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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8)2019-08-16 09:31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마태복음은,
주님의 천국 비유의 말씀을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보화를 발견한 후 기쁨으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보화가 감추어진 밭을 사듯이
부자 청년이 주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질문을 했을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태복음 19:21]

그리고 부자 청년은,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태복음 19:20]
이 청년의 물음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어릴 때부터 다 지켰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지 주님께 물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관원이며 부자 청년은
자신의 선한 행위로 영생을 얻는지 알고 있었기에
“선한 선생님이여” 주님을 불렀고,
주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하셨지만
주님은 계명을 지켜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계명인 율법의 의(義)는 죄에 대한 인식이며 자각이라
율법의 의는 ‘정의와 긍휼과 믿음’ 이라,
율법의 완성은 ‘사랑’ 이라
주님은 ‘새 계명’ 이라 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주님의 새 계명인 사랑은,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한 사랑이며
그리고 부활하셔서 소망이 되신 주님의 사랑은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라
이 모든 사랑을 알게 하시고, 사랑으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사랑이라,
사랑이란,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義)이며 복음의 의(義)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웃을 사랑하기에
이웃 사랑은,
빛 인 진리와 함께한 사랑이며, 공의 인 소금과 함께한 사랑이라
주님은 세상의 빛이라 하셨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4]
소금이 맛을 잃지 않도록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50]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하셨으며,
이를 바울은 ‘율법의 완성이 이웃 사랑’ 이라 했고,
마태복음은 이를 빛이신 주님으로 표현하였고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4:16]
그리고 다음절에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기록하였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7]

주님이 청년에게 하신 말씀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줌이, 하늘에 보화를 두는,
이웃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과 같다는 말씀이라,

주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십일조를 외식하는 자들이라 하신 말씀과 같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주님은 십일조를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적인 의(義)와
율법의 근본적인 긍휼인 인(仁)이, 믿음인 신(信)이라
이를 분리할 수 없고,
이를 분리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십일조를 통하여
신앙을 종교화한 자들을 질책하셨고
주님은 주님을 따른다는 제자들에게도 질책을 하셨다.

주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라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7:17]
간질로 심히 고생하고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 아들을 데리고 온 자는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여 주님께 나왔을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누가복음 9:41]
귀신이 들린 외아들을 고치려 제자들에게 구하였으나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였다는
병자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하신 말씀이다.
이 두 구절의 공통점은 병자를 둔 아버지가 주님께 병 고침을 청하였고,
주님은 병을 고치지 못한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라 하셨고
얼마나 함께 있으시며, 얼마나 참으셔야 하겠는가,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얼마나 제자들과 함께 있어 하나님의 의를 가르치실 것이며
얼마나 참아야 제자들이 깨달을지, 주님은 답답한 심정이셨으리라.
당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유대 백성들이 표본이었듯이
제자들도 다름없이 똑같다는 말씀이며
오늘날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병을 고치지 못한 까닭으로 제자들을 질책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라 하신 말씀은
믿음이 없는, 하나님의 긍휼과 의로 병자를 대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의 능력으로 고치려 했으며
주님의 제자로서의 인간적인 권위로 고치려 했기에, 믿음이 없다 하셨다.

믿음은
믿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義)과 인자하심(仁) 그리고 약속을 믿음(信)이라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량이 믿음의 분량이라,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경륜을 이 땅에 실현시키려는 분량이라,
주님은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같이 보셨고, 같이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주님은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이웃을 사랑함이라 하셨고
하나님을 사랑함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이웃을 사랑함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주님의 사랑은 단순한 애정이나 아낌이 아니라
목적이 없고 조건이 없는 사랑이라
하나님의 근원적인, 절대적인 사랑은, 인간이 갖아야 할 필수적이며, 생명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이
이웃을 사랑하는 만큼이라, 그 만큼이 믿음의 분량이라,
주님은 이 기쁜 소식인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며,
이러하신 주님은 십일조를 통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다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오늘날 주님을 따른 다는 자들이 외식하며 말하는 십일조와 무엇이 다른가?
이웃 사랑커녕,
무엇이 형제간에, 세상에 고발하고 송사하게 하였을까?

주님의 사랑하라는 계명의 말씀은 신명기 6:5 으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주님은 율법과 복음을 서로 상반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고,
패역한 세대에,
패역한 세대에 영향을 받은 부자 청년을 향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제자들을 위해,
이웃 사랑을 말하나 등한시 하는 외식하는 세대를 위하여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고, 이 사랑이 복음의 의라,

주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으시다.
누가 복음을 기준으로 보면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 전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누가복음 18:11-12]
주님의 바리새인에 대한 비유의 말씀은
부자 청년이 주님께 한 대답과 같고,
주님의 말씀은, 청년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뜻의 비유이라,
다시 보면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서로 따로 기도하여, 하나님을 부르는 행위,
끼리끼리 모이는 행위, 모두가 함께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행위,
그리고 자신의 의를 나타내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며 자랑하는 행위,
그 행위가 외식으로 비롯된 행위라
사람에게 보이고 하나님께 보이려는
두 마음을 품은 행위라,
오늘날도 이와 같은 일이 다반사라,
무엇이 믿음 이길래, 무엇으로 영광을 돌린다고 난리들인가?

신약의 ‘십일조’ 는
마태복음 23:23, 누가복음 11:42 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하신 말씀이며
누가복음 18:12절은 주님이 바리새인을 비유하셨고
신약의 ‘십일조’ 는 오직 주님만 세 번 언급하셨고
대상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 그들의 외식을 책망을 넘어 저주 수준으로 말씀하셨음은
율법의 근본 의(義)를 버렸기 때문이며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신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줌이 이웃 사랑이라
이 이웃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발로(發露)라,
주님은 보화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보화를 발견한 후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보화가 감추어진 밭을 사듯이,
모든 소유를 포함한 목숨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주님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단지 십일조를 하라, 하셨는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이
단지 수입의 일부분인 십일조를 하라, 하셨을까?
주님이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주님의 목숨을 대속 물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 분이
목숨이 아닌 십일조를 하라, 하셨는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5]
주님은 목숨을, 생명을, 영생을, 하나님 나라를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고
이를 방해하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심판을 말씀하셨고
오늘날 외식하는 자들이 또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라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는가.

주님은,
자기 자신의 소유에서 ‘청지기’ 적인 삶을
그리고 주님의 일을 맡을 ‘청지기’가 되길 원하신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누가복음 12:42-44]

그러기에 주님은 오늘도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향해
성령님의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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