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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역사를 통해 오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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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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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서양철학의 출발은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이 자연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초기에는 신화적인 방법으로 이해하고 설명하였습니다. 신화적인 방법이란 변화무쌍하고 신비로운 자연현상을 다스리는 초자연적인 어떤 존재가 있는 것으로 가정을 한 설명입니다. 서양철학은 희랍신화에서 바다를 다스리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포세이돈으로, 번개와 불을 다스리는 존재를 제우스로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사유는 신화적인 방법에서 철학적인 방법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테면 인간 사유의 방식이 mythos(μῦθος)에서 Logos(λόγος)로 발전한 것입니다. mythos는 신화라는 뜻이지만 종교적 혹은 주술적인 방법으로 자연을 설명하는 것이고, Logos는 이성을 통한 합리적 방법으로 자연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 사유의 방법이 신화적 방법에서 합리적 방법으로 발전하였지만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신화적인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대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가뭄이 계속되면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자연을 신화적으로 이해하는 대표적인 경우이지만 현대인의 일상에서 초자연적인 어떤 존재가 모든 것을 다스린다고 생각하고 대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첨단 과학문명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우주 과학자들이 만든 인공위성을 발사할 때, 대형 유조선이나 여객선을 만들어 진수할 때 제사를 지내는 습속이나 이사나 결혼 일을 손 없는 날을 받아 하는 것도 신화적 방법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렵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이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사회로 발전하였지만 현대인들은 여전히 신화적 생활방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을 이성을 통한 합리적 방법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이들은 신화적 방법으로 이해하고 대처하는 이들을 미개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도 신화적인 방법을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성을 통한 합리적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류 최초의 철학자는 자연철학자입니다. 자연철학이라는 것은 자연 즉 만물의 근원을 규명하기 위한 철학이라는 뜻입니다. 자연철학자의 대표적인 사람이 탈레스입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탈레스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토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연철학자들은 그 전의 신화적 방법으로 자연을 이해했던 시대에서 이성적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이를테면 인간 사유가 그 전 시대보다 상당히 진보한 시대인들 입니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한 탈레스는 최초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잰 사람이고, 일식과 월식의 주기를 정확하게 맞추기도 하였고, 맞꼭지각의 두 각은 같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대단한 발명가였고 수학자였으며 고대 그리스의 7대 현인 중 한 사람이었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는 피타고라스의 스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매우 학구적이었던 그가 밤에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그 광경을 목격한 그의 하녀가 “하늘의 이치를 알려고 하면서 바로 앞의 우물은 보지 못하시는군요.”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레스는 비즈니스를 해도 대성을 했을 만큼 상업적인 안목과 수완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과학과 수학의 머리가 비상했던 그였지만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한 논리는 매우 단순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자신이 먹는 고기와 빵도 물이라는 것을, 인간은 쇠고기를 먹고 소는 풀을 먹는데 풀은 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빵도 그와 같이 역 추적을 하여 결국은 물이라고 증명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의 근원이 물이라는 그의 주장은 출발에 주목한 이론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을 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떤 물체든지 그냥 있을 때는 다르지만 불에 태우면 같은 재로 변한다는 것과 무엇이든지 불을 만나면 불은 남지만 다른 것은 사라진다는 것을 보고 불을 만물의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출발에 주목한 이론이라면 불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주장은 결과에 주목한 이론입니다. 그는 모든 것은 하나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그의 주장이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워 이미 고대에도 사람들은 그를 “어두운 철학자”라고 불렸고 그의 영향을 받은 현대철학자는 니체, 베르그송, 들뢰즈 등입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지금으로부터 2천 5백 년 전에 만물의 근원을 원자라고 보았습니다. 대단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원자론을 형이상학적 결정론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그리고 사물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되어 있다고 그는 주장 하였습니다. 만물은 원자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아서 그를 환원주의자라고 합니다. 그의 원자론은 유물론과 현대 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것을 수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학파로 불리는데 밀교적 성격이 짙어서 수학자이면서 신비주의자로 또는 과학자로 추앙 받았습니다. 그는 최초로 스스로를 철학자로 부른 인물이며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우주론, 수학, 과학, 그리고 미학을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 세계를 단 하나의 법칙에 지배되는 정돈 된 전체로 입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영혼의 윤회를 믿었고 납득할 수 없는 밀교의 결사 규칙 같은 것을 만들어 지켰다고 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철학자들은 모두 그리스철학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입니다. 그리스철학자들에게 오면 탐구의 대상이 자연에서 인간과 사회로 바뀝니다. 