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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세이비어교회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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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17-07-0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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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러싱제일교회(김정호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개혁의 역사에서 길을 찾는다”라는 주제로 3월부터 11월까지 매월 연속 세미나를 열고 있다. 3월에는 조영준 목사가 마틴 루터, 4월에는 김중언 목사가 요한 웨슬리, 5월에는 이재준 목사가 조셉 웨슬리 매튜스, 6월에는 장철우 목사가 도산 안창호에게 길을 물었다. 

 

전반기가 역사적인 인물들에게 길을 물었다면 이제는 동시대의 목소리를 듣는 하반기 일정이 시작됐다. 7월 5일(수)에는 ‘고든 코스비에게 길을 묻는다’(유성준 목사), 8월 19일(수) ‘여성, 평신도에게 길을 묻는다’(이성옥 전도사, 김명래 전도사), 9월 13일(수) ‘2세들에게 길을 묻는다’(2세대 목회자들), 그리고 종교개혁의 장이 열린 10월 11일(수)에는 ‘차세대에게 길을 묻는다’라는 내용으로 진행되며 차세대 목사들이 95개조 개혁선언을 하게 된다.

 

7월 5일(수) 저녁, ‘고든 코스비에게 길을 묻는다’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 유성준 목사는 세이비어교회 전문가이다. 23년동안 미국 UMC에서 목회하면서 특히 1991년부터 워싱톤DC에서 사역하면서 94년부터 혁신적인 세이비어교회 모델에 대해 배우고 목회에 적용하기도 했다. 2004년 한국에 나가 협성신학교 교목실장으로 학생을 가르치면서 세이비어 교회를 한국교회에 소개했다.

 

2005년 <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 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놀랍게도 기독교 서적으로 10만부 이상 팔렸다. 유성준 목사는 “그 이유는 한국교회가 여러가지 위기 가운데 있었고 대안을 찾고 있을 때 세이비어교회가 중요한 대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책이 출간되고 실제적으로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고 소그룹 공동체(미션그룹)에 대한 실천편을 출간했고, 고든 목사의 목회철학이 서번트 리더십인데 <예수처럼 섬겨라>라는 리더십 책을 출간했고, 세이비어 교회 핵심인 <작은 공동체가 희망>이라는 책도 냈고, 고든 목사의 묵상집도 번역 출간했다. 

 

세이비어교회는 입교과정과 훈련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1988년부터는 서번트 리더십 스쿨을 만들어 사역을 했다. 유승준 목사는 1994년부터 10여년 훈련을 받고 한국에 나가 2년 전에 한국 서번트 리더십 스쿨을 시작했다. 스쿨을 통해 공동체 신학, 성경, 소명, 서번트 리더십, 영성과 기도, 소외자들과 함께 하는 삶 등 6가지를 매학기 마다 공부하고 여름에는 공동체를 방문하고 가을에는 리더십 컨퍼런스도 한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 대안공동체 방문 일정을 진행하며 18명의 한국 목회자들과 미국을 방문했다. 후러싱제일교회는 특강후 한국 서번트 리더십 스쿨 이사회비를 전달하며 격려했다.

 

유성준 목사가 강의도중 스스로 언급했지만 메마른 특강으로 진행될 수도 있었지만, 특강을 부흥회 식으로 뜨겁게 인도했다. 아멘넷은 2번에 걸쳐 특강 내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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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공동체의 역사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위기와 새로운 공동체(Crisis and New Community)운동의 연속이었다. 그 위기 가운데 교회가 망했는가? 아니다. 그때마다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 새로운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서 교회는 오늘까지 지속된다. 초대교회가 생명력을 잃어가고 조직화되어 갈 때 초대교회적 공동체를 재현하려는 몬타누스운동이 있었고,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후 기독교는 오히려 세속화되고 로마제국의 멸망후 제국 멸망의 반동으로 수도원운동이 일어나 시대의 아픔을 극복해 나갔고, 중세교회가 세속화될 때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물론 종교개혁이 율법화 될 때 감리교의 뿌리가 되는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중요한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원했던 것은 당시 세속화 된 교회를 신약성서의 원형으로 회복하려는 운동이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교회의 역사를 돌아볼 때에도 한국과 미국의 교회는 어려울 때 마다 새로운 공동체운동이 일어났고 때로는 개인의 갈등들이 공동체화 되는 것도 볼 수 있다. 이 시대 교회에도 여러 가지 위기가 개인과 공동체에 만연해 있다. 이것이 이 시대 교회가 풀어야 될 과제이다.

