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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으려는 활동으로 교회를 잠들게 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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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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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d81a9612451ef397ba58a5eb9c4f861_1489420213_44.jpg 12월은 교회력으로 대림절 혹은 대강절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에서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입니다. 그러나 교회력에서 대림절은 절기의 시작입니다. 12월 25일이 되기 전 네 주간이 대림절입니다. 대림절의 클라이맥스는 성탄일입니다. 12월 25일이 딱히 예수님께서 실제로 태어나신 날은 아니지만 거의 온 세계인들이 그 날을 예수님 탄생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미 역사적으로 2천여 년 전에 이 땅에 오셨는데 왜 예수님의 태어나신 날을 중심으로 대림절을 지키는 것일까요? 대림이란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을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대림절이라면 성탄 기념일을 대림절로 할 것이 아니라 오순절 이후 어떤 기간을 대림절로 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시간 개념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역사를 서술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시간 개념의 틀 안에서 역사를 이해하고 서술 합니다. 그러나 복음과 하나님 나라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개념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통상적인 시간 개념에서는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 섞여 있습니다.

 

희랍어에는 두 가지 시간의 개념이 있는데 하나는 크로노스(χρόνος)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καιρός)입니다. 크로노스는 천문학적으로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여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시간입니다. 늘 어김없이 반복되는 낮과 밤이나 계절이 변하는 시간, 즉 사람들이 친구와 약속하고 만나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의 시간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동식물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시간이며, 철새들이 철 따라 이동하고,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여 알을 낳고 죽어 가는 시간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이 시간 안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크로노스”는 희랍 신화 속에 나오는 신의 이름입니다. 신화에서 “크로노스”는 자기의 친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하여 추방하고, 그도 역시 자기의 자식들에 의해 추방된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 “크로노스”라는 이름이 “시간”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시간은 자식들에 의하여 추방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자식이고, 어제의 자식인 오늘은 또한 내일의 아버지인 셈입니다. 아비는 자식을 낳고, 자식은 아비를 추방하며, 그 자식은 다시 자식을 낳고 자기의 자식에 의해서 밀려난다는 것이 고대인들이 이해한 시간의 개념입니다. 인생을 이런 개념의 시간 안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고대 희랍인들은 또 다른 개념의 시간, 즉 카이로스라는 시간을 생각해 냈습니다. 카이로스는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난 때를 가리킵니다. 어떤 일이 수행되기 위한 시간 또는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 시간이며, 계획이 세워지고 그 계획이 실행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희랍어의 이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채용하였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4-15)에서 사용한 “때”가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이 “때”는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라고도 하셨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도 하셨고,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논리적으로만 종합하려고 하면 그 때가 곧 올 것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이미 왔다는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직은 그 때가 오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또한 이미 그 때가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식적인 일상의 시간 개념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운 그 때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시간 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왔고 재림 때에 가서야 완성될 것인데, 신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이라고 설명합니다.

 

구원은 과거에 이미 이루어졌으나 완성되지 않았고 종말은 미래에 성취될 일이지만 현재에 들어와 있습니다.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이 같은 개념은 통상적인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도 설명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 상식적인 시간 개념에 억매이거나 집착하면 안 됩니다.

 

복음서들 중 마태 마가 누가는 비교적 우리가 이해하는 통상적 시간 이해의 토대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행적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우리의 통상적 시간 개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예수님에 대해 설명합니다(cf.요 1:1-14). 흔히 목사님들이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요한복음을 권합니다. 아마도 요한복음이 쉽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쉽다는 것은 문장이지 내용은 어떤 성경보다도 어렵습니다. 1장 1절 한절만 하더라도 너무나 어렵고 엄청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태초라는 단어가 언제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도 너무 어려운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새로운 차원의 시간 개념을 토대로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재림하실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이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미래는 너무나 확실합니다. 그 미래가 믿음으로 새 삶을 시작한 사람에게는 현재에 들어와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니라 <과거현재>이고 <현재미래>입니다. 종말론적 신앙이란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입니다. 과거가 현재에 들어와 있고 미래가 현재에 들어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아주 특별한 시간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러한 시간 개념으로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것은 통상적인 시간 개념으로는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역사학자도 과거가 현재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과 미래가 현재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파악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역사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파악한 역사학자가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신학자들은 성경에서 구속의 역사를 발견하였습니다. 역사란 어떤 원칙과 법칙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이 성취되어 가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구속의 역사를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이루어 가시되 공간 주도적이거나 시각 주도적으로가 아니라 듣고 믿는 방식으로 인간을 참여시켜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을 듣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 주권이 통합되어 구속의 역사가 성취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믿음 안에서 실제적 실재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실제 같지만 바울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재림과 함께 말씀을 듣는 믿음을 통해서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삶속에 침투해 있는 실제적 실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때에 대한 이해 없이 공간적이고 시각적인 결과와 증거만을 추구하는 감성적 신앙은 육체를 지치게 하고 영혼은 잠들게 할 뿐입니다. 평신도를 깨우는 제자훈련으로 시작한 서울 강남의 유명한 대형교회가 깨어 있는 교회라고 하기가 어렵고, 새벽기도로 유명하게 된 강북의 대형교회가 지금은 세습으로 교계는 물론이고 세인들의 심기마저 불편하게 하고 있으니 깨어 있다고 하기가 곤란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흥하고 활동이 활발한 교회가 가장 심각한 영적 잠에 빠져 있는 듯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2,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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