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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과 작은교회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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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식201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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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1986년 발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주조된 개념이다.

소확행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삶의 방식이다. 특별히 한국사회에서는 1997년 IMF 사태 이후, 저성장과 불평등이 구조화되면서 행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진 후, 현대인들의 삶에 새롭게 등장한 행복의 개념이다.

예전에 학업, 취업, 결혼은 자연스러운 생애주기였다. 한 사람은 고등학교든 대학이든 공부를 마치고 취직을 한 뒤, 사회에 정착하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며 살았다. 그때 사람들은 미래에 대하여 희망을 가지고 행복을 꿈꾸며 살았다. 그러나 IMF이후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생애주기는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었다.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욕망보다는 당장의 행복에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작은교회 운동이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생태계도 자본으로 인해 저성장과 불평등으로 구조화되었다. 자본이 있는 큰 교회는 살아남기 유리해졌고, 자본이 없는 작은교회는 생존조차 불투명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이길 힘은 없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리 설교를 잘 해도, 자본을 갖춘 교회를 따라가지 못한다.

소확행이 개인주의 사회의 결과이듯, 교회가 개교회주의로 가면서 개인이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가야 하는 것처럼, 개교회도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자본이 없는 작은교회가 ‘우리도 언젠가는 큰 교회가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헛된 꿈일 뿐이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는 교회가 되는 것이 더 현실적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비극인지 잘된 일인지 아직 결정짓기에는 이르다. 작은교회가 소확행을 꿈꾸는 개인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되어줄 수 있다면, 작은 교회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소확행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교회가 되지 못한 좌절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이 ‘소확행’을 시행하는 교회에 머문다면, 자기 자신에게도, 소확행을 찾는 현대인들에게도 비극이 될지 모른다.

자본에 의한 불평등한 구조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을 쥔 큰교회는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서 구석구석 소비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것이다. 자본이 없는 작은교회는 그런 큰교회를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또는 시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가져온 사회적 병폐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작은교회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작은이들’과 또 다른 행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세상을 보듬어야 하는 존재이지 세상에서 좌절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장준식(북가주 실리콘 밸리 세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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