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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8-05-29 10:06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He that hath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ith unto the churches”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 으로 성령님을 보내주셨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님께서 한 분이듯이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복음
하나 되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 하기 원하셨기에 성령님을 보내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But the Comforter, which is the Holy Ghos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he shall teach you all things,
and bring all things to your remembrance,
whatsoever I have said unto you. 요한복음 14:26]

성령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셨기에
하나님의 의(義)를 가르치며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셨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하시고
그리스도를 닮은 의와 행위로 세상에서 주님을 증거 하시게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자들을 가르쳐 진리의 좁은 문으로 안내하시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에
시편 100:4-5 이 연상된다.
문이신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의 문에 들어감을
감사함으로 행위로 그리스도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행위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Enter into his gates with thanksgiving, and into his courts with praise:
be thankful unto him, and bless his name.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For the LORD is good; his mercy is everlasting;
and his truth endureth to all generations.]
여호와는 선하시니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에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his truth endureth to all generations.”
그리스도 주님은 모신 그리스도의 제자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대대에 알려지도록
감사함으로 믿음의 선물을 받은 은혜가 넘치는 행위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합당한 의의 자녀로 송축하며
감사함으로 그리스도 인 임을 행위로 찬양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온 세대에 알려지기를
성령님이 이 시대를 향한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길은
좁은 문의 길이라
주님은 좁은 문을 말씀을 하시기전
외식하는 자들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고
형제의 누속에 티를 빼라 하시고
“구하고 찾으며 문을 두드리라” 하셨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시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하시며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하시며
열매로 그들을 알라 하시며
믿음의 행위를 그들을 아신다고 비유하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하셨다.
주님의 말씀은 단편적인 말씀 같으나
믿음의 행위라
같이 연결된 의(義)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의 정의로
오늘날 적용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믿음은 행위로 열매를 맺고
믿음은 분별이라 말씀이 분별의 기준이 되기에 행위가 된다.

그러기에 믿음이란 실상은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행위로 나타난 열매의 결과가 포함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믿음으로
삶의 실제(實際)가 되어 사실이 되며 형편이 되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report. 히브리서 11:1-2]
앞선 믿음의 선진들이 체험으로 간증하였고 경험으로 증인이 되었으나
믿음에 행위를 제외한 위선의 외식은
예수님 당시로 초대교회로
오늘날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로 계속 되기에
신앙을 종교화 하고 종교화 된 예배의 의식이 경건이 된
가증스러웠던 역사를 뒤돌아보면
오늘날 순수한 믿음이라 여겼던 믿음이 얼마나 많은 불순물이 섞여
제도화 되었고 조직화 하여 하나님의 의에 거역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역행하는지
그 실상을 직시하여 그리스도 주님을 닮아가길 바라는 소망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럼 교회가 제도 인가?
아니다.
그럼 교회가 조직 인가?
아니다.
교회는
고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의 중심에 인 치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진리로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는
주님을 따라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의 공동체라
성경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닮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을 교회라 했지
제도의 조직과 건물을 교회라 하지 않았고
그러기에 자발적인 모임이라 자발적으로 일을 하였고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은사로
자기의 분량만큼 자진하여 일을 하였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않았기에
모임을 위하여 필요에 따라 직책을 세웠고
세움을 받은 사람은 믿음의 본을 보이는 직책이었기에
순수한 모임이 더 그리스도 주님을 닮으려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기에 진리에 거하는 사랑이라
진리로 서로 사랑함으로 한 공동체임을 체감하고 유지하고 변절되지 않게 헌신하며
일하는 직책이었지
오늘날 같이 사례를 받는 직분이 아니었으며
더구나 명예직도 아니었다.
그래서 성경은 어느 지역의 공동체를 교회라 불렀고
그 공동체의 리더의 이름이나 직분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공동체의 대표의 직분이 없었기에 기록하지 않았음은
항상 공동체의 머리 되신 분을 그리스도 주님이시기에
누가 공동체의 대표 노릇을 할 것이며
누가 일하는 직책을 자랑할 수나 있겠나.
오늘날과 같이 어느 교회 당회장 누구, 대표 목사 누구, 담임 목사 누구,
원로 목사 누구 등 누가 대표도 아니었다.
왜 성경은 누구라는 이름을 남겨놓지 않았을까.
성경은 일꾼들을 기록하였지 누구 한 개인의 직분을 기록하지 않았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그렇고
유다서는 오히려 거짓 교사에 내릴 심판으로 시작하고,

요한 계시록은
서문(머리말)을 쓰고 시작은 일곱 교회로 시작하여
누가 리더이고 누가 어떠한 직분을 맡아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 성경은 기록하지
않았음은 거기에 서열의 조직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않았기에
내세움도 없어
믿음의 공동체라 잘잘못으로 몇 사람을 지적하였지만 누구를 내세움이 없다.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가.

