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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분쟁시에 옥합을 깨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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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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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구역예배의 교재 내용은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한 여인” 이었다. 교회에서 행하여진 구역예배 교사 공부에서는 일반적인 내용으로만 일관되기에 집에 와서 깨달아진 내용들과 그로인해 구역 예배시에 은혜를 끼친 이야기를 올리고 싶다.

말씀을 묵상하던 중 “옥합을 깨뜨리고(막14;3)”의 부분이 눈에 들어 왔다. 관련 구절에 관한 여러 설교들을 보니 일률적인 내용이 가장 귀한 것을 깨뜨리는 희생으로 예수님께 바치자( 주로 헌금을 강조시에 ) 이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옥합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왜 다른 3 복음서에는 향유를 가져왔다는데 마가복음 14장에서만 “옥합을 깨뜨리고 ( She broke the jar )" 라는 표현의 차이가 생겼는가라는 의문점이 생겼고 이를 확인한 내용들이다.

옥합(alabaster jar)이란 옥(玉)으로 만든 작은 병(표지 사진에 동전과 비교되는 옥합이 있다)이다. 이를 여인이 깨뜨릴려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깨뜨린 즉시 대부분의 향유는 바닥으로 새어 나갈 것이다.

순전한 나드(pure nard) 란 히말라야의 산기슭에서 자란 나드의 뿌리와 잎사귀에서 추출된 향유라고 한다. 히말라야의 산기슭이란 어떤 곳인가 ? 평소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며 특히 히말라야 근방의 스토리를 즐겨 보는 필자로서는 산꼭대기의 빙하에서 녹아 내리는 물과 험하고 척박한 지형에서 강인하게 생존하는 동식물들이 쉽게 눈앞에 그려진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나드라는 향유는 휘발성이 강하기에 밀봉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옥으로 만든 작은 병(옥합 , 성경상의 관련 지역에서 출토되어 박물관에 전시된 모습을 보면 크기를 알수있음) 에 담겨져 콜크 마개가 없던 그 시절에는 병구멍을 밀랍으로 단단히 밀봉하여 시장에 나갔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실크로드란 고대의 상인들의 길이 있다. 이 실크로드가 중국에서부터 시작하여 히말라야의 차마고도(茶馬古道, Ancient Tea Route/Southern Silk Road)를 지나 소위 ~ 스탄으로 지칭되는 중앙아시아의 지역을 지나 이란과 이라크를 벗어나면 당도하는 곳이 터키의 이스탄불이며 이곳을 수년전에 여행했던 기억이 난다.

이스탄불의 단골 관광지중의 한곳은 소위 그랜드 바자라는 거대 쇼핑센터가 있지만 그 옆에 이집션바자(혹은 향신료시장으로 불리기도 하며 현지인들이 잘 가는 곳이다)로 가면 예전의 실크로드를 통해 들여온 온갖 향신료들과 유사한 품종들이 어마어마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히말라야의 가파른 언덕에서 피여났던 한 나드의 잎과 뿌리는 이것이 고가의 향유 원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떤 유목민의 손에 의해 파여지고 추출되여져 순수한 나드 향유가 옥합에 담겨지고 밀랍으로 단단히 봉해져 현지 시장으로 나갔을 것이다. 이를 구입한 어떤 실크로드를 지나던 대상의 낙타등에 실려져 이스탄불로 향하던중 예루살렘 근방의 거점에서 거래되었고 비록 상당한 금액이지만 신부 지참물로 이를 구매한 마리아의 부모에 의해 베다니로 오게 되었다.( 필자 스스로의 가정이다.)

당시 잔치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이기에 예수님의 발쪽으로 다가간 마리아는 옥합의 주둥이에 있는 밀랍을 떼어 버리고(유월절 엿새전의 베다니 날씨는 밀랍이 아주 단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옥합을 거꾸로 들어 예수님의 발위로 천천히 한방울도 남김없이 다 부었을 것이다.

이 고가의 향유는 그 냄새가 독특하기에 마리아가 머리털로 씻자마자 향유 냄새가 온 집에 가득 해졌다. 이 향유의 향기에 가룟유다같은 족속들은 돈 계산에 바쁠 것이지만 대다수의 하객들은 오랜만의 귀한 향기에 마음이 즐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휘발성이 강한 나드 향유는 잠시 후에 사라질 것이란 사실에 필자의 생각이 멈추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

실제적으로는 밀봉된 병주둥이의 밀랍을 뜯어 내어 나드 향유를 붓는 행위를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서는 “향유를 가져다가”로 기술되어졌음) 유독 마가복음에서는 옥합을 꺠뜨리라는 말은 우리의 마음, 고정 관념을 깨라는 말이다.

