하신 이후 그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자들의 마음에 항상 내주해 계신 보혜사 성령님.

성령님을 구약과 신약의 사이에서 사역별로 (신) (성령님) (보혜사 성령님)으로 정확히 구분하시는 분을 처음 만나 뵈오며 평신도로서 기쁜 마음 입니다.
“백성들 가운데 임재 임하시는”  “성령의 거주”라는 표현을 처음 배웠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

짐보 

2013-08-21 19:44
 207.xxx.194
  `별똥별` 님이 선택한 글 입니다.
두 문장 각 각은 성령의 거둠이나 소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약의 성령은
 하나님의 자의적인 인격적인 분입니다.
성령 소멸이란
 데살로니가 전서5:19 절을 보면
 개혁 개정 성경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NIV
 [ 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KJV
 [Quench not the Spirit]
여기서 quench 라는 단어의 의미는 불 등불 불꽃의 빛을 흐려져 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quench 라는 단어는 이사야42:3 절을 연관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KJV
 [A bruised reed shall he not break,
 and the smoking flax shall he not    quench:
 he shall bring forth judgment unto truth.]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누가?
이사야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언 한 겁니다.
2절을 읽으면 숨이 막힙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만일 우리가 죄를 지어서 성령이 떠나가시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워하시며 참고 기다리신다는 
마치 우리의 푯대가 저 산 정상 이라면
 올라가다 죄를 지면 다시 하산하여야 할 필요가 없이
 길을 잃은 자리에서 기도하며 회개하고 늘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으로
 약속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하는데
 다시 산을 내려와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마치 고장 난 녹음기가 헛돌아 반복되는 헛소리로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을 칭얼대어 기도가 요술방망이로 둔갑하고
 종내는 구걸의 신앙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헤아리기커녕
 자기도취에 흥겨워 감성적인 분위기에 휩싸인 상태를 성령 충만 이라
 박수치고 할렐루야 삼창을 한들
 아무 때나 샬롬이라 고상한 척을 한들 
싸구려 은혜로 회칠할 뿐입니다.
 

성령 충만(pleroma)
충만의 Pleroma 헬라어는 새것으로 낡은 것을 온전하게 하여
 채워서 가득하게 완성하는 상태로
his fulness 로 요한복음1:16절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And of his fulness have all we received, and grace for grace.]
은혜위에 은혜를 더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성령의 내주는 성령 충만과 구별됩니다.
성령 충만이란 성령으로 완전한 상태
 성령으로 깨우친 말씀으로
 영혼이 몸과 마음과 느낌과 행동이 성령으로 지배되어
 성령과 일치한 상태로
 감정의 황홀경이 아니라 성령의 뜻에 따라 경건하게 살겠다는
 별똥별님의 경건한 신앙인을 지향을 말 합니다.
좀 긴 글이 되었습니다.
별 자매님과 이심전심이고
 제 나름의 살을 붙여 고백적인 글을 올립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추천합니다.

허참 
2013-08-27 08:58
 69.xxx.32
 《Re》잠긴동산 님 ,

Joel Osteen은 '긍정적인 사고'(?)라는 베스트 셀러의 저자입니다. 잠긴 동산님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처럼 눈치가 없어서 Justin Peters 의 A Call for Discernment 를 들으시면서, 베니 힌- Paul yonggi Cho 의 친구-같은 false teacher 를 나쁘지 않게 본다는 Positive Confession 을 하시는 것이겠지요. 엉터리 Positive Confession 설교라니요? 하여튼 잠긴동산님은 엉뚱한 말 만드는데 도사여!

별똥별님, 저는 댓글로 떠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의 아니게 혼잡한 글들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제가 수양이 부족하여서, 답답한 마음을 쏟아 버리기도 합니다. 쓸데없는 참견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회도 합니다.

木鷄之德은 '보기에 마치 나무로 조각한 닭과 같으니 그 덕이 완전하다'라는 뜻입니다. 木鷄는 개가 와서 짖어도 꿈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넷에 댓글을 쓰다 보면, 木鷄之德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신앙생활의 잣대(Canon)로 삼는 자가 건전한 신앙인이다"

별똥별님의 논술은 많은 경우에 저에게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건전한 신앙인이란? 주제로 그 잣대(canon)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건전한 신앙인인가 아닌가?를 말씀하신 잣대로 재어 볼 것입니다. 그리곤 나름 기분이 up and down되기도 할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엔 과연 성경에 그런 '건전한 신앙인'이 있기는 있는가?하고 찾아 볼 것입니다. 하여튼 저는 요 넘의 입이 가벼워서 탈입니다. 샬롬.^^*

God Chooses Favorites?

