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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창조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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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13-03-02

본문

“꼬끼오~!” 담장 위에 냉큼 올라앉은 수탉이 목청 돋워 새벽 미명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신호로, “구구구~” 부지런한 암탉도 어느새 일어나 그 품속에 있는 병아리들의 먹이를 찾아 나선다. 부리로 짚더미를 헤치기도 하고 언 땅을 발톱이 닳도록 열심히 파헤치기도 한다. 수탉에게 질세라, 사립문 틈으로 목을 쑥 빼고 밖을 내다보던 누렁이가 아직은 이른 시간, 호젓한 시골 길, 지나가는 이 하나 없는데, 저 멀리 사라져가는 달그림자를 좇는 것인지, 희부옇게 밝아오는 하늘을 향해 “컹컹!” 요란하게 짖어댄다. 자신이 주인집을 지키는 지키미임을 과시하는 충성스러운 표현일 것이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끓이는 냉잇국 냄새가 구수하게 집안을 감싸 흐르고, 부지런한 아버지는 손수 만드신 싸릿대 비로 “사그락사그락” 밤새 떨어져 내린 오동잎을 끌어모으기도 하고 “서걱서걱” 긴 작두로 소여물 써는 소리가 꿈결에서 들리듯 정겹다. 어른이 된 후, 각박한 세상을 힘들게 헤쳐가는 동안에도 평화롭던 고향 집은 필자에게 지속적으로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요람처가 되고, 질서정연한 자연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메마른 심령을 풍요롭게 해준다.

그렇다. 창조주가 맡겨주신 사명을 역행하거나 거스르는 일 없이 순복하는 자연, 질서 정연한 세상은 언제 어디서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우리(여성들)도 모든 분야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말하면, 그 대답은 “Yes,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이다. 능력만 있다면 여성이라고 해서 지도자가 되지말란 법이 없다. 성경에도 수많은 여인이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하기도 하고 여선지 ‘드보라’는 정치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최고 지도자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사사였다. (당시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때라, 사사가 치리했으니, 그때 사사는 현대 대통령과 같은 위치임(사사기 4:4절 참조)) 그리고 그녀는 그 역할을 훌륭하게 잘 감당해 나왔음을 성경이 증명해 주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어떤 분야에서건, 그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와 자질, 그리고 지도력을 가졌다면 여자라고 해서 한 단체의 지도자가 되지말란 법은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오랫동안 유교사상에 찌든 문화는 “남존여비”라는 무서운 이념을 체계화시켰고, 때문에 수많은 여인이 어두운 곳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져 한 맺힌 삶을 살아나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국가이기에 그 수치의 역사를 바로 잡는 의미에서도 여자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잘된 일이라고 본다.(필자는 정치를 좋아하지 않기에, 누가 더 좋은가 나쁜가에 관한 matter가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이런 관점에서, 여자 대통령이 다른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것은 글자 그대로, 획기적인 일이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한 많은 여성들에게 능력만 있으면 무엇이건 할 수 있다고 하는 소망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견인차 구실이 될 것이란 점에서 그 시사하는 바 크다 하겠다.

그러나 그 책임 사역을 제대로 감당해 나가려면 피나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여인이 한 나라의 운명을 걸머지고 나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도, 녹록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라는 특성이 그렇고,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남성분들 대다수는 아직도 여성 리더에게 그리 우호적이질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정치와는 상관 없이, 필자도 한 사람의 여인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ㅠㅠ

그렇다면, 신약시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사명은 무엇인가?
 
여성은, 교회 안에서 치리(주관자)자의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우는(helper)사람, 조력자(partner)조용히 배우는 자로서 사명이 주어졌다. 목회 서신서(디모데 전 후)에서는 교회와 가정에서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치리권)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여성)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느낌이긴 하지만, 성경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선언한다(고전 11:3; 엡 5:23). 성경은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를 사람의 머리와 몸으로 비유하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도 사람의 머리와 몸으로 비유하였다(엡 1:22, 23; 4:15; 5:23; 골 1:18). 머리는 온 몸과 지체들을 주관하듯,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주관하고 다스리듯, 남자가 여자를 주관하고 사랑하는 것이 성경적 원리다.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여자를 남자의 몸으로 삼으신 제도와 위계질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때부터 설정하신 원리며 제도로서 이것을 지키는 것이 바로 창조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세상적, 유물론적, 정치적 이슈와는 다른 그 무엇이 하나님의 교회, 그리고 천국의 작은 모형인 가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께서 지시하신 것이다!!!

“여자의 남자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교회에서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남자”(아넬, ; an adult male, husband)는 남자 어른 또는 남편을 뜻한다. “주관하는 것”(아우덴테인, ; to exercise authority; 권위를 행사하다) 이 단어는 권위를 행사하다(아우덴테오, ; to exercise authority or to domineer over, 위에 권위를 가지다 또는 지배하다)의 현재·부정·능동이다. 현재 부정사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로서 행동의 계속이나 반복개념이 있다.

“허락지 않는다”(우크 에피트레포, ; do not permit;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가르치는 것과 연결되어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일, 남자 위에서 권위를 행하는 일을 계속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성경이 허락하지 않는다.)

