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게시판이 최근(2017년 5월) 스팸 공격을 받고 있는데 단계별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회원으로 등록한 분만 본 글을 올릴 수 있으며 댓글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자유게시판에 본문이나 댓글을 올리시는 분은 반드시 글등록 버튼을 누르기 전에 아래 게시물 관리방침을 확인하여 주세요. 본문이나 댓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스팸방지 숫자를 입력해야 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자유게시판 논객님들은 회원등록을 통해 자유로운 수정과 글쓰기를 이용하세요. 사이트 맨 위 오른쪽에 회원등록 링크가 있으며, 바른 이메일만 요구하며 익명을 유지하실 수 있습니다.

 

자유게시판

5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96.♡.♡.163)2017-07-03 10:33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우리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마태복음 6:11-13]

그리스도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뜻을 이루는 것이라 말씀하셨기에
우리의 양식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행함까지를 믿음이라 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신앙을 본받아야 하고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가 짧은 시간에 신앙의 공동체가 세워지고
서로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제자인줄 소문이 나 복음이 전해졌듯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복음의 역사는
믿음은 행위가 포함된 당연한 이치의 진리로 받아드렸기에
그 행위로 말미암아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었으며
세대와 세대를 이었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초대교회의 신앙의 역사와 교훈을 말하면서도
믿음과 행실이 일치 된, 그렇게 행하였기에 핍박을 받고 순교한 역사를
단지 복음을 전하려 했다는 결과가 핍박과 순교라는 말 뿐인
진정한 믿음의 증거인 행위를
교훈으로 언급하고 행함을 본받자는 이들을 거의 없고
말로 비롯된 감성에 의한 감동을 위한 예배를 신령과 진정의 예배라 하기에
요란은 하나 가슴에 담겨진 믿음의 양식이 없기에 허기져서
예배 전이나 후나 허기진 것은 똑같아
예배가 말 뿐인 행함이 함께 한 예배 시간이 아니라서
습관처럼 전통적인 종교적인 의식과 감정의 지배와 분위기에 도취한
예배시간이 진정한 예배인가?
진정한 예배는 생활이 예배 인
행동이 동반된 삶이 예배이며
예배시간은 서로 하나님의 같은 자녀로 하나 됨을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생활의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거한 자들로 하나가 되려는 복음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세상이 오게
마음과 손과 발이 움직여 이 땅에 하늘나라의 모형이 된 모임이 되려는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굳은 의지(意志)를 갖는 시간이며
성령님께 함께 하기를 간구하여 말씀과 행위가 양식이 되어
손과 발을 움직여서 서로 하나 되는 시간이라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는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시간이며
그 기도가 이루어진 것을 바라보고 감사하며 평안을 누리는 시간이지만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자들처럼
오직 예배 시간만이 예배라
설교가 ‘말씀 선포’ 라는 설교자를 말씀의 권위에 올려놓고
설교를 치장하는 찬양과 기도를 한들
더구나 스스로 높아져서 영상예배를 드린다는 자들의 예배시간은
이미 교제가 빠진 예배의 외식을 넘어 자신들만의 예배가 되었고
‘아멘’ 과 ‘할렐루야’를 삼창하고 ‘예수님께서 형제자매님을 사랑합니다’
옆 교인에게 인사한들 행위가 사라진 구호뿐인 공허한 말의 외침이
예배자의 마음의 중심에 성령님의 울림이 되겠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하나 되는 복음의 의를 망각한 오늘날의 예배는 살은 예배, 산 예배는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종교 의식적인 예배가 되었다.
그러기에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부터 16장 까지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삶을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들이 어떠한 마음과 행함이 있어야 하는지를
기록했고 12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I beseech you therefore,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hat ye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un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로마서 12:1]
예배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성령님께서 인도하였음이니
이는
나의 몸의 모든 지체와 나의 모든 삶의 전체에서
우리 모든 지체와 우리 모두의 삶의 전체로 하나 되어
그리스도 예수님의 고귀하고 순결한 사랑(charity)으로
내 마음과 내 몸을 내 생명을
‘우리’ 라는
하늘나라의 모형인 신앙의 공동체에 내놓는
헌신적인 시간이 예배시간이고 이 예배를 통하여
내 삶이, 내 몸이 이 땅의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하여 제물이 되는
삶이 생활이 예배인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라고 바울을 말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un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네 몸이 살아 있는 제물(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로 드림이
믿음의 행위로 드림이
믿음의 증거인 행위가 포함한 예배가 합당한 예배이며,
그러나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선생들은
성경 해석의 글의 단어를 따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 하여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적인 예배를 드린다고
사람의 ‘육체와 영’을 분리한 영적 예배
하나님을 ‘영’ 으로 단정한 제한을 하여
행함을 제외한 예배, 스스로 만든 종교적인 의식의 예배,
전례(前例)를 따라 습관과 같은 전통의 예배를 신령과 진정의 예배라고
헛소리를 한다.
속지마라.
이 문장에서도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합당한 예배는(reasonable service)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한
복음에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으로
생명으로 드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행위가 포함한 예배가
거룩하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배를 위한 예배를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But the hour cometh,
and now is,
when the true worshippers sha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in truth: for the Father seeketh such to worship him.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God is a Spirit: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요한복음 4:23-24]
이 말씀은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사는 남편도 남편이 아니라 남편이 없다는
사마리아 여자는 예배할 곳을 물어보았을 때 예수님의 대답이시다.

