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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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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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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내가 처음 객지 생활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된 것은 깊어가는 가을의 밤이었습니다. 서울의 가을 밤 공기가 어쩌면 그렇게도 고향의 가을 밤 공기와 같은지..., 저녁을 먹고 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춥다고까지 할 수는 없는 찬 가을 공기가 온 몸은 물론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 했습니다. 가을 냄새, 아니 그것은 고향의 냄새였습니다. 금식 3-4일째쯤에 음식 냄새의 유혹이 강렬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가을 밤 공기는 미칠 것 같은 고향 냄새로 나를 압도하여 무작정 고향으로 뛰어가고 싶게 하였습니다. 딱히 부모님이 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홍수처럼 밀려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잘 다스려지지 않는 독감처럼 마음을 괴롭혔고 일상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고향의 그 무엇이 그렇게 강렬한 그리움을 불러 일으켰는지 지금도 딱히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가족, 친척, 친구, 주일학교, 학교, 뒷산, 강, 저수지, 마을 앞 샘, 밭, 논, 흙, 물, 소, 개, 닭, 염소, 돼지, 토끼, 지게, 쟁기, 자전거, 모내기, 보리타작, 서숙 밭 매기, 고추 따기, 깨 털기, 나락 베기, 목화 따기, 쇠 풀 하기, 소 먹이기, 깡통 차기, 재기 차기, 딱지치기, 삼 년 고개, 기마전, 씨름, 화투치기, 참외서리, 머슴아들과 가시나들이 몰려다니며 놀기, 이웃 마을 아이들과 패싸움 하기, 콩쿠르, 가설극장, 산토끼나 꿩 개구리 뱀 메뚜기 미꾸라지 잡기, 칡이나 잔대 도라지 캐먹기, 진달래 접동 찔래 꽃 따먹기, 송구 꺾어먹기, 산딸기 오디 어름 밤 대추 고염(고욤) 따먹기 등, 수를 다 헤아릴 수도 없는 내 어린 날들의 수많은 경험들은 그 무엇과도 대체가 불가능한 기억들로 차곡차곡 쌓여 있어 고향은 나에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움 중에는 엄마가 보고 싶은 그리움이 가장 아픈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엄마가 일찍 돌아간 친구는 늘 기가 죽어지냈습니다. 가을 운동회 때 모든 엄마들은 아이들 점심을 싸가지고 운동회에 오지만 그 친구는 아침에 싸온 도시락으로 혼자 점심을 먹었습니다. 친구 엄마가 같이 먹자고 할까 봐 미리 화장실 뒤쪽 으슥한 곳에 숨어서 울며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같이 먹다가 눈물을 보일까 겁이 나서 그렇게 한 것 같았습니다. 비가 오면 엄마들은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오지만 그 친구는 마중 나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비 오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마중 나오는 엄마가 없어 엄마 없음을 또 한 번 확인하고 울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빗물에 가려 누구에게도 눈물을 들키지 않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은 엄마가 혼내고 잔소리 하는 것을 그렇게도 싫어하는데,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이 엄마에게 혼나고 잔소리 듣는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엄마 없이 살아보지 못한 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 잘 모릅니다. 엄마 없는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아서 또는 이야기를 듣거나 글을 통해 알뿐입니다. 엄마 없는 게 너무 싫고 속상하고 억울하다고 합니다. 엄마가 없어 죽고 싶다고 합니다. 죽고 싶을 만큼 사무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참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마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랫동안 헤어져 있는 이들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경우도 겪어보지 못해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겪는 그리움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연인들일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하루만 보지 못해도 마치 몇 년을 만나지 못한 사람처럼 서로를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일종의 그리움인 셈입니다. 학교 공부가 힘들고 어려워도, 직장 생활이 바빠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만납니다. 중요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함께 걷고 싶고, 함께 먹고 싶고, 같이 있고 싶어 견디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좋은 일, 좋은 것, 아름다움, 사소한 일상의 무엇이든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서로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서로를 향한 그리운 마음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가로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엔 국경도 없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가 노래한 것처럼, /봄에 과수원으로 오라./ 여기는 꽃이 있고/ 따뜻한 햇볕이 있고/ 포도주가 있고/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이 있다./ 그대 만일 오지 않는다면/ 이 모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대 만일 온다면/ 이 모두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상대는 마치 절대적 존재와 같습니다. C.S. 루이스가 고민했듯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나의 소중한 사람이 원하는 것이 갈등을 일으킬 때 나의 소중한 사람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움은 일종의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리움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고선 채워지지 않는 공백과 같은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그 대상이 아니고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르거나 모든 것이 풍요롭고 넉넉해지면 그리움도 상당할 정도로 줄어듭니다. 오랜 시간과 풍요가 그리움을 상쇄시키는 것은 긍정적이기 보다 순수가 변질된 일종의 세속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그리움이 충족된다고 해도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로 보아 그리움의 충족이 삶의 절대적인 토대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고향이나 소중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무리 순수하고 강렬해도 그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적이란 결국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나의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바랄 것이 없이 충족한 상태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 누구나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습니다. 그 공허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즉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인간 삶의 절대적인 토대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뵙고 싶고,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지닙니다. 이것은 단순한 관념이나 인식이나 지식이 아니고 그리움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삶의 형식이 특징 지워집니다. 가을 찬바람에 고향 냄새가 아닌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더 높은 구 만리 창공의 가을 하늘에서 하나님의 청결한 마음을 느끼는 것이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워하면 할수록 그리운 이의 얼굴이 내 마음에 파고들 듯이 하나님을 그리워하면 할수록 가슴이 고동치고 뜨거워지는 것이 그리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움은 행복이지만 또한 안타까움이고 슬픔이고 눈물이며 아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나의 가까이에 계시지만 멀리 계신 것 같고, 곁에서 속삭이시지만 그 소리가 점점 아득해 지는 것 같아 더욱 그리워집니다.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는 것이 행복이며 또한 설렘이며 눈물겨움이듯이 하나님을 그리워함에 행복과 불행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리워함이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것이고 언제라도 하나님을 만날 준비로 사는 영적 생명의 풍성함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고 내 모든 것을 그분에게 맞추지 못함에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많은 내용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즉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들의 하나님께 대한 절절하고 애틋한 그리움이 시편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처럼 헐떡이고, 그리움에 잠 못 이루어 뒤척이며,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해하는 노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경험하는 온갖 좋은 것들로 늘 뵙고, 함께 있어도 가시지 않는 그리움에 행복하고, 또 하나님은 아쉽고 그리운 나의 노래이고, 나의 연인이며, 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 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시 4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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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오정미님의 댓글

오정미

하나님은 아멘이십니다.양쌤생각~~^^
우리 김제여고 친구들은 김의기선생님을 놓고 각축을 벌이며 경쟁하듯 선생님을 섬겨드렸습니다. 때론 종이학으로 때론 음료수로 때론 말씀으로., 동일하게 섬겨주신 김의기 선생님 당신은 참선생 나는 당신의 참제자 제가 진정 좋아하고 좋아했던 선생님은 의기쌤 한분뿐이었음을 이 지면을 통해 고백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꼭 만나겠지요? 따뜻하게 안아주실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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