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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8-03-23 10:54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누가복음 9장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2]

이를 히브리서 2:3-4는 성령님께서 나누어 주신 능력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율법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무엇을 행하여야 할 것을 요구하시기에
그 요구의 기준이 규칙(規則)이라 의(義)로서 죄를 깨닫게 하지만
복음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사람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의(義)로 우신 사랑으로, 은혜를 베푸시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주시기에
율법과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같이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자비를 베푸셔서
이것이 은혜라
율법의 완성이 복음이 되기에
복음은 새 언약이라, 큰 구원이라,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if we neglect so great salvation”
하나님의 사랑에 배신이 하나님의 의(義)에 대한 배반이라
언약의 칭호인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신
그리스도 자신이시라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which at the first began to be spoken by the Lord,”
이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씀이 성육신이 되셔서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그 사랑을 등한히 여김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김’ 이라
그 사랑으로 세상에 오셔서 삶으로 확증하신
그리스도 주님께 등한 한 여김이라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and was confirmed unto us by them that heard him”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제자들이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증하고 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사랑을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으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How shall we escape”
어떻게 그 크신 사랑을 피하고 달아나려 하는가.
그 사랑의 근거(根據)로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기적들과
성령님의 은사로 복음의 진리를 입증하기 위하였고
진리를 확증하기 위한 것이 이라
그리스도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우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셨고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주셨고 함께 증언하였는데
이제 주님의 제자들이 그의 제자들인 복음의 2세대를 향하여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1-2]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할 것인가?
다시 복음을 등한히 여기지 말 것을 강력히 권하기에
여기서 ‘우리가’ 로 제자들과 수신자인 복음의 2세대를 동일시 하지만
이 수신자인 2세대는 복음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지만
복음이 자신들의 삶의 일상에 아주 작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에
이에 대하여 권하여 타이르는 권유(勸諭)이며 경고며
이 또한 오늘날 우리를 향한 기록이라
성령님의 우리를 위한 믿음으로 비롯된 신앙의 역사(歷史)라
히브리서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소홀히 함에 대한 심각한 경고를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고 성경은 이 진리의 소홀함을 수 없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 진리에 대한 소홀이 겉과 속이 다른 ‘외식’ 으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쳐서 성경의 진리를 따르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들이 경고했던 말이 우리의 경고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 주님의 사랑을 소홀이 여김이라 하나님의 의에 반하는 행위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지 못해 힘을 잃고 세상에 난파(難破)하여
이리 저리 세상의 사상과 이데 오르기에 흔들리기에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마땅한 복음의 길을 제시하였으나
오늘날 십자가 없는 교회는 없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 사람은 많지 않음은
마음을 돌이켜 회심(回心)하였다 면서
회개가 마음의 중심까지 이르지 못하고 입술에 멈춘 까닭이라
이제 다시 가다듬고 시인하고 행함이 따르는 회개를 하여
자신의 믿음이라는 여기는 그리스도의 초보를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자신을 부인한 다음
자신이 공동체로 믿었던 겉모습의 공동체를 믿음의 분별력으로 직시하여
또 자신을 부인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성령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은사를 받아
하나의 공동체로 서로 교통하는 공동체를 새로워져야 하기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한 성령님이 듯이
그래서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며 공동체의 유익 하게 하기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4-7]
은사는 공동체를 바르게 인도하고 하나 되는 합당한 공동체의 일을 위하여 받기에 이제까지 은사라 여겼던 뜻 없이 떠드는 불통(不通)의 소리인 방언을 버리고 무당 같은 족집게 도사 같은 허다한 분란의 말을 버리지 않아
그리스도의 초보에 머문다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 리 요.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실증적으로 확인시키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는, 능력으로 이를 구분한다면
병든 자를 고치는 신체적 자유
죽은 자를 살리는 존재론적 자유
문둥병자를 치유하는 의식적 종교적 자유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는 정신적 영적 자유로
자유가 하나님 나라의 평안이라
사도행전 9:36-42절을 보면
예수님으로 부여 받은 능력의 권위로
욥바에 바디다라 하는 병들어 죽은 여 제자를 베드로가 살리어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어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누렸다.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3-6]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배낭이나 양식, 돈을 소유할 수 없어
그들은 물질적인 필요와 공급을 위해 전적으로 주님으로 신뢰해야 했기에
제자들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실천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들이 전국 복음을 전파하였고
그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 되심을 경험하여
천국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천국인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라
그 믿음은 자기 자신 만의 믿음을 넘어
목숨과 목숨을 연결하고 생명으로 이어지는 세대와 세대를 잇고
시대를 이어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 있는 ‘능력’이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하나님 자녀의 ‘권위’라
이는 그리스도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이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그 이후 예수님은 전대와 배낭을 그리고 검을 사라 하셨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누가복음 22:35-36]
왜 주님은 배낭이나 양식 돈 등을 소유하지 말고 천국복음을 외치라시며
이제는 그런 것들을 사라하시는가?