사마리아인들도 예배의 형식으로
스스로 만든 의식의 행위로 종교를 예배로 여겼고
마찬가지로 유태인들도
예배를 외적 형식이나 의식으로 제한(制限)하고 한정시켜
종교적인 문자 그대로 율법의 준수와 의식의 수행이
예배라고 예배시간이라 여겼기에
의식으로, 경건한 체로,
외식을 하였기에 진리의 예배가 아니었으며
하나님을 자신들의 종교 의식으로 제한한 오류의 한계 속에
지혜로 완벽하신 전지(全知)한 하나님과
모든 것이 가하신 전능(全能)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한다면서
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제안하는 잘못을 저지른 외식을
예수님은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양쪽을 꾸짖었으며
이제 예수님께서 오셨기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진리 안에서 성령님 안에서 예배하여야 한다는 말씀이지만
이와 똑같은 그 당시의 형식과 의식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라
믿음을 삶으로 증거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경배의 생활을 하느냐가 ‘영과 진리 안에서’ 의 예배이다.
예배는 영과 진리,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in truth.
성령님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
진리를 행위로 증명하여 실천하는 자들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찾으시고
그런 예배를 할 때가 그때였으며
바로 이 시간 이때이다.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강조한 야보고의 편지를 비교하여 보면
주기도문의 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로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리라 마태복음 7:24-27]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 라서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 같고
행함이 없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라 말씀하셨다.

이를 야보고서 3:13-16 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Who is a wise man and endued with knowledge among you?
let him shew out of a good conversation his works
with meekness of wisdom.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려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야보고는 선행으로 행함이 있는 자가
위로부터 난 지혜를 가진 자라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함을 보이고
그러나 마음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며
진리를 거슬려 거짓말을 하지 말라 했으며
지혜가 위로 내려 온 것이 아닌 땅과 정욕에 속한 사단의 것은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혼란과 모든 악이 있다 했다.
이 야보고의 지혜를 디도서는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To speak evil of no man, to be no brawlers, but gentle,
shewing all meekness unto all men. 디도서 3:2]

지혜 있는 자는 비방하는 자가 아니며
남을 헐뜯는 비방(誹謗)을 하지 않으며(To speak evil of no man)
다투는 자가 아니며 관용으로 범사에 온유함으로 행하는 자 이다.
전에는 어리석고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라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라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했으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죄 사함으로 성령님께서 새롭게 하셨음은 하나님의 상속자로 자녀로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8]

그래서 야보고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지혜 있는 자 = 행함이 있는 자 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 있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짓고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함을 보이는 자로
대접하는 대로 대접받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열매로 그 사람을 알고,
이 모두가 믿음의 행위라
행함이 없으면 유익이 없고
유익이 없다면 믿음으로 된 행위가 없기에 거짓 믿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But the wisdom that is from above is first pure, then peaceable,
gentle, and easy to be intreated, full of mercy and good fruits,
without partiality, and without hypocrisy.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And the fruit of righteousness is sown in peace of them that make peace.
3:17-18]

화평하게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는 의미는
복음의 의를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기에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다면 구원을 얻지만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를 믿는 자는 나의 말을 믿고 행하는 자” 라 수없이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구원의 증거가 행위라 행위 없는 구원 받은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라 감당하지 못할 시험과 유혹에 무너져
믿음이 파산을 하나 예수님 말씀으로 살려는 자들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 있는 자라 시험과 고난 중에서도 성령님과 함께 하기에
온유한 지혜로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앞에 서 있듯이 온유함으로
성도를 대하기에 ‘온유’ 는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어물정한 침묵이 아니며
악에 대한 불의에 대한 외면이 아니며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 앞에 서있는 성령님과 함께한 믿음의 여유,
믿음으로 풍족한 겸손의 의의(意義)로
부족하지만 진정으로 진실하려는 진실로 행하려는 마음의 중심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감당할 시험 밖에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의 의로, 공의(righteousness)로 행하기에
행함의 믿음이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 라서
지혜의 지식을 소유하고 일상의 생활에 적용하는 지혜로운 자는
그리스도를 본 받아 죄가 없으신 것처럼
첫째 성결하고, 순결하고, 순수하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케 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처럼 화평하고,
너그러운 관용하며 부드러우며 어질어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여(full of mercy and good fruits)
편견과 거짓이 없으니(without partiality, and without hypocrisy)
편애하지 않으며 편파적이지 아니하며, 편견이 없으며
위선이 없으며, 외식을 하지 않으며, 거짓이 없으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And the fruit of righteousness is sown in peace of them that make peace.”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주 예수를 닮은 자들은
화평으로 씨를 뿌려, 하나님의 공의로 행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로 행하여
의(義)의 열매(the fruit of righteousness)를 거두기에
이는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이며 능력이며 사랑에서 오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30절에 이렇게 기록되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But of him are ye in Christ Jesus, who of God is made unto us wisdom,
and righteousness, and sanctification, and redemption:]

