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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백성과 네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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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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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기독교는 직접적인 박해나 고난을 통해서는 더 강해지는 강점이 있지만 권력과 풍요를 누리게 되면 반드시 그 본래의 맛과 힘을 잃게 됩니다. 로마 제국 안에서 초기 기독교는 권력자들과 당시 지식인들인 철학자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조롱과 박해를 받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강하여져서 복음으로 로마 제국을 정복하고 희랍의 철학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 하게 되자 기독교는 권력의 비호를 받게 되었고, 신학이 여왕의 자리에 오르고 철학을 시녀로 거느리게 되자 진정한 기독교는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최고의 권력과 재물을 갖게 된 교황이 그러한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제 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라.’는 말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교회가 권력과 재력을 갖게 되면 물리적인 규모와 업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마치 하나님 나라의 능력인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됩니다. 그러한 그릇된 확신에 사로잡히게 되면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정당화 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데, 지금의 교회들에게 그러한 경향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 불법과 거짓이 공공연하게 정당화 되는 경우가 너무 다반사가 되어서 교회 안에서의 진흙탕 싸움이 일어나도 세상 사람들이 그다지 놀라워하지도 않고 교인들도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형편이 바로 맛을 잃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수모를 당하는 교회의 현주소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정부에 의해서 주일예배가 통제를 당하게 되자 교회들이 마치 순교라도 할 듯이 주일예배를 사수하려고 합니다. 주일예배를 통제하는 정부의 시책에도 문제가 있고, 그러한 정책을 신앙에 대한 박해라고 하는 주장에도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일예배를 통제하는 정부의 정책이 문제인 것은 그 정책이 상황의 심각성에 정직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위험한 상황에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전염병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지만,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면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곳을 통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보다 더 위험한 모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우선 통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교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박원순 서울 시장이나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지금의 정부 지도자들 대부분이 기독교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정부 지도자들이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인으로서 정책을 시행할 때는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들은 정부의 주일예배 통제가 교회를 말살하려는 악한 음모라고까지 의심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부는 위급한 재난 상황이라면 교회의 주일예배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 적의 폭격이 확실시 되는 지역의 교회에 주일예배를 모이지 못하도록 통제해야만 합니다. 화재나 홍수나 지진이나 기타 심각한 재난이 예상된다면 정부는 마땅히 교회의 주일예배라도 모이지 못하도록 명령해야 하고 교회는 정부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주일예배를 중단할 만큼 심각하지 않은 사소한 일을 핑계로 정부가 주일예배를 통제하려한다면 교회는 마땅히 저항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심각한 재난의 상황에 정부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것은 순수한 신앙적 태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평상시에는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만 하지만 위기와 재난의 때에는 교회가 정부의 정당한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을 때 많은 피해자를 냈던 곳이 교회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여서 합심하여 열심히 기도하면 페스트도 감히 믿는 사람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기도 하시지만 법과 상식과 과학과 합리와 논리를 통해서도 보호하십니다. 법과 상식과 과학과 합리와 논리를 무시하는 것이 재난을 자초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국가를 경영하는 정부가 모든 지역과 개인과 단체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어떤 정책이든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이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이롭지 못하더라도 전체를 생각해서 따라야 합니다. 어떤 정부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는데, 그런 때마다 정부 시책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그 시책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도 아니고 민주주의 정신도 아니며 무엇보다 올바른 하나님 나라 백성의 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태도는 정상적인 정부와 그 정부에 의한 법과 정의와 도덕과 국가 정체성에 부합하는 이익을 도모하는 정책일 경우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난 2천년 동안 예배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순수한 복음과 신앙을 위한 싸움이 아닌 세속적 이전투구의 부끄러운 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순수한 복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름다운 것이고 세상 사람들까지도 그 가치를 감히 쉽게 폄하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되려면 평소에 영적 권위를 쌓아야 합니다. 교회의 영적 권위는 하나님 나라 원리를 따라 그 나라의 가치를 추구할 때 쌓이게 됩니다.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동일하거나 비슷해서는 영적 권위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역겨운 일들이 많지만 나쁜 사람이 좋은 말 하는 것처럼 역겨운 일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에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옳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마치 나쁜 놈이 좋은 말 하는 것처럼 역겨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등골이 서늘함을 느낍니다. 교회가 나쁜 놈이 좋은 말하는 수준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고 그들과 비슷하거나 같은 것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시는지 모릅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반기독교적인 정치와 문화가 지배적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보다는 엉뚱한 열매를 많이 맺은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가 너무 귀족적이고 너무 부르주아적이고 너무 권력 지향적이고 너무 성공 지향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모든 교회들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도 아직 교회가 사회 어느 단체보다도 사회 정의에 많이 기여하고 구제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교회들이 탈북자들을 많이 도와주고, 외국 근로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이 많고,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와 무숙자들을 위한 배려와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개인과 단체는 사회 어떤 다른 단체보다도 교회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여가 하나님 나라 능력이냐 하는 것에는 쉽게 동의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교회라는 공동체가 하는 선한 일과 그리스도인 개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 사람들의 특징을 지적하셨습니다. 그 시대는 노아 시대인데, 사람들의 생각이 악했고 행위가 부패하고 포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악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상상하건데 사람들이 거짓말 하고 사기치고 힘 있는 사람들이 폭력으로 약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고 그랬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그 시대의 특징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나 그랬고 지금도 그런 일들은 얼마든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노아의 때의 특징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고, 팔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복이요 거룩한 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시대에도 그런 것을 금하신 적이 없습니다.

