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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7-12-06 09:56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사야 42:1-4]

구약의 성경도
철저하게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사야의 ‘선택한 사람’ 은 섬기도록 택하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키기에
공동체를 말하며 동시에 장소를 말함은
신명기 12:5절을 보면
택하신 예배처소와 지파는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하나님이 택하신 예배 처소와 택한 사람은,
그리고 번제와 제물과 십일조 등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은
너희와 너희 가족이며 너희 민족으로 즐거워할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가리킨다.
공동체로 ‘너와 네 조상’ ‘너와 네 후손’ ‘너와 네 민족’ 등
‘너’ 이면서 ‘공동체’ 인 믿음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 부터 이식과 야곱의 공동체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장소에 보내시어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셨고
온전한 하늘나라를 준비하시기 위하여 제자를 선택하셨기에
이 믿음의 역사로 믿음의 반열(班列),
믿음의 공동체의 반열에 참여하였기에
이 공동체가 있는 곳, 장소가 성전이 되고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오기 까지 의로 싸워 이기는,
선택받은 자로,
믿음의 반열에 참여한 자로,
이 ‘반열’을 히브리서는 ‘반차’ 로
멜기세덱의 반차(the order of Melchisedec)표현했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브리서 5:5-6]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영광을 취하시지 않았기에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 자신이 제물이 되신 제사장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오늘 너를 나았다 하셨고
Thou art my Son, to day have I begotten thee”
하신 말씀은 오늘, 이제, 지금, 그리스도를 따르는 너, 네가, 너희가
하나님의 의인 복음으로 세상에 정의를 베풀기 위하여
자신의 삶이 제물이 된 예배가 되어
너희 공동체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영광된 자리라
성지가 되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기에
자신의 의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과 같이
거리에 소리를 내는 자들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쳐서 내가 부셔지여 하나 되는 복음
그리스도의 도의 십자가를 실천하는 길이라서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기에
멜기세덱을 통하여 예수님의 오심을 미리 예비하셨기에
멜기세덱은
‘의의 왕(King of righteousness)’
‘살렘 왕(King of Salem, 평화의 왕)’
‘평강의 왕(King of peace)’ 이라 했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To whom also Abraham gave a tenth part of all;
first being by interpretation King of righteousness,
and after that also King of Salem, which is, King of peace; 히브리서 7:2]
그는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빌어준 살렘의 왕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그 누가 있어 믿음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이름, 믿음의 조상될
아브람에게 복을 빌어주겠으며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되었기에

그러나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할 때는
아브라함이 아니었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And he blessed him, and said, Blessed be Abram of the most high God,
possessor of heaven and earth: 창세기 14:19]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개인 아브람이 공동체인 아브라함이 되기 위하여
아브람에게 언약을 주시기전 행하여 완전하게 하라 하셨고,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언약의 표징’ 으로 할례를 받으라 하셨고

언약의 표시로 몸에 표를 남기는,
‘너는 네 아들이라’ 는,
신약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령님께서 마음의 중심에
도장을 새기듯 인을 치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 라는.

할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을 상징하기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는 백성 중에 끊어져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자가 됨은
할례는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고 헌신하겠다는 상징이기에
아브람은 축복받기 전에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준비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8]
이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상징하며
할례처럼 언약이라 믿음의 행위로 비롯된
세상에 정의를 베푸는 행위의 순종이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서 완전하여 아브라함으로 부르시듯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말씀은 하나님의 의로 살라는 말씀이었다.

멜기세덱(Melchisedec)이 누구인가.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그런즉 제사장이었으며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어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Without father, without mother, without descent, having neither beginning of days,
nor end of life; but made like unto the Son of God;
abideth a priest continually. 히브리서 7:3]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the power of an endless life)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이셨다.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별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Who is made, not after the law of a carnal commandment,
but after the power of an endless life.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For he testifieth,
Thou art a priest for ever after the order of Melchisedec. :16-17]

그러기에 그리스도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Which hope we have as an anchor of the soul, both sure and stedfast,
and which entereth into that within the veil;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Whither the forerunner is for us entered, even Jesus,
made an high priest for ever after the order of Melchisedec. :19-20]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entereth into that within the veil)
들어 가셨다고, 하나님 나라로 가셨다 표현했고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Whither the forerunner is for us entered, even Jesus)”
선구자(forerunner)로, 믿음의 본을 보이셨으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었기에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이를 의의 왕이시며
살렘 왕 이시며
(Salem 예루살렘, 성전을 부르는 의미로 믿음의 공동체
곧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평강의 왕 이시다.

