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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개념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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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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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d81a9612451ef397ba58a5eb9c4f861_1489420213_44.jpg철학적 용어로서의 개념(槪念)은 개개의 사물로부터 비본질적인 것은 버리고 본질적인 것만을 추출(抽出)해 내는 사유(思惟)의 한 형식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사물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나 관념을 뜻합니다. 어떤 대상에 관해서 공통되거나 일반적이 아닌 것을 버리고 공통된 것이나 일반적인 것을 꺼내어 개괄(槪括)함으로써 생겨난 관념을 말합니다. 개념이 취하는 일정한 언어적 표현은 말입니다. 

     

형식논리학에서 개념의 중요한 성질은 보편성과 동일성입니다. 각 개념에는 일정한 의미의 내용이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하거나 표현함에 있어서 임의대로 그 내용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물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개념의 항구적 타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인식의 변화에 따라서 개념의 의미내용은 변합니다. 형식논리학은 판단이나 개념의 사고 내용을 무시하고 추리의 형식상 타당성 성립 조건만을 연구하는 논리학이기 때문에 형식논리학적인 사고의 타당성은 변화를 무시해도 좋은 범위 내에 한정됩니다.

     

개념에는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일반개념은 많은 대상의 비교, 개괄(槪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예컨대 '국가' '태양' '추수' 등이 일반개념입니다. 집합개념은 상호 흡사한 사물이 하나의 집합을 이룰 때, 그 집합에 관한 관념을 집합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독적 집합과 관계가 있을 때 단독집합개념이라 하고 다수의 집합과 관계가 있을 때 일반집합개념이라 합니다. 전자의 예는 '큰곰자리' '뉴욕의 지식계급' 등이며 후자의 예는 '별자리' '계급'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개념은 사물의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을 말합니다. 관계개념은 대체로 시간, 공간, 인과성, 목적, 논리적 관계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실체 또는 인과성의 개념을 형이상학적이라 하여 배척하는 근대 실증주의의 관점에서는 여러 현상 사이의 상호 의존 관계가 중시되고, 거기에 성립되는 개념을 관계개념이라고 부릅니다. 관계개념의 전형이 함수개념입니다. 또한 구체적 개념과 추상적 개념이 있는데, 구체적 또는 유형적인 대상을 구체개념이라 하고, 구체적 또는 유형적인 대상에서 추상적, 무형적인 징표를 추출하여 만든 개념을 추상개념이라고 합니다. 전자의 예는 '인간' '설탕' 등이며 후자의 예는 '인간성' '달다' 등입니다. 절대개념과 상대개념도 다른 개념과 어떤 관계를 갖게 마련이나 일단 다른 개념과는 독립된 것으로서 생각될 수 있는 개념을 절대개념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 '책' 등이 그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다른 개념과의 관계에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개념을 상대개념이라 합니다. 예컨대 '낮'과 '밤', '하늘'과 '땅' 등입니다. 특히 상대개념이 상호간에 다른 것을 예상함으로써 그 의미가 명료해질 경우 상관개념이라 합니다. 이를테면 '위'와 '아래', '남편'과 '아내' 등이 그것입니다. 설명개념과 기술개념(記述槪念)은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쓰이는 개념을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사실을 단순한 사실로서 기술할 뿐인 개념을 기술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설명이란 원인이나 근거에 의해서 사실을 파악하게 되므로 원인이나 근거의 개념을 낡은 형이상학의 유물로 생각하여 이를 강력하게 배척하는 실증주의자는 과학의 임무를 다만 사실의 기술에만 한정시켜서 말합니다. 모순개념과 반대개념은 두 개의 개념이 서로 다른 편을 부정하는 관계개념입니다. 모순개념의 경우에는 제3의 중간상을 나타내는 개념은 없으나 반대개념의 경우에는 그러한 개념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순개념에서 '희다'처럼 긍정적인 내용을 나타내는 개념을 '적극개념'이라 하며 '희지 않다'처럼 그 내용의 부정을 나타내는 개념을 '소극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개념과 종개념이 있는데 이 둘의 관계에서 유개념을 '상위개념' 또는 '고급개념'이라 하고 후자를 '하위개념' 또는 '저급개념'이라 합니다.