위로 난 지혜(wisdom)와 의로움(righteousness), 거룩함(sanctification)이
하나님의 성품이라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오셔서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셔서
구원(redemption) =redeem(보안, 불안전한 구원) + tion(행위, 완전)을
이루는 성령님과 함께 한 신령과 진리의 예배의 삶이
행위가 포함한 믿음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고
구원받은 자의 양식이 되었다.

댓글목록

도봉옥님의 댓글

도봉옥 118.♡.♡.174

예배의 본질은 하니님을 기쁘시게  하는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활을 해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것  그리고 나에게 불이익 오는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예
힘쓰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그 것이 곧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그  부분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 땅을 하감하시며  두루  찾으시는 것은  죄의 유전자로 인해 연약한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힘입어 죄와 싸워
이기는  사람들에게 그 얼굴을 돌리시며
은혜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짐보님의 댓글

짐보 댓글의 댓글 96.♡.♡.163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옳은 주장입니다.
편애로 편견으로 거짓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변하는 삶 인, 삶이 예배인 신앙인을 만나기 힘듭니다. 오직 교회 예배시간 만, 교회에서 만 예배로 가르치고 그렇게
알아 교회에서만 교인인, 신앙인이 되지 못하니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겠어요.

여기도 그래요.
글과 댓글을 쓰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보았지만
글 쓰는 사람의 심보가 어떠한지 서로 판단하면서, 알면서,
한쪽에 치우친 사람들이 편애하고 편을 가르면서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언급하는 일을 자주 보면서
심보가 어떤지... 예수님은 이를 외식이라 했지요.

믿음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하기에
하나님을 의(공의)를 본받은 자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서로 기쁘게 하는 자, 평강을 끼치는 자는
감사함으로 평안을 갖 듯, 평안 한 자는 피해의식에 갇혀 있지 않은데 피해의식에 쩌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니
더구나 선생이라니, 참 의외로 많은 사람이 그러니.

하나님의 의에 떠난 불안,
그런 자들이 어찌되었든 복음을 전한다니,
그런 복음은 어디서 배웠는지.

서로 글에서 나마
그리스도의 향기를 서로 나누었으면 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Total 212건 1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제목 날짜
짐보 ㆍ 6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10-03
짐보 ㆍ 60.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9-21
도봉옥 ㆍ 회개의 합당한 열매 댓글(1) 2017-09-13
짐보 ㆍ 59.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9-11
짐보 ㆍ 58.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8-31
짐보 ㆍ 57.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6) 2017-08-22
해처럼달처럼 ㆍ 미소 2017-08-18
예종규목사 ㆍ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댓글(4) 2017-08-16
짐보 ㆍ 56.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8-10
짐보 ㆍ 55.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2017-08-03
Kenny ㆍ Misty - Alto Saxophone 댓글(1) 2017-07-31
해처럼달처럼 ㆍ 지고지순한 사랑 댓글(1) 2017-07-28
소명순례자 ㆍ 영혼을 잘 아십니까? 댓글(11) 2017-07-26
짐보 ㆍ 5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2) 2017-07-25
짐보 ㆍ 53.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8) 2017-07-18
도봉옥 ㆍ 대반전(大反轉) 댓글(5) 2017-07-15
해처럼달처럼 ㆍ 하나님은 눈높이 선생 2017-07-14
대장쟁이 ㆍ 예레미야 애가 3장 댓글(9) 2017-07-13
예종규목사 ㆍ 표적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댓글(2) 2017-07-11
짐보 ㆍ 52.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2) 2017-07-11
해처럼달처럼 ㆍ 철학이 있는 이야기 - 가슴을 뜨겁게 해줘 2017-07-09
해처럼달처럼 ㆍ 십자가 그 사랑 댓글(2) 2017-07-09
도봉옥 ㆍ 성령의 은사를 가장한 가짜들 댓글(17) 2017-07-07
해처럼달처럼 ㆍ 십자가가 해답이라네 댓글(4) 2017-07-03
짐보 ㆍ 51.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댓글(2) 2017-07-03
게시물 검색



아멘넷의 시각게시물 관리지침행사광고 안내후원하는 법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위한
42-35 190 St Flushing, New York 11358
(917) 684-0562 /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