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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팽팽한 두 기류(氣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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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201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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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영혼에게는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고, 시인들에게는 시적 감성을 일깨워주며, 낙심한 자에게는 소망의 별빛을 안겨주던 정겹고 살가운 하늘이 무슨 연유인지 잔뜩 성난 얼굴로 부었다 싶더니 해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칠흑으로 캄캄한 하늘에는 물을 저장해둔 저수지 수문의 빗장이 풀어진 듯, 폭포같이 굵은 빗줄기를 연일연야 쉬지 않고 쏟아붓는다.

밤도 낮도 없이 휘몰아치는 강풍은 태풍으로 변해서 바다를 시커멓게 뒤집어엎고, 그럴 때마다, 집채같이 큰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무섭게 으르릉거리며 뱃전으로 달려든다. 며칠 전까지만 하여도 그토록 우람한 상선으로서 그 당당한 위용을 자랑했건만, 지금은 마치 한 장의 종이로 접은 장난감 배처럼 물결에 밀려 요동치며 흔들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구겨져 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하늘 높이 치솟다가 뚝 떨어지고, 파도 밑으로 쑥 가라앉았다, 올랐다, 다시 내려갔다 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갑판 위에서는 그럴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승객들의 아우성 소리가 어지럽고, 미친 듯이 날뛰는 배를 바로 잡아보려고 물을 흠뻑 뒤집어쓴 채 배와 함께 나뒹구는 선원들, “배 안의 모든 물품을 바다에 내던져라! 빨리빨리!” 목이 터지라고 외쳐대는 선장, 상인들에게 있어서 목숨과도 같은 귀중품들이지만, 배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야 한다는 선장의 지시에 따라 선원들은 아까운 상품들을 모두 바닷속으로 집어던질 수밖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버리고, 뒹굴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일어나고, 또 넘어지고, 온 생애를 바다 위에서 잔뼈가 굵은 뱃사람들, 강철같이 우람하고 강한 의지의 사나이란 대명사로 불리던 그들이었으나 보름이 다 되도록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폭풍과 사투를 벌여온 탓에 이제는 더 견디기가 힘이든 듯, 살 소망마저 끊어진 채 하나 둘 지쳐 쓰러져 가고, 배는 더 이상 나가야 할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리고 바다 위를 이리저리 풍랑에 떠밀려 표류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와중에도 배가 파선되거나 깨어지지 않고 잘 버텨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폭풍과 싸우기를 열흘 하고도 나흘째가 되던 날, 그들 앞에, 저 멀리 희미한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와, 육지다! 섬이야, 섬. 이제 우리는 모두 살았다!” 터져 나오는 함성과 함께 배를 육지에 가까이 대려고 다가가는 순간, 이게 왠일인가, 갑자기, 꽝! 천둥소리같은 굉음과 함께 배가 깨어져 파선해 버리는 것이다!

그토록 무섭게 불어대던 태풍과 풍랑 속에서도 깨어지지 않고 잘 버텨준 용장, 모든 사람을 든든히 보호해주던 생명선, 그 배가 산산이 조각나고 깨어져 버리다니, 어이가 없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에 배가 깊이 빠져든 때문이었다!
아니, 이 바쁜 시간에, 우리 별님, 오늘은 왠 소설까지 쓰시남? 혹시라도 궁금해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 아멘넷 독자님들이야 그런 분이 계시지 않을 것을 믿지만. 다른 곳은 많이 계신다. ㅠㅠ) 그러나 이 극적이고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fiction이 아니다. 이것은 엄연한 nonfiction, 바울 사도의 선교일지, 기록된 선교 사기(史記), 바로 사도행전 27장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글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 물이 거세게 부딪힐 때, 타고 가는 배가 깨어진다!”라고 하는 것, 그리고 “너무도 팽팽한 두 기류”는 동역의 관계가 부서질 만큼 위험한 적신호니까 조심하라.”고 하시는… 오늘 아침, 성령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나를 깨우치신다.

너무도 팽팽한 두 기류, 이것을 제트기류(jet stream)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지구는, 태양열을 받는 정도에 따라 적도가 매우 뜨겁고, 극지방은 매우 차갑다. 따라서 적도의 뜨거운 열이 차가운 극지방으로 이동한다. 기단으로 말하자면, 뜨거운 열대 기단과 차가운 한대가 만나는 곳이 전선대(front)가 형성된다. 여기에서 기압차이가 매우 크게 난다. 결국 차가움과 뜨거움이 엄청난 열의 차이, 이 기압의 차이로 제트기류를 만들어낸다. 그 차이가 심하면 심할수록 제트기류의 힘이 강해진다.”

