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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신념인가, 믿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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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1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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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모님, 목사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오랜만에 한국 반찬 가게를 갔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이웃교회 사모님을 만나게 된 필자는 그분의 남편 목사님께서 간암 말기란 소문을 얼마 전에 들었던 터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어 보았던 것이 화근이다. “우리 목사님 다 나았어요. 그럼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염려 할 것 있나요?”무슨 그런 믿음 없는 소리를 하느냐? 라는 듯, 질책하는 눈빛으로 짧게 바라보시더니 휭하니 돌아서서 어느새 저만치 가버리신다.

‘아차,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것인가? 남편 목사님께서 병든 것, 그리고 그 병이 낫지 않는 것과 하나님 살아계신 것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만약, 저러시다가 남편 목사님의 병이 영영히 낫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이 되는 걸까?’ 마음이 무척 심란했다. 그후로 그분을 같은 가게에서 두어 번 더 마주칠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차마 그분께 남편 목사님의 건강을 물어볼 수가 없어서 진열장 뒤로 슬그머니 몸을 숨기듯 피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달 후, 안타깝게도 그 목사님은 오 십대 중반의 한참 일할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소(서재생 목사님의 말씀) 하셨다.

어디 그 사모님 뿐이랴. “믿습니다! 믿습니다!” 휘황찬란한 조명등이 현란하게 쏟아져 내리고 꽃장식으로 화려한 (저런 돈 아껴서 선교사들이나 밀어주면 좀 좋을까, 믿음이 없는(?) 나는 궁시렁거리며 둘러보느라 은혜도 안 된다.) 무대처럼 꾸민 강대상 위에서 쇳소리가 섞인 듯한 음성으로 강사 목사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질러대는 괴성, 거기에 맞추어 “믿습니다! 믿습니다”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성도들, 은사 집회란 곳이나 혹은 무슨무슨 부흥집회란 곳을 한 번 참석해 보면 믿음(faith, belief)이란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자못 희한하기 그지없다.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주문(?)외우듯 해야 믿음이 생기는 것일까? 믿음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자기 암시 내지 자기 신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먼저 믿음(faith)의 정의부터 한 번 생각해 보자.

위키백과 사전에서는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믿음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떠한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철학,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념이라 하며, 종교에서는 신앙, 신심, 신앙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믿음과 신념의 차이를 명확히 분류해 두지 않았다.

성경은 믿음(faith)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절 말씀)” 즉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자기가 소원(바라는) 하는 것들이 어느 시간에 실제적인 형태(실상)로 나타나는 것이며, 그리고 믿음이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evidence)라고 말씀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자기 신념과 별반 다를 것 없어보인다. 그러나 믿음과 자기 신념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여러 부분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믿음(faith, belief)은 자기신념이 결코 아니다.

믿음(faith)의 대상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믿음의 대상이 잘못되어 실패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명철과 지식을 믿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권세와 부를 믿는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을 믿고 의지하다가 배신을 당해 가슴 아파한다. 우리 아멘넷 토론방에서 한참 치열하게 논의 되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담임 목사의 말을 믿었는데, 어느 한 순간에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더란 것이고,이런 것을 바라보는 성도들은 너무 상처가 되어서 자칫 교회를 등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대상을 잘못 선정한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말(언어)이란 자기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거짓 사용될 때가 가끔 있다는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은 듣되 그들이 행하는 행동은 따르지 말라고” 말씀 하신 것일까?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인생을 살아갈 수록 그말이 더욱 절감되는 현실이다.

우리가 뉴스를 보아도 금새 알 수 있다. 권력과 명예를 믿고, 돈을 믿고, 자기의 인기를 믿었지만 그 믿음이 자기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으로 이끌어 넣는 것을 보면서 저것이 인생인 것을…, 안타깝다못해 가슴이 저민다.

우리가 진정 믿어야할 대상은 누구일까? 성경은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 한 분이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이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사 2:22).”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 3:5) 우리가 믿음의 대상을 잘못 선정했을 때, 좌절과 실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오직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어야 한다. ( 히 13:8절 참조) 그분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믿음 (faith)의 근간(根幹)

믿음의 근간(根幹)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믿음이란 감정의 변화나 오래 교회에 다닌 역사나 또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로마로 압송되어가는 도중 유라굴로라고 하는 태풍을 만나 그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고 모두 크게 두려워서 떨고있을 때, 바울 사도가 그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 25절) 이것이 바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바른 믿음의 근간(根幹)이다.

그러니까, 믿음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믿음이 좋은 사람은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도 아니요, 성경지식이 많은 신학자도 아니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율법주의자도 아니란 것이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내게 해주신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실히 믿는다, 하는 것이고, 따라서 행동에 옮기기 전, 내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로고스(Logos) 혹은 레마(Rhema))을 먼저 받아야 한다.
 
