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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채플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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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9-09-1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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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지도자들을 위한 제3회 앰배서더 컨퍼런스가 지난 5월말 2박3일간의 일정으로 뉴하트선교교회에서 열렸다. “그리스도를 선포하라”라는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의 강사는 브라이언 채플 박사로 자신의 저서인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Christ Centered Preaching)>를 주제로 3번의 강의를 했다.  

 

브라이언 채플 박사의 메시지는 큰 반향을 가지고 왔다. 앰배서더 컨퍼런스 리더 정민철 목사는 메시지가 한국과 한인 교회들에도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추가 비용을 부담하며 3번의 강의내용을 번역하여 CTS 뉴욕방송을 통해 오픈했다. 첫 강의에 이어 2번째 강의가 유튜브 동영상으로 오픈됐다. 

 

▲[동영상] 브라이언 채플 박사의 2번째 강의

 

다음은 브라이언 채플 목사의 2번째 강의 일부이다. 자세한 강의 내용은 위의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관련기사 ①브라이언 채플 “설교능력은 허접했지만 그의 하나님은 위대”

http://usaamen.net/bbs/board.php?bo_table=data&wr_id=9695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제안 받았습니다. 이제 막 신학교를 마치자마자 유서 깊은 대형 교회의 목사가 된 겁니다. 이런 표현이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될지 모르지만 저는 제가 '끝내주는 녀석'인 줄 알았죠. 하지만 곧 다가올 현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죠.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애송이 목사로 유서 깊은 교회에 발을 딛는 순간 그 지역 전체가 겪고 있던 큰 위기와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역하던 일리노이 남부는 석탄 채광이 주요 산업입니다. 제가 그 교회에 부임한 지 얼마 후에 미국 환경보호청은 높은 유황을 함유한 일리노이 남부의 석탄이 미국에서 판매되는 것을 금지 했습니다. 제가 부임한 지 몇 달 이내에 교회 인근의 수천 수십만 명이 실직자가 됐었죠.

 

직장과 수입이 급격하게 감소하면 가정은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혼란입니다. 우울증, 이혼, 알코올 중독은 물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약물에 의존합니다. 수백 년 동안 처음 겪는 사상 최고의 위기이죠. 사람들은 우울증과 약물 중독 패륜과 학대, 이혼 등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학교 출신이라 뭘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땐 안다고 생각했죠. 저는 일요일마다 설교단 위에 섰고 교회에 온 신자들은 우울증과 학대 이혼과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설교단 위에 서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만하세요!", "여기 성경에도 나와 있잖아요", "술에 취하지 말라. 당장 술을 끊으세요",  "배우자를 학대하면 안 돼요. 성경에 예수가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우울증을 겪는다면 주님 안에서 기쁨을 찾으세요."

 

멈추라는 말을 너무 자주해서 나중엔 스스로 제 자신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내한테도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해치려고 신학교에 간 게 아닌데 그런데도 주일마다 설교단에 서서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어 이제 더는 못하겠어." 제가 영적 우울증으로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주님은 제 남은 평생에 영향을 주는 일을 하십니다. 차마 제가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됐고 이 책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제 입으로도 말하기 힘듭니다.

 

'시드니 그라이다누스'라는 사람이 지은 책입니다. 제목은 <솔라 스크립투라>입니다. 그라이다누스가 한 일은 백 년 전 네덜란드 교회의 논쟁을 조사한 거였습니다. 네덜란드 교회의 논쟁을 조사한 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겠지만 그 논쟁은 이런 내용이었죠. 성경 속의 영웅에 관해 어떻게 설교 할 것인가?

 

다윗의 예를 들어 봅시다. 그는 사자와 곰을 물리쳤고 골리앗과 맞섰을 때 골리앗이 말합니다. "막대기를 들고 나오다니 나를 개로 여기는 거냐?" 다윗이 대답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투구를 차고 나왔지만 나는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여러분도 믿음이 충만하다면 여러분 인생의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 메시지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라이다누스는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그게 끝이 아니라고요 나머지 이야기는 어떻게 됐죠? 다윗을 본받으려 한다면 빼야할 부분이 있죠? 밧세바가 나오는 장입니다.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을 살해한 것도요. 그리고 못된 애들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군대의 수를 셌고요, 모든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며 왕국의 성공도 자기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라이다누스는 매우 솔직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영웅들'을 조사했고 아주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영웅'은 오직 한 분뿐이다. 누구일까요? 영웅은 예수님 한 분이며 모두 그분을 필요로 합니다.

