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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으로 외치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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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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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에 올라온 "무익종"님의 글을 통해 켄사스에 위치한 IHOP 기도원에서
 일어나는 기도 모임(소위 신사도 운동)이 미국 전지역과 한국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고 그로 인해 이런 운동이 과연 올바른가 아닌가에 대한  공개 질의를 보게 됐다.

이미 아멘넷에서도 이를 보도했고 신학자들의 책도 나온 바에야 재삼 이를 거론하는 것보다는 왜 이런 현상(빈야드 , 신사도현상)이 일어나는 것인가에 생각을 집중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데
 무엇이 교회를 약화시켜 교회를 떠난 이런 운동이 점점 힘을 얻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가 ?

현대의 교회에서는 진정으로 순종하는 평신도도 찾기 힘들지마는 ,또한 진정으로 겸손한 목회자도 찾아 보기 힘들다.언제부턴가 하나님의 종을 자처하는 부흥사들의 외곡된 강대상위의 외침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된 모습을 보인다.

필자가 기억하는 옛 교회의 모습과 현대의 교회는 너무도 달라져 있음을 깨닫는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고 그래서 교회가 마치 자신의 개인 사업체인양 자기 방식대로
 고집하는 장로들과 , 교회의 성도들을 자기 양이라고 착각하는 목사들과 , 교회에
 거액의 헌금을 했고 비품을 기증했노라고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집사들과
 기도 모임에 모여서 온갖 소문을 만들어내며 가족 자랑에 바쁜 권사들로 우리의 교회는 시끄럽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하나님의 소원으로 미화하기도 하고 , 탐욕을 하나님의 열망으로 치장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핑계삼아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이런 열심이 우리를 소진시키고 낙심하게 하며
 마침내는  분노를 유발시킨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신앙적인 욕구를 찾아 이런 빈야드나 신사도등의 모임을 기웃거리지 않을수 없게 됐다는 것은 나만의 억측일까 ?

무엇이 그곳에는 있고 우리의 교회에는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으로 몇일을 보내던중
 오늘 아침 읽은 말씀속에서 그 답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이곳에서 같이 나누기를 원한다.

시편 132편에 보면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소원을 깨닫게 된다.
1절부터 8절까지 다윗의 관심사는 하나님이 계신 곳(여호와의 처소,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이다.
그곳이 에브라다이건 나무 밭이건 어느 곳에 상관없이 하나님앞에 나아가 경배하기를
 원하며 이런 간절한 소원이 있게 될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그런 마음을 기억하신다.

우리가 예배할때 , 기도할때 , 찬양할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 예배가운데 계시고 내가 그 앞에 서 있다는 의식 ,
그리고 그런 주님이 거하시는 곳을 사모하는 마음이 내게 있게 될때
 주님이 기뻐한다는 것이다.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찌어다(9절)"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16절)"

9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의"를 입었다는데 16절에 보니 "의"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우리가 그 구원의 옷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앞에 설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예배에서 각 사역을 담당하는 자들이 날마다 예수님의 고통으로 인한 구원으로
 의의 옷을 입었다는 , 그래서 예배시에 하나님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어야 되며 , 성도들 역시 사역을 담당한 자들에게 그런 성령의 간섭하심이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할때 그 예배는 성도들이 예배중에 성령의 운행하심으로
 뜨거움의 열기를 느끼고 즐거움으로 외치는 예배가 됨을 의심치 않는다.

예배는 순서중 어느 한부분(예를 들어 설교) 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체가 중요하다.
각 순서 담당자들이 진정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떳떳이 서게 될때
 그 예배중에 치유와 신유의 기사가 생겨나며 성도들의 얼굴에서 하늘의 기쁨을 보게
 되며 그래서 즐거이 외칠때 이 예배는 선지자적 예배(prophetic service)가 된다.

만약에 우리가 섬기는 각 교회가 이런 뜨거움과 즐거움으로 외칠수 있다면 그래서 그런 체험이 느껴진다면  우리중 아무도  집을 떠나 산야를 헤매는 빈야드나 신사도운동같은
 곳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의무감과 아무 기쁨이 없이 때가 되면 교회를 가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의로 서게 하여 주신
 그 감사와 감격의 예배를 한주 동안 기다리고 고대하는 자인가 ?

 " 즐거움으로 외치는 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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