예를 들자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기 이전,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창 12:1절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길을 떠났던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 인간으로서는 최초, 최말로 물 위를 걸은 위대한 사람, 베드로 역시 물 속에 혼자서 마음대로 뛰어든 것이 아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주께 먼저 간구했고,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께로 가되." ( 마 14: 28-29절 말씀)  모든 믿음의 근간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라기보다는 자신의 의지와 결단과 선택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란 것을 인지하고 그 말씀에 동의해야 한다. 믿음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너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10:17)

결론적으로 믿음이란 단어는 추상명사임이 틀림없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은혜로 그분이 허락하시는 때에, 내 앞에 실상(현상)이 되어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자기 신념과 믿음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 하여 내 몸에 병이 들지 말라는 법 없다. 그리고 내가 병들었을 때 그 병에서 놓임을 받게 해주시는 은혜를 입게 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병에서 놓임 받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불러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런고로 믿음이 좋은 사람은 치유 은사 사역자도 아니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소리질러라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들뜨게 하는 유명 부흥강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Logos, Rhema) 약속한 바 없음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내 병을 낫게해 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막연한 기대도, 강렬한 입술의 선포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자기 암시적이며 자기 신념을 확고히 하려는 시도일 뿐 참 믿음이 아니다.

믿음(faith, belief)이란 세상 모든 것이 그분의 뜻 안에서, 그분의 주권과 섭리하심 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신하며, 내가 살던지 죽던지 그분께 영광 돌리고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evidence)인 것이다! 고로, 신념은 인간 스스로의 정의이며, 믿음은 전적 하나님의 주권이고 소유이며 은혜라 정의할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 6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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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지기 
2010-06-21 03:46
 114.xxx.129
 
오호라///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란 것을 다시 새겨봅니다.
믿음조차도 저의 의지,선택인 줄만 알고...자책하며...헤메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할레루야/...은혜로운 글 ! 감사합니다! 별똥별님!!!

holykang 
2010-06-06 06:51
 72.xxx.61
 역시 사모님은 아멘넷의 반짝 반짝 빛나는 별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신념에서가 아니라 그분의 의지에서라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던지는 검니다
 그림과 같이
 그냥던저도 됨니다
 그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간사하고 나약한의지가 아닌
 천지을 창조히시고
 우리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목숨까지 버리신
 그사랑에 우리을 그냥던저도 됨니다
 감사함니다
 사랑함니다
 우리주인되주셔서
 가만 놔두시면
 우리는 방황하다가  죽었을탠대
 진짜 보물같은글 입니다

정경민 
2010-06-16 18:02
 76.xxx.115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라는말 가슴에 와닿네요..  예수님의 은혜만 생각하고
 세상사람들속에서 경험하는 갈등따위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지요..ㅎㅎ
 모두 연약하고 악한 인간이기에...
예수님만 보고 오늘하루도 힘낼께요!!~
너무 좋은글 감사해요  마음속 답답했던것들도 역시 주님의 말씀 또 사모님의 감동적인글들로 해소가 되는듯해요 감사합니다!~

돕는은혜 

2010-06-05 07:20
 74.xxx.167
 아멘넷의 글을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기준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념에 찬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예수를 잘 믿고 있고 기적을 체험했으며, 기도의 응답을 많이 받았다고 자랑을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내가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하나님이 자신의 주인이 되었다가 종이 되어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어리석음을 종종 많이 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믿음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주님은 믿음이 없음을 많이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경험했고 체험한 사람들이었으나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병자나 가난하고 소외된자에게 오히려 믿음이 많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보잘 것 없이 작은자들이 오히려 믿음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멘넷에서 기사나 댓글을 올리실 때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펴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자신의 과거를 은근히 자랑하며 학식과 경력을 소개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광고(?)하는 그 분들은 "나를 믿으세요" 라는 주장을 펼치는 것 같습니다.

작은 사람일 수록 작아지는 사람일 수록,  낮은 사람일수록, 낮아 지는 사람일 수록 주님이 영광을 많이 받으실 줄 압니다.
우리의 지혜와 경험으로 판단하고 정죄할 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고 내 자신만 드러나며, 글의 내용 보다는 누구의 글인가가 드러나는 의도로 보입니다.

 "나" 라는 인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의 적이며 원수임을 아는 순간 정욕을 죽이고 영적 전쟁을 하며 작은 글에도 내가 아닌 주님이 드러나는 글들이 많아짐을 기도합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 이 글들 속에 오직 예수만이 나타나는 그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별똥별 사모님의 글이 왜 그리 귀한가는 그 속에 예수님을 드러내고 십자가와 부활생명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 써 주심을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서재생 
2010-06-08 09:54
 112.xxx.92
 사모님! “안타깝게도 그 목사님은 오 십대 중반의 한참 일할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소(서재생 목사님의 말씀) 하셨다.에 공감에 감사 합니다.
지금도 한국 교회는 기독교 가정에서 장례가 생기면, ‘고인이 소천했다.’는 표현을 곧잘 사용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소천이란 용어가 국어사전과 한문사전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오랜 옛날부터 구전돼 온 것은 아닐까. 한국고전번역원에 등록된 신라부터 조선후기의 고문헌을 검색해 봐도 장례를 일컫는 소천이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다만, 조선후기 김시습이 지은 매월당집에 ‘하늘의 재앙을 부르다’는 뜻의 ‘소천재’란 말이 사용된 정돕니다. 한국고전번역원 노성두연구원 말입니다.