그리스철학자들도 우주만물을 탐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핵심적 탐구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자연철학의 시대적 배경은 농경사회입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중요 관심사가 자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을 잘 알아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에 필요한 넓은 땅이 필요 하고 가뭄에 대처하기 위한 수리사업이나 전답의 개간을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하고 다스리기 위해서 공화정이 아닌 절대 왕정이 필요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테네와 대척점에 있는 스파르타입니다. 스파르타에서는 인문학은 필요하지 않아서 가르치지 않았고 전투와 노래만 가르쳤습니다. 로마도 지중해의 해상권을 두고 카르타고와 전쟁할 때까지는 공화정이었다가 전쟁에 승리하고 대규모 식민지가 생기자 노예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농장에서 농사를 짓게 되자 강력한 중앙집권의 왕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강력한 중앙 집권이 필요한 농경사회에서는 그리스철학 같은 것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는 도시국가이고 도시는 상업을 생업으로 하는 사회입니다. 상업 중심의 도시 국가인 그리스, 아테네의 전성기에 그리스 철학자들의 무리인 소피스트가 등장합니다. 당시 소피스트는 오늘날로 말하면 학원 강사와 같습니다. 그들은 그리스 시민 계급에게 돈을 받고 처세술, 웅변술, 변론술 등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 처음에는 귀족정치를 하다가 후에 공화정치로 바뀌는데, 바뀌는 계기가 전쟁입니다. 귀족정치에서 전쟁은 기병 중심의 전투였는데 공화정치로 바뀐 이후에는 보병 중심의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군인은 강제로 징병하지 않았고 모병제였는데, 지원자 개인이 사비를 들여 무장을 하고 군대에 가야 했습니다. 그에 대한 인센티브로 전리품은 모두 군인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기병 전투를 하던 때와는 달리 보병 중심의 전쟁을 수행하게 되자 귀족들뿐 아니라 시민계급도 군인이 될 수 있어서 군인들 중에는 귀족들과 시민들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전리품을 나눌 때 성과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전공을 많이 세웠노라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사람이 좋은 전리품을 차지하였습니다. 당연히 말 잘 하는 귀족들이 좋은 전리품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불만을 갖게 된 시민들이 너도 나도 소피스트를 찾아가서 변론술과 웅변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소피스트는 당연히 자기들의 주 고객인 시민들 편이 되었고 그들에게 돈을 받고 변론술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피스트에게는 일체의 도덕심 같은 것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해서든지 변론에서 이기는 기술을 개발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다보니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소피스트를 궤변론자라고 합니다. 소피스트는 학문과 지식의 이름으로 돈을 받고 궤변을 팔았고 젊은이들은 탁월한 궤변술을 배워서 상대를 제압하여 전리품을 차지하거나 재판에서 이겨 이득을 취하려고 하였습니다. 소피스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기술을 팔았고 그 궤변술을 배워서 자기도 돈을 벌겠다는 젊은이들은 유명하고 인기 있는 소피스트를 찾아다녔습니다. 소피스트의 궤변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예를 들어, 소피스트가 어떤 시민에게 일주일 후에 갚기로 하고 돈 천불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소피스트가 돈 갚을 날이 지나도 돈을 갚지 않자 빌려준 사람이 독촉을 하니까 소피스트는 내가 언제 돈을 빌렸느냐고 딱 잡아뗍니다. 일주일 전에 빌려가지 않았느냐고 하자 소피스트는 돈을 빌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면 갚겠다고 합니다. 일주일 전보다 손톱이나 머리털이 길게 자랐을 테니 그것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하여 돈을 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는 모든 학문 중에 변론술이 가장 인기 있고 중요했습니다. 그 당시는 요즘과 달라 형.민사 사건 모두에서 모든 시민이 기소를 할 수 있고 기소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시민들은 언제 누구에게 소송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당할 때를 대비하여 변론술을 배워두어야 했습니다.

소피스트의 대표적인 인물이 프로타고라스인데, 그가 남긴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실용주의적 휴머니즘의 시조라고 하여 높이 평가하지만 그가 한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은 모두가 제각기 인식하기 때문에 어떤 사물이라도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인식은 감각에 기반을 두고 있고 각자의 인식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는 상대주의적 진리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절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상대주의이고, 나의 감각과 인식을 토대로 한 변론으로 상대를 제압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궤변론이고, 인간의 감각과 인식으로 느끼고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고 하여 불가지론이며,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가 이기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철저한 개인주의이며 목적론입니다.

이 소피스트의 상대주의, 궤변론, 불가지론, 개인주의, 목적론 등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 되었습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였고 소피스트는 민주주의 옹호론자들이었습니다. 소피스트가 이 같은 궤변으로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냥하는 것을 가장 견딜 수 없어했던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궤변과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시민들과 젊은이들을 소피스트들의 폐단으로부터 보호하고 구하기 위해 그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따라서 소피스트가 가장 미워했던 인물이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무지와 교만과 궤변을 폭로하고 악마와 같은 그들의 손아귀로부터 그리스의 시민들과 젊은이들을 지키고 구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젊은이를 선동하여 그리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신을 부정한 죄목으로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와 소피스트들의 궤변론이 소크라테스를 죽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아테네 민주주의 아래서의 공공 재판이었고, 추첨을 통해 배당된 배심원의 수는 501명이었습니다. 9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된 변론 후에 배심원은 280표 대 221표로 유죄를 선고하였고, 형량을 결정하는 투표에서 사형 360표, 벌금형 141표로 사형이 결정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은 아테네 민주주의가 갖는 폐단의 고전적 사례로 수 없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직접민주주의이고 그 민주주의를 주도했던 이들이 궤변론자들인 소피스트였습니다. 그로부터 2천 5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 미국과 대한민국에서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와 소피스트 궤변론 같은 심각한 폐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역시 인간은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깨닫거나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에도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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