공교롭게도 이 제트기류는, 항공기가 가장 좋아하는 최적 순항 높이인 3만-4만 피트 사이에 주로 흐르기 때문에, 항공기가 비행할 때, 대개 이 제트기류를 타거나 거스르게 된다고 한다. 이 제트기류를 이용해 항공기는 시간, 힘( 연료)을 덜 들이고도 빠르게 비행할 수 있지만, 이 제트 기류 속에 빠져들게 되면 기체가 크게 흔들릴 뿐 아니라, 자칫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고 거기다 벼락까지 맞게 되면 항공기는 깨어져 폭파해 버릴 수도 있다. 제트기류는 그만큼 무서운 괴력을 지니고 있다.

사상도 그렇다. 사회주의 사상과 자본주의 사상은 적당하게 조정할 수 있을 땐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 보완할 수 있겠지만 두 기류가 너무 팽팽하게 형성되면 결국은 하나 될 수 없고 둘로 갈라지거나 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이 그렇다

많은 사람은 통일, 통일을 염원하지만, 글쎄다. (통일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 통일의 질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믿음 안에서의 통일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물리적인 통일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회주의 사상과 자본주의 사상은 기름과 물처럼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사상이란 제트기류와 같고 흐르는 두 물이 부딪히는 것과 같아서 어느 하나로 일치되기가 어렵다. 일치되지 않는 사상이라면 물리적 통일을 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시 깨어질 것이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무서운 앙화를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무엇이건, 부정적인 것은 처음보다 그 나중 형편이 더 못한 것이니까…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이 내면세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 급진적인 외부세계의 발달(물질문명의 발달)과 정신적 성숙, 미성숙의 부조화는 내면적 갈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도록 하고, 연속되는 혼란과 혼돈의 고통 때문에 결국 정신 분열증으로까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고, 심하면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다. 약간의 불협화음으로 자극을 주는 것은 무료한 생활에 활력소가 될 수 있고 변화의 좋은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너무 극한 갈등, 너무 팽팽한 기류는 모든 관계성의 깨어짐 그 근원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옳고 그름의 성경적 분별은 필요악인가

“예정론과 자유의지론 이 두 주장의 대립이 최초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어거스틴 시대라고 보며,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으로 교회 안에 이 문제가 터져 나온다. 두 견해 모두 성경적이다. 모두 용납하라고” 하시는 목사님도 계신다. 과거 신학자들이 교리를 내세워 논쟁을 너무 극심하게 한데서 따라온 부작용을 우리는 이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염려하신 좋은 의도로 하는 말씀이란 것도 안다.

물론, 예정론을 주장했던 어거스틴이 카르타고 회의(주후 418)를 소집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자유의지론을 주장했던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이 사실이고, 1000년이 지난 후에 예정론을 주장했던 칼빈의 입장을 옹호하는 고마루스(Gomarus)와 자유의지론을 주장했던 알미니우스(Arminius)의 논쟁이 터져 나온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는 두 교리 모두 성경적이니 받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겠다. 어찌 보면 이런 분들의 부드러운 발언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고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이런 주의는 대개 인본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일 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런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마음이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분별력마저 상실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으로 의분이 생긴다. 성경은 분명히 바른 분별을 하라고 하시는데,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으니 분별을 하지 말라면 어쩌란 말인가, 분별 없이는 참과 거짓을 알 수조차 없는 데 말이다.

우리가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 읽어보면 성도는 반드시 이단을 살펴 분별해야 하고 이단 사설을 경계해야 하고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면 부모와 처자 그리고 하나 있는 생명마저 초개처럼 내던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진리를 사수하는 것, 진리 대 비진리에 관한 투쟁은 초대 교회 시대부터 내려온 것,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 그 피 흘린 발자취 위에 세워진 것이 주님의 몸인 교회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바울 사도 역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날마다 바른 분별력을 가르쳐 지키게 하기 위하여 책망도 하시고 강론도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멋대로 교리를 세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장로의 유전을 지키는 독사의 자식들”이라며 무섭게 책망하셨다.

성도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바른 분별력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절 모르고 시주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분별력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는 영의 일을 잘 안다고 말하는 거짓 사술에 속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재산을 몽땅 바친 후, 뒤늦게서야 깨닫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많은가 이런 말이다.

