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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교수의 중복설교에 대한 의견과 설교자를 위한 28개의 윤리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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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ㆍ2018-09-1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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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터넷 매체는 뉴저지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의 중복 설교에 대한 기사를 내 논란이 되었다. 그 내용은 전임 목회지에서 했던 설교내용들을 현재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1년 가까이 중복 설교를 했다는 것. 

 

‘표절 설교’에 비해 ‘중복 설교’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것에 대한 평가는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긴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고 뉴저지교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줄 것을 기대했던 목사가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 안타까웠다. 목회를 하며 호의적인 성도만이 아니라 목회자에 부정적인 성도들과도 만나야 하고, 과거의 민낯이 다 드러나는 인터넷 시대 환경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런 논란에서 피할 수 있겠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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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뉴욕과 뉴저지에서 설교표절 관련 세미나를 인도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김남중 교수(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조교수, 이중언어 박사원 원장)에게 중복 설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의견과 함께 "설교자를 위한 28개의 윤리강령"을 보내왔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1.

 

“뉴저지 초대교회 박형은 목사의 자가(자기) 표절 및 중복 설교 논란을 통해서 반성하는 설교자의 정직성, 성실성, 설교 내용의 직접성, 관련성, 그리고 회중과의 소통의 중요성”

 

2017년 3월 9일부터 29일까지 여론조사를 실시한 후, 같은 해 4월에 발표한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 4명 중 3명은 그들이 교회를 출석하는 주된 이유가 설교라고 대답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설교는 성서에 대해서 가르치는 설교가 가장 많이 언급되었고, 그 다음으로 선호하는 설교는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설교였다. (출처: https://news.gallup.com/poll/208529/sermon-content-appeals-churchgoers.aspx)

 

이와 같이 교회와 목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미국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그리고 한인 이민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여전히 설교가 목회와 교회의 중심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 미주뉴스앤조이에서 기사화 된 뉴저지 초대교회 박형은 목사의 1년 가깝게 행해진 자가(자기) 표절 혹은 중복 설교 논란은 설교가 목회와 교회에 여전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이번 논란과 관련하여 박형은 목사(이하 박 목사)는 미주뉴스앤조이 신문사 담당 기자의 질의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거나 구체적인 응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박 목사의 전임 목회지였던 동양선교교회에서 그가 설교했던 내용들을 현재 목회하고 있는 뉴저지 초대교회 회중들에게 1년 가까이 중복 설교를 하면서 자신의 설교가 전임 교회에서 이미 했던 대부분의 설교들의 중복이라는 점을 사전에 혹은 설교 후에라도 회중들에게 언급했는지 언급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만약 그 출처를 어떤 형태로든 뉴저지 초대교회 회중들에게 전달했었다면 나는 그의 설교가 비판적인 관점에서의 자가(자기) 표절 혹은 중복 설교라는 지적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떤 모양으로라도 1년 가까이 전임 교회에서 했던 자신의 설교에 대한 출처를 밝히거나 언급이 없었다면 자가(자기) 표절 혹은 중복 설교라는 비판을 피해가지는 못할 것이다.

 

최근에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 목회자는 자신이 20년 전에 했던 설교를 반복한다는 언급으로부터 설교를 시작한 적이 있다. 때로는 몇 년 전에 했던 설교를 다시 한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왜 자신의 설교를 반복하거나 중복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간단한 이유를 회중들에게 설명한 후 설교를 시작한다. 이후 어느 누구도 그의 설교를 자가(자기) 표절이다 혹은 중복 설교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가 본인 설교의 출처를 회중들에게 정직하고 솔직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박 목사가 본인이 이미 과거에 했던 설교에 대해 자가(자기) 표절과 중복 설교를 했다는 비판과 지적을 받는 이유는 이런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과정이 뉴저지 초대교회 회중들과 있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일 년 가깝게 중복 설교를 했다는 점에서 설교자의 불성실함에 대한 실망감이 회중 가운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설교자가 항상 새로운 설교를 할 수는 없다. 특히 한국 교회나 이민 교회 상황에서 설교자가 매일, 매주 새로운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박 목사의 중복 설교 혹은 자가(자기) 표절에 대한 비판만큼 상대적으로 설교자의 설교 횟수가 많고 목회 사역이 많은 이민 교회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겠느냐는 동정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여전히 아쉬운 점은 뉴저지 초대교회 회중들 가운데 언제든지 인터넷 공간에서 박 목사의 과거 설교들과 현재 설교들을 검색하여 비교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여 박 목사가 자신의 과거 설교들이 오늘의 뉴저지 초대교회 회중들에게 왜 꼭 필요한지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설명하는 과정이 있었어야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결국 이 소통 부재의 원인이 설교자의 정직성과 성실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결과를 가져왔고 자가(자기) 표절과 중복 설교라는 비판적인 여론의 직접적인 결과를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 논란이 된 박 목사의 자가(자기) 표절 혹은 중복 설교 의혹의 출발점과 비판이 뉴저지 초대교회 회중의 제보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박 목사는 자기 자신의 과거 설교원고를 중복해서 설교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회중들에게 이미 그 설교가 과거에 일차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회중들의 상황과 설교자의 상황에 맞게 연관되도록 성실하게 설교가 준비되었으며 과거의 설교가 뉴저지초대교회 상황에 맞게 재구성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였다.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 과정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점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다. 

