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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회” 탈출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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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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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8년 7월 1일부터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주당 근로 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드는 ‘노동시간 단축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직장 근로자들 중에는 법적 노동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가 근무에 따른 수당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추가 근무에 대한 보상 없이 추가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을 획기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근로자들의 법정 노동시간 외의 초과 근무는 불가피 했습니다. 산업계의 현실은 여전히 근로자들의 법적 근로시간의 초과 근로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산업사회가 정착해 감에 따라 근로자들의 근로 여건도 조금씩은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근로자들은 여전히 법적 근로시간을 초가 하는 격무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직장 근로자들에게 물어본다면 하는 일이 힘들지 않다거나 할 만하다고 대답하는 근로자는 없을 것이고 모두가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 할 확률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가족의 생계가 아니라면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당장 그만 두고 싶다고 할 것입니다. 직장 생활이 즐겁고 보람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노동이란 본래 인간에게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노동으로부터 자유하고 싶어 하게 마련입니다.

성경적 관점에서의 인간의 일이란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타락 전 일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과 함께 창조와 다스림과 돌봄으로 동역하는 것이고, 둘째는 타락 후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 3:19)라고 하여 일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노동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이 노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마에 땀을 흘리는 괴로운 노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괴로운 노동만이 아닌 보람과 즐거움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적극적으로는 노동 하지 않는 인간은 결코 인생의 보람과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여 공동체에게 놀고먹으려는 자에게는 노동으로부터 얻는 이익을 공유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그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노동의 이익을 공유할 수 없도록 강제하라고 한 것은 단순한 무노동 무임금의 공평한 원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하기 싫어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이해한 것은 그것이 바로 창조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명령이기 때문에 노동 없이 부가 창출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성실한 노동이 부를 창출한다는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 명령에 포함 된 경제 원리입니다. 경제를 포함한 인류 문명은 창조와 성실한 노력을 통해 발전시키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노동을 신성한 하나님의 창조명령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제4계명입니다. 일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일 뿐 아니라 쉼도 복입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쉼을 계명으로 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안식일 지키는 것을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의 중요한 표징 중의 하나로 규정하여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그 공동체에서 제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곧 인간 서로에 대한 의무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인간은 6일 일하고 하루를 쉬어야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반 기독교적인 프랑스 혁명은 기독교의 모든 영향력을 제거하려고 일주일 주기를 10일 주기로 바꾸어보기도 하였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의하면 인간의 생물학적 능력은 6일 일하고 하루를 쉬어야 할 수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이 명령을 어기고 7일 내내 일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능력을 넘어서 지나친 것이고, 6일 열심히 일해야 할 노동 시간을 5일이나 그 이하로 줄이는 것은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고려할 때 인간은 고통스러운 노동을 자발적으로 성실히 잘 감당하기 보다는 가능한 한 노동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희랍 철학에서도 노동은 천한 것으로 치부되어 노예들이나 하는 것으로 취급하였고, 조선시대의 양반들도 노동을 천시하여 종들이 하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하는 것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사는 것이고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것은 인간다운 삶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따라서 어느 사회든지 권력을 가진 자들은 노동으로부터 자유 하였고 피지배 계층은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동서양을 비롯하여 옛 사람들이 노동을 천시했던 것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옛 사람들이나 현대인이나 인간은 누구나 과도한 노동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합니다. 사람 뿐 아니라 인간을 도와서 일하는 동물들까지도 과도한 노동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안식일에는 집에 찾아 온 손님이나 소나 나귀도 쉬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같이 준엄한 안식일 명령을 현대 산업사회에서도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은 그것이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짐에 따라 점점 확대되어 왔습니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과로”라는 말은 사치였습니다. 새벽 별을 보고 일터에 나가서 저녁별을 보고 돌아오는 노동에도 불구하고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과로”라는 단어는 사전에나 존재하는 단어였습니다. 