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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목회 파트너쉽 모델: 뉴욕 맨하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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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7-11-2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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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

 

제가 2016년 한국 서번트 리더쉽 컨퍼런스에서 ‘도시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수 제자 만드는 교회 세우기’라는 제목으로 이 자리에서 발표한지 꼭 1년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6개월 전에는  뉴욕을 방문한 한국 서번트 리더쉽 훈련원의 미국 대안공동체 탐방팀들에게 뉴욕의 도심지 목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6개월 사이에 일어난 중요한 일에 대해 먼저 나누고 싶습니다. 작년 서번트 리더쉽 세미나에서 발표를 할 즈음에 저는 뉴욕과 뉴저지에서 사역하는 젊은 목회자들과 뉴욕 맨하탄의 청년목회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공부하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 모임의 이름이 ‘맨하탄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입니다. 원래 맨하탄 프로젝트는 1930년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연구 프로젝트였습니다.

 

핵무기 프로젝트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파괴적인 역사를 예수 복음으로 바꾸어놓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뉴욕이란 도시의 특성상 세계에서 젊은이들이 공부를 제일 많이 하러 오기도 하고 여러 전문분야 엘리트들이 몰리는 곳인데 기성교회들은 이런 중요한 선교의 황금어장을 감당하지 못하고 맨하탄을 떠나는 현실에서 젊은 목회자들과 파트너가 되어 맨하탄 대학생청년 선교를 꿈꾸어 보는 것입니다.

 

모임을 시작하면서 이들 30대 목회자 10명과 함께 뉴욕 도시목회의 권위자 팀 켈러 목사가 중심이 되는 ‘No Other Gospel: Beyond 500’라는 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보수적인 장로교단(PCA)이 중심이 되는 모임인데 3-40대 젊은 목회자가 만여명 모인 모임이었습니다. 여자는 목사안수를 주지도 않고 장로도 안 세우는 교단인데 젊은 목회자들이 왜 그리 많이 모였는지 연합감리교 목사인 저로서는 한편 불편하면서도 큰 도전이었습니다.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목회자들은 몇 명 안되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후러싱제일교회 한어청년담당 목사와 영어목회 담당 2세 목사가 참여하고 뉴욕 맨하탄 뉴욕한인교회 청년담당 전도사 그리고 맨하탄 한인 2세들이 모이는 모닝사이드 교회 목사외 한두 명이 전부입니다.

 