 

무엇보다도 예배학자 그리고 설교학자로 초대를 받아  2017년 8월에 뉴욕과 뉴저지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 각각 설교 표절에 대한 강연을 했던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뉴저지에서 일어났다는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이 착잡하였다. 설교자의 목회적 직무가 정직성과 성실성에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설교의 내용이 과거의 회중이 아니라 오늘의 회중의 삶,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있지 않으면 다시 말해 직접성과 관련성이 결여되어있는 설교는 능력이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설교자의 정직성과 성실성, 그리고 설교 내용의 직접성과 관련성의 부재 그리고 자기 설교든 다른 이의 설교든 설교자가 설교 내용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회중과의 소통의 부재는 결국 '표절'이라는 의혹과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원치 않는 결과를 파생시킨다는 사실을 설교자들은 이번 박 목사의 사례를 통해 반성하고 지속적으로 자각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

 

참고로 Christian Theological Seminary에서 Nettie Sweeney and Huge Th. Miller Professor of Preaching and New Testament 로 재직 중인 Ronald J. Allen 교수가 쓴 “A Code of Ethics for Preachers (설교자들을 위한 윤리강령)”은 설교자의 정직성, 성실성, 설교 내용의 직접성과 관련성, 그리고 회중과의 소통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키고 있다. "설교자를 위한 28개의 윤리강령"을 설교자가 계속해서 읽고 실천한다면 설교 표절의 유혹과 같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아래의 설교자를 위한 윤리강령은 서약의 형태로 쓰여졌다. 이 서약은 설교자가 하나님과 청중들과 자기 자신과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선언하는 고백 형식의 서약이다. 이 서약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설교 표절과 관련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 강령의 조항들은 근본적으로 설교와 설교자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아래의 윤리 강령들의 번역과 게재는 Ronald J. Allen 교수로부터 직접 허락을 받았다. 

 

1. 나는 규칙적으로 기독교 전통의 다양한 실천들[기도, 금식, 개인 경건 시간, 구제, 봉사, 사회정의]에 참여할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기독교 전통의 대표자로서 신실한 사람이 될 것이다.

 

2. 나는 나의 육체적 상태가 내가 설교를 준비할 수 있는 주의력과 에너지에 상당히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내 몸에 맞는 적절한 식사 습관과 운동 뿐만 아니라 심리적이고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에도 조심할 것이다. 

 

3. 나는 내가 소속되어있는 교단 전통이 어떻게 설교를 신학적/교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설교가 어떤 형식으로 선포되어 왔는지를 파악할 것이다. 이 노력은 내가 속해있지 않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 타교단들도 포함된다. 나는 이러한 전통들을 존중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비판적으로 성찰할 것이다. 

 

4. 나는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성령께서 나를 움직이실 수 있도록 내 마음을 개방하고 기도할 것이다. 내가 본문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이 내게 다가오도록 기도할 것이다. 

 

5. 나는 설교를 하는 시즌 동안 내가 말하고 싶고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만 전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서로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내가 말해야 만 하고 청중이 들어야만 할 불편한 진실의 메시지도 전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성경 본문과 전통과 이성과 경험을 통합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확신을 가지고 때로는 도전하는 뉘앙스로 때로는 질문을 던지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때로는 활짝 웃으면서 때로는 말로써… 필요하다면 모든 전달 수단과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할 것이다.

