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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훈 목사 "주님이 주신 은혜로만 만족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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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ㆍ2015-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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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한인교회(이규섭 목사)는 3월 13일(금)부터 3일간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로 삽니다"라는 주제로 춘계 부흥성회를 열었다. 강사는 아멘넷이 수차례 소개한 열린문장로교회 김용훈 목사. 김 목사는 첫 날 저녁 요한복음 21:15-19을 본문으로 "그 사랑에 만족하며 삽시다"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김용훈 목사는 설교에서 신앙생활에 가장 많이 일어날 수 있는 시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를 섬기며 헌신한다고 했는데, 몸이 아프고 사업이 잘안되고 자녀들이 말썽을 피울때 다가오는 시험들이 있다. 김용훈 목사는 그럼에도 주님의 주신 은혜때문에 탈선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길을 계속 걸어 갈 수 있느냐고 주님을 대신하여 묻고 있다. 다음은 설교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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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를 시작하기 전에 교인들과 함께 성회의 주제인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로 삽니다"를 외치는 이규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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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는 강사 김용훈 목사. 웅장하게 설교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대화하며 감성을 탓치하는 설교는 회중들을 집중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한번 사는 인생을 이왕이면 주님이 원하는 그러한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성도들에게 다 있다. 그런데 딜레마는 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은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이 성도들의 딜레마이다. 필요한 지혜는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을 알고 다 잘할 수 없으면 그것을 잘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무엇이 중요하게 생각하실까.

하나님께는 밖으로 드러나는 결과보다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내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가, 내가 얼마나 세상에서 기억되는 일을 했는가 하는 것들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그 일을 하는 동기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나타나는 결과보다 하나님께는 결과를 나타나게 한 우리의 중심의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집회를 통해 우리의 동기를 돌아보는 집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타나는 결과를 익숙하게 살아간다. 자칫 잘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그 초심과 동기를 잊어버리고 변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그런 질문을 해 보았는가. 내가 하는 모든 일들-교회를 나와 섬기고, 주의 나라를 위해 하는 모든 일들의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동기는 무엇인가. 질문을 바꾸면 하나님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동기가 무엇이 되기를 원하실까. 저는 그 동기를 한 단어로 바꾸면 "은혜"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받은 은혜가, 십자가를 통해 받은 그 은혜가 내 섬김과 나의 희생과 나의 모든 것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은혜를 간단하게 정의하면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기쁜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이 영적인 삶에서 승리했던 비결을 보면 자기가 은혜를 받은 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는 고백을 한다.

사도 바울에게 믿음의 아들이 디모데가 있었는데 목회를 하면서 목회가 쉽지 않았다. 그때 사도 바울이 자기의 유언과 같은 디모데 후서에서 그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다른 것을 다 잊어버려도 이것은 잊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은혜였다. 디모데 후서 2:1을 보면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지 세상 사람과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신앙생활은 의무감으로 해서는 감당할 수 없으며, 신앙생활은 죄책감으로 해서는 감당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비결은 은혜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첫 단추가 굉장히 중요하다. 은혜로 살아가기 위해 먼저 첫 단추를 생각해 보기 원한다. 그 첫 단추는 받은 사랑에 만족하는 것이다. 그 사랑에 만족하는 것이다. 그것이 먼저 이루어지면 내가 십자가를 통해 받은 그 은혜가 모든 것이 되어 삶에 만족하면 은혜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본문은 익숙한 말씀이다. 예수님에게 있어 오른팔과 같은 든든한 제자가 베드로이다. 베드로가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 주님께서 실패한 베드로에게 다가오셔서 다시 회복시키시고 세우시면서, 주님이 세 번씩이나 베드로에게 사랑에 대해 언급하신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다가온 이유가 그것이다. 용기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난 달란트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에 베드로에게 다가오셔서 첫 번째 단추를 바로 끼는 일을 베드로에게 하시고 계신 것이다.

저에게 참 부끄러운 간증이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주님이 저의 삶에 찾아오셔서 저의 삶에 잘못 끼워져 있는 첫 단추를 바로 끼도록 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더욱 소중한 말씀이다. 본문 말씀은 저의 삶에 있어서 제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말씀이다. 오래 전에 주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물으시면서 다가오셨다. "용훈아, 너는 그 사랑만으로 만족하고 나를 따라갈 수 없겠니"라고 세밀한 음성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 사랑에 만족하고, 그 사랑때문에 그것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따라올 수 없겠냐고 물으신 것이다.

주님이 그렇게 묻고 다가오신 것은 사연이 있었다. 저는 원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까지 주님을 모르고 살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주님을 만났다. 그리고 2년 동안 주님과 사랑에 빠져 살다가, 대학교 3학년 마칠 때 쯤되어서 목회자로 소명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속성반이다. 그 시기는 갈등의 시기였다. 왜냐하면 한번 잘살아보려고 미국와서 상대를 다녔는데 영어가 잘 안되니 그렇게 해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전공을 전자공학으로 바꾸고 공부에 몰입하고 있을 때 다가오셔서 저를 부르셨다. 제 마음에는 여러가지 갈등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밀린 학비도 갚고 이민 와서 고생하시는 부모님도 도와드려야 하는데 목회자로 나가는 것이 부모님께 죄송했다.

