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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201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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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장학금하면 미국의 풀브라이트 장학금과 영국의 로즈 장학금이 세계적인 양대 장학금으로 알려져 있다.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의 제안에 따라 1946년에 제정된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전 세계의 모든 분야 유망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장학금으로 지금까지 150여 개 국에서 37만 명이 이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도 매년 6천여 명의 장학생을 선발해서 미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풀브라이트 장학생 가운데 59명이 노벨상을 수상했고 82명이 퓰리처 상을 받았다고 하니 이 장학금이 인류에게 공헌한 결산서인 셈이다. 지난 2017년엔 탈북청소년 5명이 이 장학생에 선발되기도 했으니 장학금이 품고 있는 공정과 평등의 정신이 금방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나 이 풀브라이트보다 거의 40여년 앞서 1902년에 제정된 로즈 장학금은 그 역사가 말해주듯 세계 최고의 장학금으로 알려져 있다. 장미(Rose)가 아니라 세실 로즈(Cecil Rhodes)란 사람 이름에서 유래된 이 장학금은 장학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가면 “아! 나도 한번 이런데서 공부했더라면 내 인생이 뒤집어졌을텐데. .” 공연히 그런 생각에 저절로 빠져든다. 학교에 들어 가보면 누구나 모범생이 될 것 같고 누구나 장학생이 될 것만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도 예일대 로스쿨에 가기 전 이 옥스퍼드에서 유학을 한 게 아닌가? 바로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는 행운을 누렸다. 로즈 장학생이 되면 이 옥스퍼드에서 2년여 간 무료로 공부하는 특혜가 주어진다.

세실 로즈는 19세기 영국 식민지 남아공을 기반으로 활동한 대표적 제국주의자였다. 다이아몬드 등 각종 광산 채굴권을 따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현재 짐바브웨란 나라도 사실은 로즈의 이름을 따서 ‘로디지아’라고 불리는 식민지였다. 1979년까지 백인정권이 지배하다 짐바브웨로 바꿨으니 아프리카에서 로즈란 사람의 위력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수년전엔 아프리카인의 자원을 수탈한 제국주의자로 낙인찍혀 남아공에 있는 그의 동상 철거운동까지 벌어졌다. 2015년 그의 동상이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철거되자 그의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교 오리엘 칼리지로 옮겨서 보존중이라고 한다.

떼돈을 벌긴 했지만 나중에는 이처럼 수모를 당해야 했던 로즈가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돌아보고 회개차원에서 설립한 것이 바로 로즈장학재단. 다이나마이트를 발명은 했지만 인류에게 치명적인 불행을 가져왔다고 깨달은 알프레드 노벨이 회개차원에서 노벨상을 제정한 것과 흡사한 스토리다.

출발은 껄적지근했지만 그의 이름을 딴 로즈장학금은 명예와 영광의 상징이 되었다. ‘로즈 장학생’하면 금방 세계가 인정해주는 엘리트로 올라섰다. 로즈의 유언대로 처음엔 앵글로 색슨에게만 주어지는 장학금에다 여성도 제외시켰지만 세월이 흘러 영연방 국가들에서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로 확대하여 2015년엔 중국까지 포함했다고 들었다.

로즈 장학금에 전혀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 가슴에 새겨진 장학금 사연도 있다. 가난했던 신학교 재학시절 나를 찾는다는 학교정문 게시판의 메모를 보고 윤영봉 목사님 방을 찾아갔다. 2년 전에 LA에서 돌아가신 윤 목사님은 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 감리교 총리원의 선교분야 큰 책임자이셨고 사무실은 감신대 선교대학원 3층에 있을 때였다. 신학교 때 학교에서는 내가 미술특기자로 소문이 나있었다. 시화전을 몇 번 열면서 그렇게 알려졌다. 윤 목사님은 내게 레터헤드 디자인을 부탁하셨다. 후다닥 그 이튿날 해다 드렸더니 어느 장로님이 내달부터 내게 장학금을 보내 줄 테니 학교생활에 보태 쓰라고 하셨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수가! 매달 기숙사비가 밀려서 쫓겨나는 위기를 여러 번 겪어야 했던 나에게 이런 축복의 순간이 찾아오다니!

정말 그 다음 달부터 장로님이 내게 보내주는 자기앞 수표는 내 인생의 ‘희망의 잎새’가 되었다. 몇 달 후 그 장로님과 통화를 한 후 집을 찾아가 감사인사를 드렸다. 장로님은 다시는 찾아올 필요가 없고 그 시간에 더욱 학업에 열중하라고 하셨다. 자신의 이름도 알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삼양동 장로님’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레터헤드를 핑계삼아 가난한 신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선해 주신 윤영봉 목사님과 매달 정확한 날짜에 2년여 동안 장학금을 보내준 삼양동 장로님은 50여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내 인생의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가슴에 살아계신 분들이다.

한국에선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이 장학금을 불법으로 받았네, 말았네 보통 소란스러운게 아니다. 그 장관 하나 때문에 나라가 공중분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장학금이란게 ‘금수저’들의 배부른 배 더 배불리기 위한 여유 돈은 아니지 않은가?

다음 주 월요일엔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감신대 서부지역동문회 주최로 장학금 모금 골프대회를 연다. 금년 대강절을 맞는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는 것이다. 해봐서 알지만 골프대회로 모을 수 있는 모금액은 머리 자르고 꽁지 빼면 남는 게 없다. 그러나 참가해 주신 분들의 마음을 담아서, 마치 옛날 삼양동 장로님이 장학금과 함께 담아주셨던 그 마음, 그걸 전달하면 최선의 장학금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마음이 여럿 모이면 그깟 로즈장학금보다 더 값 질수도 있다.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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