제자들이 얼마나 주님을 신뢰하는지 시험을 하셨는가?
아니면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어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이제는 겉옷을 팔아 검까지 사라 하셨을까.
보자.
이 두 가지 분부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하여 ‘검’을 설명할 수 있는 설교나 책이나 주장이 난무하지만
타당한 해석하여 의미를 전하는 자들이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의 믿음의 근거인 신앙이 이미 외식에 물들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쉬운 길을 찾는 습성이 되어 의문을 갖지도 못하고
갖더라도 성경으로 성경을 풀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아예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마음은 있으나 행함이 없고
묵상하고 성경을 상고한다면서 성경 한 구절을 달랑 갖고 ‘성경 큐티’ 라고
오늘의 성경 구절로 삼아 묵상을 한 들
어떻게 이 한 구절이 오늘 주시는 말씀이며
이 한 구절로 다른 구절과 장과 권과 비교할 수 있는 상고(相考)가 가능한가.
그러니 어떻게 옳은 분별력을 가질 것이며
쉽고 쉬운 길, 넓고 평탄한 길을 찾음에 버릇이 되어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세대와 시대
오늘날 우리 믿음의 자화상이 아닌가.

주님께서 배낭이나 양식 돈 등을 소유하지 말고 천국복음을 전파하라
하셨을 때는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 이름에 합당하신 그리스도의 권위(權威)를 주셨다.
말씀이 성육신이 되신 창조주의 권위
세상에 빛으로 오신 하나님 영광의 권위
메시아로 오신 구세주의 권위
그 권위로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수 있었지만
이제 주님이 제자들을 떠나야 주님의 일이 이루어져 가기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일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누가복음 22:37]
이제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주님은 제자들을 떠나시며
외식하는 자들에게 불법자로 여김을 받으셨다.
기록된 바,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 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 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사야 53:10-12]
이제 주님은 제자들을 떠나가실 시간이 되었고
떠나가실 때에 범죄자 중 하나로 외식하는 자들에게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주님이 떠나시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실 것이라,
제자들은 주님 없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상황이 되었기에
주님이 떠나가시면 제자들은 가난과 주림 그리고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
주님은 전대와 배낭이 필요하고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 하셨다.
이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하여 필요를 스스로 준비해야 할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하신 말씀은 무엇을 뜻하시는 말씀인가.
제자들의 겉옷은 외출 때 입고 추위와 더위를 막고 담요 같이 사용하는
귀중한 옷을 팔아 검을 사라하셨을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종합해 보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아니면 공격용 무기로 검을 사용하라는 말씀도
아님은 검을 가진 자는 다 검으로 망한다 하셨고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하셨기에
보복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고,
어느 이들은 ‘성령의 검’을 말하나 그러면 전대와 배낭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기에 이도 아니며, 어느 성경학자는 정부의 통치력의 보호를
의미 한다 하지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셨고
이는 하나님 나라에 모순된다.
