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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8-02-16 13:54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가
변절한 신앙으로 종교화 한 외식으로 나타나면
이 ‘외식’ 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나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의
저속한 희망이 되어 허무한 무너짐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 욥기 8:13]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은 말하며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For the vile person will speak villany, and his heart will work iniquity,
to practise hypocrisy, and to utter error against the LORD,
to make empty the soul of the hungry,
and he will cause the drink of the thirsty to fail.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로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The instruments also of the churl are evil:
he deviseth wicked devices to destroy the poor with lying words,
even when the needy speaketh right. 이사야 32:6-7]
마음에 의가 사라진 불의한 자는
마음에 부당한 편견을 갖고 반복된 위선으로 여호와를 거스르기에
주린 자의 영혼을 비게 하여 목마른 영혼이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하기에
사탄의 악한 도구가 되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더 궁핍하게 하여 멸하기에
외식(hypocrisy)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 악한 자, 불의 한 자로
하나님의 의(義)에 편견을 가진 자로 사탄의 도구가 되기에
교회사의 역사에서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는
저절로 생겨난 자생(自生)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義)에 부당한 편견을 갖고 패역하여 하나님을 거스르다
믿음에 타락하여 종당에는 사탄의 하수인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개신교가 전파된 후 짧은 역사에
얼마나 많은 이단과 사이비가 생겼는가.

특히 80년대로 들어서면서 은사주의의 광풍으로 생긴 성령운동이란
부흥운동은 교회의 건축 붐으로 교회가 성전으로 둔갑하여 불렀고
교회 건축헌금과 수많은 헌금의 명목은 교회 역사상 가장 헌금의 종류가
수없이 많았던 중세 가톨릭 보다 더 많아졌고 더하여 기도원식 은사타령과 기도원 짓기 열풍은 교회와 기도원의 건물 건축 재원을 마련하려는 구실로
작정 헌금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헌금은 교인을 빚쟁이로 만들었고
헌금이 믿음의 척도가 되어 갈수록
돈 내고 돈 받기 기복주의 의 늪에 빠져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따놓은 단편적인 생각으로
물질의 복을 추구하는 외식이 당연한
‘예수 믿어 천국가고 부자 되자’ 는
가난이 저주며 육체의 병은 마귀의 장난이라
병을 치료 받자는 신유의 부흥운동과 더불어 은사를 받자는 기도원식
은사 타령의 범람은 경건이 사라진 요란으로 ‘부르짖으라.’ 연발하며
목이 터져라 예레미야 33:3 장을 외쳤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에 대한 언약이
부르짖으면 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르면(Call unto me)이 되어야 할 구절이
목청 높여 통성기도하고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찬양하고 헌금을 바치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
병을 치료 받고 은사도 받고 더불어 헌금을 하여 세계 선교에 이바지하면
네가 알지 못하던 부자가 된다는 선동은
부흥 강사는 이 구절을 반복적으로 떠들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9]