     

인간의 사고 내용은 언어적 형식으로 나타나게 되며 어떤 개념이 취하는 언어적 표현으로서의 말을 명사라고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개념의 일반적 이해는 상호 소통뿐 아니라 보편 가치와 질서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개념의 일반적 이해는 전문적인 분야로 갈수록 더욱 중요하게 요구 됩니다.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나 법관이 판결을 할 때는 반드시 보편적 논리 개념 이해의 토대에 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인들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 다수가 개념 없는 말과 주장을 하게 되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어떤 개념에 대한 이해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에 가본 사람, 로마에 대해 공부한 사람, 로마에 대해 설명을 들은 사람은 저마다 다소간 로마에 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로마에 대한 개념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거나 풍부하거나 할 수는 있어도 다 로마에 대한 개념입니다. 개념이란 결국 지식과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개념을 교정 받고 보완해가야 하되 개념의 방식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물과 사실에 대한 일반적 개념이 분명하지 않고 개념의 방식이 무시되는 사회는 무질서한 사회입니다. 대한민국은 극심하게 개념이 혼란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사회를 주도하는 정치와 언론과 사법부와 지식계가 온통 개념 혼란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개념이 혼란하다는 것은 사고의 방식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라면 끊임없이 당면하는 사실과 상황에서 개념파악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소위 “개념 없는”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상황 파악을 못해서 엉뚱한 말을 하거나 실수를 하는 사람을 개념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의 발언과 지식인들의 발언들과 언론들의 보도 등이 개념 없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과거에 비해 성실한 일반인들의 언행에서도 사실에 대한 개념 파악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느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으로는 오해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사실과 진실에 대한 정직하지 못한 상투성 때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착하고 진정 성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현대는 착하고 성실하고 열정적인 것과 정직한 것을 구별해야 할 상황입니다.

     

언제나 사회를 비판할 때 마음에 부담을 갖게 되는 것은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떠올라서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개념 없는 말은 교회 강단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비난 받는 설교자들뿐 아니라 착하고 성실하고 진정 성 있고 열정적인 설교자들조차 개념이 분명하지 않은 말들을 아무런 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설교자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개념 없는 말로 하는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개념 없는 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복음, 하나님 나라, 교회, 예배, 기도, 선교, 인간, 국가, 문화, 정치, 경제 등에 대해 자신이 표방하고 있는 교리와 신학에 맞지 않는 개념으로 이야기 하는 경우가 너무 흔합니다. 다른 설명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념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교가 개념 없는 말이 되면‘설교하고 있네!’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 논리적 개념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렇게나 말해도 되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를 강조할 때 ‘기도 많이’를 개념 없이 강조하는 이들이 많고, 말씀을 강조할 때 마치 말씀의 문자가 능력이나 치료나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강조하는 이들도 있고, 선교를 실제로 교회 부흥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기도 많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많이 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뭐가 된다는 식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라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한‘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의 정신으로 기도를 강조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다릅니다. ‘기도 많이’, ‘선교 열심히’가 목회 성공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개념 없는 목회입니다. 설교자를 비롯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의 말은 끊임없이 그 개념을 교정 받고 보완 되어야 합니다. 또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나 진리의 개념이라면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점점 심화되어야 합니다. 심화는 같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거나 설교를 해도 그 깊이가 점점 더하기 때문에 말하는 자나 듣는 자가 상투성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투성에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지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왜곡으로 빠지게 됩니다. 설교자는 종종 말씀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상투성을 극복하게 할 것이라는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아무리 초월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라고 해도 그런 개념 없는 태도를 보완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현대인이 무 개념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고 그것은 곧 교회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모두의 책임입니다. 진리와 사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성경을 다독하는 것, 기도를 많이 하는 것, 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 설교로 감동을 주는 것 등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성경과 인문학을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교회 활동과 일상에 영적 심화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이고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5-17)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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