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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우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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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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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d81a9612451ef397ba58a5eb9c4f861_1489420213_44.jpg 기독교라고 하면 사람들은 교회를 머리에 떠 올립니다.  교회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기관입니다. 교회를 이야기 하지 않고 기독교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 전체에 '교회'라는 단어가 116번 나오는데 그 중 114번이 사도행전에서 계시록까지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활동하신 복음서에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두 번(마 16:18, 18:17, 내용적으로는 몇 번 더 나오지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중점을 두시고 말씀하시고 가르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 나라', '그의 나라'라고 하기도 하고 '하늘나라'라고 하기도 합니다. 다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전제에서 ‘그 나라’라고 표현되고 있지만 하나님과 동일시되는 의미로서의 ‘그 나라’가 아니라면 ‘그 나라’라는 명칭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은 명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 투 데우(βασιλεία τοῦθεοῦ)인데, ‘나라’라고 번역된 바실레이아는 ‘통치’(reign) 또는 ‘주권’(sovereign)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은 번역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을 때 우리가 의식적으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영토나 영역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추상적인 이름과 그가 지으신 세상과 인간사에 대한 그의 주권과 통치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었고, 그 섭리와 계획에 따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을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천지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천지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순히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아니라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천지 창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인데, 제1절에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장차 될 모든 일들을 작정하셨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이상의 성경들은 창조 이후 계속 창조세계에 미치고 있는 하나님의 통치를 전제한 말씀들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4장「창조」제2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다른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창 1:27), 이성(理性) 있는 영혼들로 지으셨으며(창 2:7),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창 1:26, 엡 4:24, 골 3:10) 지식과 의와 참된 성결을 부여하셨고, 그 심령에(롬 2:14-15)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실행할 능력도 부여하셨습니다(전 7:29). 그런데, 그들은 변할 수 있는 그들의 자유 의지에 의해 범죄의 가능성 아래 있었습니다(창 3:6, 전 7:29). 그들은 그들의 심령에 새겨진 율법 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 2:17, 3:8-11,23)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지키는 동안 하나님과 교통하는 행복을 누렸고, 또 피조물들을 다스렸습니다(창 1:26,28).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고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통해 세 가지 수단으로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셨습니다. 첫째는 가정을 통해서, 둘째는 국가를 통해서, 셋째는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조직교회는 신약 시대에 와서 나타나지만 이미 창조 때부터 교회는 가정 속에 들어 있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가운데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통치에 반하는 특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바벨탑 사건입니다. 국가도 크게 보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지만 허용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는 나라는 견고하게 하시고 흥왕하게 하시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정과 국가와 교회는 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하지만 그 역할과 기능이 다릅니다. 칼빈주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역주권을 발견하고 강조하였습니다.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이란 모든 창조물은 소명이 다르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그 종류대로(after its kind) 창조하셨는데, 그것은 종류에 따라 소명이 다르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개념은 생물학적 영역에 그치지 않고 모든 창조 영역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소명이 다르고 베드로와 요한과 도마와 사도 바울의 소명이 다르듯, 세상의 다양한 국면들 속에도 각각 하나님이 창조하신 고유한 주권적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카이퍼는 그것을 영역 주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적용범위를 인간뿐 아니라 창조세계의 전 영역으로 확대하여 본 것입니다.   

 

성경은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를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타락된 인류 구속을 위한 중보자이실 뿐 아니라 또한 파괴되고 왜곡된 창조세계의 회복자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자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영역 가운데 그리스도가 주인이 아닌 영역은 단 한 부분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영역의 창조주이십니다. 이 세계는 다 하나님의 것이고, 그리스도의 것이며, 우리들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영역을 회복함에 있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당신의 동역자로 사용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 주권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입니다. 카이퍼의 이 같은 사상은 1880년 10월 카이퍼가 설립한 화란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rije Unversiteit te Amsterdam)의 활동과 1898년 미 프린스턴 대학에서 행한 칼빈주의에 관한 스톤 강좌(Stone Lectures)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이 강연은 Lectures on Calvinism이라는 제목으로 미 어드만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음).

 

카이퍼의 이 영역주권은 기독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이원론을 피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원론은 이 세계를 ‘거룩’과 ‘세속’으로 이원화시키고 신앙생활을 이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으로 만듭니다.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이나 카이퍼의 영역주권이 강조하는 참된 신앙이란 은둔이나 세속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 금욕과 절제로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열정을 품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뜻을 따라 그분의 통치에 순종하고 또한 그분의 통치가 만물에 미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간구하고 또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할 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통치가 천지에 미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우선적이고 구체적 기도 내용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고 그 다음이 “나라이 임하옵시며”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의 방법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고 기도할 내용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방법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사실은 기도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왜 기도의 내용이 중요한가 하면 모든 인간은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라고 하였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 기도를 강조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왜 기도를 많이 해야 하나요? 많이 해야 어쩌다가 바른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바른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간절하게 많이 하다가보면 어쩌다가 성령으로 기도하게도 된다는 것입니다. 순수하면서도 위트가 있고 진정성 있을 뿐 아니라 신학적 깊이가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함에 있어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성경의 핵심적 교리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둘째는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 셋째는 전적인 은혜, 혹은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설교를 하는 목사나 선교하는 선교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직장인이나 공무원이나 학자나 예술가나 학생이나 그 누구라도 무슨 일에서든지 위의 세 가지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도록 해야 하고 그 핵심적 교리를 손상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교훈의 맥락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정과 사회와 교회와 그 외의 모든 하나님 나라 영역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도록 해야 합니다. 좋은 권사님은 좋은 시어머니여야 하고, 좋은 장로님은 좋은 사장, 좋은 직장인이어야 하고, 좋은 집사님은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이웃이어야 합니다. 교회 활동 자체도 신앙생활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교회활동은 하나님 나라 훈련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교회에서만 잘해서는 안 되고 가정과 사회에서도 잘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에서 훈련만 잘 하는 교인은 훌륭한 교인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잘 훈련 받아 모든 하나님의 나라 영역에서 하나님의 생명 통치가 이루어지고 실현되도록 각자가 받은 소명을 따라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고 실현되도록 모든 노력을 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며 감격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보다 더 우선적인 일은 없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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