우리의 어떤 마음인가 ?
예수님을 위한 잔치 자리인 교회에서의 우리들의 사역과 헌신에서의 마음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며 헌신한다. 그런데 우리의 혼신을 다하여 헌신한 후(고가의 순전한 나드 한 근을 부은 후)에는 잔치 자리에 하객들(교인들)이 즐거워했고 나드 향기가 휘발성이 있어 사라짐과 같이 우리의 헌신했던 마음도 사라져야 하는데 그것을 붙잡으려는 마음을 깨라는 말이다.

내가 이 교회를 위하여 이만큼의 헌신,희생,수고를 했는데 내 몫을 주장하려 하고, 교인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 비록 장로권사 되려는 욕심에 형편에 버거운 건축헌금을 했는데 알아주지 않고 , 새로운 교인들이 들어와 그 분들이 더 교회일을 잘하고 봉사도 잘하니 나를 잊어 버린 것 같고....등등의 우리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순전한 나드 향유가 못되는 우리의 혼합된 나드 향유는 오늘날의 교회 분쟁의 주요 원인이다. 비록 겉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성경상의 신앙적인 용어를 열심히 들먹여도 혼합된 나드 향유는 주님의 교회를 결국에는 허물고 찢어 버리게 만든다.

교회 분쟁의 원인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담임 목사의 잘못이다. 이미 전 글에서 서술했거니와 현행 교단법은 철저히 담임 목사 위주로 되어 있기에 명백한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았을 시에는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
둘째, 평신도의 잘못이다. 얼마 전 아멘넷 기사에서도 깨닫게 되나 이에 대한 치리가 신속 엄정함은 독자들이 잘 알 것이다.
셋째, 담임 목사와 교인들의 쌍방의 잘못이다.

필자의 직장 동료중 한명이(이태리계 미국인) 최근 이혼 소송에 들어갔다. 그런데 뉴욕주의 이혼법은 철저하게 남자쪽에 불리함을 깨닫게 되었다. 대소를 막론하고 재산을 가르는데 그 치밀함과 철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교회내의 분쟁중 쌍방의 세가 백중세이거나 일정한 세력이라면 사회의 이혼법과 같은 교회 재산의 분리를 강력히 주장한다. 우리가 기독 언론을 통해 보는 교회내의 분쟁은 교회 이름만 다를 뿐이지 모습은 대동소이하지 않는가 ?

어제까지 “주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형제자매님”의 멱살을 잡고 양복을 구기기 전에 자리에 앉아 리스트를 작성하고 arbitrator를 고용하여 법적인 서류를 만드는 일이다. 교회일에 노회나 총회가 개입하여 은혜(?)로운 중재가 되는 경우가 극히 드믈기에 이런 제안을 하는 바이다. 교회 안에서 감정적으로 대립하기 보다는 그 분들이 따로 나가서 교회를 개척하는 길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지 궁금하다.

이번의 구역예배 자리에는 교회에 등록한지 얼마 안 된 두 가족이 처음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 나드 향유에 대한 필자의 나름대로 생각을 듣고 난후 그 분들이 입을 열었다. 몇 년전에 모 교회에서 담임 목사 청빙시에 당회원으로서 나름대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던 그 분은 청빙 당사자가 본 교회로 오게 되었고 그후 위임된 후에 보복성이 짙은 여러 일로 본인과 형제 가족들까지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교회에서 개인적으로 친했던 다른 가족도 30년 넘게 헌신했던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노라고 담담히 말을 이어가는데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교회내의 분쟁의 원인이 신천지 , 신사도 , 인터콮등의 복음의 진리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라면 끝까지 싸워야 하나 담임 목사의 신앙 양심( 사랑의교회의 오정현목사같은 경우)에 관한 비본질적인 문제라면 목사지지파와 반대파가 교회의 재산 분리를 통한 분리를 적극 추천한다.

우리 모두는 보혈의 피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지만 죄인이다.
비록 목사장로권사집사로 헌신하지만 죄인이다.
우리들의 행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죄뿐이며 주앞에서 정결타고 자랑할 것이 없으니 옥합을 깨뜨려야 한다.

우리의 교회를 위한 헌신이 옥합을 깨뜨리고 순전한 나드 향기와 같이 순수하게 사라지거나 그것이 불가능시에는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와 다툼보다는 합리적인 분리를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교회가 사회적인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더욱 심화되는 요지음에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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