주관하는 자리(치리권)는 교회에서는 감독(장로, 목사)의 임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히 13:17)고 하였다. 여기서 다스리며 권면하는 자들과 인도하는 자들은 동일한 직분을 맡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가리킨다(딤전 3:5; 5:17).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여자가 남자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여성이 목사 안수 받아 총 책임 지도(주관(leader))자가 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딤전 2: 12-15절 참조) 이 말씀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여자는 교회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란 것이거나, 성경공부도 가르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주관하는 자리 즉, 교회에서 총책임 리더(Leader)격인 목사 안수를 받아서 남자를 주관하는 자리까지는 탐하지 마라...그런 뜻이다.

성경에서 분명히 이브(여자)는 아담(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만드셨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창 2: 23)' 교회나 가정에서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로서 여성에게로서가 아니라 남성에게 그 사명이 주어진 것은 보다 나은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것이며 누가 더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위계 질서 문제인 것이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성경말씀을 가감하지 마라

얼마 전 올라온 이곳 아멘넷 기사엘 보면, "아담을 남자로 보면 큰일 난다." 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기에 인류로 보아야 한다는 뜻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면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는 중성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는 ‘남성(Man)이 틀림없는데, 어찌해서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인지, 참으로 의아해진다. 진리를 거스르려고 하면 다른 이가 아닌 그 자신이 먼저 고통당한다.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서야 어찌 평안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나라는 과거 '남존여비'사상으로 인해서 여성들이 압박을 많이 받은 나라이긴 하다. 그래서 많은 여인의 가슴에 한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인생의 잣대, 신앙인의 가는 길에 이정표가 되는 성경 말씀마저 변개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남성분들, 특히, 기독교 남성분들이 회개해야 한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그리스도가 그 교회를 사랑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준 것처럼 헌신과 사랑을 쏟아붓지는 않으면서 여인들에게만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는 목사님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즉, 인간은 남녀가 동등하다, 그러나 역할 면에서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고 그 구분을 할 수 있는 '매뉴얼'이 성경 말씀이고 그 ‘매뉴얼’대로 순복하는 것이 창조질서에 부합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경우라고 하여도 성경 말씀을 변질시키거나 호도해서 가르쳐서도 안 되고 내 삶에 끌어당겨서 적용해서도 안 된다...진리는 변개시킬 수도 없고, 또 변질을 시켜 내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지 않는 것이 창조 질서를 지키는 것

성도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귀와 절과 각이 서로 맞다. 구약에서 말씀되어진 내용이 신약에서 나오고 있으며 신약에서 인용되는 글이 구약에서 출처 된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인간 구원이다.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사람은 각계각층의 사람이지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성령에 감동되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받아 기록하였다. (딤전 3: 16절 참조) 때문에 각각의 시차와 역사와 문화를 달리하여 기록된 예언이 수천 년이 지나서도 이루어지고, 성경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풀기 위하여는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기준선(基準線(base line))이다. 성경은 인간이 자신의 뜻대로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벧후 1: 20-21)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 다른 사상을 주입시키려 하는 것은 영적 교만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고로, 말세를 사는 우리 성도들은 이런 자들의 패역한 교훈을 단호하게 배격해야 하며 엄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울음을 우는 것이 사명이고, 개는 주인 대신 도적을 보고 힘껏 짖어대는 것이 사명이며, 해는 반드시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져야만 한다. 기차는 철로(railroad)를 벗어나지 않고 달리는 것이 사명이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여인은 남자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 완전케 하는 것이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사랑하는 동역자님들이여,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성경을 넘어서지 말자. 그것만이 창조 질서를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아름다운 신앙의 미덕일지니...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 20-21),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전 4:6)


1. J. Glen Gould, I and II Timothy, Titus(B.B.C. Vol. 9), p.577
2. G.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pp.411-413
3. William M. Hendriksen, Timothy and Titus(Banner, 1964), p.109
4. Donald Guthrie, The Pastoral Epistles(IVP), p.76


부록:
산헤드린님의 자료를 첨부합니다.
 
최초의 여자 목사 안수 건은 변질된 단체인 WCC입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시의 적절한 글입니다. 성경이 기초가 아닌 인본주의 발상에서 나온 변절자들의 모임에서부터란 것을 안다면 오늘 이 칼럼 글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요 타당한가 알게 됩니다.

여성 안수 제도의 진전 과정(Developments in Womens Ordination throughout Church History)


(1) 1927년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된 자유주의 교회들의 연합단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모체 중에 하나였던 신앙과 직제 위원회(Commission on Faith and Order)가 1927년 스위스의 로잔(Lausanne)에서 처음 모였을 때 400명의 대표들 중 7명이 여성들이었다. 여성 대표들은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사역과 직분에 관하여 진술하기를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올바른 위치는 모든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새겨져야 한다”고 하였다.25)


(2) 1948년 8월 22일부터 9월 4일까지 화란의 암스테르담에서 147개 교단 352명의 대표들이 모여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조직한 그때도 “여성의 완전 목회사역에 합의하지 못하였다”고 함으로 일부 자유주의교회들이 여자 목사 제도를 채용하고 있으면서도 여자 목사 제도의 찬반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26)


(3) 1961년도 11월 18일부터 12월 6일까지 인도의 뉴델리에서 모였던 WCC 제3차 총회 시에 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가정, 교회, 사회, 남녀 협력 분과 위원회와 협력하여 여자 목사 제도를 연구하도록 요청받았다.