 The question then begins with why He would choose the Israelites to be His favorites. Did He choose them because they were good? No. In fact, many if not most of the men who God chose to work through in the biblical record were deeply flawed. Abraham gave his wife over for men to sleep with her to get what he wanted (Genesis 12:11-20). Jacob was a liar (Genesis 27). Moses was a murderer (Exodus 2). David was an adulterer and a murderer (2 Samuel 11). Solomon was a sex addict (1 Kings 11:1-3).

 So then, if the favored ones of God weren't all that good, why did God choose them?

 The answer lies in the word hesed, which is translated "lovingkindness" in the Bible. This word for the love of God bears with it many connotations: extravagant, faithful, consistent, unrelenting, undeserved. God chose these people, not because of who they were, but because of who He is, as an outlet of His mercy to at least some of the people He had created, and who had become at odds with Him when Adam ate the fruit in the Garden of Eden.

청솔 

2013-08-26 19:54
 64.xxx.247
 별똥별님의 본글에서 많이 배웠고 아래 진리탐구님의 글에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댓글이 너무 아래로 내려갔기에 올려왔습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별똥별님을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이토록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물체도 아니고 영향력도 아니고 인간인 우리가 조금 잘못을 저지르면 "죽어없어지는 "그런 비인격체가  아닙니다. 원어를 얼마나 아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소멸(죽어없어지는 ) 뜻으로 그곳에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원어의 뜻을 가장 가깝게 번역한 번역본이 KJV이라고 알고 있고 그곳에서 "QUENCH"라 번역하였으면 그것이 더 맞습니다. 소멸이라고 번역한 한자어에서 다시 번역된 한글을 가지고 이렇게 우기면 되겠습니까?

 (한자어 성경에서는 소멸(消滅)거질 "소" 멸망할 "멸" 논쟁할 의도는 없습니다)-도봉옥, 잘못 번역된 것 맞습니다. (성령 소멸'은 내주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을 떠나버리신다라고 하는 뜻보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성령의 불을 끈다. " 혹은 "성령의 역사를 억누르게 된다."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고 본다.) 별똥별님의 말씀이 정확히 해석된 것입니다.


성령은 한 번 약속하신 대로 성도의 마음에 영원토록 내주(거주)하시기에 성령님을 모신 성도를 하나님의 성전(고전 3: 16-17)이라고 부릅니다. 알미니안 주의가 이단으로 정죄된 그 주장을 계속하길 원하십니까? 죄를 지으면 떠났다가 회개하면 성도의 마음에 다시 들어오고 그렇게 한다면 님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몇 번이나 떠났다가 몇 번이나 다시 돌아오셨다고 생각합니까? 이단에 빠져서 오랫동안 계실 때 그때 성령님은 님의 마음속에서 떠나셨습니까? 소멸하여 없어지는 영이 성령님이라면 님께서는 지금까지 오시는 동안 님의 마음속에서 성령님이 몇 번이나 소멸되셨다가 몇 번이나 다시 살아나셨습니까?

성경은 회개하는 것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계셨기에 잘못된 길이란 것을 깨닫도록 도우셨고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오늘이 있게 이끌어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빌1:6).
요한복음 10:27-30에서 예수님은, 신자가 결코 잃어버림을 당치 않는다는 하나의 최강의 확언을 주신다.
첫째로, 그가 자기 양들 곧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둘째로, 예수님은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셋째로, 예수님은 예외로 인정치 않는 진술을 하셨으니 곧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영원한 보증이 되신 성령하나님을 근심케 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행할 최선입니다."

짐보 

2013-08-21 19:43
 207.xxx.194
 별똥별님의 건전한 신앙인  이란 글은
 또 이심이가 전심이가 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제 자신  이 글을 읽으면서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이 되자 다짐하면서
 낙제를 간신히 면한 신앙인이 아닌가 부끄러운 고백을 합니다.

한국교회의 ‘성령론’ 은 혼란 차제 같습니다.
‘성령’ 자체로부터 성령세례,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 성령의 열매 등
 근본적인 성령의 정의 없이 혼돈스럽게 오용한 시작이
 기도원 짓기를 시작한 은사주의에 치우친 70년대 말이 아닐까요?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교회는 세속화에 물들어 대형교회를 소원하고
 여기 저기 엉터리 부흥사들이 많이 헌금해야 많이 복 받는 다는
 무당의 복채가 많아야 복을 더 빌어준다는 소리로 들릴 때
 교회마다 어느 사이비 목사를 우러러 보고 목소리까지 흉내 냈던 시절
 절망했던 날들이 떠오르고 그날들의 교회성장이 올바른 성장이었나
 돌아보면 아직까지 회의적입니다.

