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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8-12-14 11:42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He that hath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ith unto the churches”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3:14]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첫 말씀을 보면
왜 라오디게아 교회가 책망을 받았는지 주님 자신을 나타내시는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아멘이시오”
주님은 아멘이시다.
이사야 65:16을 보면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
이 절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라는 이사야가 본 환상의 예언인
신약시대 곧 하나님 나라를 예언하기 이전 절로
‘진리의 하나님’ 이 ‘아멘의 하나님’ 이시라
구약의 히브리어 ‘아멘’ 의 의미는
‘진리’ 로 ‘진실성’ 이며 ‘믿음’ 으로 ‘신뢰’ 할 수 있는 ‘신뢰성’ 이 믿음이라
‘진리의 하나님’ 이 ‘아멘’ 의 하나님이시라
이 아멘의 어원은 ‘인간의 안정적인 자세’ 라 신학자들은 주장하며
이에 동의함은 진리의 하나님을 신뢰함이 불안정한 인간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진리로 온전한 인간으로 설 수 있기에
땅에서 복을 구하는 자는
땅에서 진리이신 하나님께 진리로 구함으로 진리에 거하며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의 진리로 맹세함이 진리를 따르는 자들의 의지의 자세라
다음절은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문장 그대로 이전의 환난이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
그리스도 주님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였으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자비로 오기에
은혜의 시대를 도래를 의미하기에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이라 기록되었고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는 잊어짐의 의미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은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완전히 용서하실 때 죄를 잊어 주신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죄가 숨겨졌다 하며
이제 새로운 그리스도 주님의 복음의 시대가 열렸으며
이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며 진리의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주님은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심을 밝히셨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신 역사,
그 역사의 하나님이시면서
그 역사의 증인으로 오신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창조의 근본이신 하나님이시면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낮고 낮아지셔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려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증인이 되셔서
온갖 고난을 당하시고 핍박을 받으시며 돌아가시기 까지 한 사랑으로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 하였기에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진리의 하나님의 근본이심을 “아멘이시오” 로 밝히시며
교회라는 허명만 남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교회를 위해
믿음에서 의(義)를 제외하고 믿음에서 행위를 분리한 외식된 자들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 미지근한 행위에 대하여
처음이자 끝이신 “아멘이시오” 로 밝히시며 책망하시고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진리의 성령님의 말씀을 들어라 명하신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기회가 은혜라
성령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 주님의 고귀한 사랑을 닮을지 말지로
교회가 주님의 판단을 받으며
교회에 속한 구성원이 판단을 받기에
주님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서 계시되, 아직도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주님이 문을 두드림을 어느 자들은 전도나 선교를 주장하지만
주님은 이미 교회라 부르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셨기에 옳지 않고
‘문’ 은 그리스도 주님의 재림이 임박함을 가리키기 위해
문의 비유를 주님은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가복음13:28-29]
가장 큰 환난을 가리킨다.
그러나 어느 자들은 이 구절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0]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주님의 초림으로 보나
가장 큰 환난의 심판은 아직 임하지 않았기에 옳지 않고
어느 학자들은 ‘이 세대’를 ‘이 민족’ 으로 보아
즉 이 당시 유대인 세대가 주님이 메시야 되심을 인정하지 않았고
더하여 배척하고 핍박한 특정 지어진 유대 민족을 뜻하는 것으로 보기에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그들의 본성이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다음구절을 보면 이해가 된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심판의 때를 말씀하셨다.
다른 ‘문’ 의 비유는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누가복음12:36]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게 흘연히 오시니.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37]
그러시기에 칭찬 없이 책망만 하신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이제 주님은 문 밖에 서거 문을 두드리시며
다시 오실 때의 긴박함을 말씀하시는 현재의 시제(時制)로
아직 문 밖에 서서 기다리시기에 현재를 의미하며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오늘날의 교회를 향하신 말씀이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3:20]
이는 레위기의 화목제와 같이 하나님과의 교제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함께 잡수시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주님과의 교제와 주님과 함께 하심을 의미하지만
어느 학자는 이를 마지막 때의 천년왕국의 만찬을 가리킨다 하고
어느 학자는 이 구절의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을 마지막 때 주님이 주신 기회라
음성을 듣는 행위를 이름뿐인 교회에서 나와, 배도하는 교회를 떠나
주님의 교제로 나오라는 개인의 마음을 두드리며 초청하신 말씀이라 주장함에
동의함은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은 개인이지 교회가 아니다.
왜 교회가 아니라 개인의 이김을 말씀하셨을까.