이 가련한 자들은 성령의 역사라는 미명으로
보고 듣고 체험하고 믿어서 복 받으라는 표적을 구하는 세대라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 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2:39]
악하고 신실하지 못했던 음란한 세대는 표적을 구했고
마찬가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라는 요구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증명하라는 요청이었으며
80년 이후 거의라 할 정도의 한국교회가 똑 같이 표적으로 이적과 기적을
요망(要望)하여 울고불고 소리치며 기도하고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성령님께서 임하시기를 빌며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교회가 아니라 시장판이 되어갔고
엉터리 신비를 추구하여 신비주의가 판을 칠 때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의와 멀어져서 하나님의 공의와 그리스도의 정의와 담을 쌓고 신실과 정직함은 교회에서 사라져가 언제부터인지 ‘경건’을 가톨릭의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영성’이라 부르며
어떻게 하나 되는 복음이
교단으로 갈라지고 개 교회 위주로 갈라지고도
가톨릭의 사제주의가 목사주의로 바뀌었으나 같은 성직주의라
똑 같은 성직주의라 모양만 다른 가운을 입고 개혁을 외치는 자들이 있는지
이런 자들이 우연히 생겨났는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보라.
교회 역사상 이렇게 갈라지고 갈라져서 수백 개인지 몇 개인지 셀 수 없는
교단과 개 교회의 파벌이 생긴 적이 있는가?
그런 역사는 전무후무(前無後無) 할거다.
보라.
믿음은, 믿음이 성장할수록 교단 색깔이 흐려지고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는 교단의 색깔이 없어짐이 당연하거늘
개 교회 주의에 머물면서 세상을 복음화 하겠다고 외친들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정의에 멀어진 외침의 소리는
공허하여 마음을 흔드는 힘을 잃어
세상에서도 외면 받아 시끄러운 공해가 될 뿐인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왜 이렇게 타락되었을까.
믿음이란 오르지 천국 티켓을 소유하는 수단과 방편이 되면
이미 순수한 믿음에서 떠난 복음의 어그러진 길이 됨을
지난 과거의 타락한 교회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교회가 천국행 티켓을 주는 곳으로 알아
이 바울의 고백도 천국도 가고 상을 받으려 달려간다고 설교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3-14]
우선 이 구절을 포함한 3장 앞부분의 소제목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로
1절은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하며
빌립보 형제들에게 편지의 종결을 지으려 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바울에게 닥칠 일로 인해 더 편지나 연락을 할 형편이 될지 모르기에
강조하는 의미도 있을 수 있기에
편지에 다 쓰지 못한 그 밖의 것들을 추가하여 언급하면서
의를 거치는 자들을, 거짓 선생들을 조심하라 먼저 경고하였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Beware of dogs, beware of evil workers, beware of the concision.]
‘개들을 삼가고 (Beware of dogs)’
개는 깨끗지 못한 짐승의 상징으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 묘사하는 동물로
바울은 교회를 부패하기 위하여 돌아다니는 거짓 교사들을 개라 했고
‘개’는 영지주의자로 더러운 몸과 신령한 영혼을 분리한 신비주의 적인
영지주의 자들로 이들은 몰래 초대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시인하나
그리스도의 육신 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었는데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은 이 ‘개’를 자기의 목회에 반대하는 자들을
비유하여 사나운 개를 조심하라 언급하여 자기의 문자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텅 빈 마음의 바탕을 드러낸다.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beware of evil workers)’
그들은 영지주의자들처럼 그리스도인으로 가장하고 교회에 들어와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리는 거짓 선생들로 영지주의자와 동격인 분리주의자,
손 할례 당 등 이었다.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beware of the concision)’
손 할례 당을 경고하면서 그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 거짓교사들이라 육적이고 외적인 할례만을 가르쳐 영적인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분리주의자들이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육체가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육체의 행악 자들이다.
그래서 이런 자들은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이 모든 거짓 선생들은 전통과 형식을 중히 여기는 외식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에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사야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로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나 실상은 거역하는 외식하는 자들이기에
그러기에 바울은 이런 자들을 멀리하라 하며
자신의 믿음의 세계관을 고백하며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0]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며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 받아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이라
죽음까지도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 위함이라
소망의 근거로
겸손하면서 강인한 믿음의 표출, 삶으로 드러난 그리스도를 따름을 말하였지
오르지 ‘부르심의 상’을 따라 부활할 때 받는 상을 의미하지 않음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the mark for the prize of the high calling of God in Christ Jesus.”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의 의를
“the high calling of God in Christ Jesus”
그 의를 ‘부르심의 상’ 으로 표현했기에
같은 표현을 고린도후서 9:24-25 이렇게 말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바울의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자들 중 오직 한 사람이 상을 받는 다고 해석한다면
온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의를 모르는 자들이라
공동체, 교회의 정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외식’ 하는
자들이라 이런 자들이 거짓 선생이며 이런 자들이 영지주의자며 분리하는 자들인데 이런 자들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라면서
선의의 경쟁을 말하며 같은 의미로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라며
‘우리’ 라는 공동체를 언급한다.
그래서 이 9장은 ‘사도의 권리’ 라는 소제목으로 사도의 권리만이 아니라
고난을 말하며 소망을 말하고
복종을 말하며 겸손을 말하고
상을 말하며 근신을 말하기에 9장의 마침을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27]
상과 복종과 고난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직한 자의 권리 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경외라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자신의 몸부림과
자신의 소망으로 고난을 실천하는 삶을 이야기 하며 본받기를 원하였기에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Finally, my brethren, rejoice in the Lord.
To write the same things to you,
to me indeed is not grievous, but for you it is safe. 3:1]
그러기에 3장의 시작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 라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같은 믿음을 가진 형제들아, 자매들아
하나님의 은혜로 형제자매 된 자들아
늘 기뻐하라,
그 기쁨으로 그 감사로 그 평안을 잃지 않기 위해
바울은 같은 편지를 다시 쓰는 것도 진실로 고통이 아니며
또한 글을 받는 자들에게 안전한 복음의 길을 제시하기에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모두가 하나 된 성도로
자신의 부활의 길에 이르는 고난이나 어려움에 기꺼이 달게 받아 감수함은
이는 소망에 이루는 인내의 삶이 예배가 되는 신령한 예배라
바울은 고난을 받을 각오를 밝히 말하였지 천국의 상만을 바라보는
그런 초보적인 믿음에 언제까지 머무른다면 거짓 선생들에게 속아
가증한 자들의 위선을 따라가기에, 자신을 빗대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신의 믿음의 삶을 더 확증하는,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시려 낮아지셨던 그리스도처럼
낮아 지셔서, 더 낮아 지셔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처럼,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소망이 되신 주가 되셨기에
성령님께서 그 사랑을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도장을 새기듯
소망을 인 쳐 주셨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은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자 같이 그리스도를 쫓아간다 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I press toward the mark for the prize of the high calling of God
in Christ Jesus.”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세상 삶의 끝 날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갖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택함 받은 자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듯이 부름 받은 자로 달려간다고 고백했는데
그 ‘부름의 상’ 이
외식하는 거짓 선생들의 주장처럼 문자 그대로 상이 되고 면류관이 되어
금 면류관을 받지 못하면 개털모자라도 받으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세상의 삶을 도외시 하고 천국만을 바라보는 자가 된다면
믿음에 행함을 분리한 분리주의자가 된다면
외식하는 자들처럼 이 땅의 삶과 천국을 분리하여
자신의 주장에 믿음 따로 현실 따로 로 자신들의 계명을 교훈으로 삼아
복종을 강요하는 자의 노예가 된다.