(4) 이에 호응하여 불란서 파리에서 모였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1963년도 7월 12-26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모였던 제4차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 “여자 목사 안수에 관한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이 연구보고서는 여자 목사 문제에 대하여 적극 찬동하였다. 그리고 “목회사역에 있어서의 여성”이라는 주제 하에 연구를 계속할 것을 추천하였다.27)


(5) 1967년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에서 모였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현재 교회 연합 협상에서 제기되는 문제들 특히 여자 목사 문제에 관하여 연구하도록” 결의하였다.28)


(6) 1968년 7월 4일부터 20일까지 스위스의 읍살라(Uppsala, Switzerland)에서 모였던 WCC 제4차 총회에서는 여자 목사 문제에 관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찬동하는 피치를 들었다. “현재 여자 목사 제도가 점차 증가한 것과 이 경험에 비추어 신학적인 반영이 더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29)


(7) 1970년도에 “앞으로 다가 올 안수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WCC 조사에 의하면 당시 215개 WCC 회원 교단들 중 “72개 교단들이 여자 목사 제도를 허락하고 있다”고 하였다.30)

(8) 1971년 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루베인(Louvain)에서 모였을 때 여자 목사 문제에 관하여 토론에 더욱 집중하였다. “19세기 동안의 여자 목사 제도 반대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전통은 교회에서 변하고 있다. 여자 목사 문제는 취급하여야 하며 그때는 바로 지금이다”라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남녀의 동등한 공동참여 문제에 관하여 활발히 토의하면서 남녀의 공동 참여야말로 참된 공동사회의 지표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목회사역에 남녀 상호 인정을 강조하고 이것이 복음에 대한 반응의 한 형태라고 하였다. 여자 목사 제도는 교회정치와 헌법에 관련된 것이요, 교리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31)

(9) 1975년도 11월 23일부터 12월 10일까지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개최되었던 WCC 제5차 총회에서도 여자 목사 제도를 제 2분과와 제 5분과에서 취급하였다. 제 2분과에서는 “연합은 완전한 이해를 요구한다”라는 제목 하에, 제 5분과에서는 “교회와 사회에 있어서의 여성; Women in Church and Society”이라는 제목하에 여자 목사 제도를 토의 및 결의하고, 이 안건에 대한 특별 건의서를 WCC 총회에 건의하였으며, WCC 총회에서는 그 건의서를 채택한 후 WCC 산하 회원 교단들에게 여자 목사 제도에 관한 결의문을 추천 및 권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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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joseph
 2013-03-12 20:47
 64.xxx.185
아멘. 여성이신 사모님께서 말씀해주시니 더 덕이 됩니다.

누가 더 잘나고 못나고, 귀하고 천하고의 문제가 아니라...하나님의 창조질서이고 역할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부터 제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신 것처럼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바랍니다. 
 
믿음은 
2013-03-12 07:20
 119.xxx.159
 아멘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맞습니다.^^
여자 목사제도 문제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조류를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되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직분의 의미를(고전14장과 딤전2:12) 잘 이해해야 하겠지요.
요즈음 시대와 문화의 영향으로 여성안수제도를 수용하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런 때에 남자도 아닌 여자분으로써 성경을 근거로 여성사역에 대해
 바르게 정의를 해주시니 더욱 신뢰가 가며 값집니다.
조금도 마음에 거슬리지 않게 잘 의사 표현해 주시니 읽는 내내 마음 편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역시 별똥별님!!!
야곱 
2013-03-12 11:19
 58.xxx.75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파멸시키고자 하는 자들이 성경을 갖고 장난치도록 놔두신다"고 루터는 에우리피데스의 말을 차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파내고 변개시키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세대입니다. 


잠긴동산 
2013-03-18 09:50
 67.xxx.142
 여성신학 살아있네!^^

함생주의를 부르짖다 몰매(?)를 맡고 퇴출당한 글을 대하며 여성목사를 세우는 사상이 이단사상,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허무는 악한 사상이 될 수 있음을 재 확인하며 소장되어 있던 이정근 칼럼 글을 소개 합니다

 이정근 ㆍ 2009/10/14 ㆍIP: 69.xxx.248 ㆍ추천: 0  ㆍ조회: 103

해방의 신학(theology of libera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60년대에 남아메리카에서부터 불어온 신학의 폭풍이었습니다. 이 해방신학이 한국에 상륙해서는 민중신학이 되었고 미국에 불어 와서는 각각 흑인신학과 여성신학이 되었습니다.

해방신학은 글자 그대로 해방을 목적으로 합니다. 가난뱅이들을 가난에서 해방시키고, 억눌린 자들의 짐을 가볍게 하고, 갇힌 자들을 풀어 놓아 다니게 하려는 것이 해방신학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은 “억눌린 자에 의한, 억눌린 자를 위한, 억눌린 자들의 신학”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신학은 마르크스적 공산주의와 기독교 신학의 결혼으로 보입니다.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의 정부를 세운다는 것이 공산주의의 찬란한 명분이니까요.

그렇다고 해방의 신학이 전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을 얽어매는 여러 가지 굴레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 구원사상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목회사명 선언에서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눅4:18,19).

전통적 기독교에서는 이 말씀을 죄와 악령의 쇠사슬에서 인간의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의 신학에서는 그것을 사회경제적 족쇄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강조점의 차이가 매우 커 보입니다.

그러나 해방신학이 비판을 받게 된 데는 사상이 달라서 그런 것보다는 폭력적 혁명을 옹호한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성결하게 하실 때에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사용하셨다는 것이 그 근거였습니다. 