 

6. 나는 설교가 예배의 전체가 아님을 잊지않을 것이다. 설교는 예배의 한 부분이며, 설교가 예배의 일부로써 적절하게 기능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7. 나는 성서 뿐만이 아니라 청중들과 청중들이 처해있는 상황에도 목회적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이 상황은 지역 교회가 위치한 지역 사회 전체의 민족 구성, 성별, 연령,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 상황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청중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들에 주목할 것이다. 그래서 설교의 사건이 복음과 청중들의 상황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전혀 무관한 사건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8. 나는 준비하고 있는 설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적인 통찰력이 설교하는 순간에도 일어날 것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설교는 설교하는 순간에도 언제든지 수정과 변형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교를 성실하게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절차들을 따를 것이다. 

 

9. 나는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라도 설교하도록 요청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준비되지 않은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설교 원고문 없이 즉흥적으로 설교하는 전통에 있다면, 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도움이 되는 건강한 영성의 방향을 끊임 없이 지향할 것이다. 

 

10. 나는 다른 특정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이 요청하는 새로운 주제와 방향으로의 재고없이 한 때 사용하였던 내 자신의 설교 원고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11. 나는 설교 준비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도록 매 일, 매 주 설교자로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 것이다.

 

12. 나는 성서와 청중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겠지만, 좋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료들도 성실하게 참고할 것이다. 관련 본문에 대한 다른 이들의 해석적 도움과 통찰력을 얻을 것이며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 원고와 설교집도 읽어보는 것을 설교자의 일로 삼을 것이다.

 

13. 나는 설교할 때, 내가 사용한 아이디어, 단락, 이야기, 일화, 혹은 다른 자료들이 명백하게 나로부터 오지 않고 분명한 출처가 있을 경우 청중들에게 그 출처를 밝힐 것이다. 나는 직접적으로 그 출처에 대해서 설교 원고에는 각주를 달 것이고,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서 주어진 생각이나 표현이라고 간접적으로 강단에서 알릴 것이다. 

 

14. 나는 성서와 전통 뿐만 아니라 설교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그들의 책들과 자료들을 내 설교 안으로 통합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길 것이다. 나는 그러한 요소들이 마치 내 자신의 것인 양 표현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런 자료들이 내 설교 안에서 그들 자신의 매우 독특한 소리를 내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 일 것이다.

 

15. 나는 설교자로서 믿는 것이 무엇이고 믿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진실되게 말하면서 성서적/신학적으로 그 말하는 바가 일관성이 있고 통합적이며 유기적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결코 내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포장하거나 거짓으로 전하지 않을 것이다. 

 

16. 나는 내가 설교에서 언급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정중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말할 것이다. 나는 어떤 대상이나 사건이나 사람을 언급할 때 경솔한 방식이나 냉소적인 방식 혹은 조롱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지지하건 반대하건 그것을 매우 명확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표현할 것이다. 청중은 설교자가 전달하는 메시지 뿐만 아니라 설교자의 태도와 모습을 종합하여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인식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겠다.  

 

17. 나는 현재의 회중들과 과거의 회중들이 교우들에 관하여, 가족들과 친구들에 관하여, 혹은 보다 큰 공동체에 관하여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설교자에게 요청했던 내용들을 존중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동의없이 혹은 동의가 없더라도 결코 설교의 재료로 이러한 비밀 이야기들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18. 만약에 내가 회중들 가운데 혹은 회중들이 알고 있을 만한 사람들 가운데 있었던 이야기, 사건, 일화를 직간접적으로 설교 중간에 소개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하기 전에 동의와 허락을 이야기 당사자들로부터 얻을 것이다. 

 

19. 나는 청중들을 자극할 목적으로 지나치게 충격적이거나 선정적이거나 감상적이거나 부적절한 자료를 사용하지 않겠다. 

 

20. 나는 청중이 내 설교의 주제와 내용을 명확하게 성찰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을 포기하겠다. 나는 청중의 이해 능력을 존중할 것이다.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호불호를 가리고 이간질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조정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모든 설교의 시도들과 가능성을 결코 실행하지 않을 것이다.   


