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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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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201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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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사회에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특별히 영화 <신과 함께>는 2017년 12월 1편 '죄와 벌'이 1,400만 명을, 2018년 8월 2편 '인과 연'이 1,200만 명이라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연속 1,000만 명이 넘는 관객 동원을 기록한 영화가 됐다. 개봉 전 이미 전 세계 100개국이 넘는 곳에 선판매가 되었고, 폭발적인 흥행과 이후의 기대에 따라 3, 4편이 제작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과연 크리스천들은 영화 <신과 함께>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할지를 짚어봤다.

1. <신과 함께>의 흥행 요인

우선 상업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제대로 간파한 감독의 역량을 들 수 있다. 김용화 감독은 <오! 브라더스>(2003), <미녀는 괴로워>(2006), <국가대표>(2009)까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300억 원이 넘는 제작?홍보비용을 들였던 <미스터 고>(2013)가 흥행에 실패하며 큰 어려움에 빠졌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제작비 400억 원의 <신과 함께>라는 대작영화를 만들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고, 관객이 어떤 코드에서 호응하는지 면밀히 분석해 이를 영화에 반영했다. 여기에 <미스터 고>를 만들며 쌓인 CG(Computer Graphic)에 대한 노하우가 결합되어 세련되면서도 안정적인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 관객층이 4~50대와 10대였다는 통계를 보면, 가족 단위로 관람하기에 좋은 영화였다는 점 또한 흥행요인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큰 인기를 모았던 원작 웹툰(주호민 作)의 '저승-이승-신화' 구조 속에 담긴 단편적인 에피소드와 다양한 캐릭터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잘 엮어내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영화의 서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음으로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용서'와 '위로', '구원'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1편은 '모성애'로, 2편은 '부성애'로 풀었다. 그 안에 형제, 유사가족의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졌고,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 또한 관객들이 심판자가 아니라 주인공들의 사연을 경청하는 방식을 취하게 함으로써 영화에 온기를 더했다.

또 한 가지는 <신과 함께>의 영화적 배경이 한국인에게 익숙하면서도 한번 쯤 경험해 보고 싶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신과 함께>는 불교의 세계관을 주요 모티프로 삼되 유교, 도교와 민간신앙이 혼재된 사후세계를 그리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기독교인들조차 무의식적으로 '전생', '인연', '액땜'과 같은 말을 사용하고, 이사를 하거나 먼 길을 떠날 때 날수를 따라 동·서·남·북 네 방위(方位)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는 귀신을 뜻하는 '손'이 없는 날 이사를 가려는 풍습이 존재하며, 새해가 되면 평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토정비결'을 보고, 결혼을 앞두고 '궁합'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제작을 시작할 때 고사 드리는 모습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직도 한국인 대다수의 심성에는 <신과 함께>에서 그리는 사후세계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꽤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신과 함께>의 사후세계관은 대다수의 한국 성인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접해온 <전설의 고향>이나 '전래동화' 이야기의 영화버전인 셈이고, 어린이들에게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한국형 판타지인 셈이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이 상승효과를 내면서 <신과 함께>는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무려 2,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2. <신과 함께>의 세계관

<신과 함께>에 담긴 세계관은 무엇일까? 우선 불교의 세계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람의 사후에 저승으로 가게 되며 이곳에서 49일을 지내며 7번의 재판을 받는다. 죽은 사람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까지 49일이 주어지며, 이후에 지은 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다. 그래서 이 기간에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재를 지내주게 된다. 7번의 재판은 거짓, 나태, 불의, 배신, 폭력, 살인, 천륜 등 7가지 항목이며, 모든 재판을 통과한 자만이 환생할 수 있다. 여기에 불교에서는 죽은 사람이 혼자 심판의 시기를 걷는 것과 달리 영화에서는 우리나라의 민간신앙에 나온 삼차사가 등장해 이 시기를 함께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사실 이러한 사후 세계관과 죄에 대한 인식은 서구에도 등장한다. 고대에는 죽음이 끝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과 죽음 너머 영혼이 사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서구교회 역시 4세기 경 사막의 수도사 에바그리우스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7가지 대죄(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를 6세기 경 교회로 가져와 천년 이상 피해야 할 큰 죄로 여겨왔다. 13세기 단테의 신곡에는 여행자 단테가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베르나르두스의 안내를 따라 지옥, 연옥, 천국으로 여행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처럼 사후 세계관에 대한 생각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동양과 서양 모두에 있었고, 죄에 대한 인식 역시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3. 기독교의 생명력 '부활' 이야기해야

그렇다면 한국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또한 이 영화를 보고 감동과 공감을 표시한 많은 비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접촉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 핵심은 '부활'에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막 12:27)이시다. 성경에 나온 심판과 상(賞)주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로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며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고 누리고 나누며 사는 삶을 살도록 요청하기 위해 주어진 경고이자 소망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다.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끝을 의미한다. 죽음은 절망일 수밖에 없고,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며 사람들은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심판에 대한 자각과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종교적 차이를 들어 금하거나 다름을 거론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소극적인 대응이 될 수밖에 없다.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의 철학과 유한한 종교가 다다르지 못하는 지점에서 기독교의 생명력을 이야기해야 한다. 구원의 지평까지 나아가야 한다. '후회'를 넘어 삶의 방향이 바뀌는 '회개'가 중요하며, 스스로의 깨달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실존의 한계를 깨뜨리사 긍휼과 은혜로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히 4:14-15) 기독교에 소망이 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구원은 피안(彼岸)으로의 도피나 훗날 주어질 보상 정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이미 시작된 역사적 사건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4.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질서 놓쳐선 안 돼

철학자들과 문학가들이 끊임없이 사후세계를 탐구하고 형상화하는 까닭은 이 땅에서의 부조리함과 고난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웹툰부터 영화까지 제작된 <신과 함께>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적인 성공의 기저에 흐르는 사람들 그리고 시대의 갈망을 기독교 신앙은 읽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복음이 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지 더욱 확신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문화와 철학, 종교가 가리키는 진리의 이정표 너머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새 창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주님의 영광은 만인에게로 흘러 들어가고, 만인에게서 흘러 나온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거울이 아니라 빛이지요." C.S.Lewis 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 나온 대화 중 일부다. 우리에겐 오늘도 영원의 빛을 구하는 사람을 향한 공감적 시선이 필요하다. 더불어 우리에겐 그 빛을 삶과 문화를 통해 창조적으로 증언할 소명이 있다. 다시 <천국과 지옥의 이혼> 중 일부를 나누며 글을 맺고자 한다. "자네는 자유라는 선물 덕분에 창조자와 가장 닮은 존재가 되었고, 영원한 실재의 일부가 되었지... 자네는 영원한 실재의 정의(定義)를 결코 파악할 수 없어... 우리는 그것을 몸으로 살아내야 한다네."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 창조의정원 담임)
ⓒ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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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히 9:27님의 댓글

히 9:27

그 영화를 볼 기회가 있든 없든, 모든 기독교인들이 목사님 글의
다음과 같은 요지는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 나온 심판과 상(賞)주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로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며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고 누리고 나누며
사는 삶을 살도록 요청하기 위해 주어진 경고이자 소망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다.

후회'를 넘어 삶의 방향이 바뀌는 '회개'가 중요하며,
 스스로의 깨달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실존의 한계를 깨뜨리사 긍휼과 은혜로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히 4:14-15) 기독교에 소망이 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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