1970년대에 한국에서는 군사정권 반대투쟁가들이 이 해방신학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북조선 동조세력이라는 오해를 없애기 위하여 이름만은 민중신학으로 바꾸었습니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은 전혀 다르다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공산주의가 힘을 잃게 되니 민중신학도 김이 푹 빠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헌데, 미국에서는 해방의 신학이 흑인신학으로 색깔을 바꾸었습니다. 킹 목사 등이 주도한 흑인민권운동의 신학적 기초가 된 이 흑인신학은 모든 흑인적인 것은 선이고 모든 백인적인 것은 악이라는 오해를 낳을 만큼 과격한 신학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흑인만을 위한 해방자로 오셨다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여성신학도 해방신학의 한 양상이었습니다. 여성들이 남성에 의하여 억눌린 존재이므로 해방의 신학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여성신학 주창자들 가운데도 과격한 부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여성신학자들은 대체로 성경해석에 있어서 남성중심의 오염을 벗겨내는 작업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2009년도는 해방의 신학이 끝나는 해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습니다. 흑인으로 분류되는 오바마의 미국대통령 당선으로 흑인신학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성신학도 덩달아 사라질 것입니다. 흑인이나 여성은 더 이상 억눌린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백인신학과 남성신학의 원년이 될지도 모릅니다. 백인들이나 남성들이 억눌린 자들의 신세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별똥별 
여성해방 신학이 성경을 기반으로 다져졌다면,
여성해방 신학, 그 자체를 나무랄 순 없겠지요.
문제는 ...
여성해방 신학이란 명제하에 자유주의자들, WCC 이런 비성경적 단체들이 자신의 방패막이로 성경을 이용하였고, 때문에, 비성경적이며, 극히 인본주의적이란 것이고요. 인본주의적인 신학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마저도 변질, 왜곡시켜버리려고 하는...사단의 궤계란 것이지요.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19 12:52
 98.xxx.205
 
믿음은 
2013-03-16 02:11
 119.xxx.173
 《Re》별똥별 님 ,

별똥별님,
기분이 좀 그러시겠네요.

한마디로 겨울님과 같은 사람의 댓글에 일일이 답변하실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이런 사람들이 아멘넷에서 버젓이 활동을 하며 물을 흐리고
 있는데 운영진에선 강력히 제재 조치를 취하시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Re》겨울 님 ,
고리타분한 해석이라...저는 해석을 한 것이 아니라 성구 그대로를 적용하였습니다. 하긴, 겨울님은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못믿는 분이란 것을 아멘넷에서 알만한 분들은 모두 알지요. 이 기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배우시도록...^^

세상엔 세 부류가 있습니다. 1. 성경을 믿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런 부류를 우리는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2 성경을 읽기는 하되 자신의 뜻에 맞은 말만 골라서 읽거나 변질 시키는 자= 우리는 이런 사람을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흠하며 진리라고 믿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
 들만 '성도'라고 부릅니다.

아멘넷에서 겨울님이 어디에 속하였는가, 알만한 사람은 이미 모두 알고 있습니다만...너무 오랫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다른 필로 다른 아이피로 들어오는 분이기에, 바른 복음의 좋은 말씀을 많이 듣게 되면, 행여 변화가 있으려나...기대하는 마음으로 봐드리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언제까지일는지는 미지수죠. ^^


 (“남자”(아넬, ; an adult male, husband)는 남자 어른 또는 남편을 뜻한다. “주관하는 것”(아우덴테인, ; to exercise authority; 권위를 행사하다) 이 단어는 권위를 행사하다(아우덴테오, ; to exercise authority or to domineer over, 위에 권위를 가지다 또는 지배하다)의 현재·부정·능동이다. 현재 부정사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로서 행동의 계속이나 반복개념이 있다.

“허락지 않는다”(우크 에피트레포, ; do not permit;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가르치는 것과 연결되어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일, 남자 위에서 권위를 행하는 일을 계속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성경이 허락하지 않는다.)

주관하는 자리(치리권)는 교회에서는 감독(장로, 목사)의 임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히 13:17)고 하였다. 여기서 다스리며 권면하는 자들과 인도하는 자들은 동일한 직분을 맡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가리킨다(딤전 3:5; 5:17).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여자가 남자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여성이 목사 안수 받아 총 책임 지도(주관(leader))자가 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딤전 2: 12-15절 참조) 이 말씀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여자는 교회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란 것이거나, 성경공부도 가르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주관하는 자리 즉, 교회에서 총책임 리더(Leader)격인 목사 안수를 받아서 남자를 주관하는 자리까지는 탐하지 마라...그런 뜻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 (고전 11: 3) 
 
겨울 
2013-03-15 14:19
 216.xxx.179
 성경에서 질서를 말할땐, 육체적인 남자와 여자의 질서가 아니고 주권과 통치에 의한 법칙의 질서를 언급한다는것은 상식적이지않남요?

유대민족이 만약 모계사회였다면,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뒤바껴 사용됬을것이지요?

영적인사실을 논한다는 분들이 물질적인 현상에 목메달고 아집만 부리는게 얼마나 유치한지 거울좀보기길...

그리고, 이단이란 명분으로 십자군을 조직해 무고한 사람들 죽인자들이 이단인지 정통인지 분별좀하시고 진리에 바로서시길...
 
