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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의 성경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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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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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25
세월호 침몰부터 시작된 한국내의 혼란은 시간이 흐르며 그 드라마틱한 전개가 그 어떤 TV 드라마의 시청율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도도히 흘러오더니 이제는 장본인인 유병언의 시체가 등장하며 그 흥미도가 점입가경(漸入佳境)에 이르르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유병언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한국의 부정부패 시스템에 속한 어두움에 숨은 자들이 자신들로부터 국민적 관심을 옮기려는 계교와 이에 부응하여 시청율을 올리려는 언론이 부합하여 유병언을 단군 이래로 가장 악한 자로 둔갑시켜 세월호의 진상보다는 유병언의 도주와 체포로 관심을 모두어 자신들의 안위를 도모하고자 함에 있다는 점을 주의깊게 보아야 한다.

즉, 총 시가 50억원에 이르는 수백채의 골프채와 검은 뭉치돈을 선사받고 앞장서서 유 전 회장 일가와 관계사들에게 금융기관으로부터 4000억원에 달하는 대출을 받게 해주는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제공했거나 해운법 등 관련법 개정 과정에서 정치인과 중앙부처,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인허가나 편의 등을 위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엄중히 조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관심은 기실 이런 세상적인 관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찰과 검찰의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준 소위 순천 송치재 별장의 관련 보도에 등장한 사진속의 성경책들이다.

“성경젼서” “ 훼미리성경” 그 외 식별이 불가능하나 여타 종류의 성경책들과 신앙서적들은 비록 선교사들이 교육시킨 육개월 과정 성경학교가 신학교육의 전부인 유병언이 장인인 권신찬에 의해 기름부은자로 치켜세워져 구원파내에서 설교를 할 때 사용되어졌으며 그는 이를 통하여 신도들의 헌금을 자신의 사업 자금으로 이용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하여 보니 비록 유병언 뿐만이 아니라 개신교에서 파생된 여타의 이단들의 설교자들도 우리가 보고 있는 똑같은 성경책으로 설교하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직전에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유혹하였고 중세의 종교 권력자들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말씀을 이용하였고 미국의 남북 전쟁에서도 서로의 입장에서 말씀을 이용하였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눈을 돌려 보면 이단들의 모임만이 아니라 기존 교회에서도 설교는 한 사람이 강단을 독차지하고 나머지 교인들은 듣기만 하는 상황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일방적인 횡포로 둔갑하기 '십상(十常)'이다.

담임목사의 눈에 미운 오리 새끼같은 교인들에 대한 표적 설교, 더욱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마귀론 설교, 자신이 설교 잘하는 사람임을 과시하고, 자기 자랑을 하고, 자신을 미화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고, 자기를 방어하고,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자기에게 방해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저주하고, 겁을 주고, 위협하고,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들에게 아부하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히스테리도 부리고 등등이 그런 예이다.

인터넷이 일반화된 요즈음에는 “ O O 목회자료 연구소 "라는 사이트들이 성행하여 월 회비 $20 정도를 지불하면 유명한 목회자의 명 설교를 비롯하여 주일예배 설교, 수요예배 설교, 장례식 설교, 결혼식 설교, 새벽예배 설교, 개업예배 설교 등등의 다양한 메뉴로 인해 게으르고 나태한 설교자들은 스마트폰안의 자료들을 지극히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설교가 굉장히 좋다”라고 소문난 LA 에 소재한 S 선교교회의 C 목사는 지난해 일방적으로 교회에 사표를 제출하고 사라졌다가 4개월 만에 다시 나타나 거리가 별로 멀지않은 곳에 J 라는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였고 이 소문을 들은 기존 교회에서는 일부 장로를 포함한 교인들의 이동까지 생기는 현상과 성추행에 대한 정확한 회개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 개척한 홍대새교회로 몰리며 전병욱 목사의 설교에 아멘하는 교인들을 생각하면 설교자의 인격에 상관없는 설교 실력자들의 안하무인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요사이 인구에 회자하는 “설교 무용론”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는 왜 중요한가 ?
예배의 모든 순서가 다 사람들의 행동과 관계가 있고 또 하나님을 향하는 상향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설교만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말을 거시는 하향식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 그것은 ‘우리를 향한 지금 여기서의 하나님의 말 걸음’ 이며 따라서 설교에 대한 이런 신학적 이해 때문에 설교는 항존 할 수밖에 없다. ‘말씀의 종교’인 기독교의 정체성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그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심각해지는 설교의 폐해에 대한 보완책은 무엇인가 ?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운동력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에게 맡겨진 전달의 책무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하루 일과중 말씀 묵상과 연구 , 그리고 기도에 전념하는 시간에 최우선을 두라는 의미이다.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가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골 3:16)

교회를 벗어난 자신의 일상 속에서는 세상 일에만 전념하다가 주일날 예배에서 설교 말씀을 듣고 고개만 끄떡이며 아멘 소리만 내는 설교 의지형이 아니라 스스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내재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우쳐 설교자와 듣는 이들이 피차(서로) 가르치며 권면하는 교회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로부터 일방적으로 전달되어지는 현대 설교의 모습속에서는 초대교회같은 유기적 관계의 교회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모든 교인이 더욱 말씀을 스스로 읽고 깨우치며 하나님을 열심히 알아가는 가운데 설교자와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게 될 때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며 지혜로 모든 일을 능히 감당하게 되며 그러한 교회만이 요즈음같은 영적 혹한기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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