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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중성은 불완전성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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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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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 자꾸만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 같아 친구에게 선생님이 이중인격자 같다고 한 말이 선생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이중인격자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선생님은 며칠을 앓아누웠습니다. 나는 내가 해 놓고도 그 말이 그렇게 심한 말이었나 싶어 나 역시 내심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중인격자라는 말을 들으면 인격적 모독 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죄인인데, 그리스도인들 중 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구체적으로 누군가로부터 ‘당신이 잘못했어!’라는 말이나 ‘당신은 죄를 지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사실 여부를 떠나 몹시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당신이 잘못했어!’라고 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당신은 죄인이야.’라고 하는 것은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용납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모든 인간은 이중적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로부터 이중적이라는 지적을 받으면 인격적 모독으로 생각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모든 동물을 한 쌍씩 받아들이는데 ‘선’이 혼자 들어오려 하자 승선을 거부하였습니다. 승선을 거부당한 ‘선’이 자기와 함께 방주에 들어갈 만한 자기의 짝을 찾아다니다가‘악’을 데려와서 노아가 그들을 받아들여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게 됐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이 세상 어디에든지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모든 인간은 겉으로는 선한 것 같지만 내면 깊숙한 어느 곳에 잠재해 있던 악이 어느 순간 불쑥 드러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은 참으로 존경 받을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복음과 죄와 철학과 사상에 대한 그의 설명과 가르침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바울은 말로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친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이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려고 날마다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켰습니다. 그러한 바울도 자신의 이중성에 대하여 심각한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간의 이중성을 소재로 한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헨리 지킬(Henry Jekyll) 박사는 인간에게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본능이 있다는 가설의 전제에서, 여러 실험 끝에 자신의 인격을 둘로 나눌 수 있는 화학약물을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지킬 박사는 그 약을 먹고 자신의 인격을 둘로 나누기에 성공합니다. 하나는 본래의 지킬 박사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의 분신인 에드워드 하이드(Edward Hyde)입니다. 지킬 박사는 본래의 자기이고 하이드는 내면의 악이 극대화 되어 나타나는 또 다른 자기입니다. 약물에 의해 하이드가 된 지킬은 밤에 돌아다니며 온갖 범죄를 저지릅니다. 자신을 두 인격의 존재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지킬은 자신의 성공에 고무되어 너무 자주 변신하여 나중에는 약물에 의하지 않고도 하이드가 되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킬 박사가 만든 약물입니다. 이 소설 후반부에 가면 지킬 박사가 약물 제조에 계속하여 실패하게 됩니다. 실패의 이유는 처음 약물을 만들 때 약재 하나에 지킬 박사 자신이 전혀 예상치 못한 불순물이 섞이게 되고, 그 부주의로 인한 실수가 의도했던 약물 제조에 성공하게 하였습니다. 지킬 박사는 자신의 성공이 실수와 우연에 의한 것이고 자신의 의학적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게 되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킬 박사가 의도했던 것은 인간에게 선과 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신적 권위를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외에 인간의 이중성 내지 다중성을 소재로 한 영화 도플갱어, 카인의 두 얼굴, 가면의 정사, 셔터 아일랜드 등이 있습니다.

인간의 이중성은 선이나 악을 인간이 결정하거나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어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왜곡되었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선과 악을 물질의 물리적 성분으로 규명하듯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선으로,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은 악으로 사람들이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어떤 물질에 대한 인간의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이 아니라 사탄의 공작과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뜻을 지향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선을 드러낼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싫어하여 거부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왜곡되어 악을 드러내게 됩니다. 선이나 악은 지향성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지향하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따르는 것이 악입니다. 선과 악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지 인간이 선택하거나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이나 사상이나 문학이나 이념이나 그 무엇이라도 선과 악을 인간이 규정하는 것으로 전제하는 이론이나 주장은 지킬 박사가 발명한 약물과 같이 성공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수 있지만,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때는 돌이킬 수 없고 파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느끼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절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인간 이중성이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문제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다른 한 편 그 이중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존재의 고귀함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능성이 바로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복음입니다.

인간은 불가피하게 누구나 이중적입니다. 인간관계를 비롯하여 모든 일에 사회적 체면과 품위도 지켜야 하고 손익 계산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중이 아니라 삼중 사중이 되어도 부족합니다. 바울에게도 이중적 갈등이 있었으니 위대했던 역사적 인물을 비롯하여 모든 역사와 사건의 이면에는 다층적 해석의 여지가 남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해 보면 사람 뿐 아니라 사건들이 모두 다중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종교개혁이나 정치적 혁명이나 학문의 세계나 어디든지 누구에게나 인물과 사건에는 다중적 동기와 목적들이 중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시절을 직접 살았던 사람의 이중성과 그 사람의 활동과 업적을 기록하는 사람의 이중성과 그 기록을 감독하는 사람의 이중성이 쌓이고 겹쳐서 역사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훗날 그 기록을 읽는 사람의 이중성이 첨가되면 진실을 규명하기란 더욱 어려워집니다. 다층적이고 다중적인 역사와 역사적 인물에 대하여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후대인들의 몫입니다.

이런 이중성은 역사와 역사적 인물에게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피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편애, 친구의 배신, 사랑하다 미워하게 되는 애인들... 하지만 이 같은 이중성은 악하다기보다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일 수가 있습니다. 악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 때문에 드러나게 되는 이중성은, 자신의 이중성에는 겸손함으로 타인의 이중성에는 너그러움으로 대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인들의 이중성은 용납하기가 너무 역겹습니다. 자신들의 이중성에 겸손하지도 않고 다른 이들의 이중성에 너그럽지도 않습니다. 한국 현 정부의 적폐청산이나 인물 등용에 과거 그들이 그렇게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던 요인들을 지금 다른 이들이 제기하자 정치적 공세라고 합니다. 그래도 과거에는 인물 등용에 부정이 드러나면 낙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많은 부정이 드러나도 낙마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이중적이라고 하지만 검은 색을 희다 하고 흰색을 검다 하니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차라리 진보적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신념의 이중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보적 정치 이념에 대한 저들의 충심에는 도무지 이중성이 없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30여 년 전 탈주범 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일갈한 말은 당시 사회를 정확하게 고발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였기에 아직까지 깊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은 “보수 유죄, 진보 무죄”가 현 한국 정부와 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인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이곳 미국도 예외가 아니지만 한국 같으면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미국에서는 일어났습니다. 대법관 지명자 케버너에게 성폭행 당할 뻔 했다는 크리스틴 포드라는 심리학 여교수의 고발이 상원법사위와 연방수사국 조사와 상원 본회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결정이 난 셈입니다. 케버너가 연방대법원 판사로 임명이 되었으니 포드는 당연히 감옥을 가야 할 텐데 아직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진보 정치인들과 거의 모든 주류 언론들은 아직까지 케버너가 연방대법원 판사가 된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보수 유죄, 진보 무죄”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케버너가 연방대법원 판사로 들어가게 된 것이 정상적인 미국인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희망적 사건이 된 것 같아 감사하고, 모든 인간은 이중적인데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진보에 대한 충심에 일체 이중적이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답답함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2-25)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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