교회서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늘 합니다.
참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설교하는 자도 듣는 자도 예배의식에 족 하고
 읽어도 자기 의도로 해석하고
 구절과 구절을 장과 장을 구약과 신약으로 이어지는 뜻을 관철하지 못하면
 영혼을 흔들지도 미치지도 못하는 신앙고백은 자기만족뿐이 못됩니다.
믿는다면서 믿음의 경전을 읽지 않는 괴리란
 그리고도 봉사라 헌신이라 섬김이라니...
성경공부는 미리 성경을 읽고 토론식으로 참여하는 주입식을 배제한
 그리고 개인과 가정 교회 사회의 적용을 논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결심하고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가족의 공동체를 세워야 하는데
 현실은 따로 국밥이라 즉흥적이고 눈에 보이는 부흥
 극단적 튀어 유행하는 프로그램에 억매인 교회들을 보면서
 진정한 교회의 예배와 교제의 의미는 탈색되어갑니다.
이 모습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일까
 늘 떠나지 않는 의문입니다.

정녕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서로 소망이 되고
 서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면 안  될까
 소망하면서.

예수님은 부활 후 약속으로
 성령님이 오셔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이루셨기에
 신약시대인 이 시대를 은혜의 시대라 합니다.
‘오래 참음...’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고 성령
 이를 첫째 되는 하나님의 공의라 하면
 공의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무엇이 은혜일까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행함으로 얻은 게 아닌 거저 준 선물인 구원의 믿음이
 성령의 은사가 은혜가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음입니다.
예수님은 잘못한 이에게 일곱 번, 일곱 번에 더한 일곱 번 용서라라 하셨고
 용서는 참음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서의 ‘사랑은 오래참고...’
소망은 오래 참고 견디고...
요한 계시록을 쓴 요한 사도가 부럽습니다.
요한 계시록이 심판의 장이라 무시무시하지만
 성경 정독을 다시 한 번 마친 이제는
 요한계시록이 사랑의 장으로 닿아옵니다.
동료 사도들이 모두 떠난 세상에서 홀로 남아
 심판의 장을 쓰면서 괴로웠을 까요?
저는 그가 죽음의 순간까지도 행복 아니 평안했을 거라 상상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사랑하셔서 심판 때 까지 오래 참으시는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았을 것이기에.
더 하여 하나님의 사랑인 공의를 결부 지으면
 요한계시록이 사랑의 장으로 닿아옵니다.

성령 소멸 론은
 어떠한 인위(人爲)적인 의도로
 직분적인 권위로 인위(人位)적으로
 자기중심적인 해석으로 소멸을 주장하지만
 이를 인정하면 복음을 뒤집는 겁니다.
성령(Holy Spirit)은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격적 아닌 분입니다.
오직 구약에서 Holy Spirit 로 포현한 문장은
 시편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Do not cast me from your presence or take your Holy Spirit from me]와
 이사야63:10-11
 [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11.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0. Yet they rebelled and grieved his Holy Spirit. So he turned and became their enemy and he himself fought against them. 
 11. Then his people recalled the days of old, the days of Moses and his people -- where is he who brought them through the sea, with the shepherd of his flock? Where is he who set his Holy Spirit among them, 
뿐입니다.
 
 별똥별  오늘도
짐보 형제님의 신앙고백과
별이의 신앙고백이
주 안에서
이심이가전심...^^
주님께 영광돌려드립니다!!
 8/22 03:58
 98.xxx.204
 
       
 
 
 

이름아이콘 허참 

2013-08-20 21:41
 69.xxx.32
 몇 년전에 저희 교회 표어가 "건강한 교회가 되자"였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건강치 못한 교회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외형적인 것 만으로 교회가 건강하다 아니다란 평가를 할 수 있을까?