21. 나는 설교하는 시간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올 때, 먹는 음식과 마시는 음료 습관을 조심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노력하겠다. 또한 설교자에게 해로운 다른 잘못된 습관은 없는지 주의를 기울이겠다. 그래서 설교의 사건을 위하여 최상의 상태로 강단에 설 수 있도록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겠다.

 

22. 나는, 설교하는 순간, 오로지 회중과 복음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집중할 것이다.

 

23. 나는 설교를 위임 받은 목사로 사역하는 동안, 회중들과 동료 설교자들과 설교학을 가르치는 전문인들로부터 나의 설교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의도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평가들은 가장 탁월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나의 잘못된 설교 습관을 고쳐주고 잘하고 있는 습관들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다. 

 

24. 나는 정기적으로 설교, 신학, 윤리, 예술, 회중 연구, 다양한 사회과학, 대중 문화 및 개인, 가족, 이웃들, 도시들, 국가와 세계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현안과 현상과 문제들에 대한 학습 기회를 가질 것이다. 

 

25. 나는 내가 설교하는 내용과 내가 살아가는 생활 모습과 태도가 일치할 수 있도록 매일 매일 노력할 것이다.

 

26. 나는 초월자이신 궁극적 존재의 관점에서 나의 삶을 이해하는데 최선을 다하면서, 내 자신의 유한성과 신학적 전통의 한계성을 인정할 것이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계속 변하고 해석되고 변형된다. 그래서 나도 신선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어떠한 방식의 비판적 사유와 성찰이라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설교자가 되겠다.

 

27. 나는 설교의 목적이 내 자아를 양육하고 내가 가진 예술성을 청중에게 선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하나님의 현존과 인도하심을 설교를 통해서 인지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28.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과 모든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설교의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겠다.

 

김남중 교수의 아멘넷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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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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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설교하기어렵다님의 댓글

설교하기어렵다 ()

설교하기 참 어렵네요. 지켜야할것도 많고 알아야 할것도 많고 유식하지 못하면 앞으론 설교하기가 점점 어려워질것 같네요. 특히 저작권 찾다가 설교준비시간 다 잡아 먹을듯 합니다.

해심님의 댓글

해심 댓글의 댓글 ()

매주마다 오늘 설교는 ㅇㅇㅇ목사의 설교입니다 아니면 제가 얼마얼마 전에 했던 설교입니다 라고 말하는게 창피해서 그렇지, 보통 통째로 표절하는 표절설교는 저작권 찾는데 시간이 하나도 안듭니다.

OMC 에서 초대교회로님의 댓글

OMC 에서 초대교회로 댓글의 댓글 ()

몇가지 팩트를 짚어드려야 겠습니다.
1. 지난 일년동안 본인의 설교가 중복되는 것이라고 밝힌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OMC 에서 초대교회로님의 댓글

OMC 에서 초대교회로 댓글의 댓글 ()

2. 중복설교가 어떠냐손 치더라도, 정말 너무한것이 예전설교를 다시 재구성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었습니다. 토씨하나 안바꾸고 그냥 예전 원고 그대로 읽습니다.

OMC 에서 초대교회로님의 댓글

OMC 에서 초대교회로 댓글의 댓글 ()

제가 어떻게 아냐고요?  하필 제가 엘레이에서 뉴저지로 2년전에 이사하였고, 무엇보다 OMC 다녔던 제가 초대교회 등록하였기 때문입니다. 처음 박목사님이 오신다기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주두주 예전 설교를 중복하시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정말 이런 분인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OMC 에서 초대교회로님의 댓글

OMC 에서 초대교회로 댓글의 댓글 ()

3. 박목사님은 지난 일년동안 일주일에 한번내지는 두번 설교하셨습니다. 수요여성예배는 부목사님이, 금요예배도 부목사님이. 새벽예배는 부목사님들과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하시니 아무리 많이해도 일주일에 두번입니다. 물론 특별절기예배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설교횟수로 핑계댈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핵심님의 댓글

핵심 ()

박형은 목사 표절설교의 핵심을 잘 집어낸 글입니다. 특히 다음 대목이 전체글을 요약한다고 생각됩니다.

