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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7-11-22 10:04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사야 42:1-4]

이사야가 표현한 메시아 예수님은
“내가 붙드는 나의 종”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셔서 이룰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he shall bring forth judgment to the Gentiles.” 했고
여기서 이방(Gentiles)은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처럼
유태인을 제외한 민족으로 구분하면
그러면 온전한 복음 의(義)의 부분적인 해석이라
복음을 축소시키고 제한하는 우를 범한다.
원 뜻은 온 민족,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Gentiles’ 란 단어는 창세기 10:5 절을 보면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를 기록하고
이들이 세상에 흩어져 언어와 종족으로 나라를 이루었음을 표현했다.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룰렀더라
By these were the isles of the Gentiles divided in their lands;
every one after his tongue, after their families, in their nations.]

그러기에 이사야는 이글을 기록하기 이전 40:26에서
‘보라(Behold)’ 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Lift up your eyes on high, and behold who hath created these things,]
모든 민족을 가리켰다.

그러나 자신의 의(義)의 믿음으로 자신의 수치를 모르는
변절된 신앙으로 밥벌이 종교인이 된 분리주의자들은
이방(Gentiles)으로 불러
오직 이스라엘만 선민(選民)으로 선택한 하나님으로 간주(看做)하는
하나님을 제약(制約)하는 불 공경을,
하나님의 의(義)를 거슬러 이스라엘 그 중 예루살렘으로
부분적이고 지엽(枝葉)적인 정의(定義)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약하는 시도는 수 없이 많았다.
신앙이라는 미명(美名)의 구실로
세상과 결탁한 전통과 풍습과 의식 등으로 어느 시대나 제한(制限)하는
분리주의 자들이 있었고 특히 이런 분리주의 자들이 신분의 수단이 되어
외식을 하면서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 받았다는 종교적인 관습이 된
인습(因習)은 성직자를 평신도와 분리하여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대리인 인
‘종’ 으로 행세하며 스스로 자신을 높인 자들
특히 분리주의 자들 중 세대주의자들은 한국에 깊은 뿌리를 내려
선민사상이 뼛속까지 세뇌되어 외식하는 자들은
이제는 회개를 ‘회복’ 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주장하지만
대가 없는, 행위 없는 회개가 없듯이
회개에 합당한 행함이 없는 회개는 거짓이며
더하여 복음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찌 복음을 이스라엘에 한정하여 ‘제3성전’ 이니
수많은 음모론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으로 시온주의를 외치고
성지(聖地)를 만들고 성지순례를 외치는 자들이여.
복음의 의를 거슬리는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한 자들이여.

복음은 온 인류를 향한 기쁜 소식이어서
영접하는 개인으로부터 공동체로 하나가 되기에
이사야가 표현한 메시아 예수님을
“내가 붙드는 나의 종” 으로 표현 하였고
신약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자녀를 가리키기에
구약도 “나의 종” 이란 표현은 한 개인을 가리키지 않고
‘공동체’를 가리켰다.

신명기 9:27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을 언급하면서,
기업으로 준 요단강 건너 아낙 자손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쫓아내심이지
이스라엘의 백성의 공의로움으로 그 기업이 된 것이 아니며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그들이 악함으로 쫓아내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이 악함을 탓하며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셨기
때문이기에 이 백성의 공의가 아니라서 목이 곧은 백성이기에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였던 광야의 시절과
이제 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맹세한 주의 종들을 기억하여
‘언약’을 생각하셔서
완고(stubbornness)하여 자기 뜻대로 행하는
완악함과 못된 행위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록했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Remember thy servants, Abraham,
Isaac, and Jacob; look not unto the stubbornness of this people,
nor to their wickedness, nor to their sin:]

그래서 주의 종은 한 개인이 아닌 공동체,
‘Remember thy servants’ 로 기록되었기에
목사 등 한 개인을 ‘주의 종’ 으로 부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라
그리스도의 복음의 대리자, 중보자로 행세하는 자들과 더불어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자들이다.