별똥별님이 건전한 신앙인이란 제목으로 말씀하신 내용은, 건전한 신앙인이라면 세상 사람들보다 나은 '신앙 양심'을 가져야 하고, 건전한 신앙인이라면 거룩함으로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빛이 어둠에 반사되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약해 지지마>

저기, 불행하다며
 한숨 쉬지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거야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아서

 너도 약해 지지마

-일본의 백세시인

 별똥별님의 신통방통을 시기하시는 분들이 없기를, 그리고 별똥별님의 다정다감한 진심을 바로 알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참고: http://www.gotquestions.org/conscience.html
        http://www.gotquestions.org/grieve-quench-Holy-Spirit.html
 
 별똥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원을 보내어 주시는 귀한 분,
허참님의 격려풀로 새힘을 얻습니다!
일본의 백세시인....
참 귀한 시마저 올려주시니
더욱 감사하네요.^^
시기...
시기는 자신의 뼈를 썩게한다고
잠언에서 훈계해 주시지요.^^
자기 자신의 뼈를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시기하면 안되겠지요..ㅎㅎ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허참 님.^^
 8/21 16:43
 98.xxx.204
 
       
 
 
 

이름아이콘 믿음은 

2013-08-20 19:37
 39.xxx.157
 자신의 믿음을 늘 점검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건전한 신앙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본분도 많고 노력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만 안개꽃 님이 핵심적인 요소들을 잘 선별하셔서 설명해 주시니 마음에 각인되어 좋습니다. 진리탐구 님의 보충설명도 아주 공감이 되고 유익했습니다.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똥별  믿음은 님께서
오늘도 귀한 발걸음
넘치는 격려풀로 공감해주시니
고맙고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8/21 16:36
 98.xxx.204
 
       
 
 
 

이름아이콘 별똥별 

2013-08-20 18:49
 98.xxx.204
 《Re》도봉옥 님 ,
집사님의 마음과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우리 모두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가 느끼는 점을 간단히 말씀드리는 것은 성경 말씀은
 그 오묘함이 기이하여
 단어 하나에도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지만,
댓글처럼 간단한 자신의 견해만으로는
 상대의 뜻을 곡해할 수도 있지요.

진탐구님의 말씀하신 사명을 위해서
 강하게 임재하셨다가 사명이 다하면
 그 사람을 떠나기도 하시고 다시 돌아오시기도 하신다는
 뜻을 내포하는 성경구절도 있기는 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구약에서 성령이 떠났다가 들어오는 것을
 구원받지 못한 것으로 설명하면 곤란하고
 삼손의 경우 성령이 떠나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한 것을
 보면, 직무와 사명관계라고 개혁주의에서는 정리하거든요.
 (사사기 16: 15- 20  )
 (사사기 16: 28)은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사 또는 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구요.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삼상 18: 12)

따라서 이(성령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상태)는
 직무와 관련된 표현이지
 구원과 관련 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
 개혁주의 구약학 신학자님들의 공통된 견해로 알고 있어요.^^

물론, 성령 하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시기에
 주님이 떠나시면 구원도 없다고 믿지요만,
그 부분을 분리하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열심히,
전하시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는
 도봉옥 집사님을 주 안에서 존경합니다!^^



 
 도봉옥  성령께서는 직무와 사명관계에도 연관이 되었지만은
분명 구원과도 떨어져 이야기할수는 없습니다
사사 삼손에게서 성령께서 떠나신것은
하나님께서 금한 머리카락에 삭도를 대어
자르므로 성령이 떠나시게 된것이지
하나님께서 삼손을 다 사용하셔서 성령을
거둬가신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의 거룩한 성령을 소멸시킬 일을 우리는 하지 않도록
해야함을 강조하고픈 것입니다
성령받지 못하거나 성령을 소멸시킨 사람이
결코 구원받지못하기 때문입니다
별사모님께 댓글을 단 이유는 논쟁을 위함이 아니고
약간의 오해를 불러올수있는 부분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댓글을 올리게 된것입니다
이 점 먼저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8/20 19:11
 121.xxx.50
 
 도봉옥  별사모님의 주장의 방향도 알고 성령께서
우리를 포기치 않으시고 견인하신다는 설명도
옳지만은 혹 어떤사람이 오해할수도 있기에
별사모님의 글에 보완하는 차원이였음을
밝힙니다
그 외의 오해는 하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8/20 19:14
 121.xxx.50
 
 별똥별  좋습니다!
집사님의 마음,
그 뜻을 모르면 안되지요.^^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8/20 19:15
 98.xxx.204
 
 도봉옥  어떤사람처럼 별사모님에게 악의나 악감을 품고
제가 글을 쓰지 않았음을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8/20 19:23
 121.xxx.50
 
 별똥별  cool~!^^ 8/20 19:38
 98.xxx.204
 
     
 
 
 

