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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복수성, 사유 불능성,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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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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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사람들은 홀로코스트를 미치광이 독재자 히틀러에 의해 충동적으로 단기간에 저질러진 만행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1933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6년 전에 독일 총리로 취임한 히틀러가 즉각 그의 반유대주의적 정책을 내놓은 것은 아닙니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와 1920년대 말의 경제 대공황과 공산주의자들의 득세가 모두 유대인들이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히틀러가 총리로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난 때 극렬 나치 지지자들인 나치 돌격대가 유대인 상점들을 약탈하자 히틀러는 그들을 비난하였습니다. 물론 이는 취임 전부터 의심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서구세력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뉴욕에서 나치 돌격대의 유대인 상점 약탈을 비난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나치 돌격대는 자제하기는커녕 더욱 심하게 유대인 상점들을 약탈하였습니다. 이때 히틀러는 이들 나치 돌격대와는 선을 그으면서 보다 치밀하게 제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유대인 탄압을 준비하였습니다. 1933년 공무원법을 제정하여 공무원 중 유대인들을 강제로 퇴직시키는 한편, 독일 대학에서 유대인 학자들을 몰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유대인 판사와 검사들을 현직에서 강제 퇴직시켰고 유대인 변호사들이 더는 변호사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독일의 모든 대학에 유대인 비율이 1.5%를 넘지 못하게 하였고 유대인 군 복무도 금하였습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유대인 3만 7천 명이 히틀러가 총리로 취임한 1933년 바로 그해 독일을 떠났습니다.

1935년에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하여 치밀하게 제도적으로 유대인 탑압을 강화해 나갑니다. 유대인과 독일인의 결혼과 성관계를 금지했고 유대인 가정이 45세 미만의 독일인을 공용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유대인으로 확인되면 시민권을 박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뉘른베르크법에 의한 압박의 위기감으로 독일을 떠나는 유대인들이 많아지자 독일 정부는 제국도피세를 신설하여 독일을 떠나는 유대인 전 재산의 25%를 세금으로 징수하였습니다. 1938년에는 제국도피세로 징수한 금액이 독일 전 국민이 낸 세금보다 많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을 혈통에 의하여 규정할 뿐 아니라 인종학이나 생명학 학자들은 4명의 조부모 중 세 사람이 유대교를 믿으면 유대인으로 간주한다는 학문적(?) 판단을 내려서 히틀러와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도왔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단순히 나치와 히틀러의 야만성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학문과 학자들의 권위에 의해 지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무엇보다도 기가 막힌 사실은 일부 개신교회들이 “하나님이 영적인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듯이, 독일을 구원하기 위해서 히틀러를 보내셨다"라고 주장하여 히틀러 독재의 만행에 대하여 독일 교회가 면죄부를 준 것입니다. 히틀러나 나치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 아닙니다. 독일 국민과 독일의 학자들과 독일 교회의 선택과 지지의 토대에서 홀로코스트를 자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되자 히틀러는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을 독일에서 추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차 추방 대상은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 폴란드 국적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1938년 10월에 1만 7천 명을 폴란드로 추방하려고 국경으로 보냈지만, 폴란드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들은 국경 근처 간이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이때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던 한 젊은이가 자기 부모가 그 간이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독일 외교관을 총으로 살해하였습니다. 히틀러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전부 장관인 괴벨스를 통해 성명을 발표하였데, 나치 당과 정부 차원에서 복수 하지는 않겠지만 이로 인해 독일 내에서 어떠한 반대유대주의 행동이 일어나도 막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당원들에게 자발적인 복수를 주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주문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습니다. 수많은 극렬 나치 당원들이 유대인의 집에 쳐들어가 테러를 가했고, 유대인 회당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나치당원들에 의해 수많은 유대인 상점의 유리창이 깨어져 불빛에 반짝이자 11월 9일 이 밤을 “수정의 밤”이라고 불렀고 그 밤에 100여 명의 유대인이 나치 당원들의 테러로 죽었습니다. 이 광경을 자기 집 창문으로 바라보던 괴벨스는 그의 일기장에 “브라보!”라고 썼다고 합니다.