 별똥별  겨울님,
우리가 지금 정통과 이단을 나누는 시간이 아닙니다요. 님께서야말로 분별을 좀 하시기를...^^ 3/15 14:26
 98.xxx.205
 
 겨울  하나만 보면 열을 안다고 그게 다 그거라는것이지요.
아~ 그리고 미국에서 이런식의 여성차별적인 발언은 조심좀 하셔야지요.
고발당할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댓글다는 분들이야 이런데 상식이 떨어져 그럴수도 있겟지만요~ ㅎ 3/15 14:49
 216.xxx.179
 
 별똥별  아하,
겨울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제가 여성인데 저를 위해서 싸워주시는 님께 감사~^^
성경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성차별이 아니라
역할분담을 잘 하자는 것이 아닙니까요?
독해력을 좀 더 기르고 나오시기를,,,^^
초등학생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별이가 몬 말을 하는지 다 알겠습니다.ㅎ 3/15 14:54
 98.xxx.205
 
 겨울  딱히 별님을 겨냥해 쓴댓글이 아님니다요~
별것도 아닌걸가지고 언쟁을 하다보면 여성비하적인 말들이 나올수있지요, 공개석상에서 덕이안될것 같습니다.
여성목사들은 소심한면이 있으니 뻥치기 사기꾼목사는 덜하겟지요? 또 모성애가 있으니 불쌍한교우들 보살피는데 자상할수도 있구요~
장단점이 다있겟지요~ 샬롬! 3/15 15:29
 216.xxx.179
 
 산헤드린 
2013-03-14 21:12
 64.xxx.81
 《Re》一石二鳥 님 ,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닌 것 같소이다만, 답답해서 한 마디 합시다. 一石二鳥  님께서는 별똥별님의 본문 글을 자세히 읽어보지 못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무조건 딴지를 거는 사람입니까? 독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닐테고, 선교사님이 교회의 주관자입니까? 주관(leader)자와 선교사님의 차이도 이해가 안되는 분입니까? 여성이라고 하여도 얼마든지 성경공부도 가르칠 수 있고 모두 다 할 수 있지만, 성경에서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금하신 것은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 문제"라고 하시는 것 같은데 아닙니까?

 "주관하는 자리(치리권)는 교회에서는 감독(장로, 목사)의 임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히 13:17)고 하였다. 여기서 다스리며 권면하는 자들과 인도하는 자들은 동일한 직분을 맡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가리킨다(딤전 3:5; 5:17).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여자가 남자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여성이 목사 안수 받아 총 책임 지도(주관(leader))자가 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딤전 2: 12-15절 참조) 이 말씀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여자는 교회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란 것이거나, 성경공부도 가르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주관하는 자리 즉, 교회에서 총책임 리더(Leader)격인 목사 안수를 받아서 남자를 주관하는 자리까지는 탐하지 마라...그런 뜻이다"

그리고 한 기사나 게시글 아래서 두 가지 혼용 필 사용은 반칙이란 사실조차도 모르십니까? 괜히 좋은 글에 딴지 걸지 맙시다. 모양새가 안좋습니다.

    一石二鳥 
2013-03-14 19:58
 69.xxx.32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론도 있어야 욥기와 같은 변증의 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동안의 상황으로 보아 깨끗이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칼자루는 여러분의 손에, 그리고 나는 도마 위에서 팔팔 뛰는 생선이라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

 "남자와 여자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본질로는 동등하나 질서적인 면에서 남자가 여자에 대하여 계층적 리더쉽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구약과 신약에서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기반을 두고 있고 구속질서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계층적 리더쉽이란 수직적인 통솔력을 말하는 것입니까? 교회안에 왜 그런 수직적인 질서가 필요합니까?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요, 몸 된 교회의 머리가 되시지 않습니까? 행여 목사가 지상교회를 좌지우지할 권위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드보라에 대한 본문을 자세히 살피면 드보라는 자신의 은사를 통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의 남자의 계층적 질서와 리더쉽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유지시키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드보라는 구약의 예의적인 경우라서 못난 이스라엘 남자들을 책망하였습니까?. 그러면 요즈음 남자 목사님들은 대체로 책망들을 일이 없는가요?

 '대체 목사라는 직책에 대한 정의도 모호하고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이라며 목사들이 평신도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것엔 반대하면서 이런 일에선 다시 또 머리와 몸을 갖다대고서는 목사는 남자만.. 이라고 하니.. 앞뒤가 도통 맞지 않아'

 "어떤 분들은 롬16:7절의 유니아를 들어 초대교회에서 여성의 리더쉽을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것도 별 신빙성이 없습니다. 본문에 대한 해석적인 논란도 있고, 설사 유니아가 사도라 불리워졌다 할지라도 여기서 사용된 사도는 교회의 리더쉽을 행사하는 12사도와 같은 권위를 지닌 사도가 아닙니다. 넓은 의미로 교회의 보냄을 받음자라는 의미로 선교자와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성 선교사는 성경적이고, 여성 목사는 성경적이 아닙니까?

저는 근본적으로 성경에 목사가 있느냐는것이며[저는 눈을 씻고봐도 안보이던데요] =장로,감독, 집사는 이러이러한 성도로 세워라는 있는데....지금은 그대로 시행하는 모임도 드문것 같고= 지금의 목사 양성이 또한 성경적이냐하는것이지요. 또한 교단 교파가 정당한것인가 하는것두요......뭐 변명이나 핑계를 들어보면 그럴듯 하지만..여엉 근본적인것은 놔두고 주변에 신경을 쓰려니 갑갑하네요.....