그 모임을 하면서 계속 제시된 내용이 맨하탄에서는 모일 장소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건물 임대가 비싸 정기적으로 모이는 장소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뉴욕연회 소유인 작은 5층 건물이 있는데 건물을 매각해서 연회 재정에 쓰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뉴욕 최고의 대학(NYU)근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지역에 있는 건물입니다.  시가로 천만불정도(100억)됩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뉴욕 연회에 프로포절을 냈습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목회에 쓰겠으니 후러싱제일교회에 소유권을 달라고 했습니다. 맨하탄 젊은층 목회 요지에 있는 건물을 팔아서 교단 운영기금으로 쓰지 말고 젊은이 목회를 위해 투자하자고 했습니다. 연합감리교회가 뉴욕 도심지를 지켜야지 어렵다고 중산층들이 사는 써버브로 떠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교회 리더쉽과도 상의하지 못한 상황에서 후러싱제일교회에 소유권을 넘겨주면 100만불 투자해서 건물 고치고 젊은이 목회를 활성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당당하게 제시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난 9월 5일 연회 재단이사회에서 후러싱제일교회로 인계하는 기본적인 결정을 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결국 2018년 1월 1일부로 소유권이 후러싱제일교회로 넘어오기로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저에게 ‘도시목회’ 발표 기회를 주신 한국 서번트 리더쉽 훈련원의 유성준 목사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재산 확보의 중요성이 아닙니다. 뉴욕의 도심지 청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준비할 때 뜻이 있으니 길이 열린 것입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것입니다. 뉴욕연회의 입장에서는 교회들이 어렵고 안되니 대안으로 건물을 팔아서 연회 프로그램과 개척교회를 하려고 애쓰지만 잘 안되었기 때문에 소신을 가지고 개교회 이기주의를 뛰어넘어 젊은 세대와 파트너가 되어 선교공동체적 미래를 꿈꾸는 ‘프로젝트’에 투자에 도전을 받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연회 리더쉽에게 제시한 것은 파트너쉽의 중요성입니다. 먼저 뜻을 같이하는 젊은 목회자들이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과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목사들이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묶어주는 중심교회가 있고  중심교회(center church)와 연회와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후러싱제일교회가 중심역할(Center Church)을 했습니다.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해 중요한 기본을 두 가지로 말하는데 첫째가 역사의식(historical consciousness)이고 둘째가 함께 일한 경험(habits of working together)입니다. 파트너가 된다고 할 때 기본 신학적 이해와 목회에 대한 가치관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뜻을 현실로 이루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공유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파트너가 되어 일을 해내기 어렵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는 중심교회 역할을 하기 위해 실력을 인정받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2년 전에 현재의 교회로 파송 받은 것은 교회분쟁으로 연회 분담금 가장 많이 내던 교회 교세가 급격히 줄게 되니 연회 리더쉽에서는 위기의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안정이 되면서 연회 필요한 헌금을 분담금 100% 이외에도 연회가 필요한 곳에 넉넉하게 선교비를 지원했습니다. 나아가서 어려운 소수민족교회들이 절대 다수인 후러싱제일교회가 소속된 지방 감리사가 요청하는 것이 있으면 필요한 재정지원을 포함하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연회는 물론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중심교회 역활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려운 때 일수록 함께 무너진 것을 세우려고 하는 마음들이 간절하기에 중심교회로 인정받으면 시너지를 모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중심교회 또는 중심 리더가 되기 위해 비전을 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신뢰를 얻기 위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사실 나 개인으로 볼 때 당시에 뉴욕에 파송 받아 온지 1년 겨우 넘은 목사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60살 먹은 목사가 30대 초반 목회자들을 독려해서 컨퍼런스 같이 다니고 밥 먹는 곳 커피마시는 곳 따라다니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첫째는 세대가 다른 젊은이들이 나를 불편해 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고 둘째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질투는 물론 방해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려고 할 때 여러 각도에서 방해가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동의해 주지 않으면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비전을 세우고 다음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비전 공유 작업인데 여기에 필요한 것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다각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내야 하는 작업입니다. 작년부터 젊은 목회자들 세우고 이들과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차세대목회 투자 중요성을 교회에 계속 부각시켰습니다. 처음에는 고령화된 교회 교인들 돌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교회 리더쉽이 서서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를 위해 크게 헌금하는 교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맨하탄과 플러싱은 강을 건너야 하는 다른 지역입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목회현장에서 일어나야 하는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후러싱제일교회가 젊은이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디딤돌과 징검다리 역할을 사명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연회에서 그와 같은 결정을 해준 것입니다.

 

이로 인해 후러싱제일교회 자체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젊은이들은 거의 떠난 교회로서 고령화시대의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젊은 층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사도행전 2:17에서 성령이 임하면 늙은이가 꿈을 꾼다한 말도 안되는 말씀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은퇴가 멀지않은 나이에 뉴욕에 와서 젊은 목회자들과 동지적 관계를 가질 수 있고 이들이 소신껏 목회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보람을 찾게 되었습니다. 30초반 젊은 전도사들과 목사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제 이런 프로젝트가 더 확장되는 일에 다른 지역의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을 동참시키려고 합니다.

 

어디에서 어떤 목회를 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목회현장의 이해력(Contextual Sensitivity)’입니다. 텃밭을 가꿀 때도 토양을 무시하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땅에 맞는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시카고와 애틀란타에서 30여년 넘게 목회를 했어도 뉴욕은 또 아주 다른 동네입니다. 뉴욕에 대해서는 배우는 시작단계에 있습니다.