어느 이는 검이 방어용이며 공격용이 아니라 하지만
주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돌아서라 하셨기에 이도 설득력이 없다.
주님께서 문자적인 의미로 검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임박한, 하나님 나라처럼 임박한 전파에 은유적으로 말씀하셨다 믿는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처럼 문자 그대로 문자를 취했다.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And they said, Lord, behold, here are two swords.
And he said unto them, It is enough. :38]
제자들이 두 개의 검이 있다 하였지만
예수님은 족하다 하시고 검의 이야기는 이로서 끝이 난다.
만약에 제자들 각자에게 검이 필요하다면 족하다 하셨을까?
제자들이 주님을 죽이려는 대적들의 시도를 검으로 격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더라도 그 생각은 주님의 뜻과 거리가 먼 생각이었다.
(그 후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을 칼로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렸다)
그래서 이는 주님의 역설(逆說)적인 말씀이다.
진리에 반하는 듯하나 진리인,
모든 명령을 글자 그대로 취하면 안 됨을 나타내기에
언어의 소통은 독특한 역사적 시대적 배경과 문학적(비유)문맥과
상호 관계를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누가 누구를 향해 말했고
누가 듣는 자 인지 듣는 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면 말하는 자의 의도를
더 뚜렷하게 알 수 있기에
언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움을 받은 한 가지 영역이라는
성경학자의 주장은
언어가 글로 성경이 되었고
이 과정에 성령님의 전적인 개입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소통의 통로가 언어(성경)라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공급하심과 인간이 준비해야 할 사이의
역설적인 내용은 양쪽 다 필요함은
이것이 믿음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인 언약 적 관계,
주님의 말씀 ‘자신을 부인 하고 주님을 따르는’ 역설적인 관계,
그 관계의 의로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기에
이제 성도라 불리는 이미 가장 큰 축복을 받았기에
자신을 노력으로 인해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아서 자신의 목적이 있는 삶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축복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은
자기 자신에 매인 그리스도의 초보가 아니라
이미 자기 자신을 초월(超越)하여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가 되어감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하기에
거저 받은 능력과 권위
거저 받은 은혜로 믿음이 되었기에
자기 자신을 거저 드리는 삶이 예배라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는 언제나 오늘이다.

다시 보면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주님은 제자들의 겉옷이 이스라엘의 일상에 얼마나 소중하신지를 아신다.
그러기에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 말씀을 하시기 전과 후를 보면 이해가 된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열두 제자에게 명하여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하시며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라 하시고
이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미움을 받아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이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신다 말씀하셨고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거든 다른 동네로 피하고
또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주님께서 오신다 하셨고 상황과 환경과 이 모든 것을 두려워 말며
두려워 할 분,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허락지 않으시면 참새 하나도 떨어지지 아니하신다 하시며
사람들 앞에 나를 시인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시인하신다 하시며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 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For I am come to set a man at variance against his father, and the daughter against her mother, and the daughter in law against her mother in law.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And a man's foes shall be they of his own household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He that loveth father or mother more than me is not worthy of me:
and he that loveth son or daughter more than me is not worthy of me.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And he that taketh not his cross, and followeth after me,
is not worthy of me.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He that findeth his life shall lose it:
and he that loseth his life for my sake shall find it. 34-39]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Think not that I am come to send peace on earth:
I came not to send peace, but a sword.”
예수님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시지 않으셨고
화평으로 보내심을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검을 주러 오셨다 했다.
‘검’과 ‘화평’ 은 반어(反語)적으로 반어법으로 말씀하셨기에
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은 전쟁이나 투쟁이 아니라
주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근본적인 의의 결단을 요구하셨다.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은 메시야가 와서 정치적인 해방과
물질적인 번영을 줄 것이라 기대하였기에
예수님은 이 같이 그릇된 기대를 단 한 번에 물리치듯이
일축(一蹴)하시며 이 땅에 오신 참된 목적을 말씀하셨다.
이는 유대인의 화평에 대한 개념을 알면 이해하기 쉽다.