젊은이가 직장에 취직을 하면 먹여주고 잠자리 제공하는 것이 보상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입 하나 덜기 위해 딸을 시집보내던 시절에 “과로”라는 말은 사용할 기회도 없는 사어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멀리 조선 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독으로 간 광부들이나 간호사들이나 중동으로 간 근로자들에게조차도 “과로”라는 말은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국민 모두가 산업 전선에서 법정 근로시간이라는 법적 보호는 꿈도 꾸지 못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고된 노동의 땀을 기꺼이 흘렸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과로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를 할 만큼 경제적 여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근로자가 과로로부터 보호 받아야 하고 근로조건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이렇게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은 과로와 인권과 자유까지 유보하고 인고의 시간들은 견뎌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인권과 자유와 경제적 풍요와 여유는 결코 그저 얻은 것들이 아닙니다. 이렇게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얻어 누리는 인권과 자유와 풍요는 그것을 얻게 했던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인권과 자유와 여유는 결코 값이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2013년에 김영선 씨가 “과로사회”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가 책에서 주장하는 근로자들의 과로는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고 심각한 사회문제이기도 합니다. 그 책에서 제시하고 열거하고 지적하는 과로사의 케이스들은 마땅히 개선되어야 하고 모두가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일면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가 간과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한민국 사회를 “매일 한 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목숨을 잃는 비인간적인 사회, 사람이 없는 ‘근면 성실’이제 바꿔야 합니다.”라고 규정합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적 관점에서 생각할 때 하루 한 명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명이 과로사를 한다고 해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루 한 명이 과로사 한다는 것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비인간적인 사회”또는 “사람이 없는”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기보다 감성적인 주장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인간 생명을 값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하루 한 명의 과로사로 대한민국 사회를 비인간적 사회라거나 사람이 없는 사회라고 하는 것은 사회과학적으로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일 년에 교통사고 사망자가 28만 여명에 달하고,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하는, 40분마다 1명의 자살로 1년에 1만3천여 명이 자살하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를 어떤 사회라고 규정해야할지 알 수 없습니다. 지식인의 논리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형평성에 맞아야 하고 감성에 호소해서는 곤란합니다. 그 책이 출판 되자 학계 언론계 정치계 심지어 종교계까지 온 사회가 그 주장이 맞다며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현대 근로자들이 과로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루 한 명의 과로사 케이스를 모아 대한민국을 “과로사회”로, 또한 “비인간적 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주장입니다. 근로자들을 과로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과 주장이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 온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고 그렇게 폄하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합니다. 이러한 주장이 더 나쁜 것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노동을 폄하하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내일은 오늘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인권과 자유까지 유보했던 선배들의 희생과 미덕을 이렇게 무시하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을 비인간적인 과로사회로 규정하는 것에 환호하며 동의하는 이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근대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대한민국이 “과로사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작용은 개선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으로 산업화의 과정과 경제 발전에 기여한 온 국민의 노력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바른 태도라고 볼 수 없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과로사회”라고 규정된 대한민국 사회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가적 역량을 “과로사회”로부터 탈출하는 일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근로자들의 근로 시간 단축, 최저 임금 인상, 소득 주도 성장,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등으로 발전하던 경제가 퇴보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과로사회”라고 규정하는 이들과 이에 동조하는 이들은 지금의 경제 발전이 있기까지의 노력과 공을 비인간적 사회를 만든 원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라 경제가 너무나 심각하게 무너지고 해결될 희망이 보이지 않자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자조석인 말로 “한 번 망해봐야 정신을 차리지...”라고 하는데, 또 다른 어떤 분은 “망해도 정신을 못 차릴 것이다.”라고 합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절망적인 이러한 말이 사실인 것은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의 경우를 통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일하기 싫어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일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선호합니다. 타락한 인간 본성을 정부가 이용하여 과도한 복지 정책과 퍼주기 선심 정책을 펴는 것은 “과로사회”를 탈출하여 그리스나 베네수엘라 같은 사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 정부의 정책이나 국민 의식으로는 결코 미국이나 일본이나 네덜란드나 싱가포르 같이 경제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성실한 노동으로 부를 창출하는 사회, 축척된 부를 재투자 하고 그 이익을 가지고 아끼고 절약하는 복지정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근로자가 과도한 노동으로 혹사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되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못하게 제제를 가해야 건강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 3:10-12)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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