"설교자의 정직성과 성실성, 그리고 설교 내용의 직접성과 관련성의 부재 그리고 자기 설교든 다른 이의 설교든 설교자가 설교 내용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회중과의 소통의 부재는 결국 '표절'이라는 의혹과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원치 않는 결과를 파생시킨다는 사실을 설교자들은 이번 박 목사의 사례를 통해 반성하고 지속적으로 자각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열린 마음님의 댓글

열린 마음 댓글의 댓글 ()

표절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허락없이 썼을 경우를 이야기 합니다.  이런 경우는 표절이 아니지요.

반복설교님의 댓글

반복설교 ()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요. 설교를 학위논문 발표하듯이 교인들에게 전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설교에 성령충만한 은혜가 있겠습니까? 유럽교회가 신학논문이 부족해서 쇠퇴했나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는 것을 믿으면 모든 저자권은 하나님께 있지요. 반복 설교는 꼭 필요합니다. 반복 교육 만큼 효과적인 것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같은 설교도 마음이 옥토이면 은혜가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깁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합시다.

열린 마음님의 댓글

열린 마음 ()

한인 교회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목회자와 성도들이 힘을 합해 교회를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간의 열린 마음과 관용입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교회들이 너무 외형적 형식에 치우쳐 있고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중복 설교를 할 수 밖에 없는 목회자의 형편과 이민 목회의 현실, 이것을 문제시하는 성도들의 마음 가짐에 대해서 열린 마음과 관용으로 솔직한 이야기와 이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새설교를만들라님의 댓글

새설교를만들라 ()

새로운 설교를 계속 만드십시오.

어떤 목사는 불과 몇 년이 지나면 새로운 설교를 더 이상 만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이 없으니 예전에 했던 설교를 질리도록 재탕 반복합니다. 아니면 두 세개의 옛날 설교를 합쳐서 새로운 것인양 포장합니다. 이런 행위는 거룩한 진리의 광산에서 새로운 보석을 캐내는 영예로운 노동을 하챦은 것과 바꿔치기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이미 다 주었고 교인들을 교육하고 양육하기 위해 새로운 자료를 더 이상 연구하지 않는다면, 그는 목사직을 사임하고 다른 사람에게 목사직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성경 속에 들어있는 진리의 보물이 목사인 그대 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 보물이 그대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보물이 그대에게 지식의 부요함을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대에게 그들을 캐내어 차지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대가 성경 연구에 정신을 쏟고 근면하게 성경을 연구한다면 그대의 살아생전에 그대의 삶은 더 유용해지고 더 고양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장래에는 없어지지 않을 보석이 박힌 면류관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윌리엄 해밀튼은 뇌졸증으로 중풍에 걸려 한 팔을 팔걸이붕대로 지탱한 상태에서도 죽음이 그를 데려가기까지 그 연약한 몸을 수그려 연구에 매진했고 정신 철학의 고상한 수준을 이해하려는 열심으로 그의 눈은 빛났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겨우 신학의 문지방에 서서 이삼십년 전 어린아이처럼 초보적인 진리만 아는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게으른 목사는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교인들의 영혼은 영양가 풍부한 하늘 양식을 먹지못해 굶주려 있는데 게으른 목사는 옛날에 했던 낡고 거친 설교만을 반복할 뿐입니다.

아! 그대 자신도 모독을 받고 목사 직분도 추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우리의 설교는 살아있어서 그날그날 헐몬산과 시온을 방문하는 새로움과 향기를 숨쉬게 합시다. 성전에 흐르는 물이 방금 하나님의 지식의 분수에서 길어낸 생수가 되게 합시다.

그대는 젊은 목사인가요? 그렇다면 새 설교를 만드십시오. 옛날에 다른 사람들이 만든 설교보다 더 나은 설교를 만드십시오. 그대는 중년의 목사인가요? 그렇다면 설교 형식과 내용 모두가 더 성숙한 지식과 더 농익은 경험을 잘 살리게 하십시오. 그대는 연로한 목사인가요? 그렇다면 여전히 새 설교를 만드십시오. 연륜에서 오는 더 깊은 지혜가 그대 자신의 고루한 생각과 잔소리를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게 하십시오. 강단에서 설교를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던가 아니면 설교를 준비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십시오.