 

도시목회 기본 이론은 1979년도에 보스톤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설교학이라는 과목을 들어갔는데 설교 자체에 대해 배운 것 거의 없고 주로 보스톤이라는 도시에 만연된 범죄, 인종, 빈민문제와 교회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지역사회 조사하고 연구하도록 교수가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30여 년 전 시카고에서 대학생청년목회를 하면서 학생들 훈련을 위해 매달 흑인과 히스패닉 지역을 방문해서 그들 커뮤니티를 배우고 업타운이라는 도시빈민지역에 무숙자 봉사만이 아니라 시정부가 무숙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정책을 세우도록 하는 일에 참여했었습니다.

 

1980년대 사회변혁가들이 많이 말한 것이 연구(Study), 실천(Action), 평가(Reflection)의 과정입니다. 아직도 이것이 유효하다가 생각합니다. 목회현장에 대한 연구 없이 자기 생각과 선입감을 가지고 뛰어드는 것이 가장 위험한데 많은 목회자들이 가지는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은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고 그 다음은 평가의 과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교회성장 이론에서도 어떤 모델을 다른 목회현장에 그대로 복사하는 모델 지향이 아니라 원칙지향(Principle-Driven)이 되어야 함을 많이 지적합니다. 제한된 경험이지만 제 목회의 배경에는 각 도시에서 목회를 하면서 습득한 것들이 저의 목회를 만들어주는 자원이 되어 있습니다.

 

시카고라는 도시는 전 미국 대통령 바락 오바마도 커뮤니티 조직가로 사회참여를 시작한 것처럼 1950년대부터 미국 도시빈민들이 자기들이 처한 현실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조직화하는 것을 전문 프로그램화 했던 Saul Allensky가 활동하던 센타입니다. 시카고 북쪽에는 에큐메니칼 인스티튜트등 특별히 80년대까지만 해도 멕코믹신학교를 중심으로 도시선교쎈타가 활성화되었던 곳입니다. 알렌스키의 대표저서인 ‘Rules for Radical’(진보주의자들의 강령)으로 정리될 수 있는 조직이론과 실천방안은 주민조직운동으로 시작해서 국가 정책을 바꾸는 차원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도시목회’의 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카고에는 다양한 그룹들이 여러 접근방법으로 도시빈민선교에 참여했는데 그 가운데 한 그룹으로 ‘Jesus People’(예수의 사람들)이 시카고 업타운을 선교의 거점으로 삼고 도시빈민, 알콜과 마약중독자, 정신장애자등을 위해 그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어내려고 시도했습니다. 한국 교회 많은 지도자들도 훈련을 받은 에큐메니칼 인스티튜트도 같은 지역에 있었고 ‘민중의 교회’(People’s Church)가 업타운 도시빈민 거주지역에서 있으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었습니다. 그러나 30여년전부터 이런 도시목회의 영향력은 미약해졌고 오히려 그런 지역들에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도시빈민층이 살던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대학생들이나 도심의 중산층들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도시빈민이 많은 지역이 도시 중심부에 가깝고 대중교통이 좋은 지역이다 보니 재개발업자들의 관심이 몰리고 결국 저소득층이나 빈민들은 자기들의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들도 도시빈민 지역에서는 문을 닫게되고 나중에 교회건물 역시 재개발업자들에게 팔리는 현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1982년도부터 1997년까지 시카고에서 대학생청년 목회를 그리고 1997년도부터 2015년까지 애틀란타에서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목회를 했습니다. 애틀란타는 시카고와 뉴욕과 아주 다른 도시입니다. 애틀란타는 남부문화의 중심입니다. 남부와 북부는 기본적으로 노예제도 지지와 반대로 나누어지고 링컨 대통령 시절 Civil War가 일어나 북부가 승리를 한 것입니다. 남부문화는 아직도 보수 백인문화가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교세만 생각하면 당연히 북부의 교회들보다 남부의 교회들이 앞도적으로 강합니다. 장로교나 감리교와 같은 기성교단들이 오랜 세월 교단을 움직이는 리더쉽의 중심이 북부에 있었지만 지난 십여 년 남부 보수로 영향력이 기울고 있습니다. 미국 개신교단 가운데 남침례교 다음으로 가장 교세가 강한 연합감리교 세계선교국 본부가 뉴욕에서 2016년도로 애틀란타로 이전하게 된 것도 그 영향력의 단면입니다.

