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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인생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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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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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d81a9612451ef397ba58a5eb9c4f861_1489420213_44.jpg성경에서 솔로몬에 대한 기록들을 읽으면 은근히 샘이 납니다. 솔로몬은 왕으로 등극할 때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솔로몬 치세 초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의 왕위가 견고하였고 온 나라가 창대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천 마리의 짐승을 잡아 어머 어마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와 그 제사로 표현되는 하나님께 대한 솔로몬의 태도에 대하여 인간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하나님께서 감동하셨습니다.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솔로몬은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왕의 직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태도만으로도 하나님을 흡족하게 한 솔로몬은 이 대목에서 더욱 하나님을 감동하시게 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와 부귀영화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든다고 누구나 솔로몬처럼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셨던 복을 자기에게도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복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솔로몬의 경우는 전무후무한 특별한 경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에누리하셔서 솔로몬이 받은 복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이라도 주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받은 복은 솔로몬에게만 필요한 복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솔로몬이 받은 복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받은 그 엄청난 복은 솔로몬 자신에게마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샘내던 생각을 접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귀영화를 꿈꿉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꿈을 이루면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장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니까 그것을 소원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장수가 복이듯이 고난과 죽음까지도 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장수를 하든지 단명을 하든지 그것 자체가 영적으로 서로 상충되는 복과 저주는 아닙니다. 장수하고 죽음도 평안하게 맞이하는 악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진시왕의 불사약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아들을 공부시켜 검사를 만든 어떤 어머니가 점점 나이 들어 늙게 되자 늙는 것이 억울하고 죽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억울하다고 통곡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잘 되면 오래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억울하다며 대성통곡할 일은 더욱 아닙니다. 풍부한 것을 누리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야 할 사명이 있고, 가난과 비천한 형편에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가난과 비천한 삶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누렸던 부귀영화와 지혜와 지식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부름 받은 특별한 인물입니다. 솔로몬은 소유나 능력이나 지혜나 지식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인물입니다. 그가 한 이야기는 이론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상적 주장이 아니라 온갖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라는 면에서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더욱 중요한 사실은 무엇보다 솔로몬이 들려주는 수많은 지혜는 단순히 솔로몬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라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은 그 많은 소유와 풍부한 경험을 통해 인간을 기쁘게 하는 것은 먹는 것과 노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을 먹고 일하는 것이라고 한 솔로몬의 통찰은 소름 돋을 만큼 예리한 통찰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는데, 일은 하나님의 형상 중의 일부입니다. 일하기 싫어하고 먹기만 하려는 자는 기쁨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왜곡된 인간이기 때문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은 일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고 증거하며 그분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먹고 마시며 일하는 것보다 기쁜 것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솔로몬의 이와 같은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혜와 지식과 부귀영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인생에 대해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그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부귀영화를 누려보고, 즉 인생 임상실험을 통해 얻은 결론을 가지고 인생을 논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인생 이야기는 매우 논증적입니다.

 

첫째 논증, 지성은 인생 문제의 열쇠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전 1:12-18).

 

솔로몬은 매우 학구적인 사람으로 지식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지식의 가치가 의심스러웠고 설사 무엇이 현명하고 어리석은지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인생의 숙제들은 역시 미결로 남아 있음을 알았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일은 실망을 안겨다줄 뿐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인생의 의미는 찾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보다 더 풍요로워졌지만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 없음을 누구나 인정합니다. 이런 괴로움과 불행의 원인과 이유를 학문적으로 아무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둘째 논증, 쾌락이 인생 문제의 열쇠가 아님을 알았습니다(전 2:1-11).

 

학구적 노력에 실망한 솔로몬은 이제 다른 돌파구로 탐닉에 눈을 돌렸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어보았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맹목적으로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신중하게 탐색 작업을 하였습니다(전 2:3). 그는 쾌락을 추구해도 철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추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또는 백성을 위해 지혜로운 철학자가 되어 쾌락을 탐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쾌락은 잠시 행복감에 젖게 할 수 있고 짧으나마 일종의 성취감을 느끼게도 하지만 쾌락은 유통기한이 짧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온갖 종류의 격조 높은 향락과 저급한 육신의 정욕들을 다 추구해 보았습니다(전 2:1-3). 그는 항상 새로운 유흥을 찾았고 온갖 좋은 것을 호화판으로 누려보았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올랐고, 굉장한 저택, 기름진 포도원, 아름다운 정원, 넓은 저수지, 수많은 남녀 하인들, 엄청난 금은보화, 각종 악기, 기타 상상할 수 없는 일체의 멋진 물건들을 즐비하게 쌓아 놓고 살았습니다(전 2:4-8). 솔로몬은 마음에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다 현실로 누려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그것을 허용하신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그런 것을 누리는데 있어서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 조건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체의 기호를 다 충족시키고 눈에 드는 것들을 모두 소유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지성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열쇠들을 갖고서도 인생 의미의 문은 열려지지 않았고 지속적인 만족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셋째 논증, 탁월함도 인생 문제의 열쇠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자타가 인정할 만큼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 보다 월등하였습니다. 그를 능가할 사람은 그 전에도 후에도 없습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 지혜도 있고 미친 짓과 우매한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훨씬 낫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지혜가 우매보다 낫지만 지혜의 이점도 오래 가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넷째 논증, 수고가 인생 문제의 열쇠가 아님도 알게 되었습니다(2:18-23).

 

솔로몬은 지혜와 연락과 탁월함만을 위해 모든 시간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건물도 짓고 투자도 하며 생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활동들을 생각만 해도 역겨웠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서 많은 것을 쌓고 남겨도 그것을 손에 넣게 될 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애써 남긴 것을 원수가 누릴지 자식이 누릴지 모릅니다. 솔로몬은 수고의 길을 걷다가 발을 멈추고 자신이 지나온 여정을 찬찬히 뒤돌아보았습니다. 그가 밟은 노고의 길은 그에게 좌절감만 안겨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영원한 만족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 이름자 다음에 학위들이나 화려한 직명들이 줄지어 붙어 나오게 하면 인생의 의미가 있을까요? 이 모든 것들은 자신에게 영원한 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은 무엇일까요? 목적이 있고 보람이 있는 인생은 과연 존재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도록 하기 위해 솔로몬에게 지혜와 지식과 부귀영화를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이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수고에 하나님이 전제된다면 일대 반전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일생에 하나님이 전제 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은 하나님이 전제 되지 않은 인생에 대한 논증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전제된 인생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로 마음이 각성된 사랑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전제 된 새로운 관점을 가질 때 먹고 마시며 일하는 것이 행복임을 논증합니다.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고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해서가 아니라 양과 질에 상관없이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보다 기쁜 것이 없다고 논증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이 인생 논증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전 2:24)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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