출처: The Methodist new connexion - Magazine and evangelical repository (1858) 192쪽

교인님의 댓글

교인 ()

자기표절? 자기를 어떻게 표절합니까?
예수천당을 반복한다해도 중복 복음 입니까?
어찌이런 말이안되는 논리를 주장하시는지요
설교자가 하나님께 중히받은  말씀 이라면 열번이고 중복할수 있는것은 당연한것이지요
자기의 간증이기에 가능한것입니다..남이받은것을 그대로 도용하는것이 표절이고요
표절이 병폐로 남기는것이 이단입니다  미주 동부에 기생하는 구원파. 신사도주의.계파들이죠  하나님과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인본주의 신학에 기독교가 병들고있읍니다
시급한것은 기독교 이단이 먼저정리되어야 하는것 아닌지요?

핵심님의 댓글

핵심 댓글의 댓글 ()

자기표절은 예를 들면 시인이 어느 시집에 발표한 시를 다른 시집에 새로 쓴 시인양 게재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즉, 한번 만든 작품을 여기저기에 낼 때마다 새 작품인양 거짓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같은 작품을 여기저기에서 사용해도 자기표절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학선생님이 수학방정식을 가르치는 경우입니다. 가르칠 것이 변함이 없으면 한번 준비한 교재를 반복해 사용할 수 있고 이건 옛날에도 사용했던 교재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설교는 변함없는 성경을 가르친다는 면에서는 학교 수업과 같지만, 설교는 때떄마다 설교 듣는 청중에게 맞춰져야한다는 면에서 학교 수업과 전혀 다릅니다.

박형은 목사가 재탕한 설교는 이전에 시무한 교회에서 했던 설교입니다. 먼저 번 교회는 목사의 비리로 분란이 커 파산을 넘나들던 교회인데, 그 상황에서 그 교인들에게 했던 설교는, 오랫동안 목사의 비리도 없었고 훌륭한 목사들의 가르침 아래 꾸준한 신앙 성장을 이룩해온 뉴저지초대교회에는 맞을 수 없습니다. 다른 상황에 있는 다른 교인들에게 똑같은 설교를 반복한다는 것은 교인들을 양육할 목자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아픈 양과 건강한 양, 믿음이 약한 양과 강한 양, 신앙 초보의 양과 성숙한 양이 먹어야 할 메세지는 달라야하지 않을까요? 다른 상황 다른 교인들에게는 그들에 맞게 성경을 설명하는 깊이와 적용과 권면의 내용에 차이를 두어야합니다. 그렇지않고 국화빵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옛날 원고를 똑같이 읽는 자기표절 재탕 설교는 양들의 신앙성장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교인님의 댓글

교인 댓글의 댓글 ()

핵심님  소설과 설교는 다릅니다
소설은 사람이 만드는 작품이지만 설교는 하나님이 계시지요
님께서는 소설과 설교를 비교하시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설교의 권위를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지만 죄지은 인간들은 각자 제멋되로 믿죠..
그믿음을 토대로 각자의 논리를 전개해가기에  같은 믿음이지만 서로를 이해하지않고 논쟁하는거죠..
그리스도인들이 화를내는 근본 원인을 들여다보면 그근원이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었음을 깨닳아야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들만큼은 서로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쓰러지고 넘어질때 손잡아주고 믿음에서 낙망할때 용기 주시고 시험들어 헤멜때 회개하며 돌아서게 권면해주고 부족한 목회자가 있다면 그를위해 눈물흘리며 주께서 그에게 능력을 부어주시라고 기도하는게 먼저라는거죠.
진정.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신령한 복음의 말씀이라면 열번이라도 중복하여 전해야 하는것이지요..
우리의 섣부른 판단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지못함을 인지하시길.

핵심님의 댓글

핵심 댓글의 댓글 ()

박형은 목사는 부임 이래 옛날 설교를 매주 반복했다고 합니다. <교인>님 논리로 따지자면, 하나님은 뉴저지초대교회를 위해서는 박 목사에게 신령한 복음의 말씀을 한번도 새롭게 주지 않으셨다는 말씀인가요? 박 목사께서 하나님 앞에 앉아 이번 주는 무슨 설교를 할까요 이렇게 기도 드리는데 하나님은 "박 목사야, 내가 엣날에 네게 준 말씀이 너무나 은혜로우니 토씨 하나 바꾸지말고 그대로 반복하도록 하여라" 라고 매주 말씀하셨다는 건가요?