 

교회갱신을 생각하면서 UMC 한인목사들이 만든 만들어진 감미준(감리교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의 40대 목회자 30여명이 2003년 10월 29일(월)부터 11월1일(수)까지 세이비어교회를 방문하고 미래목회의 대안으로서의 세이비어교회 모델과 비전에 대해 논의하고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향한 언약을 제정하는 모임을 가졌었다.

 

당시 참석자들이 고든 코스비 목사의 주제강연을 듣고 대담하는 시간에 김정호 목사가 코스비 목사에게 “목사님이 일생동안 붙잡고 사역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말씀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고든 코스비 목사는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마태복음 22장 35절로부터 40절까지의 말씀이라고 대답하였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위해 율법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물었다. 예수님이 레위기와 신명기 말씀을 조합해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순서는 첫째이고 둘째이지만 내용적으로 볼 때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와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가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든 코스비 목사는 자신이 추구하는 세이비어교회의 핵심 목회철학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인 내적인 여정(Inward Juorney)과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인 외적인 여정(Outward Journey)의 철저한 균형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사역을 통해 실천하는 것은 "Journey Together"이다. 공동체라는 말은 원래 같은 목적,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다. 그러면 기독교 공동체, 교회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만나는 그 연결점이 교회공동체이다. 여러분의 공동체가 그런 교회로 세워질 수 있기를 축원한다. 

 

23년 간 미국에 살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교회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시에 위치한 세이비어 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이다. 1947년 고든 코스비에 의해서 설립된 이 교회는 영성과 사역의 철저한 균형을 강조하는 입교 과정과 고도의 훈련을 통해 100여명 정도의 교인으로 미국의 교계를 움직이는 혁신적인 교회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교인이 150명이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100여명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세이비어교회가 개척 때부터 지향해 온 핵심적인 목회철학은 첫째, 영적인 삶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양보할 수 없는 첫째는 영성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한다. 둘째, 예수 중심의 사회적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이다. 셋째,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넷째, 용기와 희생적인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원동력이 되어 시작된 ‘희년사역(Jubilee Ministry)‘은 1960년도에 지역사회 사역인 카페와 서점이 동시에 운영되는 ‘토기장이의 집’ 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계속해서 저임금 가족을 위한 주택보급사역을 실시하고, ‘그리스도의 집’과, ‘사마리아인의 집’, ‘미리암의 집’ 등의 치유사역을 통해 빈민지역의 주민들과 실업자, 노숙자,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들을 치유하고 재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 70년의 역사를 통해 이제 세이비어교회는 7개 분야에 45가지의 연관된 지역사회사역을 진행하며 연간 2,000만 불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는 교회가 되었다. 마치 적은 씨앗 하나가 심겨서 그것에서 싹이 나고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새들이 모이는 것처럼 50여가지 지역사역을 하는 역동적인 교회가 되었다. 

 

1946년에 처음 모임을 가졌지만, 1947년에 고든 코스비 목사 비전에 동의하는 7명과 목사 부부 등 9명이 시작했다. 이들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입교과정과 훈련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학교(The School of Christian Living)’를 만들어 훈련했다. 1988년부터는 서번트 리더십 스쿨을 만들어 사역을 했다, 1994년부터 10여년 훈련을 받고 한국에 나가 2년전에 시작한 것이 한국 서번트 리더십 스쿨이다.

