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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96.♡.♡.163)2017-08-22 12:46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6:9-11]

그러기에 장성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듯이, 그리스도 앞에 서 있듯이
온전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 구원받은 자로 성도가 되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으로 하나가 되어
이루어지는 신앙의 공동체는
* Saints of things,
하나님의 의(義)로
하나님의 의(義)의 자녀로
그리스도를 본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대리인으로
* Saints of Places,
어디에 있는지 너희가 있는 그곳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장소라
성지로 만들 거룩한 장소라
하나님 나라와 똑 같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이 땅이 기업이 되어
* Saints of God,
하나님께 속한
이 땅의 하나님 나라에서
이미 온전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녀들이다.

그래서 개인 개인이 인침을 받은 공동체의 인침(sealed us)은
신앙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의(義)안에서, 성도의 자리에서, 성도의 생각과 언행은
이미 인침 받은 공동체(sealed us)는 성령님의 보호로
하늘나라(kingdom)에 연결된 이 땅의 하늘나라의 모형이 된다.

그래서 개인이 아닌 ‘너희’ 는
“성령님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리라
whereby ye are sealed unto the day of redemption.”
구원의 날 까지(the day of redemption)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이 땅에 이루는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양식이 되어
세상을 구하는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라
보증이며 언약이 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크고 크신 은혜와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고귀한 사랑으로
인치 신 성령님의 언약이
바람처럼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단지 육체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 머물러
구원의 언약이 바람처럼 시간처럼 사라지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그래서 더 깊은 뜻은
성령님은 근심하게 걱정하게 보다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말라.’ 이다
(And grieve not the holy Spirit of God)

시편 78: 38-40을 보면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으나
그들이 패역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을 슬프게 하셨다.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How oft did they provoke him in the wilderness,
and grieve him in the desert! ”
그들은 패역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여 또 슬프시게 비통하게
탄식하게도 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반역의 죄로
성전이 파괴되고 왕과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을 때
슬픔에 잠긴 글을 쓰면서도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But though he cause grief)
하나님께서 영원히 버리지 아니 하실 것을
하나님은 크신 인자함으로 긍휼을 베푸심을 슬픔 중에 믿었다.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할 것임이며
For the LORD will not cast off for ever: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But though he cause grief,
yet will he have compassion according to the multitude of his mercies.
예레미야애가 :31-32]

그래서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고 슬프게 하는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긍휼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히브리서 6장은 아직도 바람과 같이 사라질 육체로 사는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라 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And this will we do, if God permit.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리스도의 초보로 죽은 행실을 회개하고
약속의 기업을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게 하실지
그것은 예레미야애가와 마찬 가지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기에
늦기 전에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바람 같은 육체가 되기 전에
가시와 엉겅퀴를 내여 버림을 당하여 그 마지막이 불사름이 되기 전에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의 길에서 돌아오라 하신다.

그 길을
에베소서 4장25-32절은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 이란 제목을 보면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을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나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며 슬프게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한다고 성찬식을 하며
누가복음 22:19 절과 다음 두 절을 공식처럼 읊으며
예수님의 살로 빵을 먹으며 피로 포도주를 마시며
살과 피의 진정한 의미와 뜻을 기억하지 못하고
기념하시라서 단지 기념식처럼 외식을 하는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살과 피의 양식을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 머물러 이해하지 못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데 :60]
그래서 피를 비유한 포도주를 마실 것인가
포도 주스를 마실 인가 다투었고
그 다툼은 유대인과 같은 무지의 다툼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요한복음 6:52]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And he took bread, and gave thanks, and brake it,
and gave unto them, saying,
This is my body which is given for you: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누가복음 22:19]

기념하라는 말씀은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씀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For I have received of the Lord that
which also I delivered unto you,
That the Lord Jesus the same night in which
he was betrayed took bread: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ake it, and said,
Take, eat: this is my body, which is broken for you: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연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After the same manner also he took the cup,
when he had supped, saying,
This cup is the new testament in my blood:
this do ye, as oft as ye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고린도 전서 11:23-25]

