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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인본주의에 대한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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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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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이번 미국의 중간 선거는 과거 어느 선거보다도 유권자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결과는 사람들의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상원은 공화당이,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었습니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했다고 자평하였고 민주당은 하원에서 다수당이 되었지만 그리 만족하지 않은 듯 조금은 우울한 분위기입니다. 지난 100년 간 미국의 중간 선거에서 집권당이 하원 다수당이 된 경우는 딱 두 번, 루즈벨트와 부시 대통령 때뿐이었는데, 루즈벨트는 경제대공황 때문에 하원에서 승리했고, 부시는 911 테러 사태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하원에서 승리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미국 국민이 언제나 야당에게 표를 주었습니다. 이번 중간 선거는 이와 같은 전례에 비교된 반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공화당은 상원에서, 민주당은 하원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 후보자 지원 유세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원유세를 한 11개 지역 중 9개 지역에서 공화당이 승리를 하였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캐버너 대법관 인준 과정에서 그에게 성폭행 미수 전력이 있었다는 고발이 거짓임이 밝혀지는 불리한 가운데서도 전직 대통령 오버마의 적극적인 지원 유세에 힘입어 하원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번 중간 선거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성공으로 흑인을 비롯한 저소득층들이 공화당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흑인 유권자 90% 이상이 민주당을 지지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미국의 공화당은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이 만들었는데 흑인들은 언제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신기합니다. 과거 선거에서 투표 나이가 되어 처음 투표에 참가하는 유권자가 고작 1-2%였는데 이번 중간 선거에는 17%라는 것도 이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젊은이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하였다는 것이며 이런 현상은 과거에 비하면 열배도 넘는 참여율입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진보를 선호하기 때문에 진보정당은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선거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번 선거에서 학벌이 낮은 유권자는 공화당을 지지하였고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유권자는 거의 민주당을 지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결과를 두고 사람들은 저학력 유권자들은 경제가 좋아져서 취업의 문이 넓어진 것 때문에 공화당을 지지하였고, 고학력 유권자들은 이민, 환경, 외교,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하여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까지 세계적인 추세는 어느 나라든지 젊은 유권자들과 고학력 유권자들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이는 좌파가 68혁명을 통해 정치계, NGO, 대학, 문화계 등을 점령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68혁명의 이론적이고 지적인 배경에는 신 마르크스주의인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학자들은 대부분 정치학자나 경제학자가 아닌 예술, 철학, 문화 비평가들입니다. 그들은 소위 68혁명에 몸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이론적으로 지지하면서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에게 기존의 제도와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도록 선동하였습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나 68혁명은 학문적 이론과 건전한 철학적 토대에서 교육과 설득을 통해서라기보다 선동하는 방법으로 대학 강단을 비롯하여 정치계, NGO, 인문학계, 문화계 등을 점령하였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로 인하여 좌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노아방주와 같았다고 합니다.

철학, 사상, 정치, 경제 등에 대한 문제가 비전문가들인 이들에 의해 비틀어지고 왜곡되어도 나이브한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은 그들의 주장을 종교처럼 믿고 추종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대학 강단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핵심 멤버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에 의해 완전히 왼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여세는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까지 몰아쳤습니다. 어떤 언론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대학의 교수 12명 중 11명이 좌파 내지는 진보주의자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중간 선거에 고학력 출신들이 민주당을 지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고학력 유권자들은 진보적이며 공화당을 싫어합니다. 특히 고학력 백인 여성들은 거의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미국에서 공화당은 보수정당이고 민주당은 진보정당인데 기독교적 관점에서 세계 정치사를 바라볼 때 절대적이거나 단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진보보다는 보수가 기독교적 가치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면 공산주의나 자유민주주의가 다 나름의 그럴듯한 이상을 제시하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또한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무는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듯이 정치나 경제도 그 열매를 보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경제적 사회적 인간 이익에 기여하는 열매를 통해서 판단할 때 자유민주주의가 불완전하고 약점이 많지만 공산주의보다는 월등하며, 자본주의 역시 온갖 문제점과 부작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보다 낫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정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역사관에 있어서 진보주의는 현재를 미래를 위한 출발점으로 보고 보수주의는 현재를 연속적이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거가 도달한 최신의 지점이라고 봅니다. 이런 역사관은 얼핏 생각하면 진보는 미래지향적이고 보수는 과거지향적인 것 같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보수는 현재를 과거가 일구어낸 결과로 보기 때문에 그 토대에서 미래를 지향하지만 진보가 현재를 단순히 미래를 위한 출발점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은 거의 모든 과거를 부정한다는 의도가 거기에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보수나 진보라는 것 때문에 어느 정당의 정책을 지지하거나 반대해서는 안 되고 어느 정책이 더 나으냐와 어느 정책이 덜 나쁘냐를 판단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또한 표면적으로는 좋은 정책이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포퓰리즘 정책을 분별할 수 있는 지적 역량도 길러야 합니다. 무엇보다 거짓과 왜곡과 선동과 프레임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나쁜 언론이나 정치인이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폭로하면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는 피해 당사자와 일반인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동안 거짓 프레임은 더욱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정당 자체를 좋은 정당이나 나쁜 정당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정치적 정책이 완벽할 수도 없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언론 또한 완벽하게 공평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대부분의 경우 상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현실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완벽하게 옳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덜 나쁘냐를 판단하여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정치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그릇만 달랐지 내용은 대동소이하였습니다. 어느 당이 집권하건 미국의 이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도출하는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미국의 정치인들과 기업들과 언론들에 의해 미국의 경제와 군사력이 약화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선언은 그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지난 대선은 정치와 언론의 온갖 거짓과 왜곡으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대선을 앞 둔 미국의 유권자들은 3억이 넘는 사람 중에 대통령으로 뽑을 인물이 없다고 넋두리를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의 진보주의 정치인들과 언론들의 거짓말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언론에게 순수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정치의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을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는 행태를 지속적으로 계속하는 것은 용납하기가 어렵습니다. 거의 모든 주류 언론은 지금까지도 트럼프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대통령의 신상털이와 말실수 같은 사소한 결점들을 폭로하는데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미국인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은 잘못된 정책은 비판하고 잘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전제에서 우리는 언제나 완전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이나 덜 나쁜 쪽을 지지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덜 나쁜 것에 안주하지 말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인본주의에서 더 나은 것이란 아무리 최상의 것이라도 상대적이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상대적 최상의 것을 절대적 가치관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본주의의 철학적 뿌리는 자연주의입니다. 자연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열매가 세속적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주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거부하고 단지 모든 실재는 물질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뿌리에서 출발한 인본주의는 다양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인본주의는 유신론을 배격하고 인간을 우주에서 가장 높은 존재로 봅니다.