 

인간은 모두 일종의 흠결이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가 말입니다. 엉망진창으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보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엉망진창이고 파경에 이른 타락한 사람들이죠 "너에게 희망을 주겠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용할 수 있어 너는 엉망진창이지만 난 너를 내치지 않는다" 지금은 이 개념을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당시에는 제게 엄청난 혁명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사람들에게 행실을 바로하고 더 잘하라는 설교만 했으니까요 매주 제가 전했던 메시지는 지난주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와 우울증, 문제 등은 전부 당신들 것이니까 당신들이 해결해야 해요!" "행실을 고치고 착실하게 더 잘 행동해야 합니다." 결국 그런 메시지는 저를 짓이겼죠.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봤습니다. 더 잘하라는 말 대신 저는 이렇게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나온 사람들처럼 엉망진창들을 사용하신다면 여러분을 위한 계획도 갖고 계실지 모릅니다. 여전히 여러분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누가 또 그 메시지를 들어야 했을까요. 목사가 들어야 했습니다. 그게 제 삶의 모든 걸 바꿨죠. 제 설교와 강의의 흐름도 바뀌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행한 모든 것이 달라졌죠. 제가 쓴 모든 책은 물론 모든 이야기의 주제도 바뀌었고요. 성경에 나온 엉망진창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셨다면 여러분한테도 희망이 있어요. 그 안에 영웅이 계시나까요. 그리고 그 영웅은 당신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세주는 하나님이 제공해 주셨고 그 구세주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4절 사도바울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이며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가 소망을 갖게 하려고 한 것' 이랍니다. 이것은 성경의 본질을 심오하게 이해한 것이지만 제 설교의 메시지가 계속 착한 사람이 되고 똑바로 처신하며 지난주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이웃보다 훌륭하라고 하면 이 말씀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의 메시지는 그런 게 아닙니다. 성경이 전하는 커다란 메시지를 시간 순서에 따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추측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의 한 구절을 골라서 시간이 흐르며 어떤 일이 전개 되는지를 보면 어떤 일이 진행 중인지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 구세주가 아니야' 여러분은 해결사가 아닙니다. 왜죠? 우리는 타락한 세상의 타락한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결책을 주셔야 하고 이미 그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의 자손이 와서 사탄의 영향력을 짓밟을 거라고 하셨죠. 이렇게 전개되어야 하는 메세지를 우리가 못 알아들어서 망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구약 성경의 시간대에서 삼손의 부분을 본다고 칩시다. 삼손을 어떻게 가르치실 건가요? 메시지는 아주 분명하죠? 삼손이 머리가 길었을 때 그는 힘이 장사였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짧아지자 그는 허약해졌죠.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머리를 길러야 합니다.' 그게 그 말씀의 메시지인가요? 그건 왜 메시지가 아니죠? 그건 삼손이 사사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사기의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어떻게 했나요? 그들 자신의 시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떤 결과를 낳았나요? 그런건 효과가 없습니다. 사사기 시대의 일을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심판의 순환이 계속됐죠? 하나님이 구해 주시면 사람들이 회개합니다. 잠시 착하게 지내다가 다시 못된 짓을 일삼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고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계속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네 눈에 보기에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왜 소용이 없을까요? 우리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니까요 여러분이 얼마나 강한지는 조금도 중요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똑똑한지도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그게 사실인지 어떻게 알죠? 삼손이 어떤 인물이었나요? 그는 매우 강인하고 아주 영리했죠 그게 모든 문제를 해결했나요? 아니요, 그럼 이스라엘의 문제를 해결했나요? 아닙니다.

 

그럼 우린 뭘 배워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보기에 옳은 게 우리의 해결책이라면 우리가 제아무리 똑똑하고 힘이 천하장사라고 해도 우리는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며 그건 해결책이 아니라 1차원 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정점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반드시 메모를 해야 할 것은 첫 번째 빈칸에 있는 성경의 메세지가 하나님이 성경안의 모든 책의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팀 켈러는 간단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읽으면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구절 아래 숨은 뜻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십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들은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해야 합니다. 하지만 타락한 세상을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타락한 존재니까요 타락한 존재라서 더는 상황을 고칠 수 없습니다. 진흙 묻은 손으로 옷을 깨끗하게 할 순 없거든요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체가 타락한 세상의 타락한 존재이죠. 성경은 계속 그 메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며 그리스도 사역에서 정점을 찍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물론 결국 승천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셔야 한다는 걸 알 때까지 말입니다.