그래서 이사야의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말씀과 같아
[하늘로 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And lo a voice from heaven,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마태복음 3:17]

그런즉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이심을 알리셨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If ye had known me, ye should have known my Father also:
and from henceforth ye know him, and have seen him.”
믿음의 반열을 알았더라면,
하나님의 의를 알았고
믿음의 반차를 알았더라면,
그리스도께서 베풀 정의를 알았고
믿음의 역사를 알았더라면,
이제부터는(henceforth),
그리스도 예수님을 알아가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있는 의의 신앙으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성령님은
정의를 행하려다 고난을 받더라도
삶이 피곤하고 고생스럽더라도
하나 되기 위하여 상처받고 고통 받는 갈대와 같은 연약한 자들을
긍휼이 여기시며
자비하시며 오래 참으시기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the smoking flax shall he not quench)”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상한 우리의 몸과 영혼을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생명의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성령의 능력을 소멸하지 않으시고
진실로 정의와 심판을 시행하시기에,
우리가 상한 갈대처럼, 꺼져가는 등불처럼
우리에게 계신 성령님의 능력을 억제하고 제한하지 않게 하시려고,
진실로, 진리를 알고 정의롭게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기에 진실을 감추거나 거짓을 일삼으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지 못하시기에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뜻은
‘너’ 가 ‘너희’ 가 정의롭지 못하여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정의에 미치지 못한 초보라
성령님의 안내를 받지 못하여
‘너’ 가 공급하시는 힘을 받지 못하여 능력을 잃어
그리스도의 제자라 하지만 이리저리 상한 갈대처럼 흔들리다 부러지는,
‘너희’ 가 세상을 변화시킬 복음의 공동체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하는데
세상보다 못한 가치관으로
세상의 사상의 철학과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도 극복하지 못하고 부패하여
부정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을 소멸(消滅)시킨 공동체는
사이비일 뿐이라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오래 기다리셨지만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the smoking flax shall he not quench)”
이제는 성령님의 은혜로 밝히 알려진 진리로 이끄시는 시대라
이를 데살로니가 전서 5:19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Quench not the Spirit.]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로,
예수님이 베푸시는 복음의 정의를 소멸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공의를 소멸하는 행위와 같아
세상이 어두운 까닭은
복음에 녹아있는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자들이 적기 때문이라
어떠한 탓으로도 변명하지 말며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정의를 시행하셨듯이
악은 어떠한 모양이라도 버리고
자신의 주장이 분리주의자들처럼 믿음에 행위를 분리하여
성령님의 하나 됨의 공동체에 거치는 자들을 떠나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로마서 16:17]
그런 자들이 성령을 소멸하게 선동하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의(義)로,
의(義)의 도(道)로 사신 것은
정의를 베풀기 위하여 오신 의의 실천이셨으며
살아계신 아버지가 보내셨듯이
예수님의 사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입증(立證)하여
삶으로 증거하고 증명하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I live by the Father)”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냄으로 사신다 하셨기에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심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살과 피가 양식이 되어
살아계신 그리스도 주님을 닮아 삶으로 증명하는 삶이
신앙의 삶(live by faith)이며
일상의 행위(live by labor)라 예배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의 계명이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타내리라]

계명이 정의이기에
계명을 거치는 모든 일의 원인과 과정에 정의가 사라진 현상은
개 교회 위주로 교회의 예배만이 예배로 인정하는 현상은
찬양과 기도 등 모든 모임과 조직의 끼리끼리는,
목사끼리 장로끼리 권사끼리 안수집사끼리 등
모두가 참석하지 못하는 모든 모임은
이미 하나 되는 복음이 아니라서 종교행위일 뿐이라
자신들의 안위(安慰)도 못되어 다투고 분리되어 나누어 짐은
그리스도의 정의가 사라진 까닭이라
성령님께서 교통하지 못하시기에
상한 갈대가 되어
꺼져가는 불처럼
오늘날의 초라한 모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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