 

세이비어교회는 모든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행함’ 이전에 ‘존재’를 중시하며 무엇보다 ‘관상의 삶(Contemplative Life)’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적인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도 이곳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라(Life of the Beloved)’를 집필하며 영향을 받았다. 저 또한 1994년부터 세이비어교회와 연관을 가지고 ‘섬김의 리더십 학교(Servant Leadership School)를 통해서 훈련과정을 이수하면서 나의 영적여정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고든 코스비 목사가 개척한 와싱톤 디시의 세이비어교회는 지난 70년간의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을 격려하여 그들 가운데 참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세이비어교회는 오늘날의 교회의 기준으로 볼 때 하나의 작은 교회로 남아 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대형교회들이 있다. 그리고 그 교회들은 다 나름대로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은 세이비어교회는 이 시대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 미래목회에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교회이다. 

 

세이비어교회의 개척자인 고든과 메리 코스비는 버지니아주의 린치버그에 있는 리버몬트 에비뉴 침례교회에 메리의 부친이 담임목사로 부임해 왔을 때 처음 만났다. 그 당시 메리는 10세였고 고든은 15세였다. 그 당시 미국 남부의 교회는 종교생활뿐 아니라 사회생활, 사교생활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한 교회 안에서 친하게 지내며 자라났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든은 19세가 되자 곧바로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그곳에서 몇 년을 지냈다. 그때 그는 일반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시드니 햄든 대학으로 편입하여 공부했다. 그리고 다시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남침례교 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마쳤다. 고든은 신학과 대학 두 과정을 동시에 공부하여 졸업하였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8일 후에 고향교회 목사님 딸인 메리 켐벨과 결혼하게 되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고든은 그가 신앙생활을 하며 보고, 알고 있는 교회와 신약성서에서 읽은 교회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인 메리에게 어떻게 하면 이 둘 사이의 불일치를 줄이고 온전한 교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토론하였다. 새로운 교회에 대한 열망은 고든에게 있어 선천적이고 매우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고든 코스비 목사는 15세 때부터 당시 버지니아 린치버그 교외의 조그마한 흑인 교회의 교인을 섬기는 설교자로 3,4년을 보낸 적이 있다. 한번은 흑인동네를 방문하던 길에 오래되어 버려진 건물 한 채 발견했는데, 그것은 이 지역에 있는 교회 중 하나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교회는 목회자를 부를 여유가 없기 때문에 교회 문을 닫았다고 한다. 고든은 그들의 목회자가 되겠다고 제안했고, 그는 그 다음 주일 그 교회에 가서 시범으로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신학교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매 주일마다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어떤 면에서 신학교에서 배울 때보다 더 많이 그를 성숙시키는 기회가 되었고 일생동안 새로운 교회에 대한 열망을 가진 출발점이 되었다. 

 

신학교를 마치고, 고든와 메리는 버지니아 알링톤에 있는 작은 침례교회로 부임해 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1년 동안 사역하였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고든은 군목으로 섬기게 되었다. 고든 코스비 목사 인생가운데 영적전환의 기회가 된 것이 2차 세계대전이다. 2년 반 동안 군목 생활을 했으며, 그는 전쟁이 얼어나면 가장 먼저 침투하는 101공수부대와 함께 유럽으로 파병되었다. 그가 참전한 곳은 노르만디 상륙작전 등 2차세계대전중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다. 그는 죽어가는 장병들과 함께했고, 부대 장교 120명중 작전후 20명만 살아남았다.

 

그들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맞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의 그의 교회생활은, 그때 그가 보았던 삶과 죽음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2년 반 동안의 고된 시련을 거치면서 그는 다시 전과 같은 목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부인 메리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는 어떤 형태든 새로운 목회를 시작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새로운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는 예전의 조직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가 전장에서 보고 경험했던 것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고든 코스비 목사는 알링톤에 있는 좋은 침례교회에 전역하면 가서 섬길 기회가 있었지만 치열한 전쟁터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그냥 교회가 아니라 신약성경이 말하는 그런 의미의 교회를 해보아야겠다는 결심을 군대생활을 통해서 하고 제대후에 세이비어교회를 개척했다. 

