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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함량 미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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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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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관점에서 모든 사람이 지력 함량 미달이라는 것은 존재론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숙명론적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사실과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섭게 책망합니다. 성경은 무지를 죄와 악이라고 규정합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알 수는 없어도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속한 가정과 교회와 국가 사회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 나라와 그것들과의 관계에서의 자신의 책임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적인 지력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이해와 판단과 행동은 잘못될 수 있으므로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지력 함량 미달을 심각하고 진지한 도전으로 받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끊임없이 배우는 일에 자신을 채찍질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지력 함량 미달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일반인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신학과 신앙적 차원의 설명이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지력 함량 미달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도 바른 신학과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지력 함량 미달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은 그것이 곧 신앙고백의 차원인 셈입니다.

무엇을 ‘안다.’는‘지식’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첫째는 헬라적 개념의 ‘안다’입니다. 이 개념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헬라적인 의미에서 아는 것이란 사람의 의식 속에 어떤 사물의 실체를 투사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히브리적 개념의 ‘안다’는 것은 사물의 실체를 나의 실제적이고 내적인 삶의 경험과 융합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사랑하다.’또는 ‘사랑으로 선택하다.’는 뜻의 성경적 숙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알려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현장에서 당신에 대한 계시가 일어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계시를 보면 그것은 어떤 철학이나 사상이나 이념이나 학파가 아니고 언약입니다. 성경을 마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교육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주 비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절대 주권적 특징을 갖지만 또한 그 계시를 받는 백성들의 실제적 필요에 부응하여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그 언약은 주변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상황 아래서 북한이나 중국이 대한민국을 공격하면 미국은 자기 나라가 공격을 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개입을 합니다. 그것이 상호방위조약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의 바로에게 보내셔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하신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언약이라는 것은 구원 받고 천국 간다는 약속만이 아닙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실제적 효력을 발생시키는 계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신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그 말씀이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공동체, 즉 생명공동체요, 세상적 표현을 빌리면 운명공동체라는 의미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고, 이방에게는 이스라엘에게 손대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으시겠다는 경고인 셈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런 것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다윗이나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바울의 하나님을 알았던 지식은 헬라 적 의미의 인식적 차원이나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존재론적 공동체, 생명공동체, 운명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이사야가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사 49:1)라고 한 것은 문학적인 표현이지만 허구적 이념이나 관념을 묘사한 것이 아니고 경험적 사실에 대한 확신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신의 자의식이 생기기 전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성립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숙명적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지배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입니다.

바울도 이와 동일한 차원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엡 1:4, 5), 자신의 존재가 생기기 전에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설정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이해의 토대에서 자신과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존재와 생명의 공동체라는 고백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여호와 하나님 경험이나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 경험은 자신과 하나님이 생명과 존재와 운명 공동체라는 확신의 차원의 지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존재론적 토대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 관계의 토대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결단하고 행동합니다. 신앙이란 이 관계의 토대에서 그 관계를 더욱 곤고히 하는 것이고 불신앙은 이 관계를 깨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자신의 이성적 인식이 하나님의 구체적 행위와 역사 현장에서 자신의 내적 경험으로 융합되고 육화 된 지식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하나님께 대해 아는 사람은 두 종류의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는 자신의 무가치함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천하보다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논리적으로 서로 양립이 불가능한 이 두 가지 영적 사실을 헬라 적 지식과 인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히브리적 지식, 성경적 지식으로는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 시편 105:7-8, 15 -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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