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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는 설교 & 들려지는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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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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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27
설교(說敎)란 무엇인가? 말씀을 가르치는(선포하는) 것이다.
어떤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설교자의 말만을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여 선포하며 아멘?을 강요하는 사례가 유행하는 현 시대이기에 “들려지는” 설교가 진정 아쉽다.

왜 “들려지는” 설교가 아쉬워졌는가 ?
첫째,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기에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교인에게는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신앙적으로 합리화해 주는 설교만 들릴 것이다. 그들에게 설교는 종교적 정당화의 수단에 불과하다.

둘째, 설교가 청중의 머리와 가슴에 와 닿지 않기에 들리지 않는다. 역사라는 날줄과 사회라는 씨줄로 엮어진 인생의 구체적인 실존적 고뇌를 외면한 추상적인 교리 주입식 설교와 비논리적이고 문자주의적인 성서 강해식 설교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분석과 설명은 많은데 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못주기에 들리지 않는다.

논문 표절로 인한 본인의 잘못으로 인한 자숙 기간을 고난으로 표현하는 설교, 아들위해서 교회에 131억원의 손해를 끼치고도 진주를 탄생시키려는 고난 탓으로 돌리는 설교, 아들에게 자신(?)의 교회를 세습시키려고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설교, 정권에 아부하는 모습을 감추려고 애국심을 앞장세우는 설교,

무한 경쟁의 논리와 성공 지향적 가치관을 신앙적·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개인적인 성공을 하나님의 영광과 동일시하는 설교, 인과응보의 세계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당사자 개인의 탓으로 돌릴 뿐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정죄하는 설교, 비논리적인 독선과 무개념에 기초한 공격성이 가득한 아전인수적인 무리한 주장의 설교, 종교적 여흥에 불과한 설교가 여전히 횡행하는 한국교회에서 청중들은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열변의 설교의 끝나자마자 설교의 내용을 바로 잊어버리는 교인들에게 어떤 설교가 과연 “들려지는” 설교가 될 것인가 ?

“오늘 설교가 나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라며 답답해하는 교인들에게 “현실의 문제에서 출발해 그것을 성서에 조명해 보고 오늘의 상황에 생명의 힘을 주는 성서의 의미를 찾아내는 형태” 가 바람직하며 이는 “성서는 오늘 우리의 삶에 생명을 줄 때 의미 있으며 경전이 된다”는 전제가 반드시 이어져야하지 않을까?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게 되는 것일까?
첫째, “들어줘야하는 설교”가 아니라 “ 변화받는 설교, 들려지는 설교”가 되려면 누가 설교하는 가가 중요하다. 설교에 합당한 설교자라는 것이고 이는 인격적,도덕적으로 자격이 있는가이다. 더러운 손으로 주는 떡은 아무도 먹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설교자가 과연 나를 주안에서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가”이다. 성도들은 설교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인지 관심이 있는 척하는지를 직감으로 안다. 내가 재력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기에 아는 척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셋째, 설교가 과연 설교다운가 아닌 가이다. 이는 설교 자체에 논리성이 있는가이다. 신학의 부재와 체험의 부재와 열정의 부재와 지성의 부재인 설교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설교”이며 그래서 예배의 일부이기에 할 수없이 “들어줘야 하는 설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안의 설교자들 중에서 매 주일 하나님과 회중 앞에서 떨리는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강단을 오르는 설교자들 또한 결코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말로 한국 내와 미주를 포함한 세계 각 지역에서 적지 않은 설교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회중 앞에서 세상 앞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 특히 설교자로 부름 받은 이 놀랍고도 막중한 책무 앞에서 비장한 긴장감과 두려움을 품고서 매일 매일 강단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교계가 너무도 복잡다단한 이 시대에 주일 예배에는 참석하여야 하고 그래서 “들어줘야 하는 설교”인지 아니면 성령의 거부할 수 없는 능력으로 “들려지는 설교”이기에 관절과 골수가 쪼개져 나의 삶이 변화되는 설교인지 그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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