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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2의 宗敎改革 無用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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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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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은 한복협 9월 조찬 기도회에서 발표된 손인웅 목사의 발제글에 대한 반론임과 그 외 요사이 유행하는 교회 갱신 글들에 대한 반론 글임을 밝힌다. 필자도 얼마 전 까지는 그분들과 대동소이한 글 들을 아멘넷에서 계속 주장했던 사람임도 알리고 싶다.

이런 무용론(無用論)의 근거가 무엇인가 ?
한인들의 한국 내 교회와 이민 교회를 망라하고 교회 숫자와 목회자가 너무 많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 내 교회는 약 7만여 교회, 교단과 교파가 약 230여개에 목회자가 12만 명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내 동네 곳곳에 산재해 있는 편의점 숫자가 작년 말 기준 약 2만개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동네 곳곳의 빈 공간을 파고 들어간 편의점이 통털어도 2만 여개에 불과한데 7만여 교회가 산재해 있다는 것은 포화 상태를 지나도 이미 한참 지났다는 것이다.

일정 지역 내에 과포화 상태가 발생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아니겠는가? 우선 내 교회가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런 판국에 어떠한 갱신 방안인들 고려할 여지가 있을까?

그 다음으로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이다. 필자의 조부께서는 피난 후에 거제도를 비롯하여 각지의 섬으로만 다니시며 교회를 개척하여 세우시고는 자립하면 다른 목회자를 세우시고 또 다른 섬으로 가셔서 교회를 몇 군데나 개척하셨던 시절이 있으나 이제는 전설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당시에는 교회를 세우면 사람들이 찾아 들었으나 현재는 상가 건물에 까지 빼곡히 들어선 교회마다 담임 목사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필사각오(必死覺悟)로 새벽마다 부르짖어 기도를 해도 교회를 닫아야하는 반면에 중대형 교회에서는 소위 교인들의 수평 이동을 거절(?)한다고 공표하여도 찾아오는 교인들로 표정 관리하기가 바쁘다.

이런 결과로 동산(動産)과 부동산(不動産)이 비축되는 대형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의 은퇴 시에 필수적으로 잡음이 발생하게 되어있다.

인간은 자신이 힘이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욕심을 어떤 이유를 앞세우던 하게 되어있고 그 좋은 실례를 필자의 전번 글에 등장하는 서울의 김모 꼴두기의 세습에 대한 “시기심” 운운의 뻔뻔하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신문 광고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기실 담임 목사의 잘못만은 아닌 데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 내(內)와 외(外)에 있는 한인 교회중 소위 대형교회에 속한 신자들은 간혹 김모 꼴두기의 주장처럼 “시기심” 운운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들을 묵묵부답(黙黙不答)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
소위 대형교회의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는 암묵(暗黙)적인 서로간의 욕심에 의한 deal 이 있기 때문이다. 교인의 입장에서는 어디 가서 출석 교회를 이야기할 때 00 교회라는 나름대로 프라이드도 있고 웅장하게 대리석으로 깔린 실내와 수천만원의 돈이 들어간 음향, 조명 시설과 그럴듯한 분위기에서의 주일예배와 기타 모임이 나름대로의 종교적 기분을 만족시켜 주며 그 외 가족간의 경조사와 교회 인맥에서 오는 영향을 결코 무시하지 못하리라.

그런데 담임 목회자의 은퇴와 신임 목사와의 갈등을 여러 곳에서 이미 보았고 그 참담한 현장(어제까지의 은혜롭게 인사하던 교우들과의 물리적 충돌)을 회피하려면 은퇴 목사의 아들이나 사위가 그 자리를 세습하여 아무런 갈등없이 교회 생활을 이어가려는 인간적인 욕심이 그 누군들 없겠는가?

이미 대교회로 이루어진 뒷면에 현금 보유고와 부동산 시가의 총액은 은퇴 목사가 본교회를 떠나지 않고 사무실을 만들때 부터 분쟁의 가능성은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 후임 목사가 힘을 얻기 시작되면 신구 목사간에 힘겨루기가 시작되고 그동안 기독 언론에 단골 기사로 올려지는 익숙한 장면들이 재연되어지는 것이다.

포화상태에서 생존경쟁이라는 구조적 문제하에서 목회자의 소명의식과 교회 갱신 운동과 종교 개혁 운운은 그 발 디딜 힘을 잃는다. 더욱이 부익부 빈익빈의 힘에 의한 집단주의의 이기주의가 움직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교회에 세상적인 힘(권력과 재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금일 한국의 예장 합동의 총회장에서 또 다시 벌어진 더러운 추태들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콜롯세움에서 맹수의 잇빨에 몸이 찢겨지거나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생명을 잃어야하는 고난대신에 부흥회 강사로 가면 일류 양복을 얻어 입고 포켙 두둑히 강사료를 챙기고 고급 호텔의 일류 마사지로 몸을 풀 수 있는 호화로움이 계속 보장된다면 더욱 추태들은 심해질 것이다.

고난이 없기에, 그리고 이미 과포화된 목회자와 교회들 속에서 생존 경쟁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면 제2의 종교 개혁이나 교회 갱신 운동은 말 그대로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는 것이다.

혹 자가 필자에게 “그러면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 본다면 “그것은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라는 대답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는 것 역시 답답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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