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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고기 ‘베타’를 떠올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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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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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c82eafeab4548f8cf1452afaa8d8b2_1487394874_13.jpg우리 집엔 2개의 어항이 있다. 10갤론짜리 어항엔 달마시언 몰리(dalmatian molly)란 열대어가 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사달라고 해서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어항인데 지금 주인은 달마시언 몰리다. 거의 20여 마리가 모여살고 있다. 먹이를 주는 건 내 몫이다. 다른 식구들은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아침저녁 나 혼자 먹이를 주면서 한가로운 열대어들의 팔자 좋은 세상을 훔쳐보며 가끔 피로를 풀 때가 있다.

 

또 하나는 1갤론 짜리 아주 작은 어항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살지 않는다. 이 작은 어항의 주인은 본래 베타(betta)였다. 베타란 물고기는 펫샵에 갔을 때 눈 여겨 보면 작은 유리컵 같은데 한 마리씩 잡아넣고 키우는 물고기가 바로 베타다. 지느러미가 너무 화려하기도 하고 작은 유리컵에 갇혀 있는 것 같아서 불쌍하게도 느껴졌던 그 물고기가 갑자기 우리 집에 쳐들어 왔다.

 

학교 때문에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던 딸이 혼자 사는 게 심심하기도 하고 애비를 닮아서 물고기 키우는 걸 세습 받았는지 베타란 물고기를 한 마리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도 바쁘고 여유가 없어지니까 키우던 이 물고기를 우리 집에 던져(?)놓다 시피하고 나 몰라라 작전으로 나왔다. 하는 수 없이 그 놈도 나의 식솔이 된 것이다.

 

그런데 베타는 아주 까다로운 물고기다. 마치 공작새의 날개 같은 찬란한 지느러미를 느려놓고 살지만 쉽게 병에 걸리는 게 문제였다. 툭하면 식음을 전폐하고 프로테스트에 들어간다. 주둥이를 열어 먹이를 넣어 줄 수도 없고 수온이 맞지 않아 그런가하고 어항용 써모스태트까지 사다 붙이면서 여러 가지를 체크해 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베타는 절대 다른 물고기하고는 함께 살지 못한다. 심지어 같은 종류의 물고기와도 마찬가지다. 왜? 이 놈은 싸움고기, 즉 투어(鬪魚)이기 때문에 혼자 살아야 하는 태생적 운명이 있다. 그래서 베타가 살고 있는 어항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 혼자 무슨 맛으로 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살려보려고 아침에 출근할 때 살펴보고 저녁에 들어와서 살펴보고 갖은 공을 들였지만 우리 집에 이민 온 지 한 서너달 만에 베타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병사였다. 그 후 그 1갤론 짜리 어항은 주인을 잃은 채 리빙룸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중이다.

 

이 물고기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고 행정명령에 마구 싸인하면서 미국 혼자 잘 살겠다고 국경 장벽을 쌓고 이슬람 국가 7개국 국민들의 입국 금지를 하는 역사상 처음 보는 초강경 반 이민정책이 숨 가쁘게 발효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혼자 살다가 쓸쓸히 사라진 싸움물고기, 베타가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마구 쏟아내는 행정명령 때문에 매일 매일 벌통을 건들인 것처럼 세계가 분노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그래도 지구촌에서 강대국의 큰 형님 소리를 듣는 미국이란 나라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이렇게 인정사정없는 신고립주의로 나가는 것이 이 나라의 건국자들이나 지금까지 이 나라가 추구해온 가치관에 맞아 떨어지는가?란 의문 때문에 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중이다. 해외에 나가있는 미국의 외교관들이 트럼프의 반 이민 결정에 맞짱 뜨겠다며 반대연판장을 회람중이라는 뉴스를 들었다. 이들은 이번 행정명령을 ‘비 미국적’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집단으로 가둬둔 사건이 있었다. 미국에 10여개의 집단수용소가 세워졌고 캘리포니아 오웬스밸리에도 맨자나 수용소가 만들어져 1만여 명이 감옥처럼 갇혀 살았다. 1988년 레이건 대통령에 이르러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한 이 심각했던 인권침해를 사과했고 그 자리에 위령탑을 세우고 캘리포니아 역사유적지로 지정했다. 그리고 수용소 생존자 8만 2천여 명에게 1인당 2만달러 씩의 보상금을 지불한 적이 있다.

 

외교관들은 이같은 불행했던 인권침해의 역사가 미국에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며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그때를 상기시킨다고 대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발끈한 백악관은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이민자들이 세운 이 나라의 운명이 어찌될지 불안 불안하다.

 

달마시안 몰리란 물고기들은 먹이를 주면 서로 먼저 먹겠다고 달려들긴 해도 다른 놈을 잡아먹거나 물어뜯지는 않는다. 그래서 늘 어항속의 평화는 유지된다. 그러나 베타는 불행하게도 더불어 사는 법을 몰라 혼자 살다 쓸쓸하게 고독사 한다.

 

미국이란 나라가 싸움고기 베타처럼 약한 것들을 모조리 잡아먹고 혼자만의 부흥하는 제국을 건설하는 게 목적이라면 결국 더불어 살지 못한 탓에 혼자 살다가 고독사를 당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미국적’이라 함은 달마시안 몰리가 살고 있는 어항처럼 경쟁하되 서로 존중하고 평화를 위해 공존과 사랑의 윤리를 지켜나가는 세상일 것이다.

 

대통령 취임 겨우 2주가 지났는데 너무 혼란스러운 아메리카. . .정신 바짝 차려야지 잘못하다간 코 베어가는 꼴 당하지 않을까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런데 이번 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행정명령에 미국인 57%가 찬성하고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조명환 목사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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