예수님의 몸(살)은 떡이며
(Take, eat: this is my body)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씀이며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이라
(This cup is the new testament in my blood)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언약이라 하시며 기념하라는 뜻보다
네 삶에서 늘 잊지 말라는 말씀으로
말씀을 갖고 지켜서 언약을 받는 자로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말씀이지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처럼 종교적인 의식으로 기념하여
기념식을 하라는 말씀이 아닌데 언제 부터 인가 한국교회는 성찬식을
수시로 하고 하자는 주장이 만연하여 수시로 성찬식을 기념식을 하듯
행하지만 그 결과 교회가 변하였나.
의가 사라저서 회개가 사라진 엄숙한 종교적인 의식
또 하나의 어리석은 외식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Wherefore whosoever shall eat this bread,
and drink this cup of the Lord, unworthily,
shall be guilty of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But let a man examine himself, and so let him eat of that bread,
and drink of that cup.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For he that eateth and drinketh unworthily,
eateth and drinketh damnation to himself,
not discerning the Lord's body. :27-29]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마시는 자는
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은
‘합당치 않게(unworthily)’ 는 가치 없게, 하잖게, 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흘려 희생하신, 구원하신 소중한 사랑을
가치 없이 하잖게 여기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은
생명으로 생명을 살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하잖게 여기기에 죄가 되기에
그래서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not discerning the Lord's body)”
주님이 주신 몸의 의미와 뜻을 헤아리는
안목이 없는 믿음으로
통찰력이 없는 믿음으로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eateth and drinketh damnation to himself”
죄를 먹고 마시는 자라 했고
더 정확한 표현은
먹고 마시는 분별없는 자라 스스로 지옥으로 가는,
온전한 믿음이 없이 종교적인 외식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Ye serpents, ye generation of vipers,
how can ye escape the damnation of hell? 마태복음 23:33]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과 같이
외식하여 성찬식을 오직 기념하는 종교의식에 빠진 자들에게
같은 말씀임은 이 또한 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먼저이며
떡을 떼는 것도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 참여가 먼저라
이는 먼저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양식으로 복음에 관여한
의의 행위로 참여함이 먼저라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The cup of blessing which we bless,
is it not the communion of the blood of Christ?
The bread which we break,
is it not the communion of the body of Christ?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For we being many are one bread,
and one body: for we are all partakers of that one bread.
고린도전서 10:16-17]

“떡이 하나요(one bread)”
한 분의 그리스도 주님이시오
떡이 하나로 떡을 떼에서 나누어 모두가 한 떡에 참여하여
하나 되는 복음에 참여함은
그리스도의 살을 떼듯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도 마찬가지라
모두가 한 몸을 이룸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살과 피를 기억하여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세상을 구원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전통은 성찬식을 한 후
식사(애찬) 했고 사도행전 2:42절은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고
난 후의 일을 기록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르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And they continued stedfastly in the apostles' doctrine
and fellowship, and in breaking of bread, and in prayers.]

이 구절 이하를 많은 신학자들은 성찬식이 아니라 애찬으로 보았고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구절을 칼빈은 성찬식으로 보았고
그의 ‘기독교 강요’에 매주 일주일에 한번 성찬식을 하기를 주장하였고
제네바에서는 일 년에 세 번 절기 때만 성찬식을 하였지만
칼빈은 매달 행하기를 원하였지만 반대에 부딪쳐
일 년에 네 번(성탄절, 부활절, 오순절, 추수절)거행하는 것으로
양보하였고 대신에 성찬식의 의미와 실천을 교육하기를 원했다.

사실 누가복음 22:14-20절을 보면
유월절 식사를 한 후 식사 끝의 시간에 성찬식을 행하였다.
이것이 애찬과 성찬의 같이 한 초대교회의 식사 모습이며
이 식사는 음식을 먹는 교제의 의미로
공동식사로 하나 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믿는 자들이 다 함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하나가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함께 쓰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는 구제,
공평하신 하나님의 의를 닮아 모두 공평해 지는 공의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양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형제자매와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와 함께한 믿음,
성령님의 교통하심으로 기쁨으로 언약을 받고
기쁨으로 언약을 실천하였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And all that believed were together, and had all things common;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And sold their possessions and goods, and parted them to all men,
as every man had need.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And they, continuing daily with one accord in the temple,
and breaking bread from house to house,
did eat their meat with gladness and singleness of heart, :44-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한 성전에서 떡을 떼고
이집 저집으로 모여서 기쁨으로 떡을 떼듯 음식을 먹고
하나 되는 한 마음(singleness of heart)이 되었다.