 "일견 가정에서나 교회에서의 남자의 리더쉽의 규범은 유교의 가부장적인 규범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신학적으로나 리더쉽의 성격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설마 여자 목사님은 가정을 제대로 돌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드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려면 말씀이 기록된 시대적인 배경이나 상황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같은 환경적인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을 한다면 성경속에서의 말씀간의 충돌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라 봅니다. 따라서 '교사'의 역할과 같은 '목사'직을 수행함에 있어 '성'의 구별이나 차별이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복음의 시대, 여성이든지 남성이든지 개인의 영성과 자질을 갖춘 사람이 '목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심정적으로는 여성보다는 남성이..ㅎㅎ)

 "아무리 세상에서 여성이 대통령이나 수상을 한다 할지라도 이것을 가정이나 교회에 끌어들여 성경에서 하나님이 정한 가정과 교회의 남자의 계층적 리더쉽에 대한 규범적 말씀을 뒤집는 기회로 삼으면 안됩니다."

 "단지 성경(신약)에서 금지하므로"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의 '합리적' 판단이나 배경 해석보다는 그 내용 그 자체에 구속력이 있다는 이야기로서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듯 합니다. 합리적 판단이란 자의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대를 먹거나 적어도 먹는 사람을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야말로 이방인에게도 전하여 지키게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변하게 할 어떤 후속조치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유로 '부드럽게' 넘어가게 된 것인지 아직도 매우 궁금합니다. 결국 어떤 다른 '합리적' 판단으로 구별하게 된 것 아닐까요?
 
 진리  "저는 근본적으로 성경에 목사가 있느냐는것이며[저는 눈을 씻고봐도 안보이던데요] =장로,감독, 집사는 이러이러한 성도로 세워라는 있는데...."
* 눈을 다시 한 번 씻으시고 편견없이 읽어 보시면 "목사"라는 말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의 남편이 되며..."
일단 다스리고 감독하는 자(머리직분)의 성을 말하자면 "남성'이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성경엔 "감독은 ...한 남편의 아내"라는 자격조건을 제시한 곳이 없습니다.
정상적은 사고를 가지신 분은 "남편"이 남자인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는 의미와" 남자의 머리가 예수"라는 말의 의미를 간과하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변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3/14 21:06
 108.xxx.238
 
 산헤드린 
진리님의 말씀에 100%동의합니다.
괜스레 성경도 모르면서 딴지 거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훼방을 받는 것입니다! 남자 목사님들이 하지 못하는 분별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다 션~하질 않습니까? 남자 여자 격에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아니고" 역할은 구분되야 하고 말고지요!!" 그것이야말로 창조 질서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3/14 21:22
 64.xxx.81
 
야곱 
2013-03-14 12:21
 58.xxx.75
 성경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동등성을 가르치고 있고 또한 계층적 질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동등성을 가리키는 본문을 남자의 계층적 리더쉽을 입증할 목적으로 왜곡해서도 안되고, 남자의 계층적 리더쉽을 가리키는 본문을 남자와 여자의 동등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왜곡해서도 안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본질로는 동등하나 질서적인 면에서 남자가 여자에 대하여 계층적 리더쉽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구약과 신약에서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기반을 두고 있고 구속질서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구약의 드보라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이것도 가정에서나 교회에서의 남자의 계층적 질서와 리더쉽에 대한 말씀을 와해시키지 않습니다. 드보라에 대한 본문을 자세히 살피면 드보라는 자신의 은사를 통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의 남자의 계층적 질서와 리더쉽을 무드뜨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유지시키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드보라를 통하여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 남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드보라에 대한 본문은 하나님이 남자의 리더쉽을 여자에게 넘기거나 남자의 권위에 대해 다른 규범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신앙적인 남자들을 책망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의 리더쉽은 남자에게 있음을 신약에서 보다 분명하게 규범적인 말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롬16:7절의 유니아를 들어 초대교회에서 여성의 리더쉽을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것도 별 신빙성이 없습니다. 본문에 대한 해석적인 논란도 있고, 설사 유니아가 사도라 불리워졌다 할지라도 여기서 사용된 사도는 교회의 리더쉽을 행사하는 12사도와 같은 권위를 지닌 사도가 아닙니다. 넓은 의미로 교회의 보냄을 받음자라는 의미로 선교자와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구약이나 신약에서 암시적으로나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의 남자의 계층적 리더쉽에 대한 규범적 말씀을 와해시키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유교의 가부장적인 규범을 들어서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규범적 말씀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일견 가정에서나 교회에서의 남자의 리더쉽의 규범은 유교의 가부장적인 규범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신학적으로나 리더쉽의 성격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마치 잠언이나 성경의 지혜에 관한 본문들이 때로는 일반 세상의 교훈이나 격언과 비슷한 면이 있을지라도 신학적으로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여성이 대통령이나 수상을 한다 할지라도 이것을 가정이나 교회에 끌어들여 성경에서 하나님이 정한 가정과 교회의 남자의 계층적 리더쉽에 대한 규범적 말씀을 뒤집는 기회로 삼으면 안됩니다. 
  산헤드린 
2013-03-13 22:11
 64.xxx.81
 최초의 여자 목사 안수 건은 변질된 단체인 WCC입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시의 적절한 글입니다. 성경이 기초가 아닌 인본주의 발상에서 나온 변절자들의 모임에서부터란 것을 안다면 오늘 이 칼럼 글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요 타당한가 알게 됩니다.