무엇이건 극단적으로 치닫지 말아야

극단적(極端的)이란: 1. 생각이나 행동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몹시 치우친 것, 2. 상태나 상황이 극도에 이르러 더 나아갈 수 없는 것. 이것이 국어 사전적 의미라고 한다. 그러니까, 극단적 신비주의, 극단적 은사중단론, 극단적 세대주의 등등, 성도는 무엇이건 극단적인 자세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자기가 세운 어떤 틀 속에다 아전인수 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끼워넣는 신학자들, 목사님들을 보면 안타깝다.

신비주의도 그렇다. “극단적 신비주의”가 문제인 것이지, ‘신비함’ 그 자체만 가지고 나쁘다고 말하면 안 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예수님, 또 그분의 하신 사역, 그 자체가 신비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으심도 신비하고, 동정녀에서 탄생하신 것,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 승천하심, 사역하심, 그 어느 것 하나 신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다(갈 2:20).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엡 2:6).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의 탄생하심과 죽으심과 부활 사건에 참예할 수 있는 것이 신비다. 유진 피터슨은 우리에게 이 신비한 '부활 생명을 살라’고 권면한다.

문제는 이런 신비한 영적 세계를 갈망하는 성도들을 악용하는 종교 사기꾼들이 있어서 사람을 극단적 신비주의자가 되도록 몰아가는 것이 문제다. 필자는 최근 이상한 테이프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내용인즉슨, 역사적으로 유명한 신학자, 현대 유명한 개혁교의 리더 목사님들이 지금 대거 지옥에 가 있고 그들이 현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호소한다고 하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웃지못할 희극을 연출하는 어느 신접한 여인의 "지옥에서의 소리"라고 하는 동영상이 폭발치듯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 아멘넷 독자님들이나 여러 성도님들은 혹여 이런 동영상을 보거든 거기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그녀가 말하는 신학자와 개혁교 리더격의 목사님이나 또 다른 영혼들이 지옥에 갔다, 혹은 가지 않았다, 그것을 따져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하나님의 주권으로서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다만,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접신 행위란 것이다. 성경에도 없는 일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한다고 하여서 모두 다 믿고 받아들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란 말이다.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죽은 사람의 혼령이 절대로 이땅 위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텐데….너무도 안타깝다.

사후 세계에 우리보다 먼저 간 영혼에 관해서 성경은 “흙은(육신)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 기억 하라” (전 12: 7) 주신 신(spirit)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사후 세계의 진실이다.

또 신약에서는 "가로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눅 16: 27-29) 자기 자신이 죽어 지옥에서 고통 당하는 것이 너무도 괴로운 부자, 역시 자기와 같은 운명을 당할 세상에 남아 있는 형제 다섯을 위해서 나사로를 살려서 되돌려 보내어 주십사 간청하지만 철저하게 거절 당함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수많은 극단적 신비주의자들이 영계에서 보았다고 하는 그 영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것은 귀신의 영, 사단의 졸개들이 흉내를 내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죽어 잠든 ‘사무엘’ 선지자를 불러올린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신접한 여인이라고 말씀한 것을 보아서 진짜 사무엘의 영이 아니라 흉내쟁이 사단의 장난질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귀신의 영과 교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성경 66권을 수없이 읽어보았지만(자랑이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 죽은 영혼이 제 멋대로 세상에 내려와서 돌아다닌다는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극단적 신비주의자들, 성령을 가장한 빙의 者의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 내 지식, 내가 좋아하는 어느 목사님의 해법, 들은 풍월에 기초한 신앙도 위험하다. 그보다는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신앙을 날마다 점검하고 말씀으로 분별하고 잘라낼 것은 잘라내고 조율할 것은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는 것은 결코 필요악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어긋나거나, 엉터리로 성경을 해석하거나, 상상 신학으로 성경을 가감하는 행위는 책망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수많은 영혼이 죽고 사는 것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분별과 토론을 하되, 말씀을 아전인수 식으로 끌여들이면서까지 논쟁하고 다투고, 너무도 심한 이상 기류를 형성하지는 말고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 은혜로운 말씀으로 잘 분별하는 분별의 영, 지혜의 신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날마다 때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깨우쳐 주시기를 간구해 본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 21-23)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You must distinguish between the holy and the common, between the unclean and the clean,)” (레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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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 "이 제트기류를 이용해 항공기는 시간, 힘( 연료)을 덜 들이고도 빠르게 비행할 수 있지만, 이 제트 기류 속에 빠져들게 되면 기체가 크게 흔들릴 뿐 아니라, 자칫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고 거기다 벼락까지 맞게 되면 항공기는 깨어져 폭파해 버릴 수도 있다."
-文史哲이 빛나는 글이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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