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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순 사모, 자전적 에세이와 시를 담은 "심플라이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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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ㆍ2006-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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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영락교회(한세원 목사) 사모 장혜순 사모의 자전적 에세이와 간증, 그리고 시를 담은 "심플 라이프"가 출간 됐다. "새로운 매듭을 향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406페이지 책은 쿰란출판사에서 냈다. 2006/02/03

대쪽 목회자로 정평 높은 한세원 목사의 부인으로 1983년부터 뉴욕영락교회를 섬겨온 장혜순 사모는 유년의 뜨락, 새로운 세계로, 부자의 금식기도, 중국을 향하여, 목적이 이끄는 삶등 5장으로 나누어진 책을 통하여 성장과정, 사모로서의 간증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장혜순 사모는 머릿말에서 "인생 육십이면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던 선배들처럼 나도 한가닥 매듭을 짓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마음으로 엮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두 아들내외와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할머니의 이야기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한세원 목사가 소속한 바울선교회(회장 이풍삼 목사)와 노회(노회장 이덕수 목사)는 책의 출판을 축하하며 오는 2월 13일(월) 오전 11시 금강산식당에서 출판기념회를 마련했다. 아래는 책의 주요 내용이다.

나의 증상이 파킨슨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듣던 그 날의 암담함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아니, 하필이면 내가? 빌리그레함 목사가 파킨슨병으로 고생한다는 소식 외에는 질병에 대한 상식이 없었다. 주위사람에게 어떻게 알릴 것인가가 또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남편 사역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가족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돌았다. 나는 나아야만 했다. 이제야말로 내안에 있는 믿음을 일구어 살아야 할 인생의 때가 되었구나.

4대째 목사의 집안 남편을 만나다

대학교 3학년 때 대구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다. 전국 대학교에서 모여든 기독학생들과 외국에서 온 학생들 몇 십 명이 모여서 대구 애향원에 집을 지어주는 작업을 했다. 그때 남편은 신학생으로서 그 모임의 회장이었고 나는 식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목사가 인기가 없어 친구들이 알고 "왜 하필이면 목사이야"라고 말했다. 남편은 학교 축제에 참가하여 내가 파트너를 소개할 차례에서 일어나 "My Fair Lady"라고 나를 소개하여 학교에 유명해 졌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과분한 사람이 아니라 인격 대 인격으로 인생을 개척해 갈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면 된다. 배우자는 본인의 분명한 선택이 제일이라고 본다.

1971년 9월 4일은 내가 엄마가 되는 날이었다. 몇 시간동안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는 해산의 고통을 겪었다. 어머니가 되고 나니 어머니가 더 그리워졌다. 둘째 아이는 더 아프게 느껴졌다. 결혼하여 미국에 오기까지 7년 반 동안 시아버님이 섬기시던 교회의 좁은 목사관에서 살았다. 큰 아들은 할아버지와 아빠가 하는 것을 보고 흉내를 내면서 목사 놀이를 하고 자라더니 지금은 목사가 되었다. 작은 아들은 아빠가 공군군목으로 있을 때 태어나 군인놀이를 즐기더니 미해병대에 자진 입대하고 제대한 후 워싱톤디시에서 연방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5년간 염광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했고 미국에서는 12년간 미국공립학교에서 이중 언어 교사를 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선생이 되고 싶다. 교직이 내게는 천직인가 보다. 학생들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생기가 돈다. 가르치는 것이 내 존재의 의미이기도 한다.

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차를 3번 갈아타며 교사직을 담당하랴, 사모 역할을 하랴, 며느리 노릇을 하랴 내 삶은 실로 곤고하기 이를 때가 없었다. 주어진 일을 잘해내고 싶지만 잘해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나는 지쳐있었다. "주여!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기도가 터져 나왔다. 나는 몸이 하나이다. 지금 서있는 곳의 일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완벽을 기하려고 했다면 그건 교만이다. 나는 서서히 여러가지 내게 주어진 역할에 대하여 적응하면서 자신에 대하여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

목사의 아들

큰 아들이 처음 맞이하는 신정에 큰 아버지 고 한경직 목사님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목사님은 아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드시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축복해 주셨다. 아들이 중학교때 뉴욕 할렐루야대회 강사로 오셔서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느냐?"라고 아들에게 묻자, 아들은 "나는 목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자 큰 아버지는 큰 한글성경책을 떨리는 손으로 사인하셔서 선물로 주시며 기뻐하셨다.