노아 시대까지 그 시대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가인의 후예이고, 다른 한 부류는 아벨 대신 주신 경건한 셋의 후예입니다. 셋의 후예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데 가인의 후예들은 자신을 의지하고 폭력을 사용하여 이익과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은 전체적인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지 가인의 후예는 무조건 다 악하고 셋의 후예는 무조건 다 경건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두 흐름의 사람들은 섞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경건한 후손과 불경건한 후손이 섞이게 되는 통로가 결혼입니다. 거대한 문화적인 두 조류가 한 역사적인 현실 속에서 결혼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동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혼을 통하여 태어난 자녀가 네피림과 같은 류의 사람들로서 당대의 영웅이었습니다. 즉 네피림은 그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간상이었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결혼하여 네피림을 낳았다고 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돈을 추구하면 돈을 얻게 되고 권력을 추구하면 권력을 얻게 됩니다. 그 당시의 결혼관은 네피림 같은 자손을 낳는 것이었고 사람들의 그러한 목적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러한 시대의 특징을 주님께서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사고파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자기들의 꿈을 이루고 즐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네피림들의 삶을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나 하나님 나라가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비슷하거나 같이 되는 것이 바로 네피림이고 그 네피림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음을 깊이 상고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네피림은 세속적 인간상입니다. 교회가 네피림과 다르지 않다면 세상을 향하여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나쁜 놈이 좋은 말 하는 것처럼 역겹게 들릴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는 외형은 화려할지라도 힘 잃은 삼손과 같은 네피림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창 6:1-4)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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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지난번 댓글에 이분 글은 "정부"만 찾아서 그 문장만 읽으면 그게 요점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아주 대놓고 정부 욕입니다. 지난번에는 그래도 말미에 한문장 뿐인데 이 글은 "정부"가 스무군데가 넘습니다.

잘 한것은 잘 했다고 칭찬하면서 쓰신다면 그래도 균형은 있구나 하겠는데 이분 글은 모두 한결같이 정부 욕 뿐입니다. 욕을 언제 했냐구요? 아주 점잖은 말투로 포장했을 뿐 내용은 쌍욕과 같습니다. 이분은 성경과 하나님을 정부 욕하는데 이용하기 위해 곁다리로 인용할 뿐입니다.

성경에 지도자들과 위정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라고 했나요? 그리고 비판하면 그 잣대로 비판받으니 아예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하긴 이건 저도 해당되는 말이긴 하지요... 하아...

이분은 답이 없습니다. 에초에 목회를 하지 마셨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도님의 댓글

성도

이런 추한글들을 계속 올리고 허락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제가 이분이 목회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한 것은 제 실수이고 교만한 말임을 시인하며 거기에 대해 사과합니다. 사실 이분 글이 그동안 너무 치우쳐 있어서 제가 이번에 제대로 읽지도 않고 처음에 정부에 대해서 많은 말을 쓰셨기에 '또 시작이군'하고 생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글에는 이분, 맞는 말도 많이 쓰셨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바두기님이 '컵케이크 속의 이쑤시개(?)'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나는 글입니다. 맛있는 케이크 속에 바늘을 숨겨놓은 듯 곳곳에 이분의 치우친 사상과 모순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 공인으로서 정책을 시행할 때는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라고 하시면서 정부가 마치 개인적인 감정으로 교회집회를 금지했다고 단정짓고 또 사람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에 신천지가 엄청 문제를 일으켰고 새벽, 수요, 금요, 주일 등 수시로 모이고 만나는 교회에서도 계속 확진자들이 나왔기에 먼저 금지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을 마치 정부가 교회에 나쁜 감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은근슬쩍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것은 잘못입니다. 지금 정부는 어떻하든 확산을 막고 확진자를 줄여려는 모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중간에 '이런 어려운 때에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두고 정부에 적극 협조하자'라는 뜻의 글이 있어서 참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이런 뜻 맞지요?)

이 글은 그래도 그동안 쓴 글보다 어렵고 정신없는 지식의 나열이 줄어서 참 잘 쓴 글이라 생각합니다. 한가지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 어떤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에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옳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는 부분입니다. 이거 황목사님 자신에게 적용시켜보셨는지요? 많은 목사들이 예전의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잘못된 일들에는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으면서도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은 빨갱이라 부르고 공산당이라 부릅니다. 무슨 근거로? 지금 대통령 말년이 다 되었는데 우리나라가 얼마만큼 공산주의가 되었나요? 그런 시도나 있었나요? 북한은 강경 일변도로만 할 수는 없고 대화도 기회가 있을때마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대화만 하려고 하면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교인들을 선동해댑니다. 이거 잘못된 것 아닌가요? 하나님 죽어 하던 한기총 회장목사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누구도 비판을 안합니다. 또 이번에 황교안이 대통령이 될거라고 설교한 목사들 10명정도가 고소당했다고 합니다. 대체 설교시간에 왜 하나님 말씀이 아닌 이런 자기 생각을 늘어놓나요? 이런 일들이 자꾸 벌어지니까 사람들이 교회를 욕하고 등을 돌리고 결국에는 전도의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제발 황상하 목사님은 이런 일에서 돌이켜서 바른 길을 가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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