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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자기실현 지양하고 자기부인 지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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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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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의 대화 중에, 이제 곧 인간의 성별도 취향과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때가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농담 비슷하게 하곤 하였습니다. 자신의 선천적이고 생물학적인 성과 상관없이 여자가 남자이고 싶으면 남자가 될 수 있고 남자가 여자이고 싶으면 여자가 될 수 있는 시대,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와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성을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시대와 사회, 이것이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성의 구별은 남자와 여자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성이 자유 선택의 대상이 된 지금 성의 종류는 50가지가 넘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 한 여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분명히 여자인데 자신이 남자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남자로 보아주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여자라고 여자 취급을 하면 성차별이나 불법이나 혐오범죄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분명히 남자인데도 본인이 여자라고 하면 그 사회가 그를 여자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상이나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여러 입장과 이해와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어머니를 관점에 따라 아저씨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상대주의는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전통적인 인식과는 다른 관점을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흰색을 검다고 하는 것도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이 사라지면 논리적으로 그런 주장이 가능하게 됩니다. 동성결혼이 정당하고 옳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 추구권을 방해하는 그 어떤 가치질서와 권위도 배격하는 현대인의 이런 시대적 가치관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절대적인 것과 전통적 가치질서를 허물기까지 하면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실현입니다. 거의 모든 현대인들은 자기실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실현(자아실현)은 인본주의 심리학의 용어로서 인간의 최상의 욕구에 해당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신자건 불신자건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실제로 어떻게 행복을 추구하느냐 하는 점에서 현대인들은 과거와는 너무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대인은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지만 인간의 행복 추구권은 절대화시켜서 그것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제거하고 파괴해 버립니다. 상대주의가 그런 생각을 갖게 하였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상대주의는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키지만 상대주의만은 상대화 시키지 않고 절대화 시켜 놓았습니다. 상대주의가 정직하다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여자가 된 남자를 다른 사람이 여자로 보지 않고 남자로 보는 자유도 허용해야 할 텐데 그렇게 하는 것을 성차별과 불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상대주의가 사상의 절대독재자로 군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부인을 지향하는 것이고 불신자들의 삶은 자기실현을 지향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자기부인의 삶을 지향하는 것은 그것이 곧 참된 자기실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물론 역설입니다. “지양”이란 변증법 철학의 중요한 개념으로서 어떤 사물에 관한 모순이나 대립을 부정하면서 한 층 더 높은 차원에서 그 대상을 긍정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높아지기 위한 목적으로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져야 하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자는 남을 대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나 남을 대접하는 것이 자신을 높이고 대접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은 자기부인을 지향하는 것으로 진정한 자기실현, 즉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사는 것은 자기부정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것은 곧 구원 받은 자의 삶, 심리학적 용어를 빌리자면 기독교의 구원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실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자기실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어떤 것을 성취하므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됨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자기실현이 행복의 절대조건이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 됨이 행복의 절대 조건입니다. 인본주의자들은 자기실현을 복음처럼 소중히 여기고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실현의 고상함(?)에 설득되거나 매료되어 있지만 자기실현의 구체적인 방법들이 얼마나 역겨운 것들이 많은지 깨닫지 못합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미국 백인 동성애자 75%가 100명 이상의 섹스 파트너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기조차 역겨운 것들이 소위 차별금지법이나 혐오금지법 같은 것에 페키지로 묶여 있습니다. 성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질서를 허무는 것은 자기실현의 현저한 왜곡 중의 하나입니다.