여성 안수 제도의 진전 과정(Developments in Womens Ordination throughout Church History)


 (1) 1927년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된 자유주의 교회들의 연합단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모체 중에 하나였던 신앙과 직제 위원회(Commission on Faith and Order)가 1927년 스위스의 로잔(Lausanne)에서 처음 모였을 때 400명의 대표들 중 7명이 여성들이었다. 여성 대표들은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사역과 직분에 관하여 진술하기를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올바른 위치는 모든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새겨져야 한다”고 하였다.25)


 (2) 1948년 8월 22일부터 9월 4일까지 화란의 암스테르담에서 147개 교단 352명의 대표들이 모여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조직한 그때도 “여성의 완전 목회사역에 합의하지 못하였다”고 함으로 일부 자유주의교회들이 여자 목사 제도를 채용하고 있으면서도 여자 목사 제도의 찬반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26)


 (3) 1961년도 11월 18일부터 12월 6일까지 인도의 뉴델리에서 모였던 WCC 제3차 총회 시에 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가정, 교회, 사회, 남녀 협력 분과 위원회와 협력하여 여자 목사 제도를 연구하도록 요청받았다.


 (4) 이에 호응하여 불란서 파리에서 모였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1963년도 7월 12-26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모였던 제4차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 “여자 목사 안수에 관한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이 연구보고서는 여자 목사 문제에 대하여 적극 찬동하였다. 그리고 “목회사역에 있어서의 여성”이라는 주제 하에 연구를 계속할 것을 추천하였다.27)


 (5) 1967년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에서 모였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현재 교회 연합 협상에서 제기되는 문제들 특히 여자 목사 문제에 관하여 연구하도록” 결의하였다.28)


 (6) 1968년 7월 4일부터 20일까지 스위스의 읍살라(Uppsala, Switzerland)에서 모였던 WCC 제4차 총회에서는 여자 목사 문제에 관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찬동하는 피치를 들었다. “현재 여자 목사 제도가 점차 증가한 것과 이 경험에 비추어 신학적인 반영이 더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29)


 (7) 1970년도에 “앞으로 다가 올 안수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WCC 조사에 의하면 당시 215개 WCC 회원 교단들 중 “72개 교단들이 여자 목사 제도를 허락하고 있다”고 하였다.30)

 (8) 1971년 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루베인(Louvain)에서 모였을 때 여자 목사 문제에 관하여 토론에 더욱 집중하였다. “19세기 동안의 여자 목사 제도 반대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전통은 교회에서 변하고 있다. 여자 목사 문제는 취급하여야 하며 그때는 바로 지금이다”라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남녀의 동등한 공동참여 문제에 관하여 활발히 토의하면서 남녀의 공동 참여야말로 참된 공동사회의 지표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목회사역에 남녀 상호 인정을 강조하고 이것이 복음에 대한 반응의 한 형태라고 하였다. 여자 목사 제도는 교회정치와 헌법에 관련된 것이요, 교리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31)


 (9) 1975년도 11월 23일부터 12월 10일까지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개최되었던 WCC 제5차 총회에서도 여자 목사 제도를 제 2분과와 제 5분과에서 취급하였다. 제 2분과에서는 “연합은 완전한 이해를 요구한다”라는 제목 하에, 제 5분과에서는 “교회와 사회에 있어서의 여성; Women in Church and Society”이라는 제목하에 여자 목사 제도를 토의 및 결의하고, 이 안건에 대한 특별 건의서를 WCC 총회에 건의하였으며, WCC 총회에서는 그 건의서를 채택한 후 WCC 산하 회원 교단들에게 여자 목사 제도에 관한 결의문을 추천 및 권장하였다.
 
 
허참 
2013-03-13 21:28
 69.xxx.32
 남성 지도자의 권위는 성경에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지도력을 자격있는 남성에게 맡겼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남성이 지도력을 잘 발휘하도록 어떤 특성이나 덕목을 그들에게 부여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크리스찬의 믿음이 여성적이면 안 되고 남성적이어야 된다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으며, 하나님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자는 여성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남자는 남성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합니다. 남자가 남자 같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고, 이와 같이 여자도 여자 같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진실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만 전적으로 그의 특성을 주었고, 그리고 그가 이브를 창조하실 때는 전혀 새로운 특성을 주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안에 있는 어떤 특성을 남자에게 더 하였고, 어떤 특성은 여자에게 더하였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뿐만하니라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에게 특별한 특성이 시행되고 나타나도록 독특한 역할과 본분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적인 행동은 하나님의 어떤 특성들을 신실하게 나타내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고, 남성적인 행동도 그와 같습니다.

이것이 남자와 여자는 상충한다는 의미의 대략입니다. 두 가지 성(gender)은 오직 하나의 성 만이 있다는 사정을 말한다기 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하나의 뚜렷한 모습을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섬김에 있어서, 서로 다름을 용납하고 상충적인 방법으로 남자는 남성답기를 여자는 여성답기를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크리스챤의 믿음은 ,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며, 서로 동등하고 같은 수준으로 둘 다 온전할 수 있습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남성이나 여성이나 같은 조건하에서 온전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제공하신 아름답고, 보편적인 은혜의 방편을 기쁘게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Michael Horton says it well:

 The larger goal here shouldn’t be to trot out more gender stereotypes from our culture, whether feminist or neo-Victorian, but rather to rediscover the ministry that Christ has ordained for making disciples of all nations, all generations, and both genders. We need less niche marketing and more meat-and-potatoes service to the whole body of Christ. There, men and women, the young and the old and the middle aged, black, white, Latino, Asian, rich and poor hear God’s Word together, pray and sing God’s Word together, and are made one body by receiving Christ’s body and blood together: “one Lord, one faith, one baptism.”
 