이름아이콘 도봉옥 

2013-08-20 18:00
 121.xxx.50
 《Re》진탐구님

 구약 에서는 특별히 사명을 띤 선지자들에게 기름부음을
 주셨던은 맞습니다 만
 그런데 사명 완수가 끝나면 성령을 거둬가신다는 기록이
 성경 어디에 나오는지요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도에게서 성령의 소멸이 될수도 있음을
 근거하는 말씀중 가장 중점을 두는것은 히브리서
6장 4-6절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령의 소멸을 언급하는 이유는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은 이제 구원이 확정되었으니
 죄와의 치열한 싸움을 하려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손해나 불이익이 생길려하면은
 진리에 어긋나는 행동도 하는 방자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12장에서  성도들의 타락을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18.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혹운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거룩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가 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키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요즘 교회가 세상의 빛 과 소금은 고사하고
 타락해서  물질의 부요함을 위하여서 또는 명예를 위하여서
 진리의 말씀은 외면한체 살아가는 일부 지도자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코 구원에서 탈락할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행동을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성령의 소멸이 일어날수 있음을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성도들을 견인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믿음에서 떠나는 완악한 마음으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죄 (치명적인) 를 짓게되면
 분명 성령의 소멸을 야기할수 있음을 경고하시고 계십니다 
       
 
 
 

이름아이콘 진리탐구 

2013-08-20 17:08
 64.xxx.149
 《Re》도봉옥 님 ,
구약 시대의 성령 임재 양식과 신약시대 성령임재 양식을 혼돈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의 영(성령)이 역사하시다가 인간이 죄를 범하거나 하실 사역을 끝내면  하나님의 영은 떠나 가셨습니다."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삼상16:14) 그러나 신약 시대의 성령 임재 양식은 다릅니다. 신약 시대의 보혜사로 오신 성령님은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그러므로 한번 오신 성령님은 떠나는 것이 아니고, 내주하신 성령님의 역할을 정지하든가, 소멸할 수(불타는 능력이 식어짐)가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주의 신(성령)을 특정인에게 강하게 내리셨다가 사명완수가 끝나면 거두어가시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오실 분(메시아, 보혜사 성령)을 예언하신 시대라면 신약은 구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된 시대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에 의해 그 죄가 완전히 속량되지 못하였으므로 백성들 가운데 임재 형식으로 성령의 거주를 가졌지만 그 백성들 각자가 성령의 내주는 갖지 못하였습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은 신약 교회의 특권입니다. 신약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에 의해 완전히 죄가 제거되었으므로(행 10:10-12) 성령을 받고 교회의 각 지체들이 성령을 내주 방식으로 모십니다. " 믿는 사람 각자 속에 계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마18: 20, 요17: 23)

신약시대, 약 2,000 여 년전(사도행전의 오순절 다락방)에 이 땅 위에, 강림하신 이후 그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자들의 마음에 항상 내주해 계신 분입니다.먼저, 성부/성자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개인이 구세주로 그 마음에 모셔들이는 기도가 요구되기는 합니다.(롬10: 9,10 참조).그것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백성들에게서 성령으로 역사(사역감당)하셨다가 성령 하나님께서 떠나가셨던 구약시대와는 달리(참고: 삼상18:12, 시51:11),

신약 시대는 일단 거듭난 사람이라면 성령님을 속에 모셨기에 성령님이 한시적으로라도 떠나시는 법이 없습니다.하나님이 용서 못하실 중대한 죄 혹은 자기 마음과 입술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경우는 예외가 되겠습니다. 성령이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기를 그 나라에 가기까지란 별똥별님의 본 글이 성경적이기에 동의합니다.
 
 별똥별  진리탐구님...
필명처럼 진리에 입각한
명쾌한 논증 감사합니다!
May God rewards you fully!^^ 8/20 17:56
 98.xxx.204
 
 도봉옥  진리탐구님!
사울왕에게서 성령이 떠나시고 악영이 들어와 괴롭게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왕에게서 성령이 떠나므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비참한 사울왕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밧세바와 통간을 하고 우리아를
죽인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둬가실것이라는
두려움에 자신에게서 성령을 거둬가지 마시기를
간구하는 내용이 시편 51편에 나오는것입니다
그러데 진리탐구님께서는
"백성들에게서 성령으로 역사(사역감당)하셨다가
성령 하나님께서 떠나가셨던 구약시대와는 달
리(참고: 삼상18:12, 시51:11), "
위의 내용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말씀에 대한 연구가 깊이있게 이뤄지지 않으면
엉뚱한 주장을 하게됩니다 말씀에 대한 깊이있는 묵상은
성도들에게 정말 중요하고 유익한것입니다) 8/20 18:23
 
121.xxx.50
  기자석 
2013-08-20 14:29
 65.xxx.228
 은혜스런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별똥별 
2013-08-23 15:58
 98.xxx.204
 《Re》확증코자 님 ,
먼저, 다시 찾아와 주시고 의견을 내려놓아 주셔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확증코자님께서 내려놓아주신 견해 중 상당수를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특히, 결론 부분은 동의가 되네요.

