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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생각하는 하나님의 일과 사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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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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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지금은 교회력으로 사순절입니다. 올해 사순절은 지난 3월 6일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에 시작하여 4월 20일에 끝납니다. 사순절의 정신은 주님이 겪으신 수난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영어로 렌트(Lent)라고 하는데, 이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어의 Lenz와 함께 ‘봄’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순절을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의 희랍어인 ‘테사라코스테’(Τεσσαρακοστ?)를 사순절로 번역하였습니다. 넉 사자에 열흘 순자와 마디 절 자를 써서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이 사순절은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재를 머리에 얹거나 이마에 바르며 죄를 통찰하고 회개하는 재의 수요일에 시작되어 부활절 전 40일(사순,四旬) 기간 동안 지킵니다.

사순절 전통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동방교회인 정교회에서는 매주간 5일만을 사순절 기간에 포함시키고, 토요일과 주일을 40일은 사순절 기간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에 부활절 전 8주간이 사순절이 됩니다. 서방교회인 천주교회에서는 주일을 포함하여 사순절기간이 고난주간 목요일까지입니다. 개신교회에서는 주일을 제외하고 토요일을 포함한 40일을 사순절로 지키니까 부활절 이전 6주 4일이 사순절입니다. 즉,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 주일을 제외한 날수가 40일 간이 사순절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특별히 자기 절제와 회개를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모든 언 행 심을 조심합니다. 또한 이 기간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마귀에게 시험 받으신 사건을 떠 올리기도 합니다. 결국 사순절의 핵심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입니다. 우리 개신교회에서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제외한 다른 절기는 거의 지키지 않습니다. 절기를 지키고 지키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절기의 의미를 일상에서 잊지 않고 실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의 의미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그것은 곧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주님의 고난이 주는 교훈을 바르게 잘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순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순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상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의 의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올바르고 구체적인 실천 행위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이 되면 마음을 집중하여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동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합니다. 또한 그 고난을 묵상하고 또는 그 고난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금식도 하고 모든 것을 참고 절제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 구제와 자선활동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사순절에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전통입니다. 그러한 전통이 일상의 삶으로 연결되면 사순절은 경건의 훈련으로 장려할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모든 것을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하다가 사순절에만 그렇게 하는 것은 경건의 모양만 내는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순절에만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고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산다면, 그렇게 지키는 사순절은 경건에 유익이 아니라 외식(外飾, External ornament)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인이나 기독교는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는 힘없고 맛없는 그리스도인과 기독교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형식은 중요합니다. 형식이란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특별한 사람은 형식의 도움 없이도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형식의 도움 없이 경건의 삶을 살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형식의 효용성이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형식은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내용을 잘 담아내기 위해 형식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형식이 내용보다 강조되거나 더 중요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말 속담에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100.00을 벌기 위해 $200.00을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용보다 형식을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형식을 강조하는 경우는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형식을 강조할수록 내용은 점점 빈약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용의 빈약함을 감추기 위해 더욱 형식에 집착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일반인들은 물론 지도자 자신도 그러한 형식 강조가 영적 꼼수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온갖 거짓과 부정까지도 마치 능력처럼 왜곡되어 지도자가 영웅처럼 인기를 누리고 존경을 받기까지 하는 기가 막히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작금 이러한 현상은 국가나 교회 안에 점점 심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도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가꾸는 사람은 속이 빈 경우가 많습니다. 내면을 충실하게 가꾸는 사람이 외모까지 예쁘고 멋있게 가꾸기란 사실 어렵습니다. 고급한 가치를 추구하여 내면을 가꾸지 않고 겉모습의 아름다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하급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러한 태도는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현대 교회는 외모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대 교회가 집착하는 일 중에 수적 부흥, 재정적 능력, 선교와 구제의 실적, 교회 안의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이런 일에 성과를 내기 위해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그와 같은 일 자체는 교회가 소중히 여기고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그런 것이 외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조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수난절을 지키는 것이 외식이 될 수 있듯이 교회의 모든 활동들도 외식이 될 수 있습니다. 방언을 하고 천사처럼 말하고 지식이 깊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자기의 몸을 희생적 헌신에 바친다고 해도 그것이 외식일 수 있다는 성경의 지적을 우리는 너무 외면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외식하는 신앙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얼마나 신랄하게 꾸짖으셨는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시고 심지어 마귀의 자식이라고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만 꾸짖고 책망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도 꾸짖고 책망하셨습니다. 사탄이라고 책망을 받은 베드로는 사실 다른 11제자들을 대표해서 받은 책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1제자들의 생각도 베드로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책망 받은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셔야 할 고난의 길을 가로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된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을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을 수도 있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이 말씀을 하시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가로막고 나섰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께서 가셔야 한다고 하신 고난의 길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의 태도는 거의 화를 내면서 예수님께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제자들의 그러한 태도는 예수님께 위로와 격려가 되는 고마운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범한 스승이었다면 제자들의 그러한 태도를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합니다. 그들의 모든 관심은 무조건 예수님께서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순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비수 같이 날칼롭고 천둥 같은 위엄으로 꾸짖으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은 예수님께서 그 일을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것을 사람의 일이라고 하셨지만 사실 그 일은 사탄의 일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며 사탄의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잘못 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릇된 판단과 열정은 정작 주의를 기우려야 할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아야 한다는 일념에 죽었다가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중요한 말씀을 무시하였습니다.

어쩌면 사탄은 이것을 노렸는지도 모릅니다.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고난과 십자가를 가로 막는 일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부활에 이를 수 없고 고난 없이 영광에 이를 수 없는데 고난과 십자가를 거부하게 하므로 영광의 부활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린 것입니다. 사탄의 이 같은 간교한 작전에 현대 기독교도 눈이 가려져서 고난과 십자가를 거부하고 회피하므로 영광스러운 부활을 지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십자가는 부활에 이르는 하나님의 일이고 그것을 거부하고 가로막는 일은 사람의 일임과 동시에 사탄의 일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젊잖게 하나님의 일인 고난과 십자가를 외면하고 우직하고 열정적으로 사람의 일에 열을 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막 8:31-3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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