목회자의 길로 가겠다는 의사를 부모님에게 전했을 때 부모님은 승낙했지만 한가지 조건은 하는 공부를 마치라는 것이었다. 형식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가면 평생 공부를 못해서 목회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하던 공부를 다 마치고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면 축복하고 승낙하겠다 하셨다. 2년 반을 열심히 공부하여 마치고, 미숙한 사람이 용감하다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목회자의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면서 이민교회를 섬기기 시작했다. 현실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이민교회에 처음 들어가서 대학생으로 교회를 다닐 때와 목회자로 섬길 때 사정이 너무 달라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대학부 회장으로 섬기며 다니면서 간증도 하고 앞에 나서서 무엇을 하고도 했는데, 목회자로 섬기면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러한 시간이었다. 너무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돌아보니 저에게 그 시간이 굉장히 필요한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입술로는 "주님, 저같은 것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라고 했지만, 마음속에는 내가 마치 하나님을 위해 대단한 것을 희생하고 그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교만이 있었다. 주님이 그 부분을 터치하시기 위해 3년이 넘는 시간을 잊힌 곳에서 지내도록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음속에 있는 것이 터져 나왔다. 그날 주님과 대화하면서 갑자기 마음속에 그동안 눌려놓았던 것이 한마디 터져 나왔다. "주님, 고작 이것입니까?" 입술로는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마음속에 나는 이렇게 많이 희생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고작 이것 이냐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주님 앞에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것이 다라면 다시 돌아가렵니다. 직장을 잡고 그냥 교회에서 평신도로 섬기렵니다."

그때 주님이 세밀한 음성으로 다가오셔서 물으신 질문이 있다. 요한복음 21장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용훈아, 다른 일을 하는 것 보다 나와 더 깊은 사랑에 빠져서 살 수 있다는 그 것 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겠니. 용훈아, 어쩌면 앞으로 사정이 지금보다 하나도 더 나아질 수 않을 수도 있지만 나와 깊은 사랑에 빠지는 그 것 하나만으로 만족하면서 너의 길을 갈 수 없겠니." 말씀을 듣고 눈물이 막 쏟아져서 말을 더 못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주님께 고백했다. "주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에 기억될만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어도 주님과 그 깊은 사랑에 빠지는 하나만으로 만족하며 제가 이 길을 가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믿음의 여정의 터닝 포인트였다.

만일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 질문을 하신다면 여러분들의 답은 무엇인가. 혹시 주님을 위해 산다고 열심히 살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투병하고, 또는 사업이 어렵고 자녀가 어려운 그러한 상황에 있는데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질문을 하신다면 여러분들의 답은 무엇이 될것인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많은 갈등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오는 시험이라는 것들, 한 번 바닥을 잘 들여다보면 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주님 한분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십자가 사랑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오늘 주님께서 실패한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위해 찾아오셔서 다른 것은 물어보지 않으셨다. "베드로야, 네가 용맹스러울 수 있느냐" 또는 "베드로야, 네가 앞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야 하는데 너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는가"등을 묻지 않으셨다. 베드로에게 주님이 물으신 것은 한 가지 질문이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같은 질문을 세 번 하신다. 익숙한 질문이다. 한글 성경은 세 번의 질문에 같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다른 단어가 사용됐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다가오셔서 처음에는 아가페 완전한 사랑을 물으셨는데, 베드로는 형제를 사랑하는 필레오 사랑으로 대답한다. 주님이 두 번째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데, 베드로는 필레오 사랑으로 대답한다. 세 번째 주님이 이번에는 필레오 사랑을 물으시고, 베드로도 필레오 사랑으로 대답한다. 어떤 분들이 해석하기를 주님이 베드로에게 아가페 사랑을 요구했지만 베드로가 감당하지 못하니 계속 물으시다가 마지막에 가서 베드로의 수준으로 낮추어 필레오 사랑으로 물으신 것이라고 한다. 저는 그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다. 다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사랑이다. 주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고 그 사랑의 수준을 낮추어서 그런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절대적인 아가페의 사랑이다. 마태복음 6:24에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10:37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강조의 표현이다. 그 사랑만으로 만족할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다른 이유는 요한이 요한복음과 요한 1-3서를 쓸 때 보면 아가페의 사랑과 필레오의 사랑을 운학적인 기교로 섞어가면서 사용했지만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그 사랑만으로 만족하면 따라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는 주님이 오늘밤에 우리 모두에게 그 질문을 하신다고 생각한다.

주님과 깊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그 특권만으로 만족하며 가는 좁은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을 따라올 수 있겠느냐고 주님이 물으신다. 그 사랑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우리는 넘어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어진 이유는 자기들이 받았던 그 사랑을 만족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기 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꼭 기억하기를 원했던 것을 기록하신 말씀이 신명기이다. 신명기 33:29에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사랑을 너와 같이 받은 백성이 이 땅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지 않았는가. 십자가를 통해 그런 사랑을 받았다. 주님이 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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