 

그럼 그게 무슨 뜻일까요? 임무와 교리를 일컫는 말로 임무와 교리는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전하는 메세지 전체가 여러분이 스스로 능력을 키우라는 내용이거나 여러분에게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거라면 여러분은 교리안에서 더 잘 행동해야 하며 임무도 더 잘 수행해야 하죠. 점점 모든 걸 더 잘해야 하며 능력도 출중해야하고 결과도 더 좋아야 합니다. 제가 전하는 메시지가 온통 여러분에게 능력을 키우고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여러분의 구원자는 누구일까요? 여러분이죠. 이렇게 말하면 위험하다는 걸 압니다. 저는 장로교인이고 장로교는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아무도 자기 행위를 통해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굉장히 확신합니다. 좋은 교리에 의해 구원받는다고 믿죠.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교리를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세주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의로운 행동을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교리에 완벽한 사람들이 주님과는 거리가 먼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교리나 우리 행위의 완성이 아니라 구세주에게 의존해야만 구원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의 은혜로만 우리를 의롭게 만들고 바로 그 메시지가 성경 전체에 펼쳐집니다. 받아적으세요. "하나님은 점진적으로 당신의 은혜를 나타내시며 그 은혜는 예수그리스도에서 최고조에 달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얼굴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한테 솔직하게 말하면 가끔은 책 제목 때문에 곤란해 질 때가 있습니다. 제가 쓴 책 제목 중에 <예수 중심의 설교>라고 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이런 컨퍼런스나 제 강의에 들어와 앉아 팔짱을 끼고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이 예수를 말한다는 거 안 믿어요" 그럼 저는 축하한다고 말하며 저도 안 믿는다고 대답하죠. 제 요점은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암호 해독 반지나 요술봉을 꺼내서 성경 구절마다 예수가 튀어나오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은 점진적이고 끊임없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는 사실입니다. 

 

"너는 구원자가 아니야" 그 이야기의 초점과 흐름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메시지는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제공할 수 없는 걸 주신다는 거죠. 그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하나님은 다양한 차원으로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구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있게 그 메시지를 분명히 하십니다. 그 메시지가 안보이는 이유는 삼손의 경우처럼 메시지를 왜곡해서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삼손의 예를 들며 삼손처럼 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요? 삼손은 아주 끔찍한 예입니다. 그래서 이야기 일부만 다루죠.

 

다윗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해요. 나쁜 건 쑥 빼고 건전한 주일학교 버전으로 성경 내용을 슬쩍 바꿉니다. 또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타락에 관핸 내용은 생략하죠. 그럼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이런 말을 하는 또래나 교수들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의 인물처럼 되라는 거야? 진짜?, 살인자에 고집쟁이에 대랑학살자들인데 그런 놈들이 되라고? 성경을 읽어보기나 했니?'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거기서 내용 전체를 알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릅니다. 만약 그 아이들이 준비가 됐다면요? 그들에게 시비 거는 친구나 동료에게 말할 수 있겠죠 그래요 성경 속의 인물들이 엉망인 거 저도 알아요. 그래서 그들에게 구세주가 필요한 거예요. 바로 그게 메시지예요

 

그런 메시지가 항상 보이는 건 아닙니다. 도덕적인 본보기만 찾다보니 구세주의 구원은 안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도 러시두니의 업적에 대해 아실 겁니다. 미국 교육계의 메시아 같은 인물이죠. 그는 실제로 부록을 만들고 멋진 제목까지 붙였습니다. "주일학교의 만나"예요. 주일학교의 만나래요. 그 책에 나오는 호의적이고 친절한 주일학교 교사가 말합니다. "오, 샐리, 너는 착한 아이니까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실거야" 다정하게 들리지만 영적으로는 독입니다. "너는 착한아이니까 예수님이 너를 사랑할 거야" 예수님은 샐리가 착하기 때문에 그 애를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그 아이의 유일한 선함은 더러운 옷 뿐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신 일만 받으십니다. 그 분 안의 믿음이지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바로 그게 우리 메시지의 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했던 모든 말들은 오직 똑바로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라는 거였죠. 착하게 살고 이웃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세주가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그 말씀을 무시했던 겁니다. 이사야서 64장 6절에서 봤듯이 여러분의 최고 업적은 하나님께 뭐라고요? 더러운 누더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말하는 착한 아이가 되라는 메시지나 어른에게 더 좋은 아빠가 되라는 메시지, 더 좋은 아들이 되라는 메시지, 전보다 더 도덕적으로 살고, 죄짓는 삶을 스스로 고치라고 한다면 그게 메시지의 전부라면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거죠?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라고 말한 겁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해 왔습니다.