보라
주의 종 아브라함이 누구인가.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창세기 17:2-5]
개인 아브람은 공동체를 뜻하는 ‘아브라함’ 이 되었다.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역사가 되었고
그러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믿음의 역사를 먼저 말하였고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하나님께 선택받아,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의 수고’ 즉 복음을 의를,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 수고하였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령님의 인도로 행하였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복음, 하나 되는 복음은
공동체를 이루는 하나님 나라로
예수님의 행하심으로 온 세상에 전하여 졌기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하셨고
이와 같이 예수님의 복음은 행위를 동반한
세상에 정의를 베푸는 기쁜 소식이며 언약이라
성도가 닮고 행하여야 할 본을 보이셨기에

그래서 이사야는 창세기의 이 구절을
‘보라(Behold)’ 로 믿음의 공동체의 역사를 전하였고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As for me, behold, my covenant is with thee,”
를 이렇게 같은 의미로 기록했다.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Behold, the former things are come to pass,
and new things do I declare :9”
그래서 창세기의 구절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한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가리키며
이사야는 이 언약을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before they spring forth I tell you of them.”
이렇게 기록하였고 같은 공동체의 의미라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듯이
메시아 그리스도가 그러했기에
그리스도 예수님은 이 ‘보라(Behold)’를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하셨음은
행하심이 이미 ‘정의’ 이며 ‘언약’ 이라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라 ‘하나님의 나라’ 를 준비하셨기에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는 길이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그러기에 믿음의 역사로
누가복음 16:22절은
나사로 거지가 죽어 아브라함의 품(Abraham's bosom)에 안기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And it came to pass, that the beggar died,
and was carried by the angels into Abraham's bosom:]
아브라함 품은 하나님의 언약의 결과라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며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만들려는 나라이라
이 땅의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를 닮은 모형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공동체가 그러한가?
무늬만 공동체인 겉치레로 목소리 높여 외치는 자는 많으나
성령님의 이끎을 받지 못하여 쇠하여진 오늘날의 모습을 보라.

보라.
정의가 사라진 공동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빙자(憑藉)한 사교일 뿐이며
정의를 지키려는 노력마저 없다면 회칠한 무덤이며 사이비가 되기에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께서 베풀 정의는
이스라엘을 넘어 온 민족을 향하듯
늘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를 지향함은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씨 뿌리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라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설교하고 들어도
성령님과 함께하지 못하여 정의가 사라진 분별력으로 복음이라 전하고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고 현실을 떠난 몽상(夢想)이
어찌 신앙이란 말인가.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태복음 13:24]

예수님은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He answered and said unto them,
He that soweth the good seed is the Son of man;
The field is the world; the good seed are the children of the kingdom;
but the tares are the children of the wicked one; :37-38]
좋은 씨를 뿌린 이는 그리스도요
좋은 씨는 천국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 뿌리어졌고,
세상에서 이미 천국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the children of the kingdom)로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로 정의를 베푸는 생활이 신앙 이라
이 땅에서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갖고 이루려 하나
악한 자들(the children of the wicked one)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언한 이사야는 ‘행악의 종자’ 로 표현하였고
이사야 첫 장에 이렇게 전하였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이사야 1:2-5]

하나님의 의가 사라진 공동체는
‘범죄한 나라’ 이며 ‘허물 진 백성’ 이며
‘행위가 부패한 자식’ 이라

이사야가 유대와 예루살렘에 전한 하나님의 계시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는 자들이
범죄한 나라로 허물어진 백성이 된 공동체의 헛된 제물과 절기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성회를 싫어하시고
많이 기도할지라도 듣지 않으시니,
그리하여 무엇이 잘못된 원인을 알아 뉘우치고 돌아서서
하나님의 의를 행하면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1:17]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고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어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라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19-20]

‘너’ 가 아닌 ‘너희’ 가 즐겨 순종하면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될 것이며
그렇지 아니하면 칼에 삼켜져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으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탄식을 전하였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How is the faithful city become an harlot!
it was full of judgment;
righteousness lodged in it; but now murderers. :21]

오늘 날의 공동체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기에 이사야의 하나님의 계시를
마태복음은 이렇게 기록했고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2:18-21]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And in his name shall the Gentiles trust.”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 받은 성도들이 하여야 할 의무라

같은 의미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전했다.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살로니가 후서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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