종교를 진보의 방해물로 보는 마르크스적 인본주의, 무신론자협회(Atheist Association 혹은 Advancement of Atheism)를 결성하여 모든 종교는 거짓이고 미신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계몽해야한다는 무신론적 인본주의, 유니테리언 유니버설리스트협회(Unitarian Universalist Association) 진영의 윤리 문화 활동과 종교적 인본주의자회(Fellowship of Religious Humanists)와 인본주의 유대교협회(Society for Humanistic Judaism)와 같이 자연주의적 틀 안에서 종교적 세계관을 전파하는 종교적 인본주의, 전통적 종교를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세속적 인본주의가 있습니다.

세속적 인본주의를 지지하는 학자로는 존 듀이(John Dewey), 버트란트 럿셀(Bertrand Russell), 코를리스 라몬트(Corlis Lamont), 에이어(A.J. Ayer), 에리이 프롬(Erich Fromm), 아브라함 마슬로우(Abraham Maslow), 프란시스 스키너(B.F. Skinner), 줄리앙 헉슬리(Julian Huxley),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 중심의 이상에 기초하여 종교적 정통교리에 대한 인본주의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 집단은 1941년에 미국 인본주의자협회(American Humanist Association)를 설립하고 반 기독교적 자기들의 주장을 펴왔습니다. 마르크스적 인본주의, 무신론적 인본주의, 종교적 인본주의나, 세속적 인본주의가 서로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있으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존엄을 강조하고, 인간 이성을 신뢰하며, 인간의 진보와 향상 가능성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는 면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라고하면 “인간의 이익을 위한 헌신”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또는 인도주의 혹은 그리스와 라틴 고전에 대한 연구나 사회과학에 반대되는 인문학 연구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본주의란 인간 존재의 목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단지 인간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상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인본주의의 등장과 도전으로 인하여 기독교적 인본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기독교적 인본주의란 동그란 네모와 같이 모순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세상의 그 무엇보다 존귀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 다음으로 인간을 위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믿고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간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인간을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고 가르치는 것이 인본주의는 아닙니다. 인간은 진정 인간을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 가운데 인간을 위하는 최선이 들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인간을 위한 모든 노력은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많은 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리나 현실에서는 하나님 신앙의 전제에서 인간을 위하는 것과 인본주의가 인간을 위하는 방법과 가치가 서로 겹쳐 있어서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나 표면적으로는 인본주의자들의 주장이 성경의 가르침과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나, 동물과 식물까지도 사랑하고 보살피고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환경을 보호하고 오염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정의, 평화, 평등, 복지 등의 주장은 인본주의자들과 성경의 가르침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 자체만 보아서는 그 주장이 성경의 가르침인지 인본주의자들의 주장인지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약자나 소수자가 아닌 일반인을 역차별 해서는 안 되고,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으로 사람이 피해를 당하도록 해서는 안 되며, 복지의 폐단으로 부지런한 사람의 것으로 게으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지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러한 폐단이 지나치게 극심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면 아이의 장래를 망치게 되듯이 국민의 요구를 정부가 다 들어주는 것도 국민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교육이나 인격 수련이나 심지어 신앙을 통해서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가나 교회나 가정이나 그 어떤 인간 집단이라도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전제와 계산 없이 정책을 세우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본주의는 그러한 전제 없이 정책을 세우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온갖 부작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지도자를 믿고 법과 원칙을 느슨하게 적용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도자는 공동체와 자신을 위해서 법과 원칙을 엄격하게 세우고 지켜야 합니다. 내가 성직자인데 나쁜 짓을 하겠느냐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처신하는 것은 신앙적 자세가 아니고 아주 나쁜 인본주의입니다. 법과 원칙을 세울 때는 지도자 자신을 비롯하여 공동체 모두가 강도이고 도적이라는 가정 하에 세우는 것이 성경적이고 더 안전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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