 

그때 고든이 생각한 새로운 교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새 교회는 인종적으로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1940년대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지역에서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도 당시 그가 속한 남침례교회에서는 그를 목사안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는 교인들의 신실성(Integrity)과 책임감(Accountability)을 철저하게 실현하는 교회였다. 고든은 전쟁 기간을 통해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병사들이 어느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느냐는 것이, 그들의 삶과 죽음의 방식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교회문제는 다른 여러가지 이슈가 있지만 크리스찬들에게 신실성과 책임감, 두 가지 심각한 이슈이다. 

 

그러나 고든은 어떻게 그의 비전을 현실화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러한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큰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는 당대 재벌인 존 록펠러가 쓴 사설을 읽었다. 그 사설의 내용은 에큐메니컬 운동과 뉴욕시에 있는 리버사이드교회를 통해 록펠러가 그 운동에 참여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든은 록펠러의 동역자들과 자신의 비전을 나누기 위해 뉴욕에 찾아갔다. 그들과의 만남이 그의 새로운 사역에 뒷받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혹은 그들이 사역에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말미암아 고든은 큰 것을 통해 엄청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있었다. 이것이 그가 군목 생활로부터 돌아온 첫 해의 일이었다. 결국 고든은 전쟁을 통해 얻은 좌절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사역에 적용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고도의 영적훈련을 받은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이때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그 후 메리의 아버지가 워싱톤DC 근교의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에 부임해 오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워싱톤DC 지역을 기반으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다음 단계는 그들의 비전을 위해 워싱턴 지역에 건물을 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든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37달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첫 번째 건물을 위한 재정의 전부였다. 그리고 워싱톤DC의 19번가에 위치한 한 작은 건물을 구입했다. 그는 1946년 그의 아내 메리 캠벨 코스비와 다른 일곱 명과 함께 그 새로운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딛었고, 그곳에서 1947년 10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학교(The School of Christian Living)”라는 이름 아래 세이비어교회의 최초 입교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첫 번째 교인 헌신 서약자를 세우게 되었다. 이것이 세이비어교회의 시발점이었다.

 

19번가에 위치한 그 건물은 오래되고 초라했지만 보수작업을 마쳤을 때, 그 건물은 아름다운 작은 예배당이 되어 있었다. 메리는 예술적인 재능을 살려 매우 그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고든 부부는 그 후 어떤 사역을 하던 빈민지역의 사역이라 하더라도 모든 공간들은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도록 노력했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영혼을 살찌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이비어교회가 처음부터 알려지고 지역사회 사역을 한 것이 아니다. 1953년에 리더스다이제스트를 통해 고든 코스비 목사 목회철학이 소개되었다. 세이비어교회의 교인으로 세이비어교회에 이론적인 토대를 놓은 엘리자베스 오코너가 세이비어교회의 목회철학을 담은 필독서인 ‘헌신에로의 부름(Call to Commitment)’과 ‘내적인 여정. 외적인 여정(Journey Inward, Journey Outward)’이 소개되며 21세기의 교회가 갖추어야 될 가장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모델로 주목받게 되었다.

 

소문을 듣고 교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교회의 목회철학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학교’에 참여하여 훈련받기 시작하였고, 한 사람 한 사람씩 결단하기 시작했다. 고든 코스비 목사는 너무 큰 교회는 효과적으로 교인들을 훈련시키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1976년 두 개의 다른 신앙공동체로 교회를 나눌 때까지 120명 정도의 교인들이 있었다. 그래서 세이비어교회는 본부교회가 있는데 본부 교회 말고 10개의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은사에 따라 나누어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를 다 비영리단체로 등록시키고 각 공동체마다 소위 소그룹 미션그룹을 만들어 운영하게 되었다. 고든이 소그룹에 영향을 받은 것은 웨슬리 목사이다. 