 

애틀란타에서 백인 중산층 교육환경이 좋은 써버브 지역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했습니다. 주일날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2,00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하게 되니까 목회의 울타리가 확장되면서 도시 어려운 미국교회들로 부터 지원요청이 오게 되었고 아틀란타한인교회는 파트너목회 개념으로 교회 개척은 물론 도시 빈민지역 교회 주일학교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애틀란타의 도시목회라고 하는 것은 뉴욕이나 시카고와 양상이 많이 다른 것이 도시 중심 주변에 흑인이나 백인 대형교회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Bible Belt지역에 가능한 현상입니다. 아직도 교회의 영향력이 강한 보수성을 가진 도시이기에 남침례교회나 연합감리교와 같은 교단 대형교회들의 영향력이 큽니다. 참고로 미국내 연합감리교단의 교세는 800만 명이고 연합장로교단은 170만 명 정도가 됩니다.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압도적으로 연합감리교 교세가 큽니다.

 

위와 같은 시카고 16년과 애틀란타 18년의 목회경험을 가지고 뉴욕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뉴욕 목회현장

 

도시목회를 생각할 때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인구이동과 교회의 관계입니다. 오늘날 뉴욕 인구변화가 너무 급변해서 도시계획하는 사람들도 예측을 못하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뉴욕과 같이 중요한 세계적 대도시에서 교회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약해진다는 것이고 특별히 뉴욕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맨하탄의 경우 여기에서 일하고 학교 다니고 생활하는 세계 최고의 문화, 경제, 교육, 과학 엘리트들을 담아낼 교회의 준비상태는 더욱 미약합니다.

 

