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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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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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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성경을 언약의 책이라고 합니다. 구약, 신약 이라는 말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맥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고 또한 구속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모든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정확하게 기록한 것은 아니고 또한 사건들의 인과 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나라가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묘사하고 있고 그와 중요한 관련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와 계시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 관해서는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중요하게 다루고 반복하여 설명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뜻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는 어려운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치 일기를 쓰시듯이 누구나 읽어서 깨닫도록 기록하셨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그의 책 “하나님의 큰일”(Our Reasonable Faith) 제6장에서 이스라엘의 역사 기록을 “여호와의 일기”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이 하신 일이 무엇이고 이스라엘을 어떻게 돌보셨는지를 진리대로 일기처럼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당신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셔서 당신의 백성들이 다른 신을 생각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입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모두가 주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행할 것이라고 다짐하였습니다. 후일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유업을 받게 되자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결단을 촉구하자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수 24:15,16)라고 하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의 책망과 결단하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잠시 흔들렸던 자신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을 직접 경험하였던 세대는 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가 되었을 때 그들은 조상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보다 가나안의 신을 더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창조적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긴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을 수용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되 이방 신으로 섬기는 것처럼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우상을 섬긴 것은 아닙니다. 애굽에서도 우상을 섬겼고, 출애굽 후 광야에서도 우상을 섬겼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섬긴 우상은 다양했습니다. 섬기는 우상이 다양했다는 것은 우상이 완전한 신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민족 우상(엘, 못, 얌, 몰렉, 밀곰), 페니키아인의 우상(바알, 아세라, 아스다롯), 앗시리아 우상(불신과 별신)들을 섬겼습니다. 바울이 아덴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은 온갖 신들을 다 섬기며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하는 제단도 보았다고 하였는데, 이스라엘도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첫째와 둘째 계명을 범한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사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 편으로는 배교와 형별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의 시대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용서와 구원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사사 시대는 배교에 따른 형벌과 용서와 구원이 반복되는 혼란의 시기여서 각 사람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이런 혼돈은 사무엘 말기에 이르러 왕정으로 끝났으나 솔로몬 이후 나라는 남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분열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주도 하에 단에 제단을 만들어 우상 제사를 도입하여 2세기 반 동안 여호와 하나님 배교의 역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과의 언약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 배교의 역사라고 할 특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으면 벌을 내리고 회개하면 용서하셨는데, 거듭된 범죄와 배교에 뜻을 돌이키기에 지치셨습니다. 개역 성경 예레미야 15:6절에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염증이 났음이로다.”라고 하였는데 개역개정에서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용서에 지치게 하는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배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을 용서에 지치게 하는 이스라엘이지만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수 없이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사 가운데 수세기에 걸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경건하게 살도록 남겨두신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신을 섬기며 죄를 지어도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한 자들을 남겨두셨습니다. 온 민족이 다 배교를 하는 가운데 외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던 엘리야는 배교를 하지 않은 자가 자기 혼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영적으로 어둡고 혼란했던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절하지 않은 7 천명의 경건한 자를 남겨두셨습니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 형편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경건한 자들이었고, 의로운 자들이었으며,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믿음을 지키고 경건한 삶을 위해서 궁핍하고 가난하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시편에는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경건한 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항상 그들의 신앙을 야곱의 하나님께 두었고 하나님의 언약을 거슬러 행동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 사는 것을 다른 곳에서 천 날 사는 것보다 낫게 여겼고 악인의 좋은 집에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법을 묵상하고 언약의 약속에 굳게 서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믿음의 승리를 노래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지기 싫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쁨이었고 종일 즐거움으로 읊조리고 묵상하는 생명의 양약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되풀이하고 지키는 데서 지혜와 참된 지식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어두운 배교의 역사를 그들은 신실한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어렵고 곤궁할 때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를 드렸고 진심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수도 없이 경험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5,6)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처럼 의롭고 인간에게 이로운 법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시대가 어둡고 혼란하고 고통스러울수록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한 언약을 절대로 단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은 당신의 거룩한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깨뜨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상이 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언약의 백성마저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께서는 그 절망적 환경에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셔서 선지자로, 혹은 성경 기자로, 지혜자로, 전도자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은 현실적 고통 가운데서도 머리를 들고 성령의 조명하시는 빛으로 종말을 바라보면서, 새날을 예언하고, 다윗의 자손과 주님을 예언하고, 이새의 줄기, 임마누엘, 여호와의 종, 언약의 사자, 언약, 성령의 부어 주심에 대해서 예언하였습니다.

구속의 역사만이 여호와께서 쓰시는 일기가 아니라 일반 역사도 하나님의 일기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께 반항하는 인간의 역사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대항하다가 벌을 받고 경건한 자들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벌을 거두시며 번성하게 하시는 일이 반복되는 역사입니다. 현실이 어둡고 암울할수록 사람들은 낙심하고 좌절하기 쉽지만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경건한 자들이 있습니다. 경건한 자들은 어둡고 고통스러울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합니다. 아마 지금처럼 어둡고 혼란하고 거짓이 만연했던 시대도 많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믿음 없이 바라보면 현실은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악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하시니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믿는 이들은 자신의 왜곡된 신앙을 바로 세우게 하시고 하나님께 대항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거짓되고 악한 자들은 그러한 것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고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2-9)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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