교회라는 이름만 남아 외식하고 사이비 화 하여 배도의 길을 향하는 시대의 교회에서
주님은 복음의 의로 남아 있는 자가 되길 원하셨고
역으로 이 말씀은 교회의 모든 교인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라
교회에 가라지가 있다는 말씀이라,
주님은 모든 교회를 칭찬하고 책망하셨지만
교회에 속한 구성원 개인은
교회를 판단하시는 주님의 판단에는 누구도 예외 없이 책임을 물으시기에
개인은 공동체라는 교회의 지체이기에
공동체가 주님의 복음을 받은 자들로 의로워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지만
무한한 책임이 아니라 이름만 남은 교회라면, 배도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를 떠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바랄 수 있겠고
그런 교회 같지 않은 교회에 남아 교회다운 교회를 위해
의로운 싸움을 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하신 말씀은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누구든지’ 로 교회 같지 않는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 주님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자들 개개인에게도
참으시며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이며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교회들에게도 자비로 참으시며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셔서 다시 기회를 주셨다고 확신하며
‘누구든지’ 로 교회의 직분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여
누구든지 주님의 계명으로 살지 못한 다면
토해버리시겠다는 말씀이라
구원의 탈락을 의미하며
복음시대의 종말을 향한 다급한 말씀으로 다가 온다.
그러나 한국과 이민교회에 뿌리 깊은 세대주의와 세대 주의로 비롯된 종말론을
말함이 아니며 세대주의 적인 종말론은
얼마나 많은 사이비와 이단을 양산하였고 아직도 양산하고 있으며
그들의 공통점은 극단적인 종말론 자들이라
현실을 떠난 허공을 치는 거짓믿음으로
현실을 외면하면서 현실의 욕망에 머문 자들이라,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를 끝의 순서로 말씀하셔서
마지막 때라 오늘날의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를 닮았다 주장함이 아닌 것은
그렇게 주장하면 다른 여섯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기록으로 성경에 남겨 놓으셨을까?
아니다. 성경은 어느 것은 취하고 버리는 책이 아니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빌라델비아 같이 칭찬 받는 교회도 존재하며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책망만 받는 교회도 있겠지만
오늘날 교회라는 명칭은 동서를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교회의 건물을 가리키고
한국의 대형교회의 탄생은 건물을 짓기 위해 예배당이 교회로 변했으며
교회라는 이름도 모자라 성전이라 부르며 성전을 짓고 유지하기 위하여
헌금이 충성의 척도가 되었기에 수많은 명목의 헌금이 생겼으며
교회사에 이렇게 헌금의 종류가 많은 때가 있었는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부를 쫓아
헌금을 걷는 한 방편으로 기도원을 지었고
기도원은 충성의 은사로 혼란스러운 방언이나 예언 등을 받겠다는
은사주의의 홍수와 같은 범람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그리스도 주님의 계명을 헌 신짝처럼 버렸기에
교인이라면 정직하고 정의로웠던 정숙한 이미지가
교인이라면 시끄럽게 싸우며 몰상식하여 몰지각한 이미지로 굳어졌고
세상으로부터 교회의 가치는 가치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투자의 상징으로
이미 오래전에 주식회사라 회자(膾炙)되었다.
그 후 대형교회의 롤을 따라 부를 추구했고 아직도 그런 교회들...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신앙의 동지들이라는 형제자매들에게 내 의견을 전했다.
‘한국교회는 망한다!’ 고 예견했다.
몇은 수긍했지만 대부분은 미친놈 취급했고 그런 자들을 이해는 했다.
얼마나 많은 교회의 웅장한 건물을 짓고 계획하고 교인들은 늘어나
기독교 국가가 될 것 인데 망한다니.
그것은 주님의 제자들이 화려하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주님의 동조를 기대했던 어리석은 제자들의 말처럼 들렸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마태복음 24:1]
거대한 대리석과 금으로 치장한 지붕의 성전,
주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역으로 모든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고 물으셨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2]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신다 하셨다.

누구는 내게 반박하여
한국에 세계적인 대형교회가 얼마나 많고
얼마나 많은 나라에 선교를 하고
얼마나 많은 미주교회가 자체 건물을 갖고 있고
얼마나 작은 교회들이 신실한데... 라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부자라 하나 의(義)의 결핍으로 가난하고
부자가 아니라 하나 부요를 쫓는 곤고한 믿음으로 가련한 신앙과
세대와 시대커녕 자신도 바라보지 못하는 눈이 멀어
수많은 예배를 드리고 찬양하여도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여
한 세대가 가지 전 없어질 수많은 교회들...
그리고도 외부에서 수많은 이유와 변명을 찾으려는 외식된 자들...
당시의 위정자들도 ‘정의로운 사회’ ‘정의로운 국가’를 모토(motto)로 내세웠는데
정의커녕 정직하지 못하고도 은사를 받겠다고 날뛰는 자들...
기억하라.
주님은 교회의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단지 교회다운 교회 인지를, 교회를 보셨다.

주님은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미지근한 교회로 판정하셨고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자기만족에 빠진 오늘날의 교회를
어떻게 판단하실까?
그러나 모두를 구원하고 자 하시는 사랑의 주님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 말씀은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같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주님은
오늘도 문 밖에서 기다리시며 너와 나의 마음
우리 모두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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