 

교회가 시작되며 시행했던 중요한 한 가지는 모임의 조직과 훈련이 매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 모임과 훈련이 바로 1988년에 세워진 ‘섬김의 리더십 학교(The Servant Leadership School)’로 발전하였고, 지교회 형태의 10개의 ‘신앙공동체(Faith Community)’가 세워졌고 각 신앙공동체는 독립된 비영리단체로 등록되었고, 각 공동체마다 소그룹 ‘사역공동체(Mission Group)’들이 시작 되었다.

 

사역공동체를 만들기 전에 사역초기에 그들은 소그룹 혹은 성장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소그룹들을 조직했다. 소그룹은 웨슬리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만약 그들이 소그룹 안에서 사람들을 온전하게 양육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바로 사역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역을 하는 소그룹이다. 소그룹으로 모여 예배드리고 친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든 코스비 목사는 같이 모여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삶을 나누는 것(sharing)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서로 돌보는 것(Caring)이며 서로 세워주는 것(building)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함께 하는 사역도 하는 것이다. 교회가 주도적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인들을 잘 훈련시켜서 교회사역을 위임해서 교인들이 사역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도 바울의 목회철학과도 잘 맞는다. 사도 바울의 목회철학의 핵심은 에베소서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말씀이다. 교회의 목사나 지도자들이 하는 일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일이다.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 제자화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하신 마태복음 28장 대사명에 대한 말씀중 핵심적인 말씀이 제자 삼으라는 말씀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자 만드는 것이다. 제자는 선생으로 부터 잘 배우고, 선생을 점점 닮아가고, 선생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는 것이 제자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세워서 파송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이다. 보내심을 받은 자 라는 뜻이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고 다시 제자를 만들고 사도로 파송하고 이것이 2천년의 교회이 역사이다. 그렇다면 후러싱제일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역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도 그렇지만 교회가 담을 높이 쌓고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오라고 해도 사람들이 안온다. 이제 교회 담을 허물고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야 된다. 지난해 예장 통합측의 총회 슬로건이 "마을로 나가자" 였다. 이제는 교회가 지역으로 나가야 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저런 교회 같으면 나도 예수 믿어 보아야겠다고 하는 감동을 줄 수 있을 때 설득력이 있다. 상황은 다 다르지만 자기 상황에 맞게 이것을 소위 신학에서 말하는 자기 상황화하여 사역을 할 때 공동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역사를 이룰 수 있다. 

 

사역초기 세이비어교회의 비전에 동의하고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훈련(Inward Journey)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외적인 실천(Outward Work)에 참여함으로써 부담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손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를 원하지만 영적인 훈련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로 그저 세상을 고쳐보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그러나 고든에게 있어서 영적인 훈련과 외적인 실천, 이 두 가지의 통전적인 적용은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목회철학이었다.

 

누구나 기도모임, 성서공부모임, 심리치료모임 등 그들이 원하는 모임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모임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교인의 자격은 영적인 훈련과 외적인 실천을 함께 갖추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그룹들은 단지 각각의 개인적인 사역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역을 이루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세이비어교회는 정식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1) 하루에 한 시간 씩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 2) 약 3년이 소요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학교와 서번트 리더십 학교의 훈련과정에 참여 그리고 지속적인 연장교육에 참여하는 것 3) 온전한 십일조 헌금 드리기 4) 소그룹 사역공동체 모임에 한 주간에 한 번씩 참여하는 것 5) 교회와 연관된 45가지의 지역사회 사역에 은사별로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것 6) 자신의 삶의 전 지경을 포함하는 영적자서전을 써서 공동체에 발표하는 것 7) 매년 각 신앙공동체에서 주관하는 관상기도 영성수련회에 참석하는 것 그리고 8) 교인의 자격을 매년 갱신하는 것 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방하여 동료교인들과 함께 좀 더 깊은 공동생활을 추구하는데 동의해야 한다. 이같은 교인의 자격은 세이비어교회가 초기부터 지향해 온 가장 중요한 입교과정의 원칙이다.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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