교인님의 댓글

교인 댓글의 댓글 ()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게명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것이니"  레위기 5장17절
22살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40년을 넘게 믿음생활을 하고 있건만 죄인줄도 모르고 짖는 죄를 께우치며 마음을 추스리고 소망가운데 나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뻐하며 어려운 모든 환경속에서도 감사할수있음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기때문입니다  늘 죄를 가까이하는 부끄럽고  적은 믿음이지만 베풀어주시는 넘치는 은혜가있기에  우리의 자랑이 십자가 뿐 자랑할것이 없죠.... 우리믿음의 자녀들은모두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새로 태어난 생명임을 잊어서는안됍니다..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서로 사랑해야함이 중요한것이죠.. 급한것은 주의 복음 이기쁜 소식을 전하는것이 급하고 중요한것이지  미흡한 설교준비를 책망하는 건 아니라는겁니다
존중될수있는 개인적의견은 직접 교회의 장로님이나 목사님에게 건의하시면 해결될일을  이렇게 포털 사이트에 올려 기독교를 박해하는 세상에 조소의 빌미를 주심에 대한 염려이죠
잘했다는게 아니요 .. 미흡한면은 고쳐 나가면되는것이죠
이정도면  상식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중복설교에 대한 변론은 각자 충분한 이해가 되었을 겁니다
아멘냇 운영진께서는 이런 논쟁은 결코 건덕상 유해함을 인지하시고  김남중 교수의 글을 올리신 기자의 동의를 얻어 글을 내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OMC 에서 초대교회로님의 댓글

OMC 에서 초대교회로 댓글의 댓글 ()

1. 급한것은 복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영적으로 바로 설수 있도록 말씀 전하는 일을 맡은 담임목사를 영적으로 바로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이토록 욕을 먹는 것이 정작 본인들은 바로 되지 못하면서, 예수천당 불신지옥만 외쳤댔기 때문입니다. 
2. 장로님 목사님에게 건의하면 될이라고 쉽게 말씀하시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현 이민교회 상황에서 말입니다. 본인의 신분이 노출되었을때 과연 그교회 남아있을수 있을까요?
3. 세상에 조소의 빌미를 준것이 두렵다면, 이렇게 백일하에 본인의 과오가 드러났음에도 아무말 안하고 숨어있는 박목사님이 이제라도 통회자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제라도 설교를 충실히 준비하겠다 라고 하는 것이 맞는가요? 아니면 다함께 나서서 덮고주고 쉬쉬하는 것이 맞는가요? 진정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맞는 것인지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인님의 댓글

교인 댓글의 댓글 ()

오늘날 기독교가 욕을 먹는것이  내자신이란것을 왜모르시는지요?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우리의 죄성을 왜 깨닳치를 못하시는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누구도 우리의 허물들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기때문입니다 전입 하신지 2년이나되시는분이 초대교회 리더쉽을 불신 하시니 안타깝네요.
그러나 초대교회는 님이 우려하심같이 독선적이거나.편협한 교회가 아닙니다.또한 타교회 개척하신목사님같이 ...목사님은 힘이 없읍니다
그렇다고 동정해달라는것도 아닙니다
목사님이 반복적으로 같은 설교를한다는 명분으로 이제 부족하나마 목회를 시작하는 일개 선량한 목사에 대한 태도에대해 말하는것입니다
목사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같이 회개함이 옳은일이 아닐까요?
형제의 조그만 허물을 주님이 앉으실 심판대에 앉아 판단하는 죄를 범치 않으시길 .

OMC 에서 초대교회로님의 댓글

OMC 에서 초대교회로 댓글의 댓글 ()

네 잘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교인님의 댓글

교인 ()

핵심님의 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하는 자세또한 공감합니다
또한 초대교회로 전입하신 새로운 교인들의 실망도 충분히 이해가됩니다
뉴져지 초대교회는 역사적으로 조영진목사를통해 개척교회의 어려움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부흥케하시고 교회가 부패하는것을 방지하기위해 미주에서 최초로 장로 임기제와  목사재신임제도를 실행함으로 교회내에서 일어날 모든 비리를 차단시켰읍니다  미흡한 행정력은 이재훈목사님을 보내주셔서 교회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 하며 나갈수있었구요  성경의 진정한 지식들을 위해 강해설교에 능하신 한규삼 목사님을 통해 올바른 성경의 해석을 배웠읍니다 이제 세상의 소금과 빛을 감당하고쟈 .박형은 목사 을 보내주셨읍니다  여지껏배운 지식을 세상을 향해 나가려는 시작입니다
설교가 강해설교가 아니고 간증설교이기에  장단점들이 있지요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새로운 시작에 다소 미흡한점 이 있음에도 넓은 아량으로 힘을 주십시요 이제는 초대교회가 세상에게 빚진것들을 값아야 하기때문입니다..
저는 초대교회의 평신도로써 교계에 향한 부탁입니다