1939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유대인에 대한 탄압과 학살이 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은 수가 많아진 유대인을 한곳에 모여 살게 하는 게토를 만들었습니다. 나치는 폴란드 점령 3개월 만에 3천 명의 유대인들을 임의로 사살하였습니다. 강제 노동과 사살 그리고 다루기 성가신 장애인들과 아기들은 쓰레기 취급하듯 제거하였고 이때 집단 학살이 시작되었는데 이 일을 주도한 인간이 바로 그 악명 높은 아이히만이었습니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로부터 수많은 유대인을 체포하여 게토로 이주시켰고 또는 아우슈비츠로 데려가 강제 노동을 시키고 인간 청소를 감행하였습니다.

1945년 연합군에 의해 독일이 항복하자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 부어노스 아이레스 근교의 자동차 공장으로 도망가 자신의 이름을 리카르도 클레멘트로 바꾸어 신분을 감추고 기계공으로 일하다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60년 5월에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이스라엘에서 전범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의 죄목은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고 학살한 죄, 전쟁을 일으킨 죄 등 15가지였습니다. 그 재판에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난 100명이 넘는 증인들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이 아이히만에게 스스로 변론할 기회를 주자 아이히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오. 나는 무죄요.”. “나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나 연민 등 사사로운 감정이나 판단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오. 오직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오. 당시의 보편적인 기준에 충실히 행동했던 것이오.”

1962년 12월, 예루살렘의 재판정은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러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기자들 가운데 미국의 주간지 “뉴욕커”의 특별 취재기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풀려나서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철학자요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입니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전범 재판을 취재하고 난 후 1963년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책에서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인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녀는 먼저 아이히만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고 싶어서 더 깊이 취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때 정유회사 직원이었던 아이히만은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관련 부서에서 일한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었고 책임감 있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처럼 법과 상부의 명령에 따라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직무에는 충실했지만, 자신의 결정과 행동 때문에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사유의 불능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데, 무지가 악으로 연결될 경우, 아이히만의 경우처럼 인류에 대하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이 독일을 지배하지 않았다면,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에 가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치의 공무원인 아이히만과 성실한 남편과 자상한 아버지인 아이히만은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나치 공무원으로서 잔혹한 일을 했지만, 가장으로서 그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볼 때에 “인간성이나 양심은 사회적인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보편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인간처럼 행동하게 되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이유를 인간의 복수성, 사유 불능성, 악의 평범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복수성(複數性)이란, 인간은 자연적인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인데,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 각 사회적인 조건에 맞게 사회적인 존재로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 안에는 여러 가지 개성이 함께 있어서 이를 복수성이라고 하고, 사람은 사회적인 여건에 따라 인간성이나 양심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유(思惟) 불능성이란 회사, 학교, 가정 등 각 사회는 그 사회가 공유하는 특수한 지식이 있고 그것을‘상식’이라고 하는데, 국가에서는 국민으로서의 상식이, 회사에서는 직장인으로서의 상식,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서의 상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상식에 맞게 행동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보편적인 이성을 통해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보통은 상식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상식에 따라 행동하면, 현실의 일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남에게 비난을 받을 가능성도 줄어듭니다. 아이히만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자기가 속한 사회의 상식을 따랐고 단 한 번도 상식 밖에서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국가를 위해 충성한다고 믿었고 유대인을 죽이는 일이 범죄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아렌트에 의하면 “아이히만은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었고 그렇게 할 의지도 없었고 판단도 하지 않았다.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가리켜 사유 불능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일은 결국 아이히만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독일 국민의 사유 불능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렌트가 발견한 것은 악의 평범성입니다. 이는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비난하는 주장이지만 또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히틀러 주도의 나치 독일은 유대인의 평등성을 부정했습니다. 사람됨은 혈통과 종족에 의해 유전되는데 유대인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방식으로 지배세력을 확대해 가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나쁜 종족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하였습니다. 당시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그 같은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히틀러와 나치당은 애국적 차원에서 유대인 인종청소를 아무 사유 없이 상식으로 받아들였고 아이히만은 그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전범 아이히만을 보기 전에는 악의 화신처럼 생기고 나쁜 인생을 살아온 험악한 외모나 냉혈인간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는 너무나 평범하고, 가정에서는 오히려 자상하고 성실한 아버지이고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박해에 능동적이었지만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의 요구에 따라 행동한 판단력이 마비된 충직한 관료로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바울이 마치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것이 하나님과 유대교에 충성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행 22:3,4)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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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님의 댓글

abc

제목의 첫 단어를 오해가 없도록 '복수성' 말고 '다중성'이라 정정하심이 좋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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