외식의 시작은 말로는 공경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은 이미 형식대로 격식을 따져서 타인에게 보여주려는
경건을 떠난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Ye hypocrites, well did Esaias prophesy of you, saying,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This people draweth nigh unto me with their mouth,
and honoureth me with their lips; but their heart is far from me.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But in vain they do worship me,
teaching for doctrines the commandments of men. 마태복음 15:7-9]
이사야는 외식하는 자들에 대하여 잘 예언을 했음을 상기 하시면서
이 백성들이 그들의 입의 말로는 예수님을 공경한다 하지만
그들의 진심은 예수님의 의와 멀어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헛되이 부질없이 경배, 예배 한다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의 외식은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어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And the vision of all is become unto you as the words of a book that is sealed, which men deliver to one that is learned, saying, Read this, I pray thee: and he saith, I cannot; for it is sealed: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Wherefore the Lord said,
Forasmuch as this people draw near me with their mouth,
and with their lips do honour me,
but have removed their heart far from me,
and their fear toward me is taught by the precept of men: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Therefore, behold, I will proceed to do a marvellous work among this people, even a marvellous work and a wonder:
for the wisdom of their wise men shall perish,
and the understanding of their prudent men shall be hid.
이사야 29:11-14]
이사야의 ‘봉한 책(the words of a book that is sealed)’ 은
책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선지자들이 기록한 계시의 두루마리를 가리키며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봉함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침을 의미하는 은유이라
하나님의 의에 떠난 자들은 영혼이 잠들어 눈이 감기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과 선견자들을 보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계시가 그들이 알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10절을 보면 더 뚜렷해지며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0]

바울은 이 10절을 이렇게 인용하며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According as it is written, God hath given them the spirit of slumber,
eyes that they should not see,
and ears that they should not hear;) unto this day. 로마서 11:8]
바울은 이스라엘의 패역한 외식하는 자들에게 이절을 인용하며
잠든 그들의 잠든 영혼은, 혼미한 심령으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여 메시야 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음을
이사야 10절을 인용하여 외식을 이렇게 기록했다.

다시 보면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외식하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배 행위를 말하며 제사장까지 포함한
가증한 행위로 말 뿐인 경배, 예배를 가리키며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their fear toward me is taught by the precept of men”
외식하는 자들은 사람의 계명을 가르침으로
신앙을 겉모습인 의식의 예배로, 외적인 예배의 의식으로
인위적인 규칙과 규율을 만들어 예배의 양식에 하나님의 의가 사라진
종교화된 의식은 인간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뜻을 자기들의 합리화한 의식과
도덕과 윤리, 율법에 맞추어 말하나 자기들은 말한 대로 살지 않고
입술에 머문 거짓된 그들의 계명의 가르침을 뜻한다.