화평은 히브리어 ‘샬롬’ 으로 헬라어 ‘에이레네’ 로
그들은 세속적인 문제이든 신앙적인 문제든지 간에 온갖 복을 기원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고 메시아가 오시면 세상의 모든 번영이
유대 땅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등 외적인 평화와 자유가 올 것으로
고대하였기에
어느 학자는 이사야 9장 ‘평강의 왕’ 같이
메시아가 오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가 세워지는
줄 그들이 알았다 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영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9:6-7]

예수님은 검을 주러 오셨다 하신 이유는
그들이 바라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번영과 자유와 해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해로 교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의로 살아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제시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급박한 선언을 하셨듯이
이제 긴박한 전투적인 상황을 암시하시려 검을 주러오셨다 말씀하셨으리라.
주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지만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평화가 이루어지기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듯이 이 땅의 죄악 된 질서를 척결하고
그 위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위하여
그 나라가 완성되기 까지 사생결단의 치열한 혈전이 끊임없이 일어나기에
그러기에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주셨으며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이 평안은 세상의 것이 아니며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갖는 평안이 아니기에
근심도 두려움도 말라 하셨다.
이 임박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예수님 당시에 선포되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임하였고
오늘날 짧은 인생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임하기에
당시의 유대인들 생각처럼 세상에서 번영된 일시적인 ‘화평’ 이 아니라
소중한 겉옷을 팔아 ‘검’을 취하여
모든 우선순위가 하나님의 의(義)로 자녀로 의(義)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복음의 길이라, 십자가의 길이라
매일 매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장소가 격전지요
그때가 이 시간이라
예수님은 세상적인 평안이 아니라 영원한 평안을 주러 오셨기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정의를 주러 오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으니 담대하고 평안을 누리라 하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하셨고 그 전에 하신 말씀은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시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6:1]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義)의 검을 가지고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실족치 않게 하기 위하여
[내기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1]
기쁨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 그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려고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7]
그리하여 명하심은
주님께서 목숨 바쳐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같이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 된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이 땅에서 성령님께서 공급하시는 신령한 것으로 견고하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로마서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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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in ㆍ 팀 켈러의 센터 처치 댓글(1) 새글 2018-04-22
대장쟁이 ㆍ 그들은 왜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따라갔을까? 댓글(3) 2018-04-19
짐보 ㆍ 7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8-04-16
대장쟁이 ㆍ 가시떨기나무 불꽃 2018-04-12
짐보 ㆍ 75.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8-04-06
대장쟁이 ㆍ 상한 심령의 제사 2018-04-06
대장쟁이 ㆍ 천국에서 큰 자 댓글(8) 2018-03-30
짐보 ㆍ 7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8-03-23
짐보 ㆍ 73.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8-03-12
대장쟁이 ㆍ 무슨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댓글(7) 2018-03-03
짐보 ㆍ 72.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8-02-26
대장쟁이 ㆍ 가인의 제사, 아벨의 제사 2018-02-23
대장쟁이 ㆍ 잉태의 고통 댓글(2) 2018-02-17
짐보 ㆍ 7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2) 2018-02-16
대장쟁이 ㆍ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댓글(3) 2018-02-10
짐보 ㆍ 7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8-02-07
대장쟁이 ㆍ 이게 무슨 소리냐? 2018-02-01
짐보 ㆍ 6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1) 2018-01-29
대장쟁이 ㆍ 매일 먹기 싫습니다. 댓글(8) 2018-01-26
대장쟁이 ㆍ 시시한 오병이어 말고.... 댓글(3) 2018-01-23
짐보 ㆍ 6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4) 2018-01-19
대장쟁이 ㆍ 오병이어 (2) 댓글(3) 2018-01-18
대장쟁이 ㆍ 오병이어 (1) 댓글(2) 2018-01-16
대장쟁이 ㆍ 증거를 대라! 댓글(4) 2018-01-13
짐보 ㆍ 6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2) 201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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