현대인의 자기실현의 방법들의 근저에는 기독교의 가치와 문화를 파괴하려는 음모가 숨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주도했던 철학과 사상이 일차적 저항의 표적으로 삼았던 것이 기독교의 영향이었습니다. 그런 운동이 실질적으로 진보와 계몽과 발전을 가져왔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까지 그런 운동의 사상적 기저가 되고 있는 반 기독교적 정신을 간파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철학과 사상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기독교를 공격하였습니다. 칼 마르크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종교란 기독교를 지목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혁명 이론이 실패하자 마르크스를 추종하던 철학자들은 그 책임을 기독교 때문이라고 하며 더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마르크스 추종자이며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던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는 1919년 헝가리 공산정부의 문화부 정치위원으로 있으면서 어린학생들에게 포르노 수준의 노골적인 성교육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전통적인 기독교적 성적 가치관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학부모들의 심한 반발로 실패하여 계속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시대정신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서울특별시, 경기도, 광주광역시, 전라북도가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공포하였는데, 그 안에는 어린 학생들에게 성적 방종을 유도하는 조항들과 젠더, 감수성, 동성애, 페미니즘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멤버였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감성 헤게모니 선점을 주장하며 문화, 교육, 지식계로 침투하자고 주장했고, 미국 대학 강단을 좌편향으로 심각하게 기울게 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존재하는 모든 이론을 비판하라’고 선동하여 기존의 전통적 가치관을 뒤흔들어 부정적 사고체계를 구축하고 좌익의 주장을 확산하기 위해 우익의 주장을 억압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론화 하였습니다. 그들은 서구사회의 인식의 차별이 법제도의 차별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했습니다. 마르크스 진보 좌파 계열의 급진 페미니스트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면서 兩性체계를 부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50개가 넘는 사회적 성 개념이 만들어지고 부자연스러운 성적 방종이 자기실현의 방편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추구되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 질서의 혼란은 전통적인 가정과 가족의 관계는 물론 일반적인 인간관계에 예상을 불허하는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여간 불안하지 않습니다.

비평이론가인 더글라스 캘너(Douglas Kellner) UCLA 교수에 따르면, 게오르그 루카치, 안토니오 그람시, 에른스트 블로흐, 발터 벤야민, 그리고 테오도어 아도르노에서 프레드릭 제임슨과 테리 이글턴에 이르기까지, 많은 20세기의 마르크스 이론가들이 마르크스 이론을 생산하여 대중 및 사회적 생활에 대한 영향력과 관련한 문화 형식의 분석에 이용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영향을 총칭하여 문화마르크스주의 라고 하는데, 이들은 가정, 사유재산, 종교, 국가를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상이 젠더 페미니즘의 성별갈등이나 성별해체와 맞물려 돌아가고, 이것을 반대하면 수구, 비도덕, 부패, 성차별, 가부장적으로 낙인찍는 여론전을 통해 의식을 잠식해 가고 있습니다. 문화마르크스주의는 가정을 파괴하고 가족을 해체하고 그 결과 출산은 줄어들어 인구가 감소하여 국가가 노령화 되어 경쟁력의 약화로 문명과 문화를 역행하여 필경은 온 국민이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는 자기실현과 반대되는 자기 부인을 강조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자기부인은 자기실현을 구가하는 현대인에게 최대 장애물입니다. 그들은 “자기부인”의 개념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자기실현”방해한다고 생각하고 성경과 기독교를 파괴할 공격 대상으로 삼습니다.

문제는 자기실현적 가치관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을 자기실현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실현을 목적으로 삼게 되면 성경의 하나님을 믿을 수 없어서 하나님을 자기들의 취향에 맞는 하나님으로 바꾸게 됩니다. 절대주권으로 인간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실현을 도와주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섬깁니다.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보편적 질서와 가치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옳은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좋은 것이 옳은 것이고 선한 것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할 때 나에게 잘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나쁘게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엄격하게 말해서 이기주의자입니다. 오늘날은 철학과 사상과 가치와 시대정신이 이기주의를 합법화 하고 있습니다. 궤변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이기주의도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 시대는 윤리 도덕적 기준으로 볼 때 인간 이하의 짓을 해도 존경 받고 인기를 누리고 노벨상까지 받습니다. 자기실현에 집착하는 사람들과 복음을 자기실현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세상은 점점 혼란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형식이 자기부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요 16:24)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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