 산헤드린 
허참님의 펌글 내용도 역할 면에서 구분되어야 한다는 별똥별님의 본 게시글의 내용과 같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접근 방식은 다릅니다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지금 현대는 성경을 훼손하고서라도 자신들의 입지를 높이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시댑니다. WCC, 자유주의자들의 발상이 기독교계를 점차적으로 잠식하고 있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담을 남자로 생각하면 큰 일 난다." 박사란 사람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황당하다는 생각뿐입니다.  3/13 22:27
 64.xxx.81

 잠긴동산 
2013-03-13 12:03
 67.xxx.142
 "우리는 성경을 넘어서지 말자. 그것만이 창조 질서를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아름다운 신앙의 미덕일지니... " ! ^^

모세와 아론의 누이인 미리암 이 소고로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찬양하며 춤추니 모든 여인이 따라 하더라(출15:20-21), 예언을 하였다. 신약의 예언의 은사가 잠시 잠깐 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훌다(왕하22:14-20) 역시 선지자로 잠시 등장하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역할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믿거나 말거나, 인정하거나 말거나 신약교회에서도 여성권사, 여성집사에게 예언의 은사로 나타남과 전혀 다르지 않다.

드보라는 사사(삿4:5-6) 였으나 사사기21:25에서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구약시대에 잠시 주어졌던 영속성이 없는 과도기의 임시직이었다

 빌립에게 잠시 예언하던 선지자(행21:8-9)라 불림을 받던 네딸이 있었고,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여선지자의 존재(눅2:36) 가 있었으나 그녀는 과부로 홀로 살다가 80세가 되어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예언)하게 되었더라

 뵈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롬16:1-2) 뵈뵈는 사도 바울을 돕던 여러사람 동역자 중의 한 여인으로 사도 바울을 극도로 아끼며 돕던 보호자 였더라.

사도 바울은 12 제자와 또한 자신과 함께 복음을 전한 모든 성도들을 동역자, 하나님의 사자, 일꾼, 사역자로 부르고 있다

 에바브라에게 (골1:7), - 브리스가와 아굴라(롬16:3),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롬16:7), 빌레몬 압비아 아깁보(몬1:1), 역시 모두들 사도 바울의 사랑을 받는 다만 그리스도의 일꾼이었더라.

바울의 동역자로 불리움을 받은 디모데(살전3:2), 디도(고후8:23)와 디모데를 영적 아들로 부름, 마가와 누가(몬1:24)는 현재의 교회에서 목사로 불리움을 받을만한 사역의 증거들을 찾을 수 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역자 주: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권세 아래에 있음을 각자의 머리 속에 표해 각인 함으로 기억하라)
 
 잠긴동산 
위에서 지적당한 대로 사사 드보라에 대한 저의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시인 합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지적해 주신 제발님! 및 의혹의 눈으로 보고계실 님들께 사과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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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허참님이나 누가 좀 지적 좀 하시지 않구요, 사정이 어찌 돌아가나 관찰들만 하십니까? 제발님! 이 아니였으면 우매한 자, 말씀을 오도하고 큰 죄를 질뻔하였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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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에서 잠시 사사들이 쓰임받았다는 이유로 신약에서의 여자목사를 세울 수있다면 확대 해석 입니다. 여자목사에 대한 종결되는 말씀은 신약에 있습니다.
사사 드보라에 대한 댓글의 해석을 정정 합니다 3/14 21:55
 67.xxx.142
 
  초생달 
2013-03-13 04:32
 211.xxx.23
 흙 냄새 사람냄새 듬북 한국 옛  어느 반촌의풍경을 아름답게 나타내시며
 옛 초생달 외가 집 생각이 새록새록나게만듭니다요.
옛날의 된장국맛이란 이제 간곳없이 ...

오랫만에 별똥별님의 훌륭하신 이 칼럼을 봉견하고보니
 여성의지위가 많이도높아진 세계가 돌아가고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세계만을 걱정하시고 좋은 배움의말씀전해주지만 이해하지못하는사람들도 많은 것같씁니다. 힘드시겠습니다. 그래도 계속 전하시면 때가되면 알아듣는 사람들이 늘어날것같씁니다. 열심히 좋은글많이 전해주시기바라는바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교회와가정에서 여자가 주관하는것보다 남자분들을 도와서함께나간다면 세상이 시끄러울일이없겟씁니다만..

어느듯 돌아가는 시간속에 봄 이라는 힘 의 계절로접어들어가네요.
봄의 노래를즐기던 옛생각에잠겨봅니다.
왠지 예같이 그렇게즐겁지않네요. 
 153joseph 
2013-03-12 20:47
 64.xxx.185
 아멘. 여성이신 사모님께서 말씀해주시니 더 덕이 됩니다.

누가 더 잘나고 못나고, 귀하고 천하고의 문제가 아니라...하나님의 창조질서이고 역할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부터 제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신 것처럼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바랍니다. 
 
genesis 
2013-03-12 20:29
 70.xxx.174
 amen... I agree with you. 
 요나 
2013-03-12 14:08
 69.xxx.50
 몇해전 20여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분재 마을을 방문 하였을때 어린 나무를 굵은 철사로 털을 만들어 키우니 그 철사의 모양대로 나무가 자라는것을 보았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성경은 진리의 말씀이다! 강단에서 외치기는 하지만 시대 따라가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보고 늘 안타까워 하는 마음 입니다. 여성 목회자도 그중의 하나 이지요
 오늘 사모님의 글은 분재나무 처럼 왜곡 되어가는 말씀의 현실 에서 바로 잡으시는 성령님의 감동 으로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 합니다.
감사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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