왜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셨을까?
그들은 공통점은 이사야 당시나 예수님 당시나 경고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섬긴다는 유대인들이었고
그들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왔고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포함한) 하나님의 신앙을
형식주의 종교로 전락시켰기에 의가 사라진 겉치레에 치중하였고
예수님 당시는 자신들이 조상들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
이미 오래전에 이사야가 비판한 위선과 가증한 것에 얽매인 조상들의
잘못을 이어받아 똑 같이 행하고 있었다.
이사야 당시나 예수님 당시나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이 외식을 했었기에
예수님은 이들에게 ‘화가 있다’ 하시며 꾸짖어 나무람을 넘어선
저주를 하셨고 오늘날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들의 외식과 비교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새겨들어야 한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무엇을 공경한단 말인가.
사람들 앞에서 공경하는 체 하는 위선은
율법의 문자적 규정만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 같이 진정한 회개와
사랑이 사라진 형식적인 예배와 기도 등 하나님의 의가 사라진 모순이
이율배반 적이라 그런 자들의 입에 머문 진리는 왜곡 된 진리라
말뿐인 형식적인 위선이라 그런 자들은 의인처럼 행세하고
자신들만이 선택되었다고 선민주의에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자들이라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람의 계명이란 신앙을 종교화한 인간 자신들의 방법에 의한
인위적인 인본주의적인 발상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생활의 실천적
모든 규칙은 하나님의 의와 복음의 의를 떠난 직분적인 권위로
아무리 외형적인 화려한 예배와 경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경외가 아니라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신 말씀은 열매가 없는
그릇된 목표를 위해 수고 하더라도 공허한 허무한 외적인 경배 행위는
신앙적인 학습적인 윤리와 도덕적인 결과가 없는 헛된 위선일 뿐이라
오늘날 각처에서 행하여지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이 사라진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한 진리의 말잔치는 예배시간에 만 머물러
예배가 삶에 실천도 못하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어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轉落)시킨 경배는
어찌 오늘날과 그리 똑같단 말인가.

그래서 예수님은 실족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 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But whoso shall offend one of these little ones which believe in me,
it were better for him that a millstone were hanged about his neck,
and that he were drowned in the depth of the sea.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Woe unto the world because of offences!
for it must needs be that offences come; but woe to that man by whom the offence cometh! 마태복음 18:6-7]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
거짓 선생을 말한다.
그리고 실족한 자 또한 실족하게 한 자를 핑계를 삼을 수 없음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굳게 서지 않았기에
실족하는 거짓 선생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의 유혹과 미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고린도 후서 6:6-7의 의의 무기와 에베소서 6:13-18의 의의 무기를 대조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날나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실천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로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라가기에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과 그 조직의 공격을 당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 의로운 길이 되어
때로는 가족과 친구 등의 반대도 감수하여야 할 자신의 십자가라
그리스도의 정의를 위하여 외쳐야 할 의의 길이라
자기 자신의 인기와 영광을 위하여
외치지 아니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라
세상의 안락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도(복음)를 위하여
세상의 비난을 받고 비방과 수치로 고난을 받을 지라도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의 의의 길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이라
성령님의 인도로 동행하는 신앙의 길이라 생명의 길이기에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삶이 신앙이기에
자기를 부인하여 제 목숨을 잃은 자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자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For 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but whosoever will lose his life for my sake,
the same shall save it. :24]

댓글목록

대장쟁이님의 댓글

대장쟁이 100.♡.♡.223

성경말씀의 왜곡과 오해, 그리고 이 왜곡과 오해의 곰팡이를 퍼뜨리는 것은 기독교의 오랜, 정말 심각한 문제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목 아프시겠습니다, 홀로 외치시느라.
짐보님, 설날은 잘 보내셨습니까?
뒤늦게 하늘에서 떡가루가 펑펑 내리네요.

짐보님의 댓글

짐보 108.♡.♡.226

자의적인 성경해석은 언제나 있었지만
오늘날 또한 심각한 수준이라 서로 성도라 하기가 민망한 시대라
성도는 직분없는 자, 새신자를 부르는 말이 되었으니.
설날이라 쉬는 날도 아닌데 아내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오늘 설인데 모 먹구싶어요?'
'아무거나, 편하신 데로,
미안한 마음에 토요일 저녁에 회거리도 사고 아내 좋아하는 생태를 사서
찌개를 끓이고 저녁을 준비했고, 눈이 온다기에 막걸리 2병을 사서
분위기를 맞추려 했더니만, 대장쟁이님 댓글을 쓰신 시간
바로 전부터 눈이 펑펑 내리네요.
막걸리 두잔으로 상기된 아내는 부엌 창가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더니만
셀폰으로 사진을 몇장 찍더니만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찍자네요.
사진 찍는 거 좋아하진 않지만 분위기 맞추느라 몇장 찍다
문을 열어놓고 뒷뜰로 뒷집의 커다란 나무가지에 내려앉은 눈을 바라보며
한 동안 둘이 애들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눈치우냐 허리가 가펐지만 편안한 얼굴의 아내를 보면
웬지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리고 보면 미안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죄송도 하고, 제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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