소천이란 용어 사용하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이해하고 생각 하면서 보편적으로 쓰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표현이라면 이 어휘는 능동형으로 사용할 수 없고 수동형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소명(召命)이나 소집(召集)이란 단어의 경우 능동형일 때 그 주체는 부르는 존재를 말합니다..소천(召天)은 비록 신조어로서 사전에도 없는 어휘이지만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천소을 받았다”로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사모님! 늘 은혜로운 글 기도합니다.


누지문서 

2010-06-06 06:35
 71.xxx.179
 "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 1;3)

우리가 믿음을 통해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모든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못깨닫는 것은
"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벧후 1;4)"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뿐 아니라 목회자나 혹은 신유의 능력을 보이는 부흥사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은 정욕을 피하지 못해 세상에서 썩어지는 것을 추구하는 현상입니다.
즉 나타나는 능력과 개인 각자의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별개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능력만을 보고 그들을 추종하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베드로후서의 그 밑 부분을 종합하면 두 단어입니다.
 "  사랑과 존경 "

사람을 밀어내 자빠뜨리고 신유의 기적을 베푸는그 어떤 부흥사나 거대 교회의 왕목사님이라도 "사랑과 존경'이 없으면  자신만을 위하며 세상의 썩어질 것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며 실족지 않기 위해 이것(사랑과 존경)을
 반드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 11절 ) "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생달 
2010-06-17 20:27
 222.xxx.171
 별똥별님
[믿음]--아침에잠자리에서눈을뜨고부터 저녁에는잠자리에서잠들기까지
 하루의일과중에 모-든일거일동을 행하면서 [나는주님의은혜로서 주님을믿음으로서]모-든 나를 마끼고의지하는것 그리고만사를감사하는것이
 주님을믿는나의믿음입니다,너무 어설픈설명인것같습니다마느...
이 세속안에서는 누구를으지하며 믿고 살아가기가힘든가운데 오로지 주님만은
 은 나의믿음의 크리스도 입니
 다,아직도 깊은 하나님의세계의공부가너무나도
 부족합니다만 하나님을 믿는 다는것에는변함이없습니다,
별똥별님께서 많은복음으로 공부를계속하겟끔부탁을드릴께요,절.
아무장식이없는저의마음의글을 양해바랍니다,


비둘기 
2010-06-09 15:29
 66.xxx.122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자에게 두려움없는 큰 평안이 있으리라 하신 말씀이  큰 손을  생명싸개의 보자기 같이 펴고 계시는군요  그 강한 손을 알게 하시고 내 손을 굳게 잡아 주심을 믿는 자 예수님안에 붙들림받아 다음어지고 세워져 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사모님께 말씀을 보내시어 성경의 영적인 의미들의 참 진리가  전해도록 기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찬양합니다
 축복의 통로되신 사모님을 통하여  말씀의 우물들에서 지혜의 물을 길어내어 마시게 하고 새 힘과 능력을 주시는  믿음의 주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모님의  영혼사랑과 복음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g2u 

2010-06-07 20:15
 69.xxx.227
 별이 사모님께서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믿음을 이처럼 설명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는 별이 사모님의 이런 글이 너무 좋습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법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의롭게 된 것은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된 것이기에 결코 자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구원의 은혜를 잊으면 잊을 수록 나의 의와 교만은 고개를 들게 됩니다.(롬 3:27,28)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마치 자기 신념(belief)을 믿음(faith)인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치유를 갈망할 경우에 믿음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리스도께 드러내는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가 승리의 주님을 만날 때, 우리 안에 믿음이 생겨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에노출됨으로써 뿌려지고 성장하는 씨앗입니다. 절대 더 많은 믿음을 구하지 마십시오. 그 보다 그리스도를 더 많이 구하십시오.

Grace to you!


체르니 

2010-06-07 02:55
 118.xxx.221
 안녕하세요. 사모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히히(개구장이 모드로)
저는 믿음이란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사는 날까지 가는 방향키와 같다고 생각하며 그 안에 예수님의 죽음, 부활, 다시 오심에 대한 신뢰가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의 단면들은 그 방향키에 따라 가다보면 지나가는 영화 속의 장면들과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기도하여 제 아픈 몸이 많이 치료되는 은혜를 입었지만(사실은 아직은 이세상에 더 있어야 되는지 불쌍한 저를 치료의 하나님이 치료하신 것같아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병들었을 때 기도해서 병이 치료되고 치료되지 않고의 문제보다는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방향키가 잘 동작하고 있느냐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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