 

성경의 메시지는 그게 아닙니다. 이 전개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타락에 빠진 상태이며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타락의 상태에서 존재하며 타락에 빠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가 '예수중심의 설교' 에서 말한 것을 아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책을 자세히 보시면 '타락 상태 초점'이라는 약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읽을 때 교리의 임무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이유를 묻습니다.

 

지금 들으셨나요. 교리의 임무뿐만 아니라 교리가 왜 여기 있느냐고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타락을 다루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네가 알아야 할 정보가 여기 몇 개 있다. 이런 것들이 주어진 이유는 바울에 의하면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이며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가 소망을 갖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왜 필요한가요? 우리는 타락한 세상의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합니다. 타락 상태에 있다는 걸 모르면 우린 스스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구원의 관점에서 읽기 시작하고 도덕 교과서로 보지 않아야 가능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행과 도덕적 행동을 가르치는 대신 구원 목적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게 되면 이런 말부터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1번, "이 구절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해든 로빈슨 목사에게 훈련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이 글의 의도가 뭐지?" "그 표현을 아시나요?" "의도가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문제가 뭐고 요점은 뭐지?" "주장하고자 하는 논점이 뭐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금 배우는 말씀이 좋은 거라고 말하는 것으로만 끝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믿음으로 정당화돼도 안 되죠 전부 맞는 말이고 중요한 질문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단계 더 나가야 합니다. "왜 이런 말씀을 쓴거지?" "이 말씀이 왜 거기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그곳에 있어야 하기에 써놓은 것입니다.

 

성경 본문은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찾아내야 하고 그 말씀의 중요성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도덕적인 행동이나 교리를 가르쳤지만 말씀의 목적은 묻지 않았었습니다. 그 말씀의 목적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성경 속의 인물들과 어떻게 닮았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상호 조건이 무엇인가요? 그 내용 안에서는 진리와 명령을 요구하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와 그들이 어떤 면에서 비슷하죠? 부활절 시기가 되면 우리는 사도 도마를 떠올립니다. 기억하시죠? 아주 형편없는 사도였습니다.

 

도마는 예언자의 증언도 알고 있었고 예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죠. '이성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니' 도마는 여자들의 증언과 베드로와 요한의 증언도 들었죠. 그런데도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부활을 의심했습니다. 왜냐하면 형편없는 사도잖아요 여러분은 도마와 다르니 기쁘지 않으신가요?

 

도마가 성경에 나오는 이유가 우리가 낫다는 걸 보여주고 기쁘게 해주려고 나온 걸까요? 도마가 성경에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도마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는 타락한 피조물이었습니다. 예언과 여자들의 증언, 사도들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도 그는 여전히 부활을 의심했습니다. 여러분은 '난 아니야'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정말 아닌가요? 정말인가요? 이곳에 계신 목회자 분들 정말 그런가요? 우리는 부활에 관해 수년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죄와 죽음을 압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애가 불치병에 걸리면 이 모든 게 정말인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의심하게 되죠.

 

도마가 왜 성경에 등장할까요? 우리가 도마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이 교리의 임무가 무엇인지 묻는 대신 이게 왜 여기 쓰여 있으며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같은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씀의 진의를 바라보며 그것을 인간의 고통에 대입하게 됩니다.

 

치명적인 존재의 한 형태는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로서 주제가 온통 누구를 본받자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인물을 콕 집어내서 이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성경 인물 설교' 라는 독자적인 제목도 있습니다. 한 인물을 제시하면서 그런 인물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그 인물과 똑같이 되라고 설교하면서 그 사람의 전부에 관해 말 할 수 없어요. 여러분은 이미 다윗에 관해 알고 있으니 다윗 같은 사람이 되라고 무조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죠? 왜냐하면 밧세바 때문이죠 히타이트와 압살롬에 관한 이야기도 해야하고 다른 문제가 많습니다.

 

그럼 아브라함을 본받을 까요? 그가 착했다는 것은 아시죠?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어요.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옮겼습니다. 자기 조국과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생판 모르는 지역으로 떠났습니다. 그 여정에서 자신의 아내를 다른 남자한테 딱 두 번만 팔았죠. 게다가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릴 만한 인내심도 없어서 후손을 낳기 위해 몸종과 동침했습니다. 아내가 속상할 짓만 골라서 한 거잖아요?