OMC 에서 초대교회로님의 댓글

OMC 에서 초대교회로 댓글의 댓글 ()

제가 뉴스앤조이에 제보한 것이 7월 초이고요, 기사가 난것이 8월 28일 입니다. 벌써 한달가까이 되어가지만, 박목사님은 아무 말이 없으신군요. 이렇게라도 하여 충실한 목회자로 되돌아 서시기를 바래고 기도해 왔습니다. 이제는 교회를 떠날때가 된것 같습니다.

OMC 에서 초대교회로님의 댓글

OMC 에서 초대교회로 댓글의 댓글 ()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순모임에서 만난 성도 한분한분은 일주일내 고달픈 이민생활속에서도 주일날 목사님의 입을 통해 주신 말씀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발버둥는 모습에 저는 매번 감동합니다. 수요여성예배, 금요예배 또 교회 훈련도 꼭 받고 싶지만 야근하는 직장에, 나아질줄 모르는 비지니스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그나마 주일 하루 부서진 심정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온다고 합니다. 그런 성도들앞에서 "설교 준비가 얼마나 힘든줄 아십니까? 진액이 빠진다" (설교중에 실제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발 충실히 말씀을 준비하셔서, 이 시간 이 성도들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충실히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목사님을 초대교회 담임으로 세우셨을때에는 하나님의 커다란 역사하심과 계획이 있을줄 믿습니다. 언론매체를 통해 좀 수모도 겪고 챙피도 당하고 한다고, 그 원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틀어질리가 있겠습니까? 이번 기회로 더 크게 쓰임받는 목사님, 또 초대교회 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습니다.

교인님의 댓글

교인 댓글의 댓글 ()

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글에 눈물이 납니다  부족한점들 개혁시켜 주심도 감사합니다  올바른 교회 개혁을 위해 초대교회는 님과 같은 분도 꼭 필요하죠.
교회를위해 베푸신 열정 잊지않고 기억해  평범한 교인으로 올바른 개혁에 동참 하겠읍니다

작은자님의 댓글

작은자 ()

또 다시 설교에 대한 좋지 않은 문제가 불거졌군요
기사를 정독했습니다. 또한 기사에 대한 댓글들도 정독했습니다.
댓글이라함은 원 글에 대한 정확한 팩트에 기초한 글이어야 하는데
원글이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우선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김 목사님이 자신의 설교문을 이전교회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하신 이유에 대해 반론이나 변명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원글의 전체가 사실이라면 부끄러움과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란 설교의 주체가 되는 성경을 중심으로 그 본문을 통하여 해당 신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볼 때 같은 본문이라도 약간은 다른 성격의 메시지가 전달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김목사님이 재탕에 준하는 같은 설교를 하셨다면 잘못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이후 김목사님의 변을 통해 그렇게 하셨던 이유가 정당하게 들려오기를 기대합니다.

핵심님의 댓글

핵심 댓글의 댓글 ()

죄송하지만 정독을 안하셨습니다.

작은자님의 댓글

작은자 댓글의 댓글 ()

그렇군요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제가 어떤 점을 놓쳤는지 좀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핵심님의 댓글

핵심 댓글의 댓글 ()

기사를 정독했고 또한 기사에 대한 댓글들도 정독했다고 하셨는데 기사와 댓글 모두 김 목사(?)란 사람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놓치셨습니다.

작은자님의 댓글

작은자 댓글의 댓글 ()

다시 한 번 글을 읽어보니 제가 순간적으로  문제가 되는 목사님의 성을 '박'에서 '김'으로 잘못 기재했군요 저의 불찰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성을 틀리게 쓴 거 외에는 내용적으로 틀린게 없어 보이는데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다시 한 번 일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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