이런 변화를 대부분의 도시 교회들은 1980년대 이후 백인 인구이동에 따라 써버브로 이동하게 되었고 젊은 층들이 다시 몰리는 도시를 기성교회들은 새로운 선교적 도전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특수 대상과 상징성을 가진 목회를 하게 되는 교회들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뉴욕이나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의 경우에는 ‘성소수자들을 환영하는 교회’(Reconciling Congregation)나 도시빈민 선교지향적 교회들이 자리를 잡게되고 특별한 경우에는 뉴욕 맨하탄의 팀 켈러 목사가 개척한 리디머교회처럼 대학생들과 전문직을 가진 젊은이들이 집중하는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시카고에 비해서 뉴욕은 도시로서의 규모가 많이 크고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활성화된 도시선교가 이루어졌다고 할 것입니다. 미국을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는데 미국 현대 이민의 관문은 뉴욕입니다. 나아가서 아직도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오는 곳이 뉴욕입니다.  뉴욕은 세계 모든 도시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뉴욕이란 도시는 현대사회 극대화된 인간욕구의 가능성과 동시에 그에 따른 모순이 극대화되어 공존하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뉴욕목회에 담겨있는 가능성과 선교적 중요성입니다. 1980년 중반 남미에서 생명을 걸고 미국 국경을 넘어오면서 불법체류자들이 성공의 꿈을 꾸지만 결국 실패와 좌절의 아픔에 빠지게 되는 현실을 묘사한 영화 ‘북쪽으로 ’(El Norte)가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남미의 나라에서 미국에 오면 천하 행복한 인생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오지만 불법체류자 삶의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이 줄 수 있는 편리와 도전과 성공의 꿈을 가지게 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죄악과 범죄, 물질만능, 타락과 부패 그리고 헛되고 허망한 세상의 것들이 극대화 되어진 모든 것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뉴욕은 다른 도시보다 더욱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연결되고 첨예하게 갈등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유럽이민이 활발하게 시작된 19세기 뉴욕은 요한 웨슬리가 산업혁명이후 파괴되고 더러워진 영국사회를 ‘성결화’하려고 시작한 감리교운동처럼 개신교의 활동이 활발하던 곳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정부가 전문적으로 도시문제를 관장해 나가고 역시 사회단체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차지해 나가는 분야가 커질수록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기에 결국 교회가 감당하는 부분은 도시빈민들과 무숙자들을 위한 구제봉사에 참여하는 형태의 도시목회가 활발하게 되었고 도시선교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약화되었고 많은 교회가 떠났습니다. 그러다보니 큰 교회건물에 교인은 얼마남지 않고 교회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문제로 인해 교회건물이 개발업자들에게 팔리는 일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교인이 없어 교회가 문을 닫게 되지만 도심에 있는 교회가 팔리게 되면서 교단은 막대한 재정적인 수입을 얻는 일들이 생기게 되었고 그래서 ‘교회’의 형태보다는 여러 모습의 도시선교를 계속 시도하지만 영향력은 미약하다 하겠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탈바꿈을 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변화는 교회가 자기 존재목적의 본분과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이것을 ‘거룩함의 회복’으로 풀었다고 봅니다. 이 시대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대전제는 예수가 답(그리스도)이고 교회가 소망이라는 분명한 신앙고백과 자신감 그리고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제가 속한 연합감리교단이 말하는 교회 존재목적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수 그리스도 제자 만드는 교회’입니다. 저는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프로그램이나 사회참여와 같은 것들은 교회가 관심가지고 교인들이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지 존재목적 자체는 아니라는 것 분명히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예수님이 옥합을 깬 여인에 대해 하신 말씀이 그것이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예수를 팔은 가롯 유다에게서 나타난 모습에서 우리는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소견이지만 80년데 한국 교회가 복음화라는 한 축과 민주화라는 다른 축으로 양분화되는 문제로 인해 오늘날 사회문제의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 연유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중심부에 있었던 ‘Missio Dei’를 외치면서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한 교회들은 교세가 약화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진영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거나 아니면 소수 ‘대안’ 그룹으로 약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로인해 결국 교회 연합활동은 물론 교계를 대표한다는 명분을 주장하는 집단들이 차지하게 되었고 결국 이들은 대부분 독재와 우파정치의 도구나 앞잡이 역할로 전락해 버린 현실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하는 목회는 전통적인 교회목회입니다. 지극히 연합감리교회적입니다. 이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라는 각각의 바퀴가 하나가 되어 교회라는 공동체를 살아있게 움직여 준다는 기본 신학적 이해를 가지고 목회를 합니다. 기본적인 에큐메니칼 정신으로 목회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연대 공동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목회를 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아주 중도적인 목회를 하지만 소용이 없는 것은 세월호 추모모임 교회에서 했다는 이유로 ‘촛불귀신’목사로, 한반도평화통일운동에 참여한다고 ‘종북좌파’목사로 ‘정치목사’로 규정당하고 여전히 그런 일은 지속됩니다. 다만 교회가 크다는 것, 그리고 교단이나 동포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다는 것 때문에 교회 내부에서는 물론 외부에서도 앞에서는 비판하는 사람이 극히 드뭅니다. 그러니 나와 같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호막과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목사들은 얼마나 목회하기 어려울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입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목회를 하기 때문에  연대하는 파트너목회가 중요합니다.

 

지난 수년간 많이 대두되고 있는 교회의 ‘대안적’ 노력의 방향에 대해 조심스럽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대안’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중심’으로 들어가야 할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목회’가 어렵기도 하고 부패된 현상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자연적으로 ‘대안적 교회’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작은 교회 운동’에 관한 글을 보니 이 운동은 숫자가 작다는 의미에서의 작은 교회 운동이 아니라 탈성장화, 탈성직화, 탈성화를 지향한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본입장에 동의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물량주의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들이 너무 흔하게 보여지고 있는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이런 시도들이 요한 웨슬리가 제기한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아야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목회 현장이 다양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모델제시는 어렵지만 목회가 무엇인지 기본 개념정리는 필요합니다. 제가 아는 목회의 정의는 ‘하나님의 자원과 사람의 필요를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랑의 채널을 통해 연결하는 것(Conneting the Resource of God with the Need of the People thru Loving Channel for the Glory of God)’입니다.