‘떡을 떼며’ 는 식사를 함께 한다는 표현으로
칼빈은 46절을 성찬으로 보지 않고 애찬으로 보았지만
다른 신학자들은 성찬으로 여긴다.
어느 쪽이 올바를까?
이 구절을 보면
“continuing daily with one accord in the temple,
and breaking bread from house to house,”
성전과 이집 저집에서 모여서 식사를 했고
또 이 애찬이 늦게 참석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나중에 온 사람들은 음식이 없어 불평하였고
바울이 책망을 한 것을 보면 애찬이 틀림없겠고
초대교회도 매일 성찬식을 하지 않았지만
애찬의 음식을 먹을 때 마다 떡을 떼듯 그리스도를 기억하였고
그래서 성령님께서 서로 교통케 하시어 한 마음이 되게 하시었으며
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양식으로 교제하였기에
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을 이루었다.

기록을 보면 363년 라오디게아 회의는 애찬을 폐지했다 전해지며
그 결과 종교 의식적인 요즘의 성찬의식만 남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히 초대교회 이후 이미 2세기부터 신앙이 제도화는
성직의 권위주의를 낳았고 권위주의는 율법과 금욕을 강요하여
성찬식의 기념으로 변절되어
급격히 타락하기 시작되었고
가톨릭 화체설처럼 사제가 ‘이것이 내 몸이라’ 낭독할 때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하지만
모양과 맛은 변하지 않는 다는 괴설처럼
이와 비슷한 망언을 지껄이는 수많은 자들을 어떻게 하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 슬프게 하는
오늘날의 또 하나의 외식이 된 성찬식
그리스도 주님의 피와 살의 의미와 뜻을 헤아려
그리고 행함이 실종된 순종을 생각해야 할 때다.

그래서 믿음은 행위(labour)와 함께 하며
언약은
새 언약(the new testament)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 곧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말씀이
성육신(成肉身)이 되어
그리스도 주님의 살과 피가 되었기에
그래서 살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예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긍휼이며 자비라
또 다시 사랑으로 은혜로 베푸신 새 언약이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이룬 언약이라
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상을 구해야 할 의무가, 하나님의 공의 가,
그리스도의 소중한 사랑으로 인 치신
성령님이 주시는 권능이라
우리의 힘이며 평안이기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살과 피가 양식이 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을 일상생활에서 기억하여 그 사랑을 베풂이
우리의 삶의 힘의 원천이 되어
세상을 구하는 책임, 소명이라
그러기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까닭은 의인이 없음이라
이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짐보님의 댓글

짐보 댓글의 댓글 96.♡.♡.163

님의 길은 복음의 길이 전혀 아닙니다.
사탄에게 속고 있습니다.
그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파멸 뿐 입니다.

잠긴동산님의 댓글

잠긴동산 댓글의 댓글 73.♡.♡.91

짐보님!
홀로 애를 많아 쓰십니다.^^

방언 -벤자민 오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wOk-Sr5jKWE

도봉옥님의 댓글

도봉옥 58.♡.♡.11

바른진리를 전하고자 힘쓰시는 짐보님을 응원합니다
안타깝지만 미혹된사람들은 자신들의길을 굽힘없이 가는것을
많이 봤습니다

kjgpo님의 댓글

kjgpo 218.♡.♡.212

덕이라는것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터 주어진 일입니다.
실제적으로 덕을 베풀기위한것은 사람을 돕는것이 우선입니다.

주위의 사람들 주위의 이웃들을 바라보면서 시작을 하세요
 덕이라는것은 스스로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냐에 따라서
 그것이 선행이 될수도 있고 악행이 될수도 있는것이니까요

 가장큰 미덕은 죽을 위기에 있는 사람을 살리는일이죠
 이천지안에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이예요
 왜냐하면 천지도 인간이 없으면 그 존재의미를 잃어버리니까요
 그러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은 가장 의미있는 덕행이죠

 그런 말이 있잖아요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는 말이요
 그러니까 덕을 어떻게 쌓느냐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행동으로 부터 시작이 되는것이여요 그러니 지금 나아가서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마음을 행동으로 털어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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