아들은 15세에 연합수련회에 가서 자신의 믿음으로 전임사역자로 일생을 헌신했다. 그 후 아들의 삶은 온통 하나님의 사역에 관계되는 공부로 일관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목사가 된 남편은 '너는 목사 아들이니까', '너는 목사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등의 말을 절대로 안하겠다는 소신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우리 가족은 1977년 9월 LA영락교회의 초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다섯 살과 세 살의 개구쟁이들을 데리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때의 감개무량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1982년 남편은 용단을 내려 프린스톤신학교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도 남편을 따라 프린스톤신학교에 들어갔다. 우리는 학생부부가 되었다. 너무 힘들어 그만둘까 했지만 아이들에게 약속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남편의 가족 중에는 프린스톤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목사나 교수가 된 분들이 여러명이다. 고 한경직 목사님은 1920년대에, 그리고 동생 되시는 시아버님은 1950년대에 공부하셨다. 한경직 목사님은 도서관 열람실에 모교를 빛낸 동문으로 사진이 걸려있다.

뉴욕영락교회 창립예배

뉴욕영락교회는 1983년 3월 셋째주일에 고국의 영락교회를 그리워하던 성도들에 의해 퀸즈 블로바드에 있는 ELKS 빌딩에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프린스톤에서 공부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나는 풀타임으로 하던 공부를 중단하고 일단 교회가 있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교회가 시험중일때는 사모와 자녀들은 얼마나 숨을 죽이고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목사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른말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잘못이 드러나게 되니 결국은 성도를 실족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와중에도 지킬 것은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말 안해도 드러날 것은 시간이 가면 다 드러나게 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법칙이다. 이때는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나도 살고 성도도 살릴 수 있다. 사람은 내가 섬기고 사랑해야할 대상이지 절대로 믿음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믿고 의지할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고백한다.

직장생활할 때는 토요일이 기다려지곤 했다. 하지만 목회자에게는 주말이 더 바쁘다. 토요일은 일찍 자고 내일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일만 생각하도록 했다. 토요일 저녁이나 주일아침에는 목사님이 신경 쓰이는 일을 만들지 않도록 온가족이 조심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어도 주말에는 절제해야 했다. 이민목회를 한 교회에서 시작하여 이제 끝마치려고 하는 즈음에 되돌아보니 어려운 시간들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토요일 밤은 무거운 침묵이 나를 눌렀다.

하나님의 은혜로 담당한 사모 역할

어느 날 주일 저녁 나는 그날의 설교에 대해 내 의견을 말했다. "오늘 당신 설교는 좀 어려웠어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나도 안다. 주일 저녁이 목회자에게 가장 피곤한 시간이라는 것을. 한편 생각하면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학교는 학생도 바뀌고 학년도 달라지는데, 목회는 같은 대상을 놓고 10년, 20년 혹은 일생을 성경책 하나로 설교해야 하니 말이다. 그들이 다 안다고 하는 내용을 어떻게 흥미롭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또 설교는 성경지식을 가르치는 그 이상의 삶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한 교회에서 일생을 목회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어려운 일임을 고백한다. 세상에 어느 직장이 온 가족이 함께 동참하게 되어 있는가? 그래서 사모가 되기를 그렇게들 꺼려했었나 보다고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까지 이 일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심플라이프

어느 날 아침 뉴욕타임즈에 난 미 서부지역의 전문 여성인들의 기사를 보고 나는 흥분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주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어떻게 하면 심플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실천하고 나누는 모임이다. 가령 3년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전기제품은 다른 사람에게 주고, 2년에 한번 입는 옷도 정리한다 등 사소한 이야기들 이었다.

한 여 교수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더 분주한 생활을 하게 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삶은 짜증스러워 졌다. 그녀는 일을 중단하고 남편의 수입에 맞는 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이 절제되고 자녀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고 오히려 더 행복해 졌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만드실 때 의도하신 목적에 부합되게 사는 길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이러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 뉴욕시 공립도서관에 한국 책 300권을 기증했다.

ⓒ 2006년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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