‘행위’ 다.
‘처음 행위’ ‘나중 행위’ ‘니골라 당의 행위’
‘네 행위’ ‘자기행위’ ‘그의 행위’ ‘사람의 행위’ ‘그들의 행위’ ‘각 사람의 행위’
행위로 시작하여 행위로 끝 날 정도로 주님은 행위를 강조했고
자기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고 상을 받는 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 주님은 믿음으로 판단하시지 아니하시고 행위로 판단하시는가.
개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의를, 그리스도의 정의를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말씀이
행함의 기준이었지 교회의 직분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성도라는 똑같고 공평한 신분이나
그 거룩한 신분을 믿음으로 받았기에
믿음과 함께 하는 행위,
믿음의 열매인 행위,
각 사람의 행위로 심판을 하신다 기록하였다.
그러나 각 교회의 공동체를 부르셨다.
각 개인의 행위가 기준이지만
각 개인의 행위가 공동체에 해를 끼쳤나 아니면 의로웠나를 보시고
여전히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보셨다.
왜 개인을 탓하시던가, 칭찬을 하시지 왜 연대(連帶)책임 적인 공동체 인가.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의 진정한 의미와 깊은 뜻은
개인에서 공동체로 나가는 길이라
이전 세대와 현 세대 그리고 다가오는 세대를 같이 보는
이 길이 복음의 길이라
그리스도의 초보에서 벗어난 믿음은
단지 믿음으로 개인의 구원을 이룸을 넘어 공동체의 이룸이
교회의 이룸이라
하나님 나라를 이룸이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룸이라
그 ‘이룸’을 ‘네 행위’ 로 보시고 심판하시지만
‘네가 속한 공동체’ 가 진정 성경의 교회며
진정 이 땅의 하나님 나라인지 보신다는 말씀이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신다.
그러면 보인다.
초라한 내 믿음으로 비롯된 빈약한 신앙이라
행위가 빈약한 보잘 것 없는 신앙인이지만
나름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심정으로 살아가면서
진리를 놓치지 않으려 성경을 끊임없이 읽으면서
오늘날 교회라는 신앙의 공동체를 바라보면
헐은 성처럼 잡초가 무성하고 쓰러져 가는 명목만 남은 한국과 이민 교회
간판만 남은 교회
한 세대도 목 버틸 수많은 교회들
세대와 세대의 단절로 사라질 교회
세상에서 아무 힘도 없는 교회를 교회라 우기는 자들이
영원을 추구한다며 구원 받았다며 욕심으로 순간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여
이리 저리 흔들리고 분열하여 찢어지고 갈라져서 싸우는,
복음이 그런 건가.
무엇이 믿음이란 말인가.
그리스도 주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맥없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믿음이란,
나를 넘고 가족을 넘어 공동체로
서로 교통하는 공동체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그리스도의 이루 말하지 못한 소중한 사랑을 마음의 중심에 간직하여
그 사랑이 겨워서 감당하기 어려워 행위가 되어
행하는 성령님의 사람들로서
그 위대한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변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변화를 권능이라 하고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를 믿음이라 하기에
믿음은,
매일 매일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정의를 간직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복음의 길이라
복음의 길은 그리스도 주님을 닮아가는 길이라
거룩한 길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공정하시며 공평하시며 정의로우시기에
네 사정, 네 형편, 네 상황을 어떻게 인내하고 어떻게 소망을 가졌는지
그 행위를 보시며 그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주님은
오늘도 너로 인해 너의 공동체를 보시기에
너로 인해 너의 공동체를 판단하신 다는 말씀이라
‘너’ 는
이미 ‘너 가’ 아니라 ‘너희’ 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하나님 나라로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세상에서 하나님나라 라
각 교회를 판단하시는 주님이 교회를 무어라 하시는지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판단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오늘날 교회를 향한 말씀으로 바라보아 적용해야 하지만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의 주장처럼
일곱 교회가 과거 시대 교회의 단지 역사라면
오늘날과 상관없어 기록되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읽을 필요도 없어
성경은 그런 자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며 무익하다.
주의(主意) 할 것은 하나님의 계시는
그리스도 주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지
결코 어느 개인에게만 주신 말씀이 절대 아니다!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이것을 증거 한다.

첫 번째는 ‘행위’ 로 판단하셨다.
두 번째는 ‘행위가 포함된 믿음’ 으로 성령님이 교회를 판단하셨고
이제도 판단하시고 앞으로도 판단하시기에
주님은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명령하셨다.

첫 번째 행위로 일곱 교회를 판단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보면,

* 에베소 교회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로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2:2]
에베소 교회는 행위의 수고와 인내가 있었기에
참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신다 하셨고
자칭 사도라 칭하는 거짓 선생의 거짓을 드러내었지만
그러나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려 책망을 받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어 활동적인 교회였지만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 주님과의 교제에 우선권을 두지 않았다.
이 말씀은 행위의 수고와 인내가 있고
분별력이 있어 거짓 선생을 용납하지 않았지만
그 분별력이 복음의 의(義)에 합당하지 않기에
신앙이 종교화가 되어 주님을 따르는 열심히 있을 지라도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하셨다.