그런데, 몇 가지 부분에서 제가 이해가 잘 되지않는 부분이 있어서 이번에는 제가 감히 확증코자 님께 궁금한 부분을 몇 가지 여쭈어봐도 되겠지요?

지난 번의 질문하심에 관해서 최선의 답을 성경말씀을 토대로 정리해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남겨주신 댓글을 읽으며, 제가 궁금한 것이 생겼고 다른 독자님들도 그럴 것 같아서 말이죠. 저도 저의 최선으로 답을 해드렸으니까, 확증코자님께서도 저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실 것을 믿어도 되는거 맞죠?^^ give and take는 아니구요. 기왕이면 독자님들과 함께 좋은 배움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아서요, 한 수 나누어주시기를..!^^

확증코자님께서 남기신 댓글에 관해서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기에 보충 설명을 해주십사 하는 것이니까요. 편의상, 확증코자님의 글은 괄호 안으로 묶고 저의 질문은 ->표식을 하겠습니다.

1.(믿지 않는자도 그안에 있는 양심으로 인하여 "선한행실"을 얼마든지 내어 놓습니다.
그러한 선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남을 위하여 평생을 산자중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자도 구원의 여지가 있게 된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됩니다.)

-> 구원과 선한행실과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2. (성경은,아니 하나님꼐서는 믿지 않는자는 절대로 내놓지 못하는 그런 "선한행실"을 원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 믿지 않는 자는 절대로 내놓을 수 없는 그런 "선한행실"이라면 정확히 어떤 것을 성경은, 아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지요? 그것은 "우리의 구원"과는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요?

3, (많은 성도라 불리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내어 놓습니다.아멘넷에도 많이 있지요,저를 비롯해서(자기의 성경지식이나 남과는 다른 믿음을 소유한것처럼 보이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모두가 천국에 가게 될까요.진심으로 저는 그리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멸시하며 십자가에서 죽인 바리세인들과 유대지도자들을 비롯한 구세주을 진짜 알지 못한자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며 예수를 죽였습니다.
바꿔말해 지금도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눈물 흘리는 많은 성도란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사랑하는 걸까요?)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마음의 고백과 믿음의 행위가 천국과 무관하다면 어떤 일을 해야 천국을 갈 수 있는지요? 
 
  확증코자 
2013-08-22 16:30
 50.xxx.130
 먼저 답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믿지 않는자도 그안에 있는 양심으로 인하여 "선한행실"을 얼마든지 내어 놓습니다.
그러한 선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남을 위하여 평생을 산자중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자도 구원의 여지가 있게 된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됩니다.
성경은,아니 하나님꼐서는 믿지 않는자는 절대로 내놓지 못하는 그런 "선한행실"을 원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많은 성도라 불리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내어 놓습니다.아멘넷에도 많이 있지요,저를 비롯해서(자기의 성경지식이나 남과는 다른 믿음을 소유한것처럼 보이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모두가 천국에 가게 될까요.진심으로 저는 그리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멸시하며 십자가에서 죽인 바리세인들과 유대지도자들을 비롯한 구세주을 진짜 알지 못한자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며 예수를 죽였습니다.
바꿔말해 지금도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눈물 흘리는 많은 성도란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사랑하는 걸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과연 사랑 할수 있는 존재나 될까요?
하나님꼐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사랑만으로 그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갚을 수있을 까요?

주여주여 아무리외쳐대도 분명히 예수님꼐로 부터 이런 말을 들을 사람들이 있게될것입니다.  "나는 너를 모르겠다"
죽어라고 봉사,헌금,선교,구제,천일 제단, 십일조 내고 했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그분에 사랑을 받을 존재나 될까요 정말...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 죄로서 죽어야하는 우리에게 예수가 오셔서 몸은 죽이시고 영은 나중에 다시 찾는다는 것을 믿으면 살리시겠답니다.
이것을 정말"온전히"붙드는자가 얼마나 될까 무척궁금합니다.
하나님꼐서 사랑하는 자가 구원됨을 믿게 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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