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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설정-우리로 마귀와 원수가 되게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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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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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사람은 자기가 이해하는 것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지고 난 후에 자기의 오감을 통하여 확인하고 나서 받아들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실증주의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실증주의가 무엇인지 몰라도 실증주의적으로 판단합니다. 무엇이든지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의 가치도 실증적으로 평가합니다. 현실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외적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비로소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합니다. 인류학교를 나오고, 인류 회사를 다니고, 연봉을 많이 받고,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면 일단 높이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평가가 전적으로 잘못 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얼굴 생김새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고, 덩치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이 성형수술을 통해 미인이 되는 것을 스펙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으신다고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처럼 인간 마음의 생각까지 통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실증을 통해 평가를 하게 됩니다.

이 세상과 사회가 인간을 평가할 때 스펙이나 능력에 따라 평가하는 하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한 개인의 능력과 학문과 지혜 등, 신앙적으로 말하면 그런 은사들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지느냐에 따라 평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능력을 요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경건과 성품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능력과 성품은 많은 훈련과 노력을 통해서 발전하지만 그 훈련과 노력은 하나님과의 확실한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토대에서 확정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확실히 하는 가운데 경건의 능력과 성품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확실한 관계는 반듯이 마귀와의 긴장 관계를 일으킵니다. 하나님과 확실하고 좋은 관계를 갖게 될수록 마귀와의 관계는 치열하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하지 않으면 마귀와의 관계에 긴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긴장이나 시련이 없는 것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안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피할 수 없이 당면하게 되는 것이 고난과 시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과 시련이 있지만 이 경우도 하나님의 허용에 따라 마귀를 통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직명이 임마누엘이라는 사실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우리가 언제나 마귀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 최초의 인간 아담의 범죄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인간이 죄를 범하므로 인간과 만물이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된 정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고 그 대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심판은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합니다. 심판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인류가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모든 문제는 죄를 범하므로 받게 된 두려움과 고통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과 저주 가운데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즉 이 저주와 심판 가운데도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4-19절까지는 죄 지은 인간 때문에 내려진 형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생물과 땅까지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죄의 대가로 받은 심판이 얼마나 처절한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죄는 인간을 전적으로 무능하게 하였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양심과 욕망까지도 타락의 영향을 받아 온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처절한 형벌 가운데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을 신학적으로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하와를 꾀어 죄를 짓게 한 마귀가 제일 먼저 저주를 받았습니다. 마귀가 받은 저주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저주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입니다. 여기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고,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뱀의 후손은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섬기며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마귀가 하와를 꾀어 자기 말을 듣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마귀와 당신의 백성인 여자의 관계를 원수의 관계로 설정하셨습니다. 마귀와 여자의 후손과의 관계도 원수의 관계로 설정하셨습니다.

이 관계 설정은 마귀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내려진 끔찍한 저주입니다. 이 관계 설정으로부터 모든 인간의 불행이 파생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에는 언제나 마귀와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원수 관계로 인하여 발생하는 긴장이 팽배하였습니다. 그 긴장 관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귀는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아니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 즉 예수를 믿는 사람만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넘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친 백성임과 동시에 마귀와는 서로 대적하는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는 원수의 관계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서로를 공격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적 전투라고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마귀와의 원수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상황임을 묘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마귀와 원수 관계가 된 것은 마귀와 인간 모두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이 마귀에게는 전적인 심판이지만 인간에게는 저주임과 동시에 구원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의 원수 관계가 복음 곧 임마누엘의 약속이라는 사실은 그 원수 관계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가 원수 관계가 아닌 마치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처럼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럴 리야 없었겠지만 하나님께서 뱀과 여자, 그리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가 아닌 친구가 되게 하셨다면 그 결과는 원수의 관계보다 더 심각한 딜레마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귀와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가 원수 관계로 설정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참혹하고 끔찍하게만 생각되는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의 원수 관계 설정은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원수 관계 설정은 서로가 대적하며 싸우게 되는 관계입니다. 서로가 대적하고 싸우게 되면 이기는 편이 있고 지는 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는 이기고 지는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전쟁이 벌어지면 많은 군인들이 부상을 입고 장애자가 됩니다. 팔을 잃게도 되고, 다리를 잃게도 되고, 눈을 잃게도 되고, 듣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전쟁은 온갖 장애자를 만들어내지만 장애는 죽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치열하고 살벌한 전쟁이 온갖 장애자를 만들어도 머리 없는 장애자는 없습니다. 머리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원수인 마귀와 싸움에서 결정적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마귀는 여자의 후손에게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정도 밖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생명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공격의 한계를 설정했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발꿈치 정도를 상하게 할 뿐입니다.

기독교의 고전 중 하나인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기독도가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 길에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겪습니다. 한 곳에는 무서운 맹수 사자가 당장 한 입에 기독도를 삼킬 듯이 으르렁 거리며 덤벼들려고 합니다. 그 길을 가야만 하는 기독도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자세히 보니까 그 사자가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사자는 기독도를 삼킬 수 없도록 굵은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결정적 승리입니다. 처음 아담은 마귀의 꾐에 빠져서 실패했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와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주 가운데 담겨 있는 복음, 즉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마귀와의 원수 관계에서 예수님을 믿어 승리가 보장된 입장에 서 있습니다. 비록 마귀의 위협이 있고 시험이 있고 고통이 있지만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승리는 보장되었지만 죄의 영향으로 인하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는 고통과 수고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임마누엘의 약속이 없는 것 같습니다.때때로 우리들은 마치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며 “이 아저씨가 나의 진짜 아버지가 아닐지도 몰라”라고 의심하는 철없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마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우리를 낙심하고 절망하게 하는 일들은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납니다. 세상은 점점 거짓과 패악으로 물들어 가고, 사람들은 점점 이기적이 되어가고 착하고 정직한 사람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되고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심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세상이 거짓되고 윤리적으로 타락하는 것도 심판입니다. 경제적으로 공황 상태를 맞게 되는 것도 심판입니다. 정치적으로 거짓과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것도 심판입니다.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것도 심판입니다. 인간의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심판입니다. 인종혐오 범죄가 생기는 것도 심판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는 것도 심판입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뒤죽박죽이 되는 것도 심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심판과 저주 가운데도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습니다. 자식에게 매질하는 아버지의 손길에 사랑이 있듯이 우리가 고통과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처할 때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의 형벌 아래서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허덕이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이 임마누엘의 약속이 저주로 말미암아 만신창이 된 인생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주처럼 생각되는 사건 속에 하나님의 지극하고 다함없는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관계를 원수의 관계로 설정하심은 죄에 대한 심판임과 동시에 구원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마귀와 원수입니다. 탐욕과 원수입니다. 거짓과 원수입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원수입니다. 게으름과 나태함과 원수입니다. 우리는 그런 악한 욕망들과 대항하여 싸웁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싸워 이기셨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를 믿는 우리도 승리하게 하십니다. 세상은 악하고 우리는 연약하여 무엇 하나 선한 뜻대로 되는 것이 없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심판 아래 있어서 온갖 악과 고통과 염려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 다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고통 뿐 아니라 죽음 가운데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유효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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