에베소 교회가
(오늘날의 어느 교회가)
열심히 있어 열심히 전도하며 수고하고 인내하며
자칭 사도라는 거짓 선생을 거부하였더라도
처음 사랑을 버렸기에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셨고
그렇지 아니하면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어 버리신다 하셨다.

처음 사랑이 무엇인가.
요한일서 4:7절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안다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Beloved,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is of God; and every one that loveth is born of God, and knoweth God.]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4:9]
우리를 살리려 사랑의 하나님께서 독생자 주님을 보내신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 주님의 말로 하지 못할 고귀한 사랑
그 사랑을 인 치신 성령님의 처음 사랑
그 사랑을 버렸다 함은
공의의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공의를 버렸고
주님의 섬긴다 하면서 복음에 나타난 의(義)를 버렸기에
행위의 동기인 믿음의 근본을 버렸기에
처음 사랑을 버렸다 하셨기에,
건전한 교리와 열심인 헌신과 예배를 드렸더라도
처음 사랑을 버렸다 하셨음은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라
사랑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며
진리는 사랑과 함께 하기에
사랑이 결여된 에베소 교회의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 유익이 없어, 에베소 교회는 책망을 받았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3:2-3의 사랑을 보면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성경을 아는 능력이 있어 모든 계시와 지식을 알고
또 믿음이 있어 산을 옳길 만 하더라도
공정하시고 공평하신 하나님의 의(義)의 사랑이
그리스도 주님의 복음에 나타난 정의(正義)의 사랑이 없으면
가진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몸을 불사르게 내 줄지라도
아무 유익이 없다.
아무 상관이 없다.
종교적인 의무감으로
종교적인 사명감으로 한 행위라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의 주장처럼
‘처음 사랑’ 이 열정이 아니며 열심 도 아니라서,

에베소 교회가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고 인내하며
자칭 사도라는 거짓 선생을 거부하였더라도
처음 사랑을 버렸기에,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와 그리스도의 정의가
근본이 된 그리스도 주님과의 교제인 사랑
성령님께서 인 치신 그 고귀한 사랑을 버렸기에
그 행위가 진리와 함께 한 사랑으로 한 행위가 아니라서
행위의 수고와 인내가 있고 건전한 교리가 있을 지라도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요 유익이 없었다.
그래서 진리는 사랑이라
진리의 사랑이 없다면 구원함을 받지 못한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데살로니가후서 2:10]
그래서 사랑에는 거짓이 없고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로마서 12:9]

사랑은 말고 혀로만 사랑함이 아니라
진리와 함께 한 사랑으로 행함을 말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18]

그리고 칭찬을 하셨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6]
니골라 당(Nicolaitanes)은
버가모 교회에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라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4-15]
누가 니골라 당에 속하였고 무엇을 믿었는지 많은 추측이 제시 되었다.
주후 180년 경에 이레니우스와 힢포리투스는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명으로
니골라를 따르는 자들이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롤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행전 6:4-6]
니골라 집사는 유대교에 입교한 수리아의 안디옥 사람으로
이 일곱 집사의 이름은 모두 헬라식 이름이다.
이레니우스는 그의 책 ‘이단에 대항하여’에서
그들은 2세기 구레네 영지주의의 추종자들이라 추측하였고
유세비우스는 ‘교회사’ 에서 이 분파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언급했다.

다른 학자의 주장은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rule over the laity)’ 의미라
성직자 제도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에
유다서 1:11의 ‘거짓 교사에 내릴 심판’을 연계한다.
[화 있을 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삵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화 있을 진저” 는
주님께서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할 때 자주 사용하신 표현으로
거짓 교사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음을 말씀하셨고
유다는 거짓 교사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죄를 구약 성경에 나타난 세 인물인 가인과 발람 그리고 고라의 죄와
동일시하고 있다.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가인의 죄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가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 했으며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하시지 않자 열납 된 제사를 드렸던
형제 아벨을 살인하는 죄를 범하였다.
이 또한 행위라
두 번째 가인은 공의의 심판을 부정하는 자라
악인에 대한 징계를 부정하는 자 라
거짓 교사들과 동일한 최종의 이단자였음을 주장한다.
“삵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발람은 자신에게 약속된 커다란 보상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발락의 요구에 응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와 음행에 빠지도록 한 배교의 책임이 있다.
거짓 교사들은 발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성경을 비틀어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여 정직하지 못한 본을 보이며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설교하고
이를 듣는 자들도 그런가 하여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죄를 감싼다.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고라는 다단과 아비람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의 군위에 도전하여 반역한 자 이었다.
유다는 고라의 반역을 언급하며 거짓 교사들의 죄로 교회의 권위에 고전하는 죄와
고라의 반역이 단순히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같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권위를 부인하는 죄를 범했다.

에베소 교회가 건전한 교회처럼 거짓 선생을 거부했고
인내와 헌신이 있는 교회라 인간적으로 억울할지 몰라도
결국은 책망도 받고 칭찬도 받았지만
그 칭찬으로 죄에 대하여 탕감(蕩減)을 받지 못하였다.
처음 사랑을 저버렸기에
에베소 교회는
사랑이 없는 교회로 주님의 판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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