 

그리고 자신의 친아들과 첩을 사막으로 쫒아내고 땡볕에 태워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제가 성경 속의 몇 사람을 여러분께 알려드리죠.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로요. 성경은 에녹에 관해 이야기하죠.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그게 다입니다. 때가 묻을 틈이 없죠. 에녹 이야기는 그게 전부이죠. 하지만 사실상 모든 사람이 타락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알고 나면 그들에겐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조치를 취하셔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물론 예외를 주장할 것입니다. '갈렙은 때 묻지 않았어요' '요나단도 때 묻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성경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 인물들이 정말 훌륭하다고 해도 그들이 그렇게 살도록 만드신 건 누구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강인해질 수 있습니다. 항상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가 이야기 전체를 다 말하면 그처럼 훌륭한 메시지를 무효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바나바도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답게 바울의 초기 전도 여행을 도왔죠 큰 도움을 준 인물입니다. 그럼 바나바처럼 위로하는 사람이 되면 되겠네요 하지만 바나바가 주는 메세지는 뭐가 잘못 되었을까요? 2차 전도 여행 때문이죠. 바나바는 바울과 언쟁 했습니다. 요한 마가의 동행 문제로 결국 두 패가 갈라졌고 그는 전도 여행을 가지 않았습니다. 바나바가 항상 위로자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뭘 배울까요? 누구처럼 되자는 메시지는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게 없지만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도덕적 행동을 따라야 할까요? 그렇게 해야 해요? 그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그들조차도 끝까지 일관되게 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속의 인물들은 하나님의 율법처럼 가능합니다. 그들은 우리한테 도덕적 행동을 가르쳐 주죠, 사실입니다. 그러나 절대 어리석은 오해는 하지 마세요. 우리가 율법에 복종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거나 성경속의 인물처럼 살면 구원된다고 믿지 마세요. 그들은 하나님의 기준에 못 미친 사람들입니다. 이걸 알아야 해요 우리는 율법으로도 배우고 성경의 인물에게서 배워야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런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틀린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의 메시지가 그것뿐이라면 틀린 것입니다.

 

이제 좀 더 심란한 문제가 있죠? 치명적 존재의 두 번째 형태는 우리 안에 아주 흔합니다. 이번엔 누구를 본받으라고 하는 그런 메시지가 아니라 이 메시지는 전적으로 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라는 설교가 뭐가 잘못이라는 거죠? 그 반대로 살라고 설교하기는 싫잖아요? 사람들한테 착하게 살라고만 설교하는 건 왜 틀렸을까요? 

 

(동영상을 통해 전체 메시지를 확인하세요.)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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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기독언론협 정기총회 및 독후감 시상식 개최· 새글 2019-12-13
퀸즈장로교회, 19년째 연말마다 사랑의 바구니 2019-12-12
뉴욕장로성가단 2019 송년의 밤 2019-12-12
퀸즈장로교회, 임직감사예배 열고 56명 일꾼 세워 2019-12-12
뉴욕센트럴교회, 제10회 헨델의 메시야 공연 2019-12-12
한준희 목사 ⑤ 뉴욕교협 갱신 - 증경회장 용단 및 인격과 비전의 회장 2019-12-11
UMC 보수적인 한교총에 힘을 보탠 한인총회 전현직 총회장들 2019-12-11
미남침례회 뉴욕뉴저지 한인지방회 연합 송년모임 2019-12-11
“모든 예술은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다” 3인의 예술 박람회 2019-12-11
뉴욕방주교회, 감격의 장로 임직식 및 장로권사 은퇴식 2019-12-10
브니엘선교회 2대 박효성 회장과 최재복 이사장 이취임식 2019-12-10
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 2019 여성목회자의날 행사 2019-12-10
79%의 지지받은 문석호 목사, 뉴욕교협 부회장 당선 2019-12-09
개혁과 갱신으로 상식이 통하는 48회기 뉴욕목사회 2019-12-07
장학순 목사 "교단 분열 갈림길이 될 2020년 UMC 4년차 총회" 2019-12-06
2020년 목회사역 계획과 성탄절 설교를 위한 워크숍 2019-12-06
한인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2020 인구조사 2019-12-06
야곱과 에서의 재회 같았던 정익수 목사와 강유남 목사의 만남 2019-12-06
성탄 트리의 십자가 불빛이 들어 간 곳은? 2019-12-05
국제장애인선교회 2019 장애인의날 행사 2019-12-05
뉴욕총신대학교 설립 40주년 행사 - 미래 40주년 비전도 밝혀 2019-12-05
동부한미노회 92차 정기노회, 노회장 빈상석/부노회장 장경혜 목사 2019-12-05
김영환 목사, 기자회견 통해 교협선거 관련 입장 밝혀 댓글(1) 2019-12-04
팰리세이드교회 성탄 콘서트가 더 이상 못 열리는 이유 2019-12-04
학부모 대상 ‘성경에 비추어 본 성 정체성’ 세미나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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