 

소위 말하는 진보적 교회들은 사람의 필요 현장(context)를 강조하고 보수적 교회들은 불변하는 하나님 말씀(text)을 강조합니다. 여기의 위험성은 ‘연결’의 문제입니다. 제가 올해 초에 젊은목회자들과 팀 켈러목사가 중심이 된 보수주의 진영 ‘종교개혁 500년 그 이후’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생각한 것은 이들은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은 분명한데 세상과 역사를 이해분석하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작업을 해낼 수 있는 도구과 신학적 방법론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면에 대안적 제안을 하는 캠프의 문제는 ‘하나님의 자원’에 대해 그런 면이 있지 않을 지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의 문제는 ‘사랑의 채널을 통한 연결’입니다. 저는 목회자들이 가장 소홀히 하는 분야가 이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에 ‘성공’한 교회들이 요즘 뜬다는 교회들입니다. 작은 교회이건 대형교회이건 이 작업을 소홀히 해서는 교회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연결만으로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원과 사람의 필요를 잘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효율성(efficiency)과 효과성(effectiveness)입니다. 물론 효율과 효과라는 것 자체에 대해 불신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제 생각에는 모든 일에는 이를 평가하고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성장이나 숫자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하고 오히려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이 젊은 목회자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젊은이들과 만나면서 알게되는 것이 이들이 존경하는 목회자들이란 대부분 선비적 깨끗한 이미지와 지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목회자들입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관심가지고 보는 교회 ‘운동’이 작은 교회 운동과 예수살기운동과 같은 움직임입니다. 이런 움직임들 안에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기에 저는 더욱 효율과 효과성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목사를 고상한 지식을 전달하는 선비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목사는 농사꾼이고 장사꾼이고 노동자입니다. 땀 흘려 현장에서 수고해서 열매맺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효과와 효율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속한 연합감리교회는 교회가 작거나 크거나 기본 목사사례가 높습니다. 그런데 교단이 직면한 문제는 자립을 못하는 교회 목사들 가운데 사례는 중형교회 목사나 큰 차이 없이 받으면서도 평가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만이 아니라 평가의 기준자체를 반대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입니다. 문제는 헌금은 안 들어오고 교인들은 떠나는데 목사들 월급은 현상유지 아니면 매년 올라가는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들을 위한 노동조합으로서의 교단은 더 이상 유지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는 미연합감리교회의 문제입니다.

 

제가 섬기는 목회현장으로 돌아옵니다. 플러싱은 1970초반부터 뉴욕 한인이민이 몰려온 이민 1번지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젊은 중산층들은 다수 교육환경이 좋은 롱아일랜드나 뉴저지로 빠져나가고 노인층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나아가서 지난 십여년 중국 본토에서 이민 온 중국인들이 플러싱 지역의 건물들을 현금으로 구입하면서 부동산 가격을 올려놓았고 중국인들이 연방국회위원으로 시작하여 정치역량을 확장하고 인구도 40%이상이 되면서 더 이상 한인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후러싱제일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미국전체에서 한인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고 대중교통이 잘되어 있어서 한인상권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일날 교회를 찾을 때는 외곽으로 나가 사는 사람들도 교회는 이곳으로 나오는 아직도 뉴욕에서 한인교회의 중심은 플러싱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도시목회를 생각하면 저는 제가 섬기는 교회를 염두에 둘 때 기본적으로 세가지를 생각합니다. 1. 현 플러싱 지역에서 지역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2. 맨하탄을 중심으로 한 도시 젊은층 속으로 들어가는 비전을 가지고 3. 도시목회의 꿈을 꾸는 사역자들을 훈련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뉴욕은 미국에서 목회하기가 가장 어려운 곳 가운데 으뜸이라 하겠고 동시에 전도가 아주 어려운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파구만 찾으면 무궁무진한 선교적인 가능성이 있는 도시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1. 사람이 많습니다. 2.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3. 전세계 가장 많은 인종과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입니다. 4.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고 몰려있는